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7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72)
‘아, 저기다!’
투란은 한 곳을 보고 바로 하강(下降)을 시작했다.
―정말로 새끼를 끌고 이런 곳까지 왔었던 거 맞냐? 드레이크가 자신의 유아를 돌볼 때의 성질을 고려하면…… 여긴 너무 위험한 풍경인데?
드라고니아가 한층 더 회의(懷疑)적으로 물었다.
‘왔었어, 하지만 네 말도 맞아. 어린 녀석이 너무 무모한 짓을 하려 했고, 여기는 그리 안전한 곳이 아니었지. 그래서 더 깊은 곳으로, 드레이크에게 위험이 더 적은 곳으로 옮겨갔지. 음, 말하자면 스쳐 지나간 추억이 있는 곳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이곳에서 가르칠 일이 있어서 한번 들렀다고 하면 될 것 같네.’
―가르칠 일?
‘불꽃 삼키기. 있는 그대로 말하면 그런 거야. 웃차!’
투란의 두 발이 땅을 디뎠다.
거울색으로 물든 자갈이 가득하고, 수 미터 거리를 둔 채로 수은(水銀)이 백금(白金) 광택을 머금고 출렁이는 강가였다. 발바닥을 부드럽게, 혹은 까칠하게 누르는 돌의 압력을 느끼면서 투란이 소리 없이 중얼거린다.
‘드레이크 아기가 그 정도로 자라는 데 몇 년이나 걸렸을까?’
―뭐? 네가 삼킨 녀석? 글쎄…… 갓 태어난 경우라도 꽤 큰 몸집일 때가 많으니까. 몸 크기고 가늠하는 것은 어렵군. 용의 혈족은 성장이 정체된 듯이 보이다가 어느 순간에 단번에 커버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골든 드레이크의 경우에는 어떻다고 확실히 알려진 바가 없기도 하군……. 그런데 그건 왜?
‘드레이크는 날짜를 세지 않거든. 가끔 느끼는데, 수십 년을 키워온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가, 고작 서너 달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고…… 알이 깨진 다음에 거기서 줄곧 벗어나지 않았는가 싶을 때도 있어. 어떨 때는 한 마리 키운 것이 아니라 여러 마리를 거듭 키웠나 싶은 기억도 떠오른다니까.’
―그건…… 몇 세대의 기억이로군. 아무래도 네가 삼켜 지운 드레이크 어미 혼자만의 기억은 아니다 싶다. 어쩌면 여기 강가에 선 것도 이번 대, 지금 너의 아기 드레이크 때가 아니고 두어 세대 전일 수도 있어.
‘그럴 수도 있으려나.’
자박, 자박.
두어 걸음 수은의 강을 향해 내디디면서 투란은 숨을 한껏 들이쉬었다.
금빛으로 물든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은근히 붉은 광채가 그 속에 흐르는 듯했을 때 투란의 입가에서 불길이 넘실거렸다. 목구멍 안쪽에서 차오르는 열기가 두툼한 금빛 입술과 사나운 이빨 사이로 불덩이가 된 채로 튀어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망설이는 듯한 모양이었다. 이는 들이쉰 숨결이 아주 느릿하고, 미미하게 나눠서 내쉬어지는 탓에 불꽃이 갈피를 못 잡고 멈칫거리는 것처럼도 보였다.
―응? 투란?
문득 투란이 무엇을 하려는가 알아차린 듯, 드라고니아가 조금 당황스럽게 부를 때 투란은 거칠게 숨을 들이쉬었다.
불꽃이 바로 숨구멍 안으로 스며들고, 목구멍을 타고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글거리는 광채가 순식간에 온몸에서 번들거렸고 금빛비늘 사이로 퍼져나가며 몸 안에서 곧장 밖으로 뿜어져 나올 듯한 열기로 변질(變質)되어 일렁였다.
투란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고, 드라고니아도 명확하게 알아차렸다.
드레이크의 형상을 기반으로 꾸며진 지금 투란의 몸, 뼈와 살, 피…… 그 속에서 ‘악마의 심장’이 열심히 그 피를 마시고 살을 머금으며 어우러지고 있었고, 시커먼 ‘파라블랙․잉크’가 크리스탈 빛의 점멸(點滅)을 머금은 채로 번져나가는 몸 안으로 삼켜진 불꽃이 맹렬하게 드레이크의 신체(身體)를 자극하고 강화(强化)하며 아예 속성(屬性)의 일부로 변화하기까지 했다.
