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7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75)
‘파워 서클.’
강렬하게 먼저 투란에게 존재를 투여(投與)하며 자랑하듯 알려온 것은 파워 서클이었다. 그 파워 서클이 일으키는 ‘힘’의 파동(波動)이 금빛의 궁전을 흐르고 맴돌며 채우고 돌아가는 동안에 몬스터의 정수가 금빛을 입고 실체로서의 성능(性能)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셈이었다. 심지어 오랫동안 잊고 있던 본능(本能)조차도 조건이 갖춰지면 언제라도 발휘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 기척도 또렷할 지경이었다.
이쯤 되면 수은대강에서 벗어나지 못해 칼날강의 명성이 생기게 했던 땅문어의 돌연변이가 모처럼 물가에서 벗어나 본색을 드러내는 이동능력을 보인 것도 당연하다 여길 지경이었다.
‘그렇게 된 건가.’
투란은 그저 몬스터 세란드 앞에 놓여 있기에, 그 깊은 곳에서 도도하게 힘의 원천으로서 작용하고 있기에 마력을 채워주고 보태주는 정도가 고작이겠거니 했던 파워 서클의 위용에 새삼 놀랐다. 필요할 때 꼬박꼬박 그 힘을 불러내 쓰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문장의 풍경에 영향을 끼칠 줄은 예상 못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전에는 이 정도 영향은 없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살짝 드는데, 그 생각이 드는 순간에 투란은 부드럽게 옥좌를 휘감으며 흘러가는 마력의 흐름을 느끼며 깨달았다.
‘시간…….’
드라고니아가 말했던 부분이었다.
서서히 성장할 것이라고, 점차 강해질 것이라고.
파워 서클의 사본을 만들면서 들었던 그 이야기가 딱 적용되는 상황이었다.
투란은 그 성장하고 강해지는 파워 서클의 원본을 지녔으니까.
아마도 지금에 와서야 땅문어의 돌연변이가 원형의 성질을 드러낼 정도로 파워 서클의 원본이 성장한 셈일 터였다.
‘와, 얼마 넓지도 않은데 꽤 걸리는구만.’
자신의 심상 속에 피어난 금빛 궁전의 풍경, 한없이 뚫린 구멍처럼 보이는 천장의 원 너머를 흘깃하면서도 투란은 단순하게 생각했다. 딱히 복잡할 것도 없으니, 다른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아무리 저 창공(蒼空)의 형상을 한 심연이 높고 방대하다 해도 이 풍경 전체는 딱히 크다 할 수 없는 궁전일 뿐이니까. 그나마도 투란 자신이 떠올린 것도 아닌, 금색의 마도사가 투영해놓은 심상을 기반으로 한 것이니까.
시이잇.
여왕 하피가 일으킨 낮은 울림이 투란의 생각을 잠시 멈추게 했다.
‘음?’
가만히 그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이리저리 튀는 생각이 제멋대로 흐르다가 투란이 이 풍경을 돌아보는 까닭조차 잊을 듯하다고 알려주고 싶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여왕 하피는 자신이 섬기는 투란이 그런 식으로 흐트러지는 것이 싫다고 항의…… 어리광이나 앙탈에 가까운 도발을 한 듯했다. 그러고 나서 금방 눈을 내리까는 모습은 덤빈 것은 아니라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듯하기는 했지만.
“알았다. 잘해 준 거야. 괜찮아.”
불쑥 간질거리는 기분 때문에 투란은 일부러 소리를 내서 말했다.
옥좌를 중심으로 궁전 전체가 금빛의 파문이 퍼져나갔다.
파문은 금빛에 물든 몬스터의 형상을 가만히 다독이는 듯했고, 대부분 얌전히 받아들이는 듯했다. 여왕 하피와 그 날개 아래 놓인 녀석들은 살짝 기뻐한다는 느낌조차 투란에게 전해져 오는데…….
‘아오, 저 녀석들!’
반항이라도 하는 건지, 아니면 이런 유치한 다독임은 필요 없다 저항하는 건지 전혀 관심 없어 하는 몬스터의 형상을 투란은 또렷하게 알아차리고 어이없을 수밖에 없었다. 딱히 뭘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그저 가벼운 칭찬을 통해 토닥토닥해준 것인데도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태도를 가득 드러내며 자신들의 본질에 몰두해서 다른 일은 관심이 없는 녀석들.
가장 도드라진 채 그 태도를 투란에게 드러내는 둘이 마그마 로드와 몬스터 세란드였다. ‘로드 오브 몬스터’인 여왕 하피의 영향력조차 몰라라 하는 녀석들은 투란이 퍼뜨린 토닥토닥하는 파문에도 ‘당연히’ 받을 것을 받을 뿐이란 듯이 당당했다.
