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7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69)
‘아냐, 아니라고! 그냥 먼저 정리할 일인가 생각한 것뿐이야!’
투란은 머리 한구석을 세게 맞은 느낌을 감추기 위해 소리 없이 변명하면서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너 정말 괜찮은 거냐?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그렇게 뜬금없이 멍청한 변명을 하는 꼴이 섬뜩하다는 듯, 몸서리쳐진다는 듯이 묻고 있었다. 그야말로 드라고니아가 스테노아가 발광을 하든 말든 무관한 상태란 것을 고스란히 드러낸 물음이기도 했다.
이에 투란이 뭐라 하기 전, 시알라의 목소리가 먼저 쩌렁쩌렁 귓가에 울렸다.
“멜란드! 너 뭘 어떻게 처리했다고? 무슨 바보짓을 한 거야!”
투란의 생각은 멎었고, 멜란드는 당황해서 누나를 향해 대답해야 했다.
“아니야, 바보짓이 아니야! 어쩔 수 없었다고! 거기는 수백 명이 빼곡하게 둘러싸인 곳이었어! 다 죽으라고 둘 수는 없었잖아! 별수 없었다고! 내가 사람 죽는 꼴 보면서 히히거리는 미친놈도 아니잖아!”
“어, 멜란드가 미친놈은 아니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나 보네.”
투란이 시알라의 표정이 잔뜩 구겨지는 꼴을 흘깃하면서 슬그머니 말했다.
시알라가 눈꼬리를 치켜뜨는 사이, 멜란드가 재빠르게 편들어주는 투란에게 보태듯이 말을 잇는다.
“맞아! 어쩔 수 없었다고! 거기서 내가 뒤로 빠질 수가 없었…….”
“매의 문장은 잘 꾸민 거지? 딱히 이상하다 보일 부분은 없었고?”
뚝, 말하는 중간에 끼어들면서 투란이 묻는 말이었다.
시알라가 후욱 하고 숨과 연기를 몰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채로 투란의 물음에 자신도 동감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순식간에 편이 바뀐 듯한 투란을 향해 멜란드는 끙끙거리며 아쉬워하는 눈길을 잠깐 보내기는 했지만, 곧 아주 진지하고 신중하게 목을 쓰다듬는 채로 대답을 한다.
“절대로 이상하게 보였을 일은 없었어. 그건 걱정하지 말라고.”
투란은 시알라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멜란드가 단정 짓는 말이 맞을 거라고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결코 황금매의 문장이 노출되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그랬다면 견습 마법사일지라도 상아탑의 마법사인 레나가 멜란드를 저리 칭송하며 우러러보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그래도 시알라는 살짝 혀를 차는 소리를 내며 묻고 있으니…….
“그놈의 몬스터 꽃은? 삼키자마자 지운 거야? 아니면…….”
“어? 아, 그건…… 아직 지우지 않았어. 위험하다는 거는 알겠는데, 이거 아무래도 우리한테는…… 나한테는 별로 위험하지 않은 것 같아. 보다시피…… 핏줄 속으로 피 대신에 불꽃이 넘실거리면, 전혀 반응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멜란드는 살짝 손을 들어 올리며, 그 손등에 두툼한 핏줄이 뿌리처럼 돋아나게 해서 꿈틀거리게 하며, 그 핏줄 위로 슬쩍 돋아난 꽃잎이 살갗에 툭 떨궈지며 불타는 광경을 드러나게 하며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그 광경에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다룰 수 있다면 상당히 쓸모가 많기는 할 거야. 음, 버닝 베인이라더니 생각도 못 한 부분에서 도움이 되네. 하지만 멜란드…… 그거 감추는 게 좋지 않을까? 부적 없는 몬스터 로드를 마을이나 도시에 못 들어오게 하기도 하지만, 너무 위험한 몬스터를 품고 있으면 지레짐작으로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고. 그러니까 누가 물어보면…….”
“냉큼, 그냥 지금 당장 지워 없애는 편이 좋겠어!”
시알라가 나지막하지만 단호하게 투란의 말에 끼어들어 말했다.
멜란드는 ‘어?’ 하면서 낯을 실룩이면서 손등을 내려다보는 채로 바로 대답을 하지 않으니, 그 태도를 통해 짧지만 긴장하고 힘겹게 얻은 몬스터의 정수를 지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해서 시알라가 당장 뭐라 잔소리를 덧붙이려 하는 순간, 투란이 바를 두드리면서 통통거리는 소리와 함께 말한다.