그 때문에 금빛비늘의 가죽은 붉은 광채까지 머금었고, 이렇게 물든 채라면 골든 드레이크가 아니라 홍염(紅焰)의 레드 드레이크로 변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드라고니아에게는 굉장히 놀라운 현상이었는데, 투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듯이 다시 날개를 펼치며 세차게 숨을 들이쉬는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숨결 대신에 빛의 파문(波紋)이 일렁이며 모여들었다.
드레이크의 생체파동에 따라 뭉쳐든 빛의 파문은 파도(波濤)처럼 투란의 온몸을 두드리며 스며들었고, 이는 붉어진 비늘의 색채를 다시 영롱한 금빛으로 물들였다. 그 과정에서 다시 한번 드레이크의 피와 살, 뼈가 강인(强靭)해지고 있었다.
두어 번 더 이를 되풀이하고 나서 투란이 묻는다.
‘어때?’
―놀랍군. 드레이크가 자신을 단련한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만, 이게 드레이크의 기억 속에 있었다면…… 적어도 골든 드레이크, 광금룡의 경우에는 자기단련을 하는 품종이었다고 해야겠어.
‘겨우 그런 생각뿐이냐?’
드라고니아의 대답에 살짝 실망한 투란이 날개를 접어 등에 붙이고 수은의 강을 노려봤다. 그 속에서 막 길쭉하게 강줄기가 치솟아 오른 참이었다. 백금의 광채, 길게 위로 솟구쳐 오른 강줄기는 촉수(觸手)라 부를 만했다. 어디에서 빈틈이 없이 가늘게 다듬어진 탓에 칼날로 보기에 딱 좋은 촉수…….
―응? 저건 뭐냐?
투란이 당연하게 기다렸다는 자세일 때, 드라고니아는 놀란 소리를 내며 물었다.
너울거리며 강가를 노려보듯이 치켜 오른 촉수는 대강 서너 가닥이었고, 수은 강물 속으로 잠겨들었다가 다시 치솟아 올랐다가를 되풀이하며 투란을 살피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간식거리.’
투란은 기억 속의 상황과 일치하는 광경을 보며 짧게 대꾸했고, 곧바로 입을 열고 불길을 뿜어냈다. 방사(放射)된 화염은 넓게 펼쳐지며 십여 미터를 덮치며 수은의 강물 위로 번져나갔다.
물이 증발하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모양으로 수은의 강이 일부가 퍼내진 것처럼 증발하며 사라졌다. 허옇고 반짝이는 안개 속에서 촉수가 날카로운 음향을 울리며 투란을 향해 내리찍혔다. 수 미터의 거리 따위는 깔끔하게 무시할 수 있는 길이를 드러내는 광경이었다.
투란은 두 손을 내밀어…… 드레이크의 형상이 덧씌워진 사람의 손으로 냉큼 촉수 두 가닥을 붙잡았다. 그 순간에 바로 수은의 강물이 지닌 무게감이 투란을 덮쳤다. 무겁고 큰 뭔가가 단숨에 강으로 자신을 잡아당기는 느낌, 투란은 기억과 일치하는 상황에 히죽 웃었고 허리에 힘을 줬다. 허리춤을 맴돌던 시커먼 잉크빛 속에서 검은 결정질이 돋아나며 다리와 발로, 가슴 쪽으로 번져가며 금빛비늘 가죽과 어우러졌다. 그 순간에 투란을 휘감던 무게감이 사라졌다. 이제는 그저 작은 돌이 가늘고 긴 끈으로 자신에게 매달려 저편에서 당기는, 살짝 귀찮은 느낌에 불과했다. 그 가벼움 속에서 투란은 두 손을 당기며 발을 굴러 뒤로 물러섰다.
콰아아! 촤앙!
수은 강물을 가르며 백금광채로 물든 크고 둥근 것이 튀어나왔다.
화르륵!
곧바로 투란의 입김이 불꽃이 되어 둥근 것을 덮쳐갔다.