물론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몬스터 세란드는 뒤틀린 ‘인격’을 바탕으로 투란에게 몬스터로서의 형상과 능력을 부여하지 않으려 했고, 그나마 전해준 것은 계약을 통한 제한적인 부분이 전부였다. 하지만 마그마 로드는 투란과 함께 날뛰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너무 좋아해서 투란이 그 힘을 억제하고 또 억제해도 블랙 애쉬를 풀풀 휘날리려는 전조는 반드시 드러낼 정도니까.
‘음?’
문득 투란은 마그마 로드가 매우 바쁘다는 것을 ‘느꼈다’.
저절로 투란의 마음이 마그마 로드가 둥지를 튼 쪽으로 옮겨갔다.
궁전의 바닥에 숭숭 뚫린 구멍의 무늬 아래로, 깊고 넓고 광대한 마그마 로드의 거체(巨體)를 호수째로 담아놓은 대공동(大空洞)은 투란을 움찔하게 했다. 실체감이 보다 더 뚜렷해져 있다 보니, 이건 그야말로 용암의 호수를 통째로 옮겨 놓은 굴…… 용암의 호수보다 더 무시무시한 열기를 머금고 온갖 소용돌이와 회오리, 잦은 블랙 애쉬의 폭발을 난무시키는 광경이잖은가!
‘너, 이러고 있었냐!’
‘천칭’의 마그마 로드를 통해 익힌 바를 전해놔서 조금 정리정돈을 하고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런 거 없었다. 이곳은 오직 자신만의 둥지이니 그야말로 본능 그대로, 제멋대로 휘젓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투란이 어이없어 불쑥 떠올린 상념(想念)에 바로 반응한 마그마 로드가 곧바로 한편을 열며 보여주는 풍경은…….
‘에?’
먼저 보인 것은 시커먼 결정으로 이뤄진 여왕 하피, 그리고 그 검은 결정질의 날개 아래에 가득 놓인 것들 또한 시커멓게 생긴 몬스터의 형상이었다.
마치 저 위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흉내 낸 듯한 광경이었는데, 오래가지 않았다.
금방 붉은 실금이 가기 시작했고, 형상의 한 귀퉁이 두 귀퉁이씩 으스러지면서 팡팡 터지며 용암의 붉은 광채와 열기를 물컹물컹 쏟아내며 부서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부서진 부분을 다시 때우려 하거나, 아예 새로 만들면서 마그마 로드는 ‘연습’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통해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천칭’의 마그마 로드처럼, 이 녀석도 다른 몬스터의 형상을 자기 나름대로 분석하고 파악하며, 배우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그 배우는 속도가 엄청나게 느리고, 엉망진창일 뿐이다.
‘하, 하, 하. 잘하고 있어. 그래, 마음에 든다.’
소리 없는 칭찬을 하고 나서 투란은 생각했다.
이제 황금매의 문장 속에서 비뚤어진 녀석은 하나뿐이다.
하지만 나름 비뚤어질 만한 사연이 넘쳐나는 녀석이기도 했다.
지금 거기에 관심 둘 때도 아니고, 딱히 아쉽지도 않다!
그래서 투란은 지금 자신이 머무는 곳,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마음을 집중했다.
칼날강, 멀리 보이는 산맥의 형태, 그 산맥으로 향하는 방향 어딘가에 있을 미궁…… 타우루스와 라미아가 가득하다는 그곳까지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옥좌의 시점으로 돌아가 다시 풍경을 둘러본 투란이 마음을 정하고 ‘천칭’으로 다시 전환하려 하는데…….
“어디에 와 있다고?”
길지 않은 물음이었지만, 길게 울려오는 여운이 짙고 강렬해서 마음에 깊이 와닿는 채로 투란을 멈추게 했다. 투란으로서는 전혀 입을 열 것이란 기대도 하지 않았던, 지난번에 분명히 그러겠노라고 큰소리쳤던 몬스터 세란드가 묻는 말이었다.
어이없었지만, 호기심이 먼저 움직여 투란은 바로 금빛우리의 풍경으로 옮겨갔다. 파워 서클이 도도하게 반짝이는 풍경, 그 풍경으로 옮겨가자마자 파워 서클의 중심에서 주변을 둘러보는 자리에 ‘자기’가 머문다는 것을 깨달으며 투란은 슬쩍 위를 둘러봤다. 역시 금빛 궁전의 바닥, 마그마 로드랑 다른 무늬의 ‘뚜껑’을 지닌 아래편이었다. 보다 실체감이 또렷하게 전해오는 그 풍경을 돌아보며 투란이 의지로서 금빛우리를 향해 묻는다.
―갑자기 왜 물어?
금빛우리 속에 시커먼 장막을 두르고, 그 금빛창살 사이로 보여주는 거라고는 커다랗고 기묘한 눈동자뿐인 채로 몬스터 세란드가 물었던 것이다. 입을 열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역시 그 까닭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몬스터 로드로서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자살하려는 것인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뭐?
투란은 어처구니없었다.
어째서 저런 얘기가 나오는 것인가?
