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7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74)
―투란, 그거 뭔가 상당히 다른 경우 같다만?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집중된 사고의 흐름을, 되새긴 기억을 공유해서 알고 나자 바로 꺼낸 말이었다.
‘응? 다르다고? 왜?’
―굳이 옆에 바위가 없어도 충분히 괴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거잖아, 그 개구리 몬스터 로드는 말이야. 하지만 이 녀석들은 물고기가 물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저 수은대강이란 환경이 통째로 필요하다고. 그건 네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음…… 그게 말이지.’
투란이 느릿하니 수은대강, 칼날촉수가 치솟고 칼날지느러미가 오락가락하는 광경을 보면서 살짝 말을 멈췄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품는 마음가짐은 드라고니아에게도 분명히 느껴지는 것이었으니…….
―뭘 할 수 있다고? 뭘?
마음에 투영되는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없었지만 투란은 뭔가를 자신하고 있었다. 예감처럼, 순간적인 감각에 따라 행동하려 하는 셈이었다. 그런 추측을 인정해주듯, 투란의 다음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물동이!”
간단한 말과 함께 시커멓게 그을린 바위에서 불룩 돌항아리가 치솟았다.
테라트가 자연스럽게 투란의 의지에 호응한 결과였다.
투란은 바로 그 수은대강을 가리키며 돌항아리에 명령한다.
“퍼와!”
―투란? 설마, 저게 옛날 몬스터에게서 비롯된 강이니까 갖다 한번 삼켜보려고? 삼켜서 칼날촉수랑 함께 쓰면 될 거라 생각하는 거야?
이번에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추측해보는 드라고니아였고, 투란은 인정했다.
‘비슷해.’
쩌억, 퍽, 콰직.
땅을 들썩이며, 땅속을 달리는 길고 굵직한 뭔가가 항아리를 그 머리에 이고 질주하는 듯한 모습을 중심으로 칼날촉수가 내리찍히는 중이었다. 그 후려 패는 촉수를 피해서 돌항아리는 강가로 파고들었고, 수은의 물결을 한 움큼 퍼 올리자마자 되돌아 질주했다. 들썩이는 땅, 백금광채를 담은 항아리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칼날촉수가 연이어 수십 가닥이 떨어져 내렸지만, 돌항아리는 스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고 투란 곁으로 돌아왔다.
그 광경에 투란은 빙긋 웃었다.
‘숲을 헤집고 누비고 다닌 것보다는 훨씬 쉬운 모양이네.’
―뿌리처럼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으니까.
드라고니아도 쓴웃음처럼 말하고 있었다.
갓 생성되었을 무렵의 테라트는 뭔가를 담아서 이동시키려면 중간에 한 번씩 지면, 지하의 뭔가와 격돌해서 폭파(爆破)되고는 했다. 바람이나 물결, 불꽃과 다르게 흙을 기반으로 생성되는 스피릿 아티팩트라 이동에 더 많은 훈련을 필요로 했었다. 어디 부딪혔다고 성질내며 둘 중 하나 끝장내자는 식으로 충돌하지 않도록 다듬는데 꽤 골 아픈 녀석이었던 셈이다. 한곳에 뭔가를 쌓아 올리고 버티는 것은 가장 잘했지만, 저렇게 형태를 부여받은 채로 이리저리 움직이라 하면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쿵쾅거린 녀석이었다.
―오기로 가르쳐놓은 보람……이 아니고, 뭣 때문에 퍼오라 시킨 거야? 왜?
자연스럽게 남매가 형성했던 흙의 스피릿 아티팩트는 투란의 테라트처럼 사납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을 듯했던 드라고니아가 다시 본래 이야기로 돌아와 으르렁거렸다.
가만히 다가와 얌전히 놓인 돌항아리, 그 속에서 이동의 여파를 드러내듯이 출렁거리는 수은을 내려다보며 투란이 묵묵히 되뇐다.