수은이 증발하고, 허연빛의 골격이 흐물거리는 듯한 모양이 드러났다.
얼핏 보면 거대한 인간의 두개골, 해골의 안와(眼窩) 속을 시커멓게 꾸물거리는 것이 채운 채로 아래턱 대신에 촉수가 돋아난 듯한 형체였다.
당겨지며 드러난 그 형체는 사납게 투란을 향해 쏘아지듯 날아왔다.
격돌을 통해 짓뭉개겠다는 시도였으나, 투란은 보다 과격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목이 길어졌고, 활짝 펼쳐진 날개의 중심을 따라 거친 비늘이 일어서며 굵은 꼬리가 뻗어나왔다. 이제는 드레이크의 형상을 덧씌운 사람의 모습이라 할 수 없는, 드레이크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사나운 입을 벌려 곧바로 달려드는 해골 형태를 으깨 물고 있었다.
검게 채워진 안와(眼窩)가 물컹 잘려나갔고, 더 이상 손이 아니라 앞발이라 해야 할 곳에서 돋아난 발톱이 촉수를 휘어잡고 허연 해골을 내리눌렀다. 불길이 물어뜯은 살점과 눈알을 입안에서 구워버리며 둥근 해골의 형상을 내리찍었다.
수은 강물의 흔적이 싹 사라지고 바싹 구워진 촉수 달린 해골이 가늘게 경련하다가 축 늘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 없었다. 그리고 그 머리통이 드레이크의 사나운 입에 뭉텅뭉텅 베여 사라져 가는데…….
―투란! 정신줄 놨냐!
격하게 드라고니아가 외쳤다.
‘응? 아냐. 찾는 게 있어.’
투란의 대답은 너무 깔끔하게, 소리 없이 나왔다.
그리고 곧 투란은 자신이 말한 대로 해골이 한 귀퉁이,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낸 자리에서 온갖 색채로 일렁이는 가죽포대 같은 조직을 찾아냈다.
‘이거, 필요했거든.’
이어진 투란의 말에 드라고니아는 재빠르게 그 가죽포대 모양의 내장(內臟)과 안에 담긴 것을 조사했고, 확인하듯이 물어야 했다.
―금속괴(金屬塊)? 이놈, 온갖 철광금속을 삼켜서 체내에 보관하는 거냐? 그게 필요한 거였어? 왜…… 응?
묻는 사이에 투란은 가죽포대를 입에 담았고, 목구멍에서 끓어오르는 불길로 그을린 다음에 그대로 불길과 함께 삼키고 있었다. 삼켜진 금속귀, 온갖 종류가 뒤엉킨 쇳덩이는 그대로 드레이크의 뱃속에서 달아오르고 녹아내리며 강렬한 생체파동에 두들겨 맞아 분해되어 갔다.
하지만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성체(成體)를 이루진 못한 새끼 드레이크에게는 아직 이 다채로운 쇳덩이를 완전하게 소화시킬 열기, 화력이 없다. 이대로는 그저 배 속에 소화시키지 못해 배탈 나는 덩어리를 간직한 꼴이 될 뿐…… 그러므로 ‘악마의 심장’은 곧바로 배 속의 핏줄, 내장의 껍질 틈새로 스며들어 마그마 로드의 형상이 흐르게 했다. 다 자란 드레이크조차 얻어내기 힘든 강렬한 화력이 곧바로 삼킨 금속괴를 짓이겼고, 새끼 드레이크의 내장은 이를 거침없이 수확했다.
우득, 우드득.
미묘하게 뿔이 뒤틀리면서도 거침없는 억센 소리를 내며, 뼈대와 가죽, 핏줄 사이로 강인함이 퍼져나갔다. 드레이크가 지닌 강렬한 생명의 파동이 그 강인함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것으로 삼키고 있었다.
크륵, 크워어어!
자연스럽게 포효하며 투란은 수은의 강에서 새로 치솟는 날카로운 촉수들을 바라봤다. 탐욕스러운 웃음이 드레이크의 입가에 걸렸다.
―야, 너 정말 드레이크의 식욕에 휘둘리는 거 아니지? 투란, 정신줄 놓지 마라!
드라고니아가 당혹스러운 듯이 외쳤다.
