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7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71)
Chapter 155. 미궁을 향해서
“좋아! 자, 간다!”
투란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힘차게 외치고서 바로 몸을 날렸다.
절벽의 까마득한 아래를 향해 머리부터 처박히듯이 추락하며 튀어나온 동굴이 위로, 멀리 멀어져가는 풍경…… 동굴의 입구 흔적이 전혀 눈에 띄지 않게 변해가는 광경을 확인하며 투란은 날개를 펼쳤다.
금빛비늘, 드레이크의 날개는 곧바로 바람을 움켜쥐었고 광채를 머금으며 부드럽게 투란의 몸을 허공으로 밀어 올렸다. 추락이 상승으로 바뀌면서 투란은 가볍게 맴돌기 시작했고, 주변의 풍경을 한껏 눈에 담았다. 평소의 눈과 다른 드레이크의 눈동자였기에 수 킬로미터를 넘나들며 섬세하게 담아둔 풍경 속에는 투란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많은 것이 깃들어 있었다.
작은 벌레는 나무껍질 틈새의 옹이에서 꼼지락거리고, 조그마한 새는 그 벌레를 향해 잎사귀 사이를 헤집으며 날았다. 안개 혹은 구름이 수놓은 풍경 속에서 가죽의 날개를 지닌 시커먼 뭔가가 얼핏 날기도 했고, 늪의 거품 속을 오르내리는 굵은 몸통은 뱀인가 악어인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수많은 것들…… 약동하는 생명의 고리가 여실히 드러나는 풍경이었다.
―간다고 나와서 동굴 속에서 몇 시간을 늘어져 있더니, 이제 또 간다고? 이번에는 제대로 가는 거 맞냐?
투란은 그 풍경을 잔소리와 함께 옆으로 치우듯이 날았고, 드레이크의 형상을 기반으로 시커먼 먹빛을 눈가로 퍼드리며 살갗을 물들인 채로 대꾸한다.
‘알드바인 시야 범위 밖이 되면 알려줘! 높이 날아야 멀리 난다고 그랬지? 눈에 안 띄게 솟구쳐야 하잖아.’
―나올 때는 깡충깡충 잘도 뛰더만, 뭘 눈에 뜨이지 않겠다고 그래?
‘야, 심술부리지 마! 그건 하클 할배 장비로 한 짓이잖아. 누가 봐도 도구를 참 잘 쓰네 하는 거고, 이건 다르지!’
―괴상한 기준이다만…… 알드바인의 관측 범위에서는 그럭저럭 벗어난 것 같다. 드레이크의 날개에 네 몸은 너무 가벼워서 말이야. 벌써 알드바인과 십 킬로미터 이상 벌어졌어. 조금만 더 가면…… 아니, 그냥 몸에 적당한 위장만 둘러쳐서 시야를 가로막기만 해도 눈에 보이지 않을 것 같군.
‘위장?’
―바람의 장막, 풍경을 왜곡시켜 주잖아. 아니면 골든드레이크의 포톤 가드를 둘러도 되고…….
‘아, 그것도 있네. 좋아!’
투란은 냉큼 고개를 끄덕이면서 드레이크의 날개에 새롭게 힘을 줬다.
곧바로 날개로부터 은은한 광채가 흘렀고, 투란의 몸을 중심으로 빛의 윤곽이 맺혀 들었다. 그 윤곽은 곧바로 투란의 몸을 지우듯이 휘감았고, 시각 속에서 완연히 지워줬다.
‘아, 이거 프로브로 멀리서 좀 봐줘! 역병 숲에서처럼 이상해지는 거 아닌가 확인해서 봐야지!’
―제대로 됐어. 거기서처럼 괜히 역병의 잔재가 들러붙어 광채의 왜곡을 다 드러내는 일 따위는 없다. 말보다는 보는 게 더 빠르겠군, 자 봐라.
드라고니아가 달라진 상황을 설명하다가 그냥 투란의 요청대로 프로브의 시각을 넘겨주며 투란이 골든 드레이크의 힘을 통해 어떻게 자신을 숨기고 날고 있는가를 그대로 보여줬다.
‘우하핫, 정말로 유리처럼 돼버렸네! 투명해! 좋아, 그럼 높이 날자!’
스아앗!
