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7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66)
Chapter 154. 갈망의 출정
끼익, 까닥.
금빛매의 간판이 부드러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끼릭, 끼익.
은빛매의 간판은 조금 거칠게 작은 대장간의 열기로 거칠어진 바람이 성가시다는 것처럼 비틀거렸다.
출렁, 촤악!
물 한 동이가 거침없이 쏟아지며 투란의 머리에서 발 끝까지 덮고, 흐르며 퍼져 나갔다. 빈 동이를 곧바로 펌프 꼭지 앞에 두고 투란은 다시 물을 채웠다. 채워진 물동이를 다시 머리 위로 얹어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 쏟아붓고…….
―목욕은 보통 벗고 하는 거 아니었냐?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가벼운 차림새이기는 하지만 옷을 다 챙겨 입은 채로 뭔 짓 하느냐고 묻고 있었다.
‘어?’
투란은 빈 물동이를 내려놓고 잠깐 눈을 깜박였다.
―너…… 정신줄 놓고 있었냐!
드라고니아가 조금 늦게, 투란이 지금 물의 차가움에 몸을 맡길 뿐이었고 옷차림새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하고 꾸짖었다.
“푸후!”
입가에 맺힌 물방울을 불어내면서 투란은 잠시 한편에 불룩 솟아나도록 장식해놓은 큰 돌에 앉았다. 대강 의자 대용으로 쓰려고, 펌프질하다 쉬기 딱 좋게 박아놓은 적당한 돌이었기에 살짝 쪼그리고 앉기 좋았다. 아무래도 투란이 떠나 있는 동안,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네 남매는 생각보다 많은 손질을 한 모양이었다. 수색 팀에 끼어서 엘데인에 다녀올 때랑은 다르게, 알드바인에 큰일이 없었기에 그루터기 여관 풍경에 더 관심을 쏟을 수 있었지 않았는가 싶었다.
―고르고니아의 외침이 여전히 들리는 거냐?
‘멈추질 않는데 듣지 않을 수가 없잖아!’
불쑥 나온 물음에 투란은 소리 없이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사고(思考)의 핵(核)을 뇌수(腦髓)에서 ‘악마의 심장’ 쪽으로 살짝 옮겨 놓고, 또 다른 의식의 구조를 갖춘 ‘투란’에게 고르고니아의 징징거림을 떠넘기는 시도를 해봤다. 듣는 놈을 따로 만들어 미끼로 내준 셈이었다. 덕분에 투란의 머릿골을 쾅쾅 울리던 울부짖음이 팍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 집요한 울부짖음은 끊임없이 투란의 정신을 두들겨댔고, ‘투란’의 의식을 담은 ‘악마의 심장’은 그 때문에 과열해서 몸에 열이 날 지경이 되고 말았다!
―흠, 이건 중요한 경험이로군. 네 안에서 울부짖은 몬스터의 본능은 결국 너에게 전해진다는 거니까…….
‘뭘 분석하면서 쳐놀고 있냐고! 아니, 넌 전혀 안 들려? 똑같은 풍경에서 저리 징징거리는 꼴을 보고 듣고 겪으면서 괜찮냐?’
―글쎄, 그 부분도 꽤 신기하다 해야겠군. 네 안의 모두가 독립된 채로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을 수가 있는 모양이다. 뭐랄까, 보이드 셸이 감싼 탓에 다들 따로 자신만의 영역을 갖는다고 해야 하나? 엠블럼 내의 모든 풍경을 완전히 간섭하고 공유하는 것은 몬스터 로드인 너, 투란 너뿐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상황이라서 말이지. 우리……라고 말하는 거는 굉장히 해괴하다만, 아무튼 투란 네가 삼킨 몬스터 에센스는 저마다 고유영역을 지닌 채로 서로를 깔끔하게 외면할 수가 있다, 이 말이야. 이건 몬스터 로드로서 네 역량이 굉장하다는 의미니까, 자랑해도 되는 일이야!
‘아주 좋아 죽는구만!’
