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6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64)
‘그게 대체 뭔 소리야! 곰이냐? 겨울잠 자고 일어나면 몇 백 년 동안 얼굴만 홀쭉해져서 나오기라도 한데? 마법사든 뭐든 인간이라며? 그럼, 몇 백 년 지나면 팍팍 꼬부랑 할배든 할매든 돼서 죽어야 할 것 아냐! 너, 그게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해? 이상하잖아! 무슨 오래 사는 요정의 혈통이라도 되신다냐? 그래? 그런 거야? 그래도 고대부터 쭈욱 안 뒈지고 살아서 역병의 수해까지 꾸미고 왕국을 때려부수는 거는 아니지! 아, 카엘이라고 했지? 그럼 다른 카엘이겠네! 카엘이란 대마도사가 여럿 있는 거겠네! 그렇지? 그렇다고 해라! 얼른 그렇다고 해!’
머리 한구석을 세게 터드리듯이 투란이 이를 빠득빠득 갈면서 한참을 소리를 내지 않고 으르렁거렸다. 드라고니아는 가만히 이를 다 듣고 있다가 씩씩거리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투란이 아는 말을 다 쏟아낸 듯이 고요해진 다음에 느릿하니 다시 말문을 열고 있었다.
―곰은 아니다만, 그 겨울잠이란 부분은 상당히 잘 짚었다. 칭찬이야, 칭찬! 솔직히 드라코눔에서도 대마도사 카엘은 워낙 고대의 존재라서 죽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하다만, 바스트론 왕국의 멸망처럼 느닷없이 다시 그 존재가 확인되는 사건이 생기고는 했지. 그 때문에 이리저리 탐색했고, 그 결과 대마도사 카엘이 아주 특별한 수면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 겨울잠처럼 카엘은 수백 년이란 시간을 수면기로 보내고 다시 깨어나 세상을 돌아본다는 거지. 그 시기가 언제인가는 전혀 짐작도 할 수 없고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 이 시대가 카엘이 깨어나 돌아다니는 시기인가, 잠든 시기인가 모른다는 말이다. 그쯤 되면 그냥 죽은 사람 취급하는 게 낫잖아? 물론 나는 너한테 그 카엘이 죽었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다고 기억한다만…….
‘그런 것처럼 말하기는 했잖아! ’옛날 옛날 굉장한 마법사, 마도사가 있었어요.‘라고 하면 지금 당장 그 마법사인가 마도사인가가 살아 있다는 생각을 할 리가 없잖아! 안 그래? 그렇지? 그렇잖아!’
―그렇다고 해도, 왜 화내는 거냐?
‘어? 음? 흐흠…… 속은 기분이니까?’
후욱, 숨을 내쉬면서 투란은 새삼 자신이 뭘 그리 울컥했는가 되짚어봤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딱히 투란이 화낼 일은 아니긴 아니잖은가? 게다가…….
‘키린도 오십 년 전에 행방불명이었는데 파릇파릇 어려 보였었지? 어라, 혹시 세상에 수백 년씩 사는 경우가 흔한 거야? 키린도 그렇게 천천히 늙으면서 오래 살까?’
퍼뜩 떠오른 생각은 투란을 부르르 떨게 했다.
키린은 투란에게 춤추는 산맥의 안에서 벗어나면 언젠가 만나자고 했다.
서로 소식을 전하고 받을 곳까지 알려줬잖은가, 베오기탄이라고…….
왠지 침착한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대답한다.
―전혀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수백 년씩 사는 경우라면, 일단 드라코눔의 일족 중에서는 그리 희귀한 일도 아니기는 하지. 요정의 혈통을 잇는 경우라든가, 우리 일족이라든가…… 기본적으로 수백 년의 수명이 자연스러운 종족이니까.
‘대마도사 카엘도 사실은 그쪽 혈통?’
―아니니까 신기하게 여겼다고! 그는 순수한 마법, 자신의 수단으로 시대를 건너뛰면서 살아간단 말이다!