‘아냐. 하지만 몇 덩어리 더 먹어둬야 해. 작은 몸집으로라도 드레이크의 강력함을 발휘하려면…… 저것들을 먹어치워야 해!’
반쯤은 간식의 맛에 넘어간 듯하면서도 투란은 또렷한 대꾸를 하고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다른 불평이나 만류를 할 틈도 없이, 수은의 강에서 튀어오른 촉수는 겨우 2, 3미터의 몸집에서 부풀다 줄었다 하는 작은 사냥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투란을 덮쳐오고 있었다.
콰득, 우득.
자갈이 밟혀 튕기고 검게 그을린 돌들이 으스러졌다.
화륵, 입가에서 불길을 넘실거리는 모습으로 투란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두 발로 똑바로 서 있는 자신을 확인했다. 날개는 고이 접힌 채로, 그 절반은 땅에 길게 늘어뜨린 망토처럼 장대함을 과시하는 와중에 금빛비늘, 손톱과 발톱, 눈과 귀, 입의 모든 형상이 사람의 몸을 척도 삼아 드레이크를 덧씌운 듯한 상태였다.
‘음, 이 정도면 미궁 안에서 쳐맞고 다니지는 않으려나?’
―미궁 안에서 드레이크 형태를 이용하려고? 왜? 고르곤니아의 황금모피라면 딱히 위험할 일도 없을 듯하다만? 거기에 그랑츄 형태라든가 다른 것을 섞으면 되잖아? 왜 드라고니아를…….
‘그 미궁, 타우루스와 라미아의 격돌지역이라고 되어 있었잖아. 도감에서는 메듀시아가 확실히 있다고 했지만, 사람들에게는 타우루스나 라미아만 가득한 걸로 보인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타우루스만 있다면 그냥 황금모피로 쳐밀고 들어가도 되기는 하겠지, 네 말대로. 하지만 라미아는 그럴 수 없어. 그건 어지간한 몬스터도 홀려서 삼키니까. 거기 홀리지 않는 채로 잽싸게 싸돌아다니려면…… 지금 내게는 드레이크가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라미아의 유혹을 너무 겁내는 거 아니냐? 얕보는 것보다 낫기는 하다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 너한테 그게 그리 큰 장애물은 아닐 텐데? 보통 몬스터 헌터들도 대비를 충분히 해서 라미아를 사냥하잖아?
‘타우루스랑 무리 짓는 라미아라면, 퀸 라미아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건 웬만한 대비 따위는 그냥 씹어버리는 상급 몬스터라고.’
―그렇기는 하다만…….
‘에잇, 방심은 금물! 방심하지 않고 대비를 해서, 오래 헤매지 않고 단숨에 메듀시아를 찾아내려는 거라고! 나의 노력에 딴소리 그만!’
―노력이라…… 그냥 맛있어서 자꾸 먹어치운 거는 아니었냐? 근데 이게 대체 어떤 변종이었던 거지?
드라고니아가 살짝 비꼬려는 듯하다가 투란이 잡아먹은 강의 괴물에 대해 묻고 있었다. 그 말에 담긴 의미에서 투란은 한 가지를 짚었다.
‘변종? 너, 변종 아닌 이런 거에 대해서 알아?’
―땅문어. 물에서, 주로 바다이지만 물속에서 살아야 하는 짐승이 땅에 적응해서 지상이 수중인 것처럼 헤집는 몬스터가 이거랑 비슷해. 하지만 저 강물을 뒤집어쓰고 이렇게 허연 해골 모양이지는 않지. 혹시 그 변종이 아닐까 싶다만…… 확신할 수는 없어.
‘땅문어라…… 뭐, 찾아보면 되겠지. 어쨌든 이름 하나라도 나왔으니, 도감 들춰보면 뭐든 나오지 않겠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이 나머지는 어쩔 거냐? 배부르다고 금속덩어리만 파먹고…… 구운 김에 다 먹을 참이냐?
이어진 물음에 투란은 슬쩍 몸 주변을 둘러봤다.
해골 한 귀퉁이가 파인 채로 늘어진 촉수의 괴물 몇 마리가 주변에 널브러진 채였다. 반쯤 구워졌지만 아직 반은 꿈틀거리며 그 끈질긴 생명을 과시하는 모양이었다.
‘먼저 뭔지 알아나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