투란은 투덜거렸다.
몬스터 로드가 자신이 삼킨 정수, 몬스터 에센스를 제대로 분별해서 다루지 못한다면 그 형상이 이뤄질 때 뒤죽박죽, 엉망진창으로 섞여서 몬스터의 특성과 형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이를 완벽하게 독립적으로 분별해서 간섭없이 다룰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몬스터 로드로서의 기량이 뛰어나다는 증거……이기는 한데, 그 덕분에 고르고니아 스테노아가 울부짖으며 보채는 것에 괴로움을 느끼는 것은 오직 투란뿐이란 것!
때문에 드라고니아는 그냥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네?’ 하며 넘길 수 있었고 그 현상을 저리 냉철하게 분석질까지 하고 있다!
순전히 투란을 놀려먹으려는 짓 아닌가?
제대로 도움이 되는 말은 거의 없다시피 하니, 투란으로서는 으르렁거려볼까 하는 기분이 팍팍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한데 바로 이를 느낀 듯, 드라고니아가 살살 달래는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투란, 스테노아가 저리 난리를 치는 원인을 냉정하게 생각해 봐라. 당장 네 행동이나 의식에 끼치는 영향이라고는…… 좀 심하게 시끄럽다는 것뿐이고, 덕분에 잠자리가 뒤숭숭하다는 것에 불과하다만…… 왜 여태 가만히 있던 스테노아가 저러는가, 그 원인이 무엇인가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진지는 무슨……! 세 자매 이야기를 도감에서 보고 저러는 거잖아! 갑자기 잃어버린 두 자매를 찾겠다고 저러는…….’
―이전에 메듀시아나 유렐리아에 대해서 내가 네게 말했을 때는 없던 반응이지. 그렇다면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뭐지? 뭐라 생각하고 있어?
‘행방?’
투덜거리려던 투란은 자신도 모르게 드라고니아의 물음에 답했다.
드라고니아도 바로 동의한다는 듯한 낌새를 띤 채로 말한다.
―그래, 그 부분이다. 여태까지는 세 자매의 존재, 그 오래된 전승을 통해 알려진 특성에 대해서만 너랑 내가 주고받았지. 하지만 도감에는 우리가 전혀 모르는 부분, 남은 두 자매, 메듀시아와 유렐리아의 행방에 대한 단서가 있다. 이게 원인이 되어 저런다고 한다면…….
‘잡으러 가야 한다고?’
투란은 어깨를 떨구면서 입술에 맺힌 물방울을 할짝이며 생각했다.
이제까지 스테노아, 고르고니아 세 자매 중의 하나이며 강력하지만…… 엄청나게 게으르고 주변 상황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이 어슬렁거리는 것이 전부인 몬스터는 딱히 투란에게 뭔가 요구하는 본능적인 부분이 전혀 없었다. 자신이 투란에게 삼켜졌다는 것조차 ‘그래서 뭐?’ 하는 여유로움과 한가함으로 어슬렁대며 문장의 풍경 속을 거니는 것으로 무시하는 듯했다.
그런 스테노아가 느닷없이 드러낸 간절한 울부짖음, 그 의미는 자신의 나머지 두 자매에 대한 것이었다. 그나마도 그동안에는 메듀시아의 이름이 나오든, 유렐리아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를 드라고니아가 주절주절 떠들든 말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 채였다. 그 모든 것이 그야말로 스테노아의 나태(懶怠)한 특성 속에서는 아무 상관 없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랬는데…… 막상 고르고니아 두 자매의 행방에 대한 단서가 투란의 의식에 투영되는 순간, 스테노아는 울부짖었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그 울부짖음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풍경 속에서 감았다기보다는 꿰매져 있는 듯한 두 눈을 부릅뜬 모습은 투란에게는 섬뜩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에 대해 투란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지극히 감성적인 선택, ‘스테노아가 저리 간절히 바라니 잡으러 가자.’라는 이성적으로는 전혀 근거가 없는 충동이었다. 이런 충동은 몬스터 로드에게 그리 좋은 결과를 내놓지 않는다는 것을 투란은 많이 들었다. 그러니 기분이 뒤틀리고 좋을 리가 없었고, 애써 그 충동을 외면하려 하는 것이 당연했다.
