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6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62)
잿빛바위 그랑츄로서 ‘이름’이 붙은 놈!
카짓, 밀림으로 우거진 산맥 속에서 늘 피칠을 하고 튀어나온 탓에 붉은 그랑츄 계열로 살짝 오해까지 받았던 잿빛바위 그랑츄였다. 언제나 무엇인가를 죽이고 그 피로 몸을 적신 채로 싸돌아다닌 미친 싸움꾼으로 정체가 밝혀졌고, 군단에 의해 토벌될 때까지 몬스터 헌터 파티를 꽤 오랫동안 괴롭힌 놈이었다.
강하기는 했지만 뭔가 압도적으로 강한 몬스터는 아니었기에 중급 몬스터로 지정되었지만, 그 수준을 감당해내야 한다는 헌팅 파티가 잡지 못한 경우였다. 덕분에 어느 틈엔가 그랑츄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가 되었고 결국은 솔로얀의 군단이 토벌에 나서야 했다는 이야기였다.
파라락.
도감이 펼쳐지면서 투란이 아는 이야기를 담은 페이지를 드러냈다.
그 페이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부분, 목이 싹둑 잘린 채로 창대에 꽂혀 있고 몸통은 그 창대 아래에 목 없이 드러누운 광경의 그림은 바로 투란을 놀라게 했다.
“꽥? 뭐야, 이거?”
―실제로 있던 광경을 옮겨 놓은 모양인데? 툴로쉬의 초상화처럼 말이야.
드라고니아도 조금 놀라고 의아한 듯이 중얼거렸다.
그 정도로 그림은 굉장히 사실적이었고, 정말 있었던 일을 고스란히 옮겨 붙여놓은 듯했으니까.
투란이 냉큼 그림에 대한 설명을 읽어 보았다.
⚫ 솔로얀의 마검에 참수된 직후, ‘카짓의 혈석’ 사체. 군단참모였던 마법사가 기억을 되살려 전사(傳寫)함.
진짜로 마법으로 그린 모양이었다.
‘와아, 몬스터 잡고 이렇게 증거로 남겨놓은 건가?’
투란은 새삼 그 현장에 있었던 이의 치열한 감정을 느끼며 소리 없이 속삭였다.
―두상(頭相)이 특이해서 남긴 모양인데?
드라고니아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어? 두상? 머리 모양?’
그 말에 투란은 다시 ‘카짓의 혈석’이란 이름을 얻은 잿빛바위 그랑츄의 머리통을 살펴봤다. 비록 그림이었지만, 마법으로 그렸다고 해도 바로 앞에서 보는 듯한 기분으로 다시 살피니 확실히 조금 특이하게 생긴 머리였다. 울퉁불퉁, 눈가와 이마 언저리가 튀어오른 것이 무슨 뿔이라도 돋기 직전인 것처럼 생겼다.
‘맞아서 혹 난 거 아닌가?’
투란의 감상은 간단했다.
실감이 짙을수록 싸우면서 목이 잘릴 때까지 실컷 두들겨 맞고 저 모양이 된 것이란 확신도 짙어진 것이다.
―피하 부위가 약하니 세게 맞고 부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패는 놈이 저렇게 가지런하게 모양 잡힌 혹이 나도록 팼겠냐? 몸통을 봐라. 찢기거나 베인 흔적은 있지만 따로 타박상으로 보이지는 않잖아. 실재한 광경을 그대로 옮겼다면 저 세세한 묘사도 진짜 있었던 그대로일 테니까…….
‘그럼, 정말로 이놈 머리통에 뿔이 나기 직전이었다고?’
투란은 뜬금없는 드라고니아의 짐작에 어이없어하며 묻듯이 말했다.
그럴 리는 없다는 투란의 이런 말투에 드라고니아가 침착하게 가라앉은 말투의 대답을 꺼내놓는다.
―파이로-칸, 그 경우를 생각해봐.
‘뭐? 파이로-칸? 그게 무슨…….’
