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7)
“어떤 몬스터를 함께 줬지?”
투란의 얼굴이 바로 구겨졌다.
뿌득, 빠득.
바로 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투란의 고개가 저어졌다.
키린은 잠깐 ‘응?’ 하는 소리를 내며 대답을 기다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으적으적, 두어 번 더 도마뱀 다리와 가슴살 고기를 꽉꽉 물고 씹어 삼킨 다음에야 겨우 조금 진정한 표정을 지으면서 투란이 분노를 흘리는 말투로 대답한다.
“그런 거 없었어요.”
“없어?”
키린의 표정이 조금 기묘해졌다.
투란은 그 표정을 ‘장난하니?’라고 묻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예. 텅 빈…… 그 보이드 엠블럼이라는 거 있잖아요. 그걸 새기고는 죽으라고 늪에 빠뜨렸죠. 아주 높은 절벽에서 밀어 떨어뜨렸죠. 그래서 꼼짝없이 빠져 버렸는데…….”
“보이드 엠블럼에서 어떻게 벗어났지?”
중얼거리면서 꿈틀대고 일그러지는 투란의 표정을 보며 키린은 말을 끊듯이 물었다. 그것이 더 중요한 부분이라는 듯, 또박또박 묻는 말이었다.
갑자기 투란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 그건…… 그러니까…….”
“몬스터를 삼켰구나? 어떤 걸 어떻게 삼켰지?”
키린에게서 호기심이 무럭무럭 흘러나왔다.
죽이려고 작정한 작자가 뭔가 복잡한 방법으로 투란을 죽이려 했다. 즉, 투란에게는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인데, 투란은 지금 멀쩡하게 살아 있다. 단순히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 키린 자신이 머물고 있는 깊은 곳보다 더 깊은 곳에서 괴상한 꼴로 떠내려왔다.
투란이 낑낑거리면서 눈알을 굴리다가 민망하고 창피한 낯빛으로 대답을 꺼낸다.
“……악마의 심장요. 시체처럼 늪에 떨어졌더니, 가까이 와주더라고요. 그래서 겨우 몬스터 엠블럼을 채웠죠. 그때부터 그 텅 빈 상태, 보이드 엠블럼이 아니게 되었어요.”
“악마의 심장을? 꼼짝도 못하면서 그걸 잡아 삼켰다고?”
키린이 눈을 반짝거리면서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투란은 조금 더 난감한 표정이 되어서 자신의 오른손을 쳐다봤다.
엄지와 검지 사이, 손등 쪽으로 꽉꽉 살로 채워지고 피한 방울 흐르지 않는 살점에 갇힌 샤벨투스의 이빨이 투란의 오른손에 감춰져 있었다. 이것으로 투란은 그 처음의 위기를 벗어났고, 악마의 심장을 가르지 않았던가.
“그게…… 이유를 모르겠지만, 엄마가…… 절 키워 준 엄마가 이상하게 좋은 도구를 줬어요. 아버지, 그 망할 작자도 몰랐던 것 같은데…… 덕분에 살 수 있었죠. 어, 지금은 꺼내기가 조금 힘든데…….”
투란이 오른손을 가볍게 터는 시늉을 하며 중얼중얼 대답하고 있었다.
키린은 그런 투란의 태도를 보며 가볍게 투란의 오른손을 잡았다.
오른손에 스며드는 살짝 따스한 느낌에 투란이 흠칫하는 찰나, 키린이 말한다.
“샤벨투스 아니야, 이거? 꽤 묘하게 가지고 있네?”
“맞아요. 어떻게 한 거예요?”
투란의 눈이 탱글거린다 할 정도로 크게 뜨이면서 반짝거렸다.
키린은 웃음과 함께 다시 묻는 듯한 의아한 소리부터 꺼낸다.
“이런 걸 어머니란 분이 줬다고? 보통 세련되게 정제한 것이 아닌데?”