‘흐흠…….’
납득이 갈 듯 말 듯한 미묘한 기분 속에서 투란은 생각을 잠시 멈췄다.
마법으로 이러쿵저러쿵했다 하면, 거기서부터는 투란이 따질 수 없는 영역이니까. 마법을 쓰기는 해도, 그 안에 무슨 이치가 어쩌고저쩌고하면 투란은 늘 일단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투란은 또 다른 것을 도감에 묻기로 했다.
“카엘…… 바스트론 왕국을 파괴한 카엘은 지금 어디 있어?”
―뭐?
도감이 반응하기 전에 드라고니아가 멈칫하며 놀랐다.
촤락, 도감은 거침없이 페이지를 넘겼다.
마치 조금 전처럼 뭔가 알려줄 듯한 낌새로 보였는데, 거기 쓰인 바는…….
⚫ 바스트론의 후예들, 카엘에게 현상금을 잔뜩 걸다.
⚫ 카엘, ‘날 찾지 마라’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실종.
⚫ 흘러간 시간으로 봐서, 현재는 사망했다 여겨짐.
―모른다고 시침 뗀다고 느껴지는 거는…… 나만 그런 기분이냐?
드라고니아가 어이없다는 듯, 그래도 살짝 기대한 것이 씁쓸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은 거기에 픽 입꼬리만으로 웃으며 대꾸한다.
‘시침을 떼든 말든, 여기도 너처럼 죽었다고 확실하게 말은 안 하네. 사망했다고 추측만 한다고 써놨잖아. 시침 떼는 거면 빠져나갈 구멍부터 뚫어놓은 셈이지. 흐흠, 그러니까…… 그 대마도사가 아직도 살아 있을 수 있단 말이지. 흐흠.’
―뭘 벼르는 거냐? 살아 있으면 뭐라 할 수는 있는 상대라고 여기는 거냐?
‘홀시딘에게 일러바칠 수는 있지.’
―어? 아…… 허엇, 허허헛!
흠칫하다가 어이없어하다가 너털웃음을 대놓고 쏟아내는 드라고니아였다.
그 웃음을 통해 투란은 확실히 상아탑에 ‘고자질’하는 것이 대마도사 카엘에게 불쾌하고 피하고 싶은 일이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투란은 깨달았다.
‘살아 있는 대마도사 카엘과 만나고 싶은 사람, 잔뜩 있겠지?’
―그건 그렇지.
드라고니아도 재미있다는 듯이 동의했다.
‘뭐, 일단 살아 있어도 어디 어떻게 살아서 잘 숨어 있나를 알아야겠지만…… 아, 혹시 상아탑에서 로열클래스로 보호받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면 아주 잘 숨겨줄 것 아냐? 안 그래? 응?’
웃음기가 싹 지워진 기묘한 침묵이 드라고니아에게서 물씬 풍겨나왔다.
뭔가 건드리면 위험한 것을 건드린 느낌에 투란도 엉겁결에 침묵했다.
느릿느릿, 겨우 온전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처럼 드라고니아가 말문을 다시 연다.
―만약…… 대마도사 카엘이 상아탑을 이용하려 한다면, 굳이 상아탑의 마법사를 이용하지 않고도 할 수 있을 거다. 그는 그런 대마도사니까. 그런 식으로 숨어 있다면, 정말 찾을 수가 없는 것도 당연하겠어.
‘흠, 역시 그러려나…… 에잇, 만날 일도 없을 텐데 그만하고! 다른 거나 보자!’
너무 진지해진 듯한 드라고니아의 분위기에 투란이 고개를 저으면서 짐짓 유쾌한 척, 그래도 소리 내지 않고 떠들었다. 그러면서 슬슬 도감을 바라보면서 또 뭘 물을까를 궁리하는데…….
―투란, 대도감을 마도서로 활용하는 방법은 확인하지 않을 셈이냐?
