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7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68)
‘흠?’
―음?
한창 독서(讀書)와 토론(討論)을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들려온 시알라의 괴성이 꽤 날카롭지 않은가! 멜란드가 아무리 남매 중의 막내라서 이리저리 치이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어디 가서 맞고 올 일은 전혀 없을 텐데?
불끈 치솟는 호기심이 바로 투란을 움직였다.
드라고니아도 그 호기심에 동참한 듯, 전혀 말릴 낌새가 없었다.
그래서 투란이 문을 열고 재빨리 부엌과 붙은 통로를 지나 홀로 나서니…… 막 바 앞에 앉는 멜란드여야 할 뭔가가 보였다.
“멜……?”
시커먼 숯으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덫칠을 해놓은 꼬락서니 때문에 분명히 멜란드의 얼굴 윤곽이 보이는데도 멜란드라고 확언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투란 입술 사이에서 애매한 소리가 나왔고, 투란의 눈길은 시알라를 향하며 확인을 요구하는 눈빛이 쏘아졌다.
시알라는 곧바로 성난 목소리를 더해 투란의 가벼운 의혹을 바로 풀어줬다.
“탄광(炭鑛) 가서 구르기라도 했냐! 대체 뭐야, 그 꼴이!”
투란이 보고 느낀 것도 딱 이 말대로였다.
“멜란드 님 잘못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구하려다가 이렇게 되신 거예요! 잘못하신 거 없어요!”
그런데 갑작스럽게 문턱을 넘어서면서 누군가 외치고 있잖은가.
마치 시알라와 투란이 본 멜란드가 전혀 다른 멜란드라는 것처럼!
도대체 누구인가 해서 시알라가 갸웃하고 투란도 어리둥절해서 바라보니, 살짝 머리에 쓴 두건을 뒤로 젖혀 드러난 머리통에 갈색 머리카락이 풍성하지만 조금 짧게 가꿔져 있었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부릅뜬 눈동자도 검은 동공(瞳孔)을 감싼 갈색 눈동자가 꽤 인상 깊은…… 어린 소녀의 낯짝이었다.
“멜란드?”
조금 칼칼해진 목소리로 시알라가 막내의 이름을 불렀다.
투란은 멜란드를 편드는 그 소녀를 다시 훑어내렸고, 로브 차림새를 바탕으로 그 몸에서 살살 풍겨나오는 마력의 자취를 확실하게 느꼈다. 무엇보다 손에 든 굵직한 워킹 스태프에 반짝거리는 마법 각인이 새겨진 채이니, 저런 차림새로 마법사가 아니라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해 보일 듯했다. 하지만 그런 마법사다운 모습 속에서 살짝 묘한 거슬림도 엿보이고 있었으니…….
―마력을 제어하는 능력은 대단하다만, 마력이 너무 낮아. 페브라에서 봤던 상아탑의 마법사가 완전히 뒤집어진 경우 같은데?
드라고니아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마법사인 소녀를 평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투란은 시알라의 말에 뒤이어 재빨리 멜란드에게 묻는 소리를 쏘아냈다.
“음, 저 마법사는…… 누구세요?”
멜란드가 눈가의 숯검댕을 손등으로 문질러 지우다가 ‘어? 아, 쟤는…….’이라고 막 입을 떼어 대답하려는 찰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먼저 소녀 쪽에서 터져나왔다.
“아앗! 저는 레나라고 합니다! 알드바인 상아탑의 견습 마법사입니다!”
“견습?”
시알라가 어리둥절한 듯이 되뇌었다.
투란도 갸웃하며 그 한마디를 되풀이했다.
멜란드가 그런 둘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면서 레나의 자기소개에서 모자란 설명을 한다.
“길드 의뢰였어. 간단하게 해자 거리 탐문하는 일이라서…… 돌아가면서 맡는 일감이고 그냥 내 차례가 된 거야.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상아탑에서 파견 나온 마법사랑 함께 한 바퀴 둘러보고 오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고. 뭔 말썽을 피우거나 사고 치러 간 게 아니라니까!”