투란의 고개가 바로 끄덕여졌다.
“저도 그게 이상해요, 엄마가 이걸 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샤오콴 마을…… 어, 그러니까 우리 마을에서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샤오덴…… 그 할배 아니면 없을 텐데 말이에요.”
“흠…… 혹시나 해서 너한테 몰래 전하게 해 준 걸까?”
“에? 왜요?”
투란이 눈을 멀뚱거리면서 되묻는 소리를 냈다.
키린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한다.
“널 살리려고.”
“헐! 그러려면 멀뚱거리고 내가 늪에 따라가는 꼴을 구경하고 있지나 말 것이지!”
뿌득, 이를 가는 투란의 모습에 키린이 싱긋 웃었다.
“샤오 할배는 남의 일에 직접 이러쿵저러쿵 나서서 끼어드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고 했어. 특별하게 샤오 할배가 보호하는 것은 열여섯이 되기 전의 아이들뿐이라 했지. 나이가 애매하다 치면, 자신이 지켜본 시간이 열여섯이 되기 넉넉한가를 따지고. 어쩌면 이건…… 몰래 전한 너의 성인식 선물일지도 모르겠네.”
“선물요?”
투란은 키린의 말에 그럴듯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샤오덴 할배를 붙잡고 열여섯이 되면 망치라도 하나 내놓으라고, 일을 도우면서 쫑알거리고 졸라 대는 말을 한 것은 투란 자신이니까. 열여섯을 넘는 날에는 그래도 쇳조각 하나라도 뭔가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건 좀 과하잖은가?
‘덕분에 살기는 했지만…….’
갸웃거리는 투란을 보면서 키린이 말한다.
“그건 나중에 가서 물어보면 알 일이고,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지? 악마의 심장을 삼켰다면서 늪에서 빠져나가지 못했어?”
“딴생각하기 전에 늪이 이상한 짓을 했죠. 그러더니…… 어, 그리고 다음에…… 무지하게 높은 데서 떨어지고 있더라고요.”
투란은 말을 하다가 점점 표정이 멍해져 갔다.
사느라 바빠서 까맣게 잊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늪에서 어떻게 갑자기 그리 이상한 곳으로 옮겨졌나 황당하잖은가!
“어떻게 된 거지!”
뒤늦게 투란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올 지경이었다.
그 모습에 키린이 바로 추측한 바를 꺼낸다.
“혼돈의 늪이 가끔 소용돌이 늪처럼 뭔가를 어디로 보낼 때도 있다고 했어. 대부분은 뭔가 이상한 것을 토해 내지만…… 아마도 그 삼켜 보낼 때에 걸린 것 같은데?”
“그런, 그런 재수 없는!”
투란은 일단 분개한 소리를 냈다.
재수 없게 빠진 것도 모자라서, 하필이면 그때에 걸려 날려 가다니!
그다음에 벌어진 일들이 주르륵 머리를 스쳐 가니, 이건 화를 안 내는 것이 병신 같다는 느낌이 투란을 덮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투란은 얼핏 자신도 비슷한 추측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아, 그런 생각을 했던가?’
먹던 도마뱀 꼬치를 든 손으로 가슴을 문지르면서 투란은 확실히 지금 악마의 심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투란의 기분이 조금 묘해졌다. 몬스터 엠블럼이 보이드 상태에서 벗어난 다음, 악마의 심장을 늘 품고 있었다.
“글쎄, 과연 그게 악운이었을까?”
키린이 툭 꺼내는 소리에 투란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울컥해서 따지는 말이 바로 투란의 입에서 바로 튀어나온다.
“그게 행운은 아니잖아요!”
“악운을 뒤집으면, 말도 못할 행운이 되기도 하지. 투란, 그 재수 없는 악운 속에서 넌 아무것도 얻은 게 없나?”
“어?”