“그랬다고 해두자고! 누가 물어보면 말이야!”
“뭐……?”
“무슨?”
시알라와 멜란드가 투란을 보며 무슨 뜻으로 한 말인가 제대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투란은 히힛거리는 척하면서 재빠르게 말한다.
“사람 살리려고 삼켰지만 품고 있을 것이 아니라 바로 없었다고 하라고! 알 게 뭐야! 드러내지 않으면 진짜로 없앴는지 계속 품고 있는지 알 리가 없잖아? 나중에 그게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데 쓰일 수도 있으니까. 모처럼 다룰 수 있는 몬스터의 정수인데 그냥 없애는 거는 아니라고 생각해. 음, 그 대신에…… 그런 거에 관심 두고 캐려는 누군가 있다면, 적당히 하급 몬스터 로드지만 굉장하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면 될 거야.”
“어, 투란? 그게 무슨 소리야?”
멜란드가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이 물었다.
시알라도 입을 다문 채로 멜란드와 동감이란 듯이 투란을 바라봤다.
빙긋 웃으면서 투란이 문가를 바라봤다.
터억, 막 문턱을 넘어서는 페란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문가의 벽을 손으로 짚었다.
황금매가 뿌리는 마력의 파동이 곧바로 홀을 뒤덮었다.
바로 시알라와 멜란드는 더 이상 목소리를 낮추지 않아도 이 홀에서 오가는 이야기가 주변에 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요란하게 마법사들이 오가는 소란을 보며 위층에서 뭔 일이 났는가 궁금해서 올라온 듯한 페란드이지만, 얼핏 들려온 이야기가 멀리 퍼져서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마법으로 방음벽을 꾸민 것이다. 비록 듣는 사람이 가까이 없다 해도 만약을 대비한 조치였다. 몬스터가 가득한 곳을 여행하면서 자취를 감추고 기척을 죽이며 여러 가지 감각에 포착되지 않도록 단련해온 탓에 페란드가 간단한 손동작으로도 아주 능숙하게 해낸 모습이었다.
투란이 그런 페란드를 당연하다는 듯이 흘깃하고는 하던 이야기를 잇는다.
“내가 흑마법사를 알게 되었는데 말이지…….”
“파쿠란?”
시알라가 바로 이름을 꺼냈다.
투란은 ‘어?’ 하며 움찔했다.
시알라가 입가를 오물거리면서 가늘어진 눈길과 함께 말한다.
“이자닌 의뢰받아서 떠난다는 얘기할 때 이미 말했잖아. 투란, 분위기 잡지 말고 그냥 말해.”
“그, 그랬나? 으흠! 에, 아무튼! 도적 틈새에 끼어서 이리저리 떠돌며 오가던 몬스터 로드 사이에서 몰래 전해오는 비전이야. 다루기 쉬우면서도 강력한 몬스터의 정수, 조합을 통해 훨씬 강력해지는 몬스터가 뭔가 하는 얘기야. 그래, 여기 근방에서도 꽤 쉽게 찾아낼 수 있다고 했어. 어딨는지만 알면 바로 가서 잡기만 하면 된다 해도 좋을 정도라고. 그걸 구해서 멜란드가 삼키고 쓰게 되면, 남들 보기에는 하급이면서도 꽤 대단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어. 그러면 되잖아? 그렇지?”
시알라와 멜란드가 ‘그런가?’ 하며 갸웃할 때, 문가에 기대선 채로 페란드가 말한다.
“그럴 것 같은걸? 멜란드가 뭔 짓을 했는지 잘 못 들었지만, 그리 귀하지 않은 몬스터를 삼킨 몬스터 로드가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면 뭘 해도 그럴듯한 설명을 보는 쪽에서 찾아 붙일 테니까 말이야. 멜란드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몬스터 로드답게 입을 다물고만 있으면…… 떠들기 좋아하고 소문내기 좋아하는 녀석들이 알아서 이러쿵저러쿵 아는 척하며 설명하고 다닐 테니까. 굳이 그게 맞다 틀리다 말해줄 필요는 없고 말이지.”
“아, 그러네?”