“넵! 멜란드 님 말씀대로예요! 원래는 정말 간단한 일이었어요! 견습인 제가 정규 마법사를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
레나가 또랑또랑하게 보태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투란과 시알라가 그 말 중간에 불쑥 ‘견습?’이란 말을 한번 더 끼워넣으면서 멜란드를 바라보니, 레나의 목소리가 잦아들면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 광경에 멜란드가 혀를 차며 투란과 시알라를 둘러보는 채로 말한다.
“굳이 바쁜 정규 마법사가 나서지 않아도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고! 그래서 대리로 견습인 레나를 보냈을 뿐이야!”
“흐흠, 간단?”
투란이 슬쩍 멀리 보는 시늉을 하며 웅얼거렸다.
시알라가 한숨을 쉬면서 새 궐련을 찾는 시늉을 하며 묻는다.
“간단한데 왜 숯덩이야? 아까 저쪽에서 터진 큰 소리는 또 뭐였고?”
“간단한 일이 복잡해진 거야. 수건 없어? 얼굴이라도 좀 닦게 해줘.”
슬그머니 멜란드가 말을 돌리듯이 대답했다.
투란은 가만히 멜란드를 흘깃거리며 바에 붙어 앉았고, 시알라는 뒤에서 수건인가 깨끗한 걸레인가 애매한 천조각을 꺼내 멜란드에게 내밀었다.
“걸레 아니지?”
“아마 아니겠지. 그래서, 일이 왜 복잡해졌는데?”
시알라의 재촉은 멜란드가 어쩔 수 없이 천조각으로 얼굴을 닦으며 대답을 정리할 생각을 하게 했는데, 견습 마법사라는 레나가 먼저 생각을 정리한 듯 다시 말문을 열고 있었다.
“그건! 멜란드 님 탓이 아닙니다! 그런 일이 정말로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 일?”
“정말로?”
투란과 시알라가 날쌔게 한마디씩 꼬리를 붙였다.
도대체 뭐가 그런 일이고, 뭐기에 정말로 예상을 못 했다는 말인가?
―보태지 마라, 그냥 들으면 될 일을!
괜히 꼬맹이 마법사를 놀리고 싶어 하는 투란의 낌새를 알아차린 드라고니아가 투덜거렸다. 투란은 진지한 표정으로 내색 없이 드라고니아에게 바로 소리 없이 반박하는데…….
‘멜란드를 멜란드, 님이라고 하잖아! 진지하게 말이야! 이 꼬맹이, 견습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고! 궁금하잖아, 왜 멜란드 님이냐고! 하하핫, 아하핫!’
왠지 한층 더 즐거워하는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중이었다.
레나는 시알라와 투란을 흘깃거리며, 둘이 보내는 반짝이는 눈길이 부담스럽다는 듯이 살짝 주눅 든 것처럼 고개를 숙인 채로 대답을 하려 했다. 그 전에 멜란드가 먼저 텅 소리가 나게 얼굴 닦은 천조각을 바에 내리찍으면서 으르렁거린다.
“아, 작작 좀 해! 괜히 사람 놀리지 말라고! 알드바인 안에서 폭혈화 같은 몬스터 꽃을 재배하는 놈이 있다는 예상을 어떻게 하냐고! 설마 해도 아니겠지 할 수밖에 없잖아!”
“폭혈화?”
“그거 피를 오염시켜 터뜨리는…… 그거 맞아?”
시알라가 눈꼬리를 치켜뜨며 ‘잘못 들었나?’ 하는 눈길로 되뇌었고, 투란은 ‘어라?’ 하면서 설마 자신이 아는 그 몬스터 꽃이 맞느냐고 확인하는 물음을 내놓았다. 이는 멜란드를 미묘하게 움찔하게 했고, 레나의 입이 빠른 말을 흘려내게 했다.