투란은 조용한 말투, 고요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키린을 마주 보다가 멍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투란의 가슴이 두근거렸고, 몬스터 엠블럼 속에서 강하고 억센 고동이 느껴지는 듯했다.
뭔가 생각이 난 듯이 눈을 깜박이는 투란을 향해, 키린이 말을 잇는다.
“보이드 엠블럼에서, 악마의 심장을 얻었고…… 혼돈의 늪이 널 보낸 이상한 곳에서, 그다음에 어떻게 했지?”
“휩쓸렸죠. 마구 쏟아지는…… 헤헷, 헤헤헷. 하늘을 가로지르는 강도 있었고, 물살이 아니라 불길이 흐르는 강도 있었고…… 흐하, 하하하.”
진지한 키린의 물음에 답을 하다가, 투란이 갑자기 실실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되짚어 보니, 대체 자신이 어떻게 살아 있는가 의심스럽고 어이없고 황당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죽었다면 울었을 듯도 한데, 살아 있으니까 일단 기가 막혀서 웃음이 새는 모습이었다.
키린이 그런 투란을 향해 보내는 눈길은 ‘얘, 괜찮나?’ 하는 걱정!
투란은 뭐라도 그때의 상황에 대해서 말하려니 애매하기만 했다. 직접 겪고 느낀 것도 온통 눈앞에서 펄떡대는 녀석들이랑 툭탁거리면서 신나게 휩쓸려 다닌 것이 전부!
뭔가 말하고 싶어도, 말할 것이 애매한 상황이 투란을 점점 답답하게 했고, 그 답답함은 그저 웃음만 나게 했다.
쓰윽!
키린의 손이 투란의 머리 위에 올려졌다.
그리고 가볍고 따스한 손길이 투란을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다독이는 말이 키린의 입에서 나온다.
“진정해. 억지로 전부 다 기억해 내려고 하지 마. 미안. 내가 묻는 것이 서툴러서, 좋지 않은 일을 억지로 기억나게 했나 봐. 일단 좀 더 먹을래?”
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한 손으로는 잘 익은 도마뱀 고기 큰 것을 내미는 키린이었다.
일단 뭔가 괴상한 짓이 아닌가 싶었지만, 투란은 가슴 한구석이 비워지면서 홀가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생각하기보다는 일단 더 먹고 싶다는, 더 먹어야 한다는 충동이 더 강한 듯!
우걱우걱, 으적으적.
굵은 꼬리를 싹 먹어 치운 다음, 투란은 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맛있네요. 어, 근데…… 제가 바보 같아서 그때 생각만 해도 답답해지나 봐요. 말하고 싶은데 말도 못 하고…….”
“아냐, 투란. 다들 그래.”
“예? 다들?”
“춤추는 산맥 깊은 곳에서 살아 나온 몬스터 로드들. 다들 뭔가 얻어 오기는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방금 너처럼, 넋이 빠지고 할 말을 제대로 못 하면서 미친 듯이 웃거나 울거나 한다고.”
“헐!”
투란이 기막힌 표정을 짓는 꼴을 보며, 키린이 빙긋 웃으며 말을 덧붙인다.
“미안하다니까. 가끔 봤는데, 설마 나보다 더 깊은 곳에서 나온 너까지 그럴 줄은 몰랐어. 저 안에서 나올 정도면 우리 아빠…… 구엔이라는 내 의부(義父)가 계신데, 그분처럼 호쾌하게 극복했을 줄 알았지. 내가 서툴러서 그냥 나오는 대로 물어본 것이 잘못한 거야. 미안!”
투란은 입을 벙긋거렸지만, 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키린이 꺼내는 변명 속의 이름, 그 이름이 투란을 새삼스럽게 깨우치고 있었다.
괴물 왕자.
키린에게 그런 별명이 붙게 한 이유는 여럿 있지만, 이야기를 전하는 음유시인이 가장 강조한 부분은 키린이 그저 ‘반역의 패왕’ 아들이 아니고, 괴물 왕 구엔의 의붓아들인 때문이라고 했다!