소리 없는 외침에 드레이크의 날개가 곧바로 반쯤 접히며 좁아졌다.
그 변형은 곧장 투란의 몸을 구름을 관통하려는 듯이 치솟게 했다.
습지의 풍경, 하이랜드 남부의 풍경을 발아래 깔면서 투란은 멀어져 가는 알드바인을 돌아봤고 자신이 거점이라고 마련한 ‘집’에서 멀어져가는 것을 확인했다.
‘뭐 까먹고 온 일 없겠지?’
서둘러서 이것저것 시알라와 페란드, 멜란드에게 떠들고 떠넘기고 떠나왔다. 제란드는 아직 타클란과 사냥 가서 돌아오기도 전이었다. 다시 생각하면 굳이 서두를 것까지는 없지 않았는가 싶기도 했지만, 갑작스럽게 울부짖기를 반복하려는 고르고니아―스테노아―의 강렬한 기척이 떠나기로 결정한 순간에 싹 진정된 것을 느꼈기에 잘한 선택이란 생각이 먼저 들 뿐이었다. 그래도 뭐 잊고 와서 나중에 후회할 일은 없기를 바라는 기분이었고…… 혹시 뭔가 해놓고 나서야 하는데 잊은 것은 없나 해서 자신에게 되묻는 물음을 한 셈인데…….
―파쿠란에게 아직 금화 주머니를 받지 못했다는 정도?
‘에?’
―켈 데릭이 며칠 처리한다고 했는데, 받지 못하고 바로 날려 왔잖아. 그거, 비록 금화니 뭐니 해서 얄팍해 보이기는 했다만 그래도 상당한 아티팩…….
“끼악!”
투란은 놀란 소리를 냈다.
날개가 움츠러들었고, 주변에 돌풍을 일으키며 투란의 몸은 잠시 공중에 멈추기도 했다.
―잊고 있었냐?
소리까지 내며 놀라는 투란을 어이없어하며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도, 도감에 너무 빠져 있었어! 파쿠란이 비전도 알려줘서 더욱 금화 주머니 생각을 못 했어! 앗, 설마 흑마법사답게 음흉하게 가로채려…….’
―너한테 그거 가로챌 놈이 몬스터 로드의 비전을 그렇게나 가르쳐줄 리가 있냐! 도시 안에서 적당히 누구라도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의 형상이라며 알려준 거잖아! 자기 잡으러 오라고 알려줬겠어? 네 녀석이 가진 게 많아서 금화 주머니 따위는 하는 기분으로 잊고 있었을 뿐이겠지!
‘도, 돌아갈까?’
―멜란드가 널 꽤 재미나게 보겠구나.
‘역시 대망신인가!’
―그런 거 가로챌 흑마법사가 아니다. 알아서 맡기든가, 너에게 넘어오도록 조치를 취해 놓겠지.
‘믿고 가야 하는 거네…… 그래, 난 파쿠란을 믿겠어!’
투란은 다시 날개를 펼치고 알드바인을 흘깃하며 멀어지려 하니…….
―몇 초 전까지 의심하던 놈은 누구였냐!
드라고니아가 태도가 홀랑 바뀌는 투란을 비난했다.
못 들은 척하고 투란은 알드바인에서 눈을 떼어 나아갈 방향을 노려봤다.
더 높이 치솟고, 더 멀리 보니 곧바로 갈기 산맥의 풍경, 굽이치는 하이랜드의 지형과 남부의 거대한 수림, 늪지…… 그 모든 풍경 속에서 엘데인으로 향하는 방향을 찾아내며 투란은 숨을 들이쉬고 중얼거렸다.
“그래, 저쪽이야! 느껴져!”
살짝 지평선에 닿기 전에 엘데인의 성채 꼭지가 보인 탓이 크기는 했지만…… 슬그머니 감각적으로 찾아낸 시늉을 해보는 투란이었다.
―헛소리하지 말고 지형을 기억하고 이정표(里程標)를 똑바로 정하라고! 역병의 수해에서 헛짓거리한 것을 또 되풀이할 테냐? 까불지 말고 안전하게 너만의 이정표를 세우란 말이다!