‘응? 아, 그건 상아탑이 아주, 아주— 아주— 많이, 많이 위험할 때 천천히 알아보면 되는 거고, 정말로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지금 내가 신경 쓸 일 아니지! 왜? 상아탑 마법 중에 쓰고 싶은 거라도 있어? 드라코눔에서도 탐내는 마법이 상아탑에 있는 거야?’
―없다만…….
슬쩍 마법에 대해서는 피하려는 투란의 속내를 엿본 듯, 드라고니아는 한숨처럼 대꾸하고 있었다. 마법에 끼어들면 또 무슨 복잡한 생각을 해야 하는가 많이 귀찮아하는 투란의 태도는 자주…… 거의 늘 보는 것이니 드라고니아에게 낯설지도 않았다!
톡, 톡, 톡.
투란의 손가락 끝이 도감 위를 두드렸다.
어떤 문자를 건드린 것은 아니었고 그저 테두리를 건드리면서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꽤 복잡하고 깊은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문득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투란은 암석괴걸과 파이로-칸의 페이지를 살짝 넘겨보며 중얼거린다.
“없는 거 갖고 고민할 필요가 없지. 있는 것도 잘 모르면서…….”
―음? 파이로-칸은 이미 삼켰잖아? 잿빛바위 그랑츄를 변이…… 진화시키고 싶은 거 아니었어?
‘그럴 방법은 없잖아. 그런 결과가 나온다는 말만 있고.’
―그럼 뭘 모른다고? 이미 없다는 거 알면서 뭘…….
투란의 툴툴대는 대꾸에 드라고니아가 한층 더 의아한 듯 물었다.
분명히 투란은 자신이 지닌 뭔가에 대해서 찾아볼 것처럼 말했으니까.
투란은 입술을 날름 핥으면서 갑작스럽게 음흉한 미소를 머금고 말한다.
“작은 돌……처럼 생겨서 늪을 만들고, 늪을 삼키는 몬스터! 산맥 깊은 곳에서 발견되는…… 그럴 수 있는 작은 돌멩이처럼 생긴 몬스터에 대해 알려줘!”
―투란, 그건……!
뒤늦게 드라고니아가 움찔하면서 놀라 외쳤다.
그러나 도감은 이미 투란의 말에 응하여 팔락거리며 넘어갔고, 새로운 페이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 본래 군체(群體), 무리 짓는 벌레를 일컫는 스웜이 늪의 의미를 갖게 한 몬스터.
⚫ 그 능력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견(異見)이 존재하나, 한 자리에 고여 섞인 늪이라는 현상을 삼키고 재현하며, 변화를 주는 특성에는 아무런 이견이 없다.
⚫ 다른 군체 계열과 다르게 오직 수성(水性)의 늪만을 고집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늪의 내용물이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는 초월적인 현상을 구현하는 몬스터.
⚫ 파괴 불가.
⚫ 코어의 크기는 아무리 커도 1미터를 넘지 않는다. 코어가 1미터 크기로 성장한 상태라면 그 주변 반경 1킬로미터 이내에는 오직 늪만이 존재한다.
⚫ 고대에 일어난 수많은 재앙의 원흉으로 지목됨.
⚫ 춤추는 산맥의 중심, 세계의 찢어진 틈새로 날려 보냄. 파괴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함. 현재도 유일하고 유효한 처리 방법.
⚫ 스웜 하트를 기원으로 삼는 늪의 형태를 한 몬스터는 아직도 존재한다.
⚫ ‘걷는 늪’, ‘하늘 늪’, ‘불타는 늪’ 등등 모두 멸절하지 못한 스웜 하트의 유물로 추정되고 있다.
⚫ 그 본질에 대한 다수 의견으로는 스웜 하트가 벌레둥지처럼 군체를 기반으로 한 몬스터이며 단지 벌레를 대신해 물의 속성을 드러내는 입자조직을 적극 활용할 뿐이라는 것. 하지만 스웜 하트가 어떻게 모래와 재, 이슬의 반죽조차 미니언으로 재생성시키는가를 설명하지 못함. 무생물, 생물이 섞인 채라고 스웜 하트는 ‘늪’으로서 재현하는 것은 군체론 의견에 결함이 됨.