더욱 어리둥절하다가 투란은 흠칫하며 생각을 멈췄다.
붉은 그랑츄가, 그 무리가 미친 듯이 용암의 호수를 배회하며 마그마 로드라도 잡겠다는 듯이 날뛰던 곳…… 그곳에서 투란은 파이로-칸이 어떻게 생겨나는가를 알아내지 않았던가.
‘잿빛바위 그랑츄에게도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붉은 그랑츄가 파이로-칸으로 변이하는 것처럼 잿빛바위 그랑츄에게도 다음 단계의 변이가 없다고는 못하지. 애초에 그랑츄는 다양한 특성을 갖추기는 했지만 어떤 품종이라도 그 바탕은 마찬가지니까. 그랑츄란 커다란 범주를 두고 다양한 품종으로 분류해놓은 까닭이 그 때문이야. 하지만 그 어떤 품종이라도 다른 형질, 파이로-칸 따위로 변이하는 가능성을 품었다고는 알려지지 않았지. 투란, 네가 직접 봤기 때문에 나도 알았던 거라고. 그러니 그랑츄란 품종에 대해서는, 개별적으로 이상한 특성을 지닌 경우라면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음…… 그러니까, 잿빛바위는 뿔난 상태가 그런 변이의 특징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변할 때 확 변하는 거였잖아? 그랑츄였다가 확 파이로-칸이 된 거지, 조금씩 변한 거는 아니었잖아.’
투란이 끄덕거리다가 갸웃하면서 다시 ‘카짓의 혈석’ 그림을 바라봤다.
드라고니아도 이에 동의하는 기척을 담아 말을 잇는다
―맞다, 하지만 그 변이과정이 꼭 순식간이어야 한다는 가정만 할 필요가 없으니까. 무엇보다 붉은 그랑츄는 불의 속성을 품었기에 불길처럼 변했다고 본다면, 암석의 성질을 지닌 경우에는 그 변화가 느릿하게 단계적으로 이뤄진다고 예상해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특히나…….
‘특히나?’
문득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이 두상의 어느 부분을 다른 무엇과 겹쳐보는 중이란 것을 깨달았다. 이 울퉁불퉁하게 뿔이 되다만 혹의 모양에서 뭔가를 짐작하기에 지금 이런 말을 한다, 그러니 그 특별한 것이 무엇인가 재촉할 만했다.
드라고니아도 투란의 짐작을 알아차린 듯, 바로 말한다.
―암석괴걸(巖石怪傑)이란 몬스터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나?
‘암석……? 아니, 없어. 어떻게 생긴 건데?’
―키클롭스보다 작아도 충분히 거인 소리가 나올만한 몰골을 한 인형(人形)의 괴물이다. 돌로 된 인간형태에 가까워서 암석괴인이라고도, 발견되면 일단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만…… 머리에 뿔 돋은 왕관이나 모자를 쓴 듯한 모습이 특징적이지. 자주 나타나는 경우는 아니야. 유니크 몬스터라고 여겨진 시절도 꽤 길었지.
‘유니크? 한 번 나타나고 꽤 오랫동안 안 보였다고?’
단 한 마리뿐이라면,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경우라면 분명히 유니크라고 하겠지만…… 유니크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한 마리 더 불쑥 나오는 희귀종, 레어로 변경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에 대해 투란이 물으니, 드라고니아가 확인해주는 듯한 대답을 했다.
―그래. 한 번 나타나서 기록되었지만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어서 오랫동안 유니크로 알려져 있었던 거야. 하지만 두 번째가 나타났으니 희귀종으로 품종분류가 바뀔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투란은 다시 바로 물어야 했다.
‘근데, 괴걸이라니? 뭔 뜻이야? 왜 그런…….’
―도전하고 도전받는 걸 즐기는 괴팍한 성향 때문이지.
‘네? 뭐라고요?’
약간 냉소적으로, 진담이냐고 따지듯이 투란이 반문했다.