‘알드바인이나 엘데인의 사이에 네 말대로 마법의 징표를 찍어놨다가 들키면 나중에 엄청 귀찮아진다고! 그건 됐고, 라비엔부터 여기까지는 몇 백 년 동안 지형에 큰 변화가 없었다잖아. 그러니까 당분간은 괜찮을 거야. 라비엔이나 엘데인이 무너지더라도 흔적은 남을 테니까. 자, 그러면 날자!’
투란은 날개를 움직이며 가속했다.
팀과 함께 걸어서 며칠을 이동했던 거리는 순식간에 흘러갔고, 엘데인의 성채 또한 작은 돌멩이를 떠올리게 하며 스쳐갔다. 갈기 산맥의 쟈카라 산림, 무쇠뿔 오우거의 숲, 몰튼노트의 평원도 흘깃거리는 사이에 모두 지나친 다음이었다.
수백 킬로미터, 공식적으로 정확한 거리는 모르지만 대충 감으로 그리 알던 거리를 그렇게 지나친 다음에 투란은 다시 소리 없는 물음을 꺼낸다.
‘정말로 그 지도(地圖) 마법이 그렇게 어려운 거야?’
―춤추는 산맥이라서 난이도가 대폭 상승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하늘의 별자리를 확인하면서 날아도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경우가 당연한 지역이니까.
‘아쉽네…….’
투란은 중얼거렸다.
드라고니아가 말한 지도 마법, 그것은 특별한 이정표 없이 지도 위에 자신의 위치, 가야 할 곳의 사이를 고스란히 비춰주는 마법이었다. 보통은 책이나 지도에 바로 걸어놓고 원할 때 펼쳐서 보기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춤추는 산맥 안에서는 그 마법이 굉장한 방해를 받아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난이도가 미친 듯이 올라가기에 춤추는 산맥 안에서 제대로 효용성이 있는 지도마법은 가히 대마법사가 아니면 엄두도 못 낸다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상아탑에는 그런 지도가 있는 듯하긴 했지만…… 대도감 안에는 그 지도 마법이 걸리지 않는 보통 지도가 확대와 축소를 자유롭게 해서 볼 수 있도록 담겨 있을 뿐이었다.
때문에 투란은 지도를 보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주변 지형을 끊임없이 살피며 이정표 노릇을 할 지형을 기억해야 했다. 지도가 저절로 그 모든 일을 해주지 않으니까.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고, 지나온 풍경을 멀리 돌아보면서 투란은 계속해서 날았다. 걸어서는, 평범한 사람이나 짐승의 걸음으로는 몇 날 며칠이 걸리지 가늠하기 힘든 거리를 드레이크의 날개는 아주 쉽게 흘려보내고 있었다.
아래에 뭐가 있는가 관심 없이 그냥 날아가다 보면, 나중에 알드바인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날지 않으면 찾아갈 방법이 없을 듯싶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기억하고, 열심히 둘러보며 비행하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불쑥 물음을 던진 것은 멀리 거뭇하고 긴 숲의 풍경이 보일 무렵이었다.
―역병의 수해를 넘어갈 거냐?
‘뭐? 거길 왜 넘어?’
―그러려고 가까이 온 거 아니었어?
‘어? 아, 보이기는 하네. 하지만 아냐!’
투란은 퍼뜩 저 길고 거뭇하게 먼 황무지 산의 암석군과 만나는 숲이 역병의 수해 끝자락인 것을 깨달으려 대답했다. 분명히 엘데인을 지나서 북쪽으로, 서쪽으로 이리저리 기우뚱거리며 날았는데 결국은 라비엔이 보이지 않는 쪽으로 움직인 채로 역병의 수해 북쪽의 끝에 도달한 것이다.
‘저 암석 황무지를 지나서, 굽이치는 돌산을 따라가면 강이 나온다고 했잖아. 수은이 흐르는 것 같은…… 아마 그게 키린이 말했던 칼날강이 아닌가 싶어. 켈 데릭의 도감에도 거기서 바라보는 북쪽으로 두 개의 큰 산이 겹쳐진 풍경을 보고 나아가면 미궁이 있다고 했잖아. 그걸 찾아가는 거지.’
―애매하긴 해도…… 가장 단순한 길 찾기는 그것뿐이겠군.