“아, 알고 계시는군요? 맞아요, 식물형 몬스터 블러드 엑스플로더, 연금술사 쪽에서 폭혈화(爆血花)라고 하는 괴물 꽃입니다. 그걸 해자 거리의 한 곳에서 몰래 재배하고 있었는데…… 멜란드 님이 발견하시고…… 발견하자마자 몬스터 엠블럼으로 제거해주셔서 피해를 줄이기는 했는데…….”
“잠깐, 뭘로 제거를 해?”
시알라가 텅 소리 나게 바를 치면서 레나의 말을 끊고 물었다.
투란이 번뜩하는 눈길로 멜란드를 바라봤지만 입은 다물었다.
―정수를 삼켰다는 말이잖아? 흐흠, 그게 삼켜도 되는 품종이었나?
드라고니아도 갸웃하며 하는 말이었다.
투란은 단숨에 부정할 수 있었다.
‘삼키면 안 되는 품종이지! 꽃잎 쪽에 맺힌 것이 피와 섞이면 바로 터진다고. 살갗에 닿아도 물집 피워내면서 스며들어 얼마 못 가서 터뜨리는 거라, 맨살에 닿아도 안 되는 거야. 애초에 재배할 리가 없는 꽃 모양 몬스터인 거지!’
―호오? 사정이 복잡해지는 것 같은데?
‘견습을 보내 처리할 일이 아니니까, 이미 많이 복잡해!’
―아, 그래서인가 보군. 정규 마법사가 찾아왔다.
‘어?’
문득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대로 문턱 너머 계단을 빠르게 밟으며 올라서는 마법사의 기척을 알아차렸다. 앞의 견습 마법사 레나랑 다르게 품고 있는 마력의 크기가 넉넉하고, 제어도 잘 되어 있는 마법사였다.
“레나! 레나아아!”
문턱을 밟자마자 바로 서너 걸음 앞에 있는 레나를 찾기 위해 홀 전체를 둘러보는 채로 급한 소리부터 내는 마법사는 이제 청년기를 막 벗어날 듯한 모습이었다. 까칠한 입가와 턱의 수염으로 봐서는, 뭔가 굉장히 바쁜 와중에 급히 달려온 듯이 보였다.
“아, 오셨어요?”
레나가 그 마법사를 향해 흠칫하면서 얼른 대답했다.
“너, 다친 곳은 없니? 무사한 거야?”
번뜩 훑어내리는 눈길과 함께 먼저 나온 물음이었다.
“예, 저는 무사합니다만…… 어, 그러니까 해자 쪽에서 심한 피해가…….”
“확인했다. 사망 넷, 부상 스물아홉. 네가 보고한 그대로라더군. 헌터 길드에서 수습하고 있어. 아, 너와 함께 탐문했다는 헌터는……?”
살짝 한숨을 쉬면서도 레나를 향해 빠르게 말하던 마법사가 비로소 주변을 둘러보는 눈길과 함께 묻고 있었다. 그 눈길에 레나가 한쪽으로 비켜서면서 시커먼 멜란드를 손짓하는 채로 대답한다.
“여기 계셔요, 멜란드 님…… 멜란드 님이 나서주시지 않았으면 피해가 훨씬 컸을 겁니다. 어, 근데…… 제가 너무 미숙해서…….”
“넌 할 만큼 했어. 책임은 널 보낸 내 몫이다. 레나, 다른 말은 필요 없다.”
마법사는 바로 레나를 향해 완강한 말투로 힘을 잔뜩 준 채로 말하고 있었다.
시알라가 그런 마법사를 보면서 눈을 깜박였고, 투란은 멜란드를 흘깃거리며 ‘아는 사람?’이라고 입술만 달싹였다. 멜란드는 그런 둘의 눈치에 레나를 향한 말문을 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레나, 이분은?”
“아! 이분이 견습인 저를 담당하고 계신…….”
레나가 화들짝 놀란 목소리로 대답을 꺼내니, 바로 마법사가 손짓하며 레나의 말을 끊고 나서서 말한다.