―원래 세 자매는 한꺼번에 소환되었고, 함께 움직였다고 했다. 그게 어쩌다 갈라서게 되었는가는 기록이 거의 없지만, 서로 다른 임무가 부여된 것이란 희미한 얘기가 있기는 했지. 그러고 나서 다시 만날 일이 없었고 말이야. 어쨌든 서로의 상황,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어쩌면 그 소환에 의해 강요되는 기본적인 의무일 수도 있는 거야. 그게 몬스터가 된 지금은 본능일 수도 있는 거지. 아, 물론 전부 추측이다만 달리 생각할 근거는 아직 없잖아?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뭔가 진지하게 이런저런 가설을 세우고 추정하며, 검토하고 있잖은가!
‘야, 너 날 죽일 셈이냐? 죽이고 싶어 그러는 거야?’
―뭐? 그건 또 무슨 망상이냐?
진심으로 의아한 듯 드라고니아가 되물었다.
때문에 투란은 잔뜩 불거진 기분을 담아 으르렁거리는 대꾸를 돌려줄 수 있었다.
‘메듀시아는 눈 마주치면 돌이 된다며? 유렐리아는 폭풍을 일으킨다며? 내가 돌이 되거나 폭풍에 날려 가서 어디 처박혀 죽……지는 않겠지만, 말도 못 할 험한 꼴을 당하는 것이 보고 싶다는 거 아니냐고!’
―잊고 있나 보군. 고르고니아 세 자매의 특별한 능력은 서로에게 통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해줬잖아. 스테노아의 몬스터 로드인 너에게 메듀시아의 눈빛이나 유렐리아의 범람은 통하지 않을 거라고 말이야.
드라고니아가 뚱하니, 혀를 차는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움찔해서 눈을 비비적거리고, 귀를 후비면서 멀리 보는 시늉을 했다.
머리부터 쏟아부었던 물줄기가 아직 방울지는 채로 투란의 손길에 털려 나갔고, 맑고 고운 하늘 아래에서 알드바인의 풍경은 참으로 평화로운 듯……하다가 해자 거리 쪽에서 아늑하게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연기 한 줄기가 높이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뭔 일 났나…… 아, 들어가서 도감이나 봐야지.”
냉큼 가늘게 소리 내면서 투란은 다시 금빛매의 간판이 삐걱대는 쉼터 안으로, 자신의 방을 향해 재빨리 움직였다. 마침 부엌에서 고개를 내민 시알라가 그런 투란의 잰걸음을 보다가 묻는다.
“뭐야, 무슨 소리 안 났어?”
“어? 어, 저기 호수랑 붙은 거리, 해자 쪽에서 불이라도 난 모양이야. 요란해 보이기는 하던데…….”
투란이 스쳐 지나가며 말하니, 시알라가 갸웃하며 문가로 나서며 중얼거린다.
“해자 거리라면…… 멜란드, 오늘 거기서 누구 만나 뭔 얘기 해본다고 했는데, 설마 아니겠지?”
“에이, 멜란드가 저렇게 큰소리 터지게 불을 지를 리가. 누가 불 지르는 데 휩쓸려도 무사할 거야. 아, 난 들어갈게.”
투란이 손을 흔들며 말하자, 시알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설마 저런 일에 휩쓸리지는 않았겠지. 아, 끼니때 되면 부를까? 뭐 먹고 싶을 때 나올래?”
“배고프면 나올게!”
입술을 할짝이며 투란은 마치 지금 배가 고픈가를 가늠하는 표정을 짓는 채로 멈칫하다가 대답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시알라는 그 모습에 픽 웃으면서 살짝 문가에 기대며 중얼거린다.
“멜란드는 역시 뭐라도 붙여놓고 뭘 하나 계속 봐야 하나…….”