―나타나서 닥치는 대로 싸돌아다니면서 때려부수는 짓은 하지 않아. 어슬렁거리면서 구경하고 다니다가 강해 보이는 놈만 골라 싸우려 들거든. 그래, 싸움을 걸고 거는 싸움에 응한다는 말이야. 괴물이면서 그 모양이었으니까, 괴물 모양을 한 호걸 아니냐고 그런 이름이 붙어버렸지.
‘뭔가 내가 아는 몬스터 동화(童話)를 완전히 무시하는 놈이네?’
―동화냐……. 하긴 너라면 그렇게 말하는 게 맞기는 하겠군.
몬스터 이야기를 무슨 애들 놀리는 데 써먹느냐고 따지려 해도, 투란이 그런 곳에서 자랐다는 점을 떠올리며 드라고니아가 씁쓸한 듯이 중얼거렸다. 그래서 투란은 재촉하는 말을 바로 보태야 했다.
‘그러니까 그게 결투에 미친 놈이라 싸우고 나면 휙 떠난단 말이야? 그래서 피해가 적어서 유명하지 않았나? 유명한 놈이면 한 번이라도 들었을 것 같은데…….’
―피해가 적지는 않았다. 단지 요즘 세대의 인간이 기억할 리가 없을 정도로 오래된 것뿐이지. 악마와 전쟁하던 시절에 처음 등장한 몬스터니까 말이야.
‘에? 그러면…… 엄청나게 오래된 거네? 아니, 잠깐! 한 번만 나타난 놈이 아니라며? 그 옛날에서 꽤 시간이 지난 다음에 또 나타났다며? 어라, 피해는 왜 컸다는 거지? 닥치는 대로 때려부수고 죽이고 날뛰는 놈도 아니라면서?’
복잡하게 떠오르는 의문을 투란은 마구 퍼붓고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쯧 하고 혀를 차는 말투로 정리하듯 대답을 한다.
―닥치고 들어. 이제 말해줄 테니까! 녀석은 뭔가 사는 곳, 그게 인간의 마을이나 도시가 아니라 둥지를 튼 몬스터의 무리가 있는 곳이라도 상관하지 않고 다가간다. 그리고 그 영역에서 강한 놈을 탐색하고 싸움을 걸지. 혹은 그 영역의 주인이 내쫓기 위해 달려들면 맞서 싸우고 말이야. 그동안에는 뭔가 한가하고 한둘 정도만 노리는 것처럼 보여. 하지만 문제는 그 싸움이 끝나고, 더 이상 자신이 싸울 상대가 없다고 여겨지면…… 그 지역을 갈아엎는다.
‘그게 무슨 뜻이야? 갈아엎다니?’
―말한 그대로, 뭔가 살았다는 흔적이 전혀 없게 다 밟아 짓이긴다고. 인간의 도시든, 비비나비가 번성하던 숲이든 텅 빈 자갈밭으로 바꿔버려.
‘어떻게?’
투란은 재빨리 짚어 물었다.
파이로-칸처럼 불을 지르는 것은 아닐 테니, 분명히 암석괴걸만의 고유한 특징을 지녔을 거라 짐작한 물음이었다.
―석화(石化). 암석괴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분진(粉塵)이 식물이든 동물이든, 괴물이든 가리지 않고 암석류로 변성(變性)시키지. 그 변성과정과 함께 주먹질을 하고 발로 짓이기고 다니니까, 남는 게 돌뿐이야.
‘그거 굳이 싸우고 나서 하는 짓이야? 잠깐, 진 다음에도? 지고 나서 재도전 안 하고 바로 그래?’
뭔가 휑하니 마음이 서늘해지는 기분으로 투란이 물었다.
싸움 걸고 다니고, 걸어오는 싸움 받아준다는 녀석이 뒤끝이 어이가 없잖은가.
이기든 지든 암석괴걸에게 맞선 상대는 돌덩이가 되는 것이라니!
―그랬다면 괴걸이라 불리지 않고 그냥 괴물로 끝났을 테지. 진 다음에는 그냥 떠나, 그래서 괴걸이라 불린 거야.