이종(異種), 흔한 말로는 별종이라 취급되는 키클롭스의 변종을 삼켜 그 섬멸의 마안을 휘둘러 대는 몬스터 로드 구엔! 홀로 왕국 하나를 거뜬히 상대할 뿐 아니라, 원한다면 어지간히 강하다고 평가되는 대국이라 할지라도 멸망시킬 수 있다고 여기지는 흉포한 몬스터 로드. 그냥 몬스터 로드라 부르는 것이 그에 대한 모욕이라면서 아예 몬스터 킹이 더 어울린다고 여겨지는 존재!
심지어 시비가 붙으면 신전과도 겁 없이 싸우는 괴물 왕이었고, 네 개의 신탁이 내려져서 신전조차 괴물 왕의 일에는 간섭도 방해도 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라 했다.
드라고니아의 재앙이 아니었다면, 세상은 괴물 왕자가 아니라 괴물 왕만을 기억했을 수도 있다고 음유시인이 마무리 짓는 말에 꼭 붙이잖던가!
그런데 키린이 투란을 거기다 비교했다.
이건 해도 너무하잖은가?
톡, 톡.
“투란, 정신 차려. 어이……!”
멍해진 투란의 이마를 두드리면서 키린이 새로 말을 걸듯이 소리 냈다.
“하아…….”
결국 투란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한숨을 푸욱 내쉬는 것이었다. 한숨 다음에는 바로 투덜거리며 따지는 소리가 이어진다.
“……괴물 왕이랑 비교하지 마세요. 괜히…… 벌레 된 기분이잖아요.”
“응? 벌레?”
“키클롭스, 아주 특별한 키클롭스도 삼켜서 맘대로 휘둘러 대는 몬스터 킹이랑…… 봤잖아요, 저…….”
“어, 꼼짝도 못하는 꼴이었지.”
키린은 투란의 울컥하는 모습에 바로 대꾸했다.
때문에 투란은 다시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풋하는 웃음과 함께 키린이 다시 투란의 머리를 살짝 스치듯이 쓰다듬으면서 말한다.
“근데 그 오러 몽거를 삼켰으면, 구엔 아버지도 그 꼴 났을걸.”
“예?”
“심장이 없는 놈이었잖아, 그거.”
“어, 예…… 엥? 그걸 어떻게?”
“심장 부위만 색이 싹 다르던데, 뭘. 게다가…… 나 그거 떠내려가는 꼴 봤거든. 설마 너한테 삼켜져서 도로 이리 돌아올 거란 생각은 못 했지만.”
친절한 키린의 설명은 다시 투란의 입을 소리 없이 벙긋거리게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키린은 어리둥절하고 영문을 모르는 투란을 보면서 싱긋 웃음을 띤 채로 더 보태는 설명을 꺼낸다.
“오러 몽거의 몬스터 코어는 심장이거든. 에센스의 가장 중요한 부분, 그리고 오러 몽거라는 존재의 근원이 심장이란 말이야. 심장이 없는 오러 몽거를 삼켜 봐야, 그래서 그 팔다리를 끌어내 봐야 못움직여. 몸의 다른 부분에는 결여된 에센스가 오직 심장에만 집중되어 있어. 그러니까…… 심장이 뚫린 채로 죽은 오러 몽거는 삼키면 안 되는 거야.”
“썩을!”
투란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발라당 누우며 발을 동동 굴러 댔다.
너무 분해서, 자신의 무식하고 욕심만 잔뜩 있는 짓거리에 자신이 감금당한 그 꼴이 되었다니, 억울하고 분하고 정말 원통하다는 말의 의미가 투란의 뼛속까지 새겨지는 듯하잖은가!
그런 투란을 향해 키린은 작은 웃음을 흘리면서 묻는다.
“그런데…… 투란, 어째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유지하고 있었던 거야?”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