‘한때는 분명히 몬스터, 지금 상태는 애매하다 했지. 몬스터 로드가 마수와 몬스터를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해. 하지만 여기서 끝이 보이지 않는 강을 놓고 그럴 생각은 아무도 안 하겠지. 이렇게 한 동이 퍼 놓으면 그래 볼 만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하려는 것은 조금 달라. 이게 몬스터이든 아니든, 이 성질을 가진 몬스터가 있으면 될 뿐이니까.’
―투란?
누군가에게 말하기보다는 자신을 향해 되새기는 듯한 이야기에 드라고니아가 움찔하며 불렀다. 대답 없이 투란은 한 손을 항아리에 담갔고…….
출렁.
투란의 손바닥과 만난 항아리 속의 수은이 갑작스럽게 생명을 부여받은 듯이 꿈틀거리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뭔가를 향해 강렬하게 질주하는 듯한 기묘한 흐름이었고, 그 흐름과 함께 항아리에 담긴 수은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마치 투란의 손이 항아리의 깨진 틈이란 듯, 배수구(排水口)를 찾아 격렬하게 새나가는 물길처럼 수은은 항아리 속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얌마! 위험한 거 알았으니 안 쓸 거처럼 떠들더니!
‘믿었다며? 계속 믿어!’
드라고니아가 한 박자 늦게 투란의 손아귀에 맺힌 ‘작은 돌’, 돌무늬의 형상을 파악하고 버럭 외쳤고, 투란은 뻔뻔하게 대꾸했다. 그리고 곧 투란의 정신은 손아귀 속으로 스며든 수은, 한때는 늪이었던 어떤 존재에 대해 집중하고 있었는데…….
정해진 형상은 없다, 그러므로 부정형(不定形).
그러나 그 부정형의 몸을 구성하는 물질은 명확하게 수은.
이 세상의 물질이지만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수은은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꾸물꾸물 움직이거나, 구르거나, 가끔 짐승의 다리처럼 굵직한 줄기를 내뻗어 걷기도 했다.
그러면서 계속 커지고 부풀며 자신을 키워나간 몬스터…… 어느새 누군가는 머큐리아, 누군가는 수은늪 거인이라 부르는 기묘한 몰골이 되어 갔다.
그 몬스터의 목적은 한 가지, 삼키고 커지고 부푸는 것.
왜냐하면 그 몬스터를 낳은 존재가 그리 정(定)했기 때문이었다.
몬스터 머큐리아, 수은늪 거인에게는 다른 목적도, 의지도 없었다.
그저 낳아준 존재가 정해준 본능이 그 존재의 법칙이었을 뿐이다.
다만 한 가지, 그 낳아준 존재는 그리 생각이 깊지도 넓지도 정교하지도 않았다.
수은늪 거인, 머큐리아는 세상의 이것저것을 삼키며 자신의 몸을 이루는 수은을 열심히 배출했는데…… 새로 배출한 수은은 최초의 머큐리아, 수은늪 거인의 몸을 이루는 수은과 다르게 이 세상의 물질인 수은 그대로였다.
처음에는 문제가 없었다.
흘러내리는 대로 다시 챙겨 올리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점진적으로 쌓이는 수은은 머큐리아를 집어삼켰다.
감당할 수 없는 수은의 용량은 결국 수은늪 거인을 한곳에 고이게 했다.
늪의 속성이 사라져갔고, 결국은 서서히 부푸는 수은의 호수가 돼버린 것이다.
몬스터였던 특성은 이제 머나먼 과거의 추억으로 수은 속에 남겨진 희미한 잔재일 뿐이었다. 명확했던 본능조차 사라져 가고, 고였던 차에 어딘가로 터진 물꼬로 인해 그 거대한 용량을 느릿느릿 흘려낼 뿐인 지저의 수은 호수…… 그것이 현재 머큐리아, 수은늪 거인이 도달한 결말이었다.
그리고 그 흘러간 체액, 한 움큼의 수은이 옛 어버이를 만났다.
본성이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게걸스럽게, 수은은 어버이를 탐하며 뭉치려 했다.