끽, 문을 닫아걸면서 투란이 그 희미한 중얼거림에 움찔했다.
멀기는 했는데 강화된 청각이 놓치지 않고 시알라의 작은 목소리를 포착한 것이다.
드라고니아가 바로 그 낌새에 딴지 걸며 말한다.
―멜란드가 저런 의심을 받는 거는 다 너 때문이잖아. 이제 그만 역병의 수해에서 네가 사고치고 멜란드가 누명 쓴 것에 대해 털어놓을 때가 아니냐?
‘누명 아닌 것도 많거든? 기왕 쓴 누명, 그냥 끝까지 품고 가도 괜찮아. 멜란드잖아, 씩씩한 멜란드라고!’
―뻔뻔하긴!
드라고니아가 혀를 차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투란은 드라고니아도 멜란드가 완전히 누명만 쓴 것은 아니라고 인정하며, 어느 정도 구박받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는 낌새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냉정하게 따지면 절반은 투란 책임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투란은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열심히 수습을 했고…… 멜란드에게 누명을 씌웠어도 뒷일 커지지 않게 뒷마무리는 다 잘한 셈이니까! 뒷수습을 깔끔하게 하지 못한 멜란드라면 그 조급하고 부주의한 태도에 대해 어느 정도 누나와 형들의 잔소리가 필요하잖겠는가!
투란이 보기에 그 잔소리가 조금 심해서 멜란드가 살짝 주눅 든 행동을 할 때도 있지만, 씩씩한 멜란드는 금방 떨치고 일어니 괜찮다!
“후웃, 잡념은 치우고!”
―잡념이더냐!
투란이 침상에 걸터앉으며 독서대를 두 손으로 짚으며 하는 소리에 드라고니아가 바로 으르렁거렸다. 잔소리로는 시알라 못지않은 드라고니아를 씩씩하게 무시하는 척하며 투란은 자신의 생각에 집중했다.
‘그러니까 내가 메듀시아랑 눈을 마주친다 해도, 스테노아의 눈이라면 돌이 되지 않는다는 거겠지? 그냥 가만히 맨눈으로 멀뚱거리면 바로 돌이 될 테고…….’
―당연하지! 몬스터의 형상과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몬스터 로드는 그냥 평범한 인간이잖아!
‘스테노아의 힘이라면 메듀시아나 유렐리아를 잡을 수 있는 건가? 세 자매의 힘이 서로를 어쩌지 못하면, 그것도 힘든 얘기일 텐데?’
―스테노아만 품은 몬스터 로드가 아니니까, 어쩌면 스테노아의 힘 없이도 다른 두 자매에게 지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고르고니아를 이미 품었으니, 서로의 힘을 상쇄(相殺)하는 그 능력을 쓰지 않을 까닭이 없잖아?
부추기는 듯한, 추임새를 넣어 보채는 듯한 말에 투란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독서대에 도감을 올려놓으며 속삭인다.
“고르고니아, 스테노아.”
도감이 펄럭이며 펼쳐졌다.
스테노아의 항목을 주욱 훑어보는 눈길인 채로 투란이 입술을 달싹이면서 웅얼거린다.
“몬스터 로드의 사냥은 신중해야 하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해. 우선 정확하게 자신의 힘을 파악하고 사냥할 대상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야 한다, 이거야. 그래, 그 사냥할 대상의 위치를 파악하기 전에 자신부터 알아야 해. 이게 다 준비 과정이라, 이거야. 음, 그렇지. 그런데…… 이러면 파쿠란에게 들은 거랑 도감에서 찾아낸 거랑…… 이 비전들, 나중으로 미뤄야 하나? 하아…….”
―그런 소소한 비전이 굳이 필요하냐? 음? 투란, 너 정말로 고르고니아 두 자매를 사냥할 마음을 굳힌 거냐? 스테노아가 울음을 멈췄는데?
투덜거리던 드라고니아가 문득 놀란 말투로 물었다.
투란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스테노아가 투란의 의지, 의도에 분명히 호응하는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