‘칼날강에서 위로 안가면, 그 산맥 틈새에서 칼날강이 멀리 반짝이는 꼴을 보고 내려와야 한다잖아. 북쪽 산맥까지 날아갔다가 내려오는 것보다는 이쪽이 조금이라도 빠른 거 맞잖아? 어쨌든 오늘 안에는 칼날강가에 도착해야지.’
―오늘 안? 뭘 믿고 그렇게 빠른 여정을 자신하는 거냐? 아무리 드레이크의 날개라도 지형을 전혀 모르는데 오늘 안은 너무 빠르잖아?
‘아니, 알아. 아니까 그렇게 갈 수 있어.’
―아, 드레이크의 기억이냐.
투란이 자신 있게 말하는 까닭을 드라고니아는 바로 느낀 듯이 중얼거렸다.
이 일대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골든 드레이크, 투란은 그것과 완전히 하나가 된 기억이 있었다. 자신이 드레이크인지, 사람인지 전혀 분간을 못 하던 위험한 경험이었지만, 그로 인해 투란은 인간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경험한 드레이크의 기억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명확한 계기, 인간적인 관점을 드레이크의 시각에서 이해만 한다면 그 기억은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다.
―용케 기억 속의 지형이랑 지도의 지형을 확인했구나.
‘음? 어, 뭐…… 켈 데릭의 도감이 너무 대단한 덕분이잖아.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여달라니까 바로 보여줬잖아.’
―호오? 그러니까 칼날강가에서 서서 보이는 풍경에 대해 물은 까닭이 그거였냐?
새삼 감탄한 듯, 드라고니이아가 데몬스 그라토…… 절벽의 동굴 안에서 투란이 도감을 펼쳐놓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묻던 일에 대해 물었다. 별 의미 없는 물음처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칼날강가에서 주변을 둘러보던 드레이크의 기억을 되새기며 물은 것 아닌가.
‘그런 까닭이었지. 설마 제대로 대답…… 보여줄 거란 생각은 못 했지만 말이야. 원더 어쩌고 이적이 저쩌고 하는 말이 전혀 헛소리가 아닌 것 같아.’
투란은 조금 멋쩍은 듯, 도감의 위엄에 감탄을 담아 대답했다.
원더 그리모어, 이적의 도감이라는 켈 데릭의 특판품은 묻는 이가 아무리 어설프게 물어도 최대한 맞춰서 내용을 보여줬다. 때문에 투란은 동굴 안에서 자신만의 준비를 하며 하루 안에 칼날강에 도달할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그 하루 안이란 계획에 여전히 조금 회의적인 듯…….
―그래도 오늘 안이라고 확정 짓고 가는 거는 너무 조급하지 않냐? 지형을 기억해냈다고 해도 아주 오랜만에 펼친 날개잖아. 게다가 어린 날개라고, 다 자란 드레이크의 날개를 기준으로 남은 기억인데…… 속도가 많이 모자랄 수 있잖아.
‘어? 아, 새끼 끌고 날아다녔을 때의 기억이 있어. 어미의 속도가 아니라 아기의 속도에 맞춘 계획이라고.’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하는 말에 대답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미 드레이크와 새끼 드레이크, 둘은 역병의 수해를 넘어오지 않고 그 경계를 따라 암석군으로, 칼날강으로 이어지는 긴 황무지로 자유롭게…… 산맥의 안쪽을 옮겨 다녔다. 춤추는 산맥의 북부 황무지 역시 드레이크의 사냥터에 포함되어 있었고, 새끼가 이것저것 맛보며 자라는 토양의 일부였던 것이다. 그중에서 너무 위험하다 싶은 곳으로는 가지 않았지만, 새끼를 끌고 칼날강가에 앉아 즐기던 기억은 아주 선명하게 투란에게 전해져 있었다.
‘거기, 꽤 맛있는 것도 있어. 드레이크의 간식이라고 해야 하나?’
―투란, 너는 사람이고 몬스터 로드라고 꼭 말해야겠냐!
드라고니아가 드레이크의 식성을 기준으로 입맛을 다시는 투란에게 바로 으르렁거리고 말았다.
‘어? 에헷!’
투란은 슬쩍 얼버무리면서 가속했다.
하늘의 구름을 가르고, 지상에서 우둘투둘하니 흘러가는 암석군을 내려다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