어버이는…… 옛날 그대로 그리 깊지 않게, 넓지 않게, 치밀하지 않게 수은을 삼키고 그 본질을 받아들이더니, 명령했다.
명령은 곧바로 새로운 본능이 되어 머큐리아, 수은늪에 새겨졌다.
꾸물꾸물, 두 눈으로는 부드럽게 팔뚝을 타고 어깨로 밀려오며 덧칠하는 수은의 백금색채를 지켜보면서 투란의 다른 눈들은 주변을 샅샅이 헤집으며 칼날강의 동태를 관찰했다.
거대한 몬스터라고 조그마한 바늘 하나로 찔러봐야 별일 없을 거라 여기고 쿡 찔렀더니, 사실은 살점 하나하나가 모조리 예민한 놈이었기에 상상도 못 한 참혹(慘酷)한 일을 겪었다는 이야기는 흔하잖은가!
이 수은 한 동이가 저 거대한 칼날강, 수은대강의 일부로서 여전히 교감하는 중이라면 투란이 맞이해야 하는 것은 수백 킬로미터를 장대하게 흐르며 수 킬로미터의 폭을 지녔다는 강이 벌떡 일어서서 달려드는 광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낌새가 살짝 이상하다 싶은 순간에 투란의 사대 정령수가 즉각 주변을 차단하며 감싼 덕분인지, 아니면 애초에 떨어져 나간 부분과는 아무 교감도 없었던 것인지 백금의 장대한 강은 고요……하지는 않았지만, 아까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이쪽에서 자신의 한 움큼이 뭔 일을 겪었는가 모르는 듯, 알아도 아무 관심이 없는 듯.
투란은 굳이 어느 쪽인가 확인할 생각 따위는 털끝만큼도 없었다!
‘작은 돌’의 압도적인 위엄은 분명히 칼날강의 규모 따위는 상관하지 않겠지만, 거기 발목 잡혀서 시간을 소모할 때가 아니므로.
―이 자식아! 미리 조심하고 저지르든가! 저질러 놓고 조심하지 말란 말이야!
‘실수였어. 너도 미리 좀…….’
―말하고 저질러! 그래야 말리든가 막든가 할 거 아냐!
‘……말리거나 막는 대신에 도와라, 좀!’
울컥해서 티격태격했지만, 곧 투란의 정신은 가슴팍으로 모여드는 수은, 다시 태어난 머큐리아에게 집중되었다. 오롯하게 투란의 몬스터 엠블럼을 찾아 움직이는 머큐리아를 향해 곧바로 ‘문’이 열렸다. 붉은 고리를 향해 머큐리아는 거침없이 밀려들었고, 문장의 풍경 속에서 기다리는 땅문어의 돌연변이 칼날촉수와 만났다.
문장 속에서 두 가지 정수가 하나로 엮이고, 새로운 정수처럼 작용했다.
푹 꺼져 있던 칼날촉수가 탱글거리며 백금의 광채를 오롯하게 뿜어내는 듯했다. 백금의 유동(流動)으로 젖은 듯한 칼날촉수는 비로소 자신이 지닌 특성을 완벽하게 발휘하게 된 것이 신난다는 듯, 투란에게 열심히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
그 풍경을 마음 한편으로 지켜보면서 투란의 두 눈은 다시 손아귀를 향하고 있었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돌무늬, ‘작은 돌’에서 또 다른 머큐리아가 생성되는 중이었다. 이 또한 새로운 특성을 갖춘 작은 수은늪이었다.
―왜! 또 뭘 하려고?
드라고니아는 바로 기함한 듯 외쳤다.
투란은 행동으로 대답했다.
아직 삼키지 않고 놓아뒀던 여분의 칼날촉수, 잘 구워진 채로 널려 있던 것을 향해 새로 태어난 작은 수은늪이 떨궈졌다. 탱글탱글한 광택이 곧장 구워진 살갗을 물들이며 번져 갔다.
―이런 욕심꾸……!
드라고니아의 외침은 아늑하게 투란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아주 잠시.