멜란드가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투란을 바라봤다.
시알라도 ‘잘 되려나.’라고 웅얼거리기는 했지만 투란을 보며 꺼낸 이야기를 마저 재촉하는 눈길을 보냈다. 그래서 투란이 차분히 바를 두드리며 박자를 넣는 채로 말하기 시작하니…….
“알드바인에서 나가서 하이랜드의 남쪽 늪, 수림(樹林)지대를 뒤지다 보면 검은빛 청둥오리라는 몬스터가 있데. 몬스터이기는 하지만 보통 청둥오리랑 다를 바가 거의 없어서 마수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그게 위기의 순간이 되면 몸을 검은빛으로 덮고 잠깐 쇳덩이처럼 강인해진다는 거야. 오래 유지하지 않고 위기가 넘어갔다 싶으면 재빨리 검은빛을 치우고 날아 도망가는 것이 그 청동오리의 습성인데, 그 정수를 얻은 몬스터 로드는 검은빛을 몸에 두른 채로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하대. 다만 벌레라든가를 보면 갑자기 식욕을 느끼는 경우가 좀 있지만 말이야. 에헷, 벌레 먹는 것이 좀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거기에 아머 젤리…… 아, 이것도 늪의 수림에 서식하는 고블린 부락 근처에서 꽤 흔히 볼 수 있다네. 뭐 다른 곳에서도 제법 쉽게 본다지만, 이게 생각도 못 한 능력이 있나 봐. 응, 보통 아머 젤리를 삼키더라도 쉽게 끌어내는 능력은 아닌가 본데, 검은빛 청둥오리의 정수랑 엮이면 어렵지 않다는 거야. 포스를 두르는 능력이야. 두 가지 모두 구하기 쉽고, 구해서 하나로 엮으면 전혀 다른 기량을 보일 수가 있지. 게다가 젤리 몬스터는 뭐든 녹여 삼키기만 하면 딱히 문제 될 것 없이 다룰 수 있고, 그게 벌레라면 청둥오리의 본능 역시 쉽게 억제하니까. 어때, 대단한 비전이지? 응, 그 조합을 이용한 몬스터 로드는 아이언 가드라고 이름을 붙였다네. 남들은 블랙포스라고 한다는데 말이야. 암튼 이게 내가 흑마법사…… 이름을 꺼내면 본인이 곤란해하니까, 이름은 덮고! 아는 흑마법사한테 들은 첫 번째 비전이야. 좋지?”
떠드는 투란의 모습은 은근히 주점을 떠돌며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음유시인의 흉내를 내는 듯했다.
그런 투란을 보면서 시알라는 다소 어이없다는 눈길을 보내기는 했지만, 그 비전의 내용에 대해서는 꽤 놀랐기에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꺼낼 수 있던 말이라고는…….
“제란드가 그 오리 잡아서 몇 번 구워 먹었다는데…… 여기 남쪽 성벽 너머로도 가끔 날아와. 검은빛이 맴돌 때는 칼날이 안 박히니까 겁 한 번 주고 날갯짓할 때 바로 잡아서 목을 비튼다고…… 고기맛은 그냥 오리였어. 그게 몬스터였다니…… 딱 마수로 여길 짓이잖아!”
듣고서 아연(啞然)해하는 투란, 곁에서 ‘아, 그랬었지.’라는 멜란드였다.
페란드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묻는다.
“거참, 상상도 못 한 비전이로구만. 그래서 두 번째는?”
“비늘가시나무랑 가시도치.”
머리에 떠오른 몬스터 오리고기에 대한 상상을 떨쳐내듯 투란이 도리도리 고개를 젓다가 짧게 대답했다.
“음? 그건 흔하다고는 하기 힘든걸?”
페란드가 시알라와 멜란드를 보며 다른 의견 있느냐는 듯이 말했다.
시알라는 갸웃했고 멜란드가 천천히 기억을 더듬듯이 말한다.
“비늘가시나무라면 습지 쪽에 종종 보인다고는 했는데, 닿아서 좋을 거 없으니까 그쪽으로는 아예 길을 내지 않는다든가? 흔할지도 모르지만, 길 벗어나서 찾아봐야 하니 쉽지는 않겠네. 가시도치는…… 그거 그냥 마수가 된 고슴도치 아니었어?”