“브리앙이라고 합니다. 알드바인 상아탑의 마법사지요. 아, 원래 오늘 탐문은 내게 할당된 일이었습니다. 일이 주기적으로 할당되는 간단한 일이라서 레나에게 맡긴 것이었는데…….”
“대체 무슨 탐문이었는데요?”
시알라가 불쑥 물었다.
딱히 브리앙이나 레나를 향한 물음은 아니었다.
그저 아무나 이 상황의 근원인 그 ‘일’이 뭐였나 밝히라는 재촉이었다.
멜란드가 얼른 누나의 불편한 기분을 달래듯이 말한다.
“해자 거리에 도는 괴상한 소문을 확인하란 거였어. 알드바인 안에 정신 나간 누군가 몬스터인 줄 모르고 뭔가 들여놨다는 얘기가 계속 떠돈다고 말이야. 벌써 일 년도 넘은 소문이고, 한 번도 그런 흔적이 나온 적이 없는 얘기였다고.”
브리앙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멜란드의 이야기에 보탠다.
“지난 몇 달 동안 틈나는 대로 내가 해자 거리와 둑, 주변을 모두 돌면서 확인했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였소. 그래도 혹시나 해서 계속 그 소문에 다른 이야기가 살을 더하는 까닭이 있는가 경계를 늦출 수는 없기도 한지라…… 적당히 탐문하라고 레나를 보낸 것이었소만…… 레나, 어떻게 찾아낸 거냐?”
“어, 그건 제가 아니라…… 멜란드 님이 몬스터 로드시거든요. 그 감각에 뭔가 걸린다고 해서…….”
레나가 손사래를 치며 대답하고 있었다.
브리앙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시알라는 아예 궐련에 불을 붙이는 채로 ‘이게 뭔 상황이냐.’라고 한숨이라도 쉰다는 태도를 보이는데, 그 사이에 투란은 귀를 쫑긋하며 다시 문턱 너머를 흘깃했다. 몇 마디 오가는 사이에 드라고니아가 또다시 접근하는 마법사를 감지해서 알려준 때문이었다.
쿵. 타다닥.
앞마당을 울리는 듯한 큰 소리가 나더니 바로 바쁘게 계단 밟는 소리가 쳐들어오고 있었다.
브리앙이 먼저 홱 뒤돌아서면서 문턱 너머를 바라봤고, 들어서는 이를 보자마자 외친다.
“말로란, 선배까지 오지 않으셔도…….”
“레나는? 무사하군. 좋아, 브리앙과 레나, 마스터 케이라께서 호출하셨다. 바로 가자. 아, 이번 일에 함께 했다는 하급 헌터가…… 고블린 슬레이어 남매의 멜란드라 하던데…… 나중에 따로 얘기할 일이 있으면, 다시 찾아와 부탁하겠소. 오늘 고생한 일은 헌터 길드와 별개로 상아탑에서 따로 보상해드릴 테니…… 며칠만 기다려주시오. 오늘 터진 일이 워낙 예상하지 못한 거라, 지금 꽤 바빠져 버렸다오. 양해 부탁드리지요. 브리앙, 레나. 얼른 나오고…… 실례하겠소! 나중에 다시 사과드릴 테니, 오늘은 정말 양해해주시오!”
들어선 중년 마법사, 살짝 귀밑에 하얀 새치가 돋은 이는 번개가 팍팍 튀는 듯한 재빠른 말과 행동으로 냉큼 브리앙과 레나를 밖으로 몰아내면서 시알라와 멜란드에게 빠른 몸짓으로 인사하고 있었다.
시알라과 멜란드는 조금 맹하니 새로 나타난, 견습인 레나라든가 정규마법사인 브리앙보다 훨씬 더 유능해 보이는 마법사 말로란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편에 얌전히 앉은 투란에게는 이 상황이 너무 흥미롭게 보이는데…….
끼이이앙! 갸아아아악!
―투란?
자기 일이 뒤로 밀려날 듯한 낌새를 눈치챈 스테노아가 으르렁거리지 않는가!
‘아,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