투란의 몸은 드레이크의 형상을, 몬스터의 형상을 모두 떨쳐내며 온전한 사람의 형태로 되돌아왔다. 스피릿 아티팩트 넷이 강렬하게 주변을 맴돌며 투란을 지키는 방어체계를 강화하며 경계수준을 높였다. ‘천칭’일 때보다 더 넓고 강력한 연계(連繫)를 구성하며 투란을 지키려는 셈이었다.
그렇게 투란은 황금매의 문장을 가슴에 품었고…….
―황금매에 저런 게 왜 필요해? 없어도 되잖아!
윌 라이트의 마력을 통해 웅웅 울려오는 드라고니아의 잔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미묘한 한숨을 쉬는 척하며, 투란은 두 손으로 남은 칼날촉수를 짚으며 대답한다.
“몬스터 엠블럼은…… 몬스터를 삼켜서 키우는 거야. 몬스터 로드는 자신이 지닌 문장이 치우침 없이 잘 크도록 돌봐야 하지.”
냉소적인 대꾸가 바로 투란의 뇌리에 마력의 공명을 통해 울려퍼진다.
―용암 호수의 마그마 로드 하나만으로도 딴 거 다 필요 없을 듯하다만?
‘그냥 닥쳐, 제발!’
결국은 울컥한 말을 던지고 나서 투란은 황금매의 문장으로부터 금빛 발톱을 이끌어냈다. 칼날촉수를 짚은 손아귀에 매의 발톱이 옮겨갔고, 그 정수를 움켜쥐며 갈취했다.
그리고 바로 투란은 황금매를 심상 속에 품고, 황금궁전의 풍경 속으로 내디뎠다.
* * *
옥좌의 맞은편에서 궁전의 입구가 번뜩였고, 동글동글하니 뭉친 칼날촉수 두 마리가 튀어나왔다. 황금빛 풍경과 만나기가 무섭게 금빛으로 물든 칼날촉수는 곧바로 하나로 합쳐졌다. 다른 개체이기는 하나, 그 존재를 구성하는 정수는 완전히 동일한 구성과 특성을 갖춘 때문이었다. 거기에 살짝 얹어진 수은늪의 작은 용량도 뒤섞이며 엉켜들어 하나가 되었고…….
사아아.
부드러운 숨결이 바람처럼 울리며 여왕 하피가 고개를 들고 신참(新參)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막 동그랗게 말았던 형체를 펼치며, 금빛으로 물들었을지언정 수은의 칼날강을 헤집던 성질 더러운 몬스터임을 과시하겠다는 듯이 날카롭게 촉수를 펼치려던 땅문어의 돌연변이가 순식간에 오그라들었다.
여왕 하피의 날개가 살짝 그림자를 드리웠고, 땅문어의 돌연변이인 칼날촉수는 허겁지겁 그 그림자 안으로 기어들었다. 여왕 하피가 살짝 그 해골 형태의 몸인가 머리인가 알 수 없는 언저리를 날개 끝으로 두드린 다음, 옥좌를 향해 돌아섰다.
투란은 문득 칼날촉수가 움직인 거리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애초에 심상 속에 생겨난 문장의 풍경이니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싶기는 하지만, 조금 전에 칼날촉수…… 저 땅문어의 돌연변이는 어이없을 정도로 놀라운 도약으로 하피의 날개 아래로 기듯이 뛰어든 것이다.
어떻게…… 의문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투란은 답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수은대강에 물들어 변질되었지만, 수은 없이는 푹 꺼진 가죽뭉치 꼴이 되는 녀석이었지만 저것은 아직까지도 본능 속에 박혀 있는 땅문어의 움직임이었다. 시각의 틈새를 쪼개는 듯한 기묘한 저 움직임이 땅문어가 포식자로서 활동하게 해주는 원천적인 기능이었다.
‘근데 이건 내 심상 속의 풍경일 텐데?’
심상 속에서 저리 확실하게 성능을 과시하며 굴복하다니…… 조금 괴상하잖은가?
투란은 이 풍경 전체로 자신의 사념(思念)을 퍼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