나무이면서도 비늘에 덮인 듯한 껍질을 지녔고, 뭔가가 그 껍질에 닿으면 바로 길고 날카로우면서 속이 빈 바늘을 돋아내는 것이 비늘가시나무였다. 그 바늘에 짐승이 꽂히면 그 피를 곧바로 양분으로도 삼는 식물형 몬스터였고!
가시도치는 멜란드의 말처럼 얼핏 보든 자세히 보든 고슴도치랑 똑같이 생겼지만, 그 가시를 길게 뻗다가 쏘아낸다는 점에서 마수로 여겨졌다. 한데 몬스터라 하니…….
“헤헷, 역시 뜻밖이지? 아무튼 이 둘도 조합하면 서로의 본능을 상쇄하면서 다루기 쉬워진다는 거야. 효과는…… 체력소모가 아주 적은 채로 몸에서 대롱바늘을 쭉쭉 뻗어낼 수 있다는 거? 힘쓰는 연습을 좀 하면 아예 쇠뇌살을 대신할 수도 있고, 출혈로 죽는 몬스터나 마수라면 대롱바늘을 핏줄에 꽂아서 죽일 수도 있고 말이야.”
투란은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쉽고 대단한 비전을 얻어낸 것에 대한 한껏 자랑을 하고 싶다는 태도!
시알라가 순순히 그 자랑을 받아주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의아함을 말한다.
“아이언 가드든 블랙포스든, 결국 몸을 지키는 포스를 다룬다 이거지? 흐흠, 그건 꽤 솔깃한데…… 한데 가시는 왜?”
멜란드도 ‘어라?’ 하면서 투란을 바라봤다.
첫 번째 아이언 가드라는 조합은 어쨌든 몬스터 로드라면 일단 탐내고 볼 것이나, 두 번째는 뭔가 미묘하고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몬스터 로드라고 활이나 쇠뇌 못 쓰는 거 아니고, 투척용 단검이든 전투용 장검이든 잔뜩 챙겨 다니는 것은 투란부터 하는 짓이니까. 거기에 대롱바늘이란 한 가지만으로 딱히 대단한 이점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잖은가?
“뭐, 보통은 그냥 편안하게 다룰 무기가 하나 늘었다 싶은 것이겠지만…… 폭혈화를 꿀꺽해버린 멜란드라면, 그 가시가 상상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게 할 수 있으니까. 딱히 항상 써야 할 필요는 없지만,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는 비밀무기로 딱 좋지 않아?”
투란이 히죽 웃으면서 묻듯이 하는 말은 멜란드를 잠깐 맹하게 했다가 바로 눈을 부릅뜨게 했다.
“아, 출혈! 그렇구나!”
시알라도 곧바로 깨달은 듯이 말한다.
“꽃가루를 담아서 대롱을 꽂으면…… 피가 있는 놈은 바로 박살 낼 수 있겠네? 근데 그거 꽤 위험하잖아?”
페란드가 문가에서 누나와 막내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다가 눈살을 찌푸리고 투란에게 묻는다.
“무슨 이야기지? 꽃가루라니?”
투란이 바로 탁탁 멜란드의 어깨를 두드리며 대답한다.
“응, 멜란드가 해자 거리에서 사람들 구하려고 폭혈화를 날름 삼켰어! 그것 때문에 상아탑이 바빠졌고, 멜란드는…… 어쩌다 이렇게 숯을 바른 몸이 된 거야? 이건 어찌 된 거래?”
뒤늦게 나오는 투란의 의문에 시알라도 바로 동참한다.
“어라? 그러고 보니, 이 숯칠은 어떻게 된 거였어? 왜?”
얼굴 언저리만 닦은 채였던 멜란드가 투란과 누나를 둘러보며, 혀를 차는 시늉과 한심해하는 눈길을 한껏 꾸민 채로 대답한다.
“참 빨리도 묻네! 레더 가드, 견습도 쉽게 쓰는 상아탑의 방어주문이래. 근데 그게 몸에 진짜 가죽 같은 것을 한 겹 덧씌우더라고. 그게 폭발에 닿더니, 어째서인지 홀랑 타고 들러붙은 숯가루처럼 돼버렸어. 나도 놀랐고, 마법 쓴 레나도 꽤 놀라더라고.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치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거야.”
이 이야기는 드라고니아를 움찔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