‘지면 돌, 이기면…… 그냥 가?’
조금 맹하니 투란이 되뇌었다.
드라고니아가 그 기분을 안다는 듯이 말을 잇는다.
―녀석은 같은 상대랑 반복해서 싸우질 않았어. 그저 누군가와 싸울 뿐이었다. 그 과정이 마치 결투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지. 그 결과도 뭔가 결투의 결과처럼 돼버린 거고. 자신을 이긴 자에게서는 순순히 물러서고, 자신에게 패한 자에게는 징벌이라도 내리는 것처럼 말이야.
‘피해가 컸다고 했지? 그렇다면 이긴 것보다 진 경우가 훨씬 많다는 거네?’
―그래. 인간과 악마가 전쟁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양쪽 모두가 상당히 골머리 앓을 정도로 피해가 컸다.
‘양쪽 모두?’
―몬스터잖아, 악마랑 인간이란 차별 없이 가는 길에 걸리면 닥치는 대로 싸움 걸 뿐이었다. 뭐, 그걸 이용해서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짓도 여러 차례 시도된 모양이다만…….
‘어느 쪽이 퇴치한 거야?’
문득 한숨을 쉬는 기분이 되어 투란이 물었다.
과연 인간과 악마, 어느 쪽이 전쟁 중에 찾아온 싸움꾼 암석괴걸을 물리쳤는가.
―첫 번째는 정확하게 기록되지 않았다. 다만 한창 전쟁 중이던 곳에 나타났었고, 그 전장 이후로는 다시 보이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지. 두 번째는…… 데스나이트에게 무참하게 썰렸다고 하더군.
‘에? 데스……!’
―그래, 데스나이트의 몬스터 로드 카엘, 그가 거의 마지막으로 남긴 자취가 바로 암석괴걸을 격파한 일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대마도사가 나설 수도 있었다고 하더군.
‘으흠…… 그러면, 암석괴걸보다 데스나이트가 훨씬 세구나!’
―그런 거 비교하라고 한 얘기가 아니잖아! 무슨 애냐?
‘어? 그럼, 여태 왜 떠든 거야?’
삐죽, 입술을 내밀면서도 소리 내지 않는 채로 투란이 물었다.
―찾아보라고! 도감 펼쳐놨으면 찾아봐야 할 것 아냐!
‘그니까, 여태 잿빛바위 그랑츄랑 암석괴걸에 대해 혹시 다른 얘기가 없나, 그게 궁금해서 그렇게 열심히 떠든 거였어?’
―내가 도감을 다룰 수 없으니까! 이 망할 도감이 로열클래스로 인정하고 툭툭 던지는 말에 착착 반응하는 거는 너니까! 빨랑 찾아봐! 어쩌면 암석괴걸이랑 잿빛바위 그랑츄가 관계있다는 말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네, 네. 아, 근데 너무 기대하지는 말자. 드라코눔의 아칸인 너도 붉은 그랑츄랑 파이로-칸이랑 관계있는 줄 몰랐잖아. 이게 아무리 대단한 도감이라도 거기까지는 기대하지 말자고. 자, 그러면!’
일단 진정시키고 달래는 시늉을 하면서 투란은 히죽 놀리는 재미를 느끼면서 입술을 열고 몇 마디를 토해낸다.
“암석괴걸, 그게 어떻게 생겨나는가부터 알고 싶네!”
펄럭, 파르륵.
상아탑 대도감의 형상이 살짝 스러지듯이 변하며, 켈 데릭의 가게 특판품인 도감의 형상이 뚜렷해지면서 페이지가 펼쳐졌다. 마치 상아탑 대도감에는 없는, 특판품인 도감만의 내용이란 것처럼!
그렇게 열린 페이지는 곧바로 드라고니아부터 넋 놓는 소리를 투란의 뇌리에 울리게 했고…….
―뭐 이런……!
“헐?”
뒤이어 투란도 비슷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