⚫ 그 본질에 대한 소수 의견은 단지 초월 현상이 돌의 형태로 드러나 멋대로 발현될 뿐이고, 이를 몬스터로 여기는 것은 지성을 지닌 자의 인식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도 있음.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다고 고백하고 닥쳐라.’라는 반론을 듣는 의견.
⚫ 최상위 경계종으로 분류되나, 사실은 그 이상 등급이 없어서 그리 분류할 수밖에 없을 뿐이고 세계 개변(改變)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대재앙(大災殃).
⚫ 비슷한 것이라도 출현하게 되면 즉각 헌터 길드와 왕국, 어떤 마탑이라도 바로 알려서 피해를 최소화할 대책을 마련해야 함. 닮은꼴일지라도 그 피해는 막대할 수밖에 없다고 추정해야 함.
⚫ 격리 필수.
―투란?
투란의 눈길이 ‘격리 필수’란 항목에 못 박힌 듯이 멈춰버리고 입은 벙긋거리면서도 아무 말도 못 해 침묵에 빠져들 듯하니, 드라고니아가 살그머니 부르고 있었다. 그 순간, 투란이 거칠게 숨을 들이쉬었다.
후우우읍!
‘야, 이 썩어 미친 드라고니아야아아아!’
입으로 큰소리 내는 대신에 투란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을 향해, 문장의 풍경을 쩌렁쩌렁 울리듯이 포효하고 있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그런 포효를 깔끔하게 외면하듯, 곧바로 투란의 뇌리에 딴소리를 꽂아넣고 있으니…….
―모르는 편이 더 나은 일이었다 생각하지 않나?
‘너, 이 새끼!’
―그래도 아직 재앙을 일으키지 않고 잘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며 내가 많이 안심을 했거든.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 여긴 까닭이 너의 그 솜씨가 괜찮다 여긴 때문이 아니겠어?
‘이놈의 드라고니아가 진짜아아!’
―알려주고 쓰지 말라 했으면, 안 썼을 거냐? 투란, 솔직하게 말해봐. 알았으면 바로 저 아래로 보내 지웠을까, 네가? 과연 그럴 수 있어? 지금도 늦지는 않았는데, 지워버릴 거냐?
‘시꺼, 닥쳐.’
차갑게, 강인하게 연이어 나오는 드라고니아의 말은 투란의 울컥하는 기분에 계속 찬물을 끼얹는 듯했고, 그 마지막에 짚은 바는 투란의 마음을 서늘하게 식히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잠시 고요해진 틈을 타서 투란은 자신을 향해 드라고니아의 물음을 되풀이해서 던질 수밖에 없었다.
과연 ‘작은 돌’이 무엇인가 알았더라면 투란은 몬스터 엠블럼의 저 아래로 내던져 없애 버렸을까? 몬스터 로드로서 그 힘을 사용하는 것이 너무 위험하고 엄청난 일이라고 부담을 느끼며 의무감에 불타올라 지워 없앴을까?
답은 쉽게, 빨리 나오지 않았다.
머뭇거림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요동을 쳤고, 투란은 자신이 ‘작은 돌’과 만나서 겪은 일들이 마음에서 맥동하듯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드라고니아의 말이 다시 투란의 뇌리에 스며들어온다.
―투란, 네가 삼킨 작은 돌은 통제불가, 파괴불가의 대재앙인 스웜 하트가 아니야. 너에 의해 재단(裁斷)되고, 너를 척도(尺度)로 삼아 그 힘을 발휘하는…… 그저 독특한 능력을 지닌 ‘작은 돌’일 뿐이다. 네 목숨을, 그 생명을 몇 번이나 구해낸…… 신의 사도라고까지 불리는 몬스터 아라크레온을 물리치는 일조차 도왔지. 어떤 흔적도, 후유증도 없이 말이야. 그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