몬스터 세란드는 투란의 의문을 바로 들었다는 듯, 담담하게 대답을 더한다.
“네가 간다 하는 곳, 미궁이 아닌가? 그 산맥의 풍경, 칼날이 튀어나오는 강가에서 바라보는 곳의 어딘가에 있는 타우루스와 라미아의 둥지, 미궁이잖아?”
―어, 맞아. 그런데 왜 자살?
순순히 인정하고 짧게 다시 묻는 투란이었다.
말로서는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지는 온갖 감성을 담아 온갖 설명을 요구하는 방대한 물음을 던진 모양이었다. 돌아오는 대답이 먼저 입을 열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래도 많이 귀찮다는 듯 짜증이 가득 담긴 채였다.
“금색의 마도사도 피해 다니는 곳이었다, 거기 간다면 자살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흐음? 그래? 그래서 너도 안 가봤어? 그럼, 주변에 뭐가 있는가 잔뜩 둘러보고 알려줄까? 뭐가 있는지 모르는 곳이라니, 넓게 잔뜩 둘러보고 준비해서 미궁 안에 들어가야 할 것 같으니 말이야.
일부러 심술궂게 투란은 의지로서, 압박을 넣듯이 주절거림을 늘어놓았다.
몬스터 세란드는 동생들을 지키려는 인간 세란드의 인격에서 나쁜 것만 잔뜩 모아 뒤틀어서 빠져나온 것이나 다름없는,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비뚤어진 성격의 결정체였다. 투란이 죽거나 말거나 그 형상을 내주지 않겠다고 저런 금빛우리를 두고 자신을 단절시킨 것만 해도 알 수 있는 그 비뚤어진 녀석이 이제 와서 투란이 미궁에 몸을 던져 자살하느냐고 관심을 가질 리가 없다!
즉, 뭔가 미궁과 관련해서 투란에게 직접 말을 꺼내지 않는 어떤 것이 있는 셈이다. 그 때문에 투란이 미궁 근처에서 뭘 하려는가 궁금해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 놓고 투란이 미궁 안으로 들어간다 하니 심드렁하니 자살이 어쩌고 하며 둘러대는 소리로 어물ᄍᅠᆨ 넘기려 한다!
그게 도대체 무슨 까닭인가?
투란의 의도를 잔뜩 느끼며 알아야 하는 것이 짜증 나고 피곤하다는 듯, 몬스터 세란드가 금빛우리를 울리는 웅장한 괴성으로 대답한다.
“시꺼! 나는 이런 몰골로도 살아남으려 했다! 딱히 살고 싶지 않아도 내 본능은 한없이 삶이 집착한단 말이다! 너 죽으면 나도 죽어! 그러니 최소한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그냥 그렇게 알아두란 말이다!”
으르렁거리는 말투 속에는 절대로 무슨 사정을 감추는가 말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역력하게 실려 있었다.
투란도 보채지 않았다. 다만 묻기는 했는데…….
―미궁에 대해 아는 거 있어? 위험하다는 거 말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는가 들락이는 구멍이 몇인가, 타우루스나 라미아 말고 뭐가 있다든가…….
“알고 가는 거잖아?”
매우 거칠게 귀찮은 것을 피하는 대답이 나왔다.
조금 맥이 풀려서 투란은 투덜거리고 말았다.
―그래, 메듀시아 있다는 거 알고 간다. 쳇.
“뭐?”
몬스터 세란드가 검은 장막 속에서 보다 선명하게 눈동자를 드러내며 묻고 있었다. 투란이 지금 한 말이 진담이냐고.
투란은 슬쩍 으쓱대는 기분을 담아 대꾸한다.
―들었잖아.
“자살하러 가는 길이었군.”
이번에는 아까와 다르게 단정 짓는 말투가 역력한 몬스터 세란드의 반응이었다. 드디어 몬스터가 되면서까지 버텨오고, 이렇게 몬스터 엠블럼 속의 존재가 되어서도 자기(自己)를 유지하며 이어가려던 ‘삶’이 마침내 끝나는가 하는 체념이 꽤 짙게 담긴 채라서 투란은 바로 발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잡을 수 있어서 가는 거야! 안 죽어!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돌이 될 텐데? 돌이 되니 죽는 거는 아니라고 우기는 거냐? 아니면 메듀시아에 대해서 제대로 몰라? 눈을 피한다고 해도 그 석화의 힘을 피할 수 없다는 거, 못 들었어?”
―눈을 피해도?
“크흐흣, 메듀시아에 대해서는…… 미궁 도전기라는 책이 있다. 상아탑이나 헌터 길드 쪽에서 몬스터 정보를 묶어놓은 것이지. 글 읽을 줄 알지? 그거나 읽어보고 도전을 하든 말든 결정해라.”
―잡을 거야!
“이미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푸하핫, 투란 네가 정말로 메듀시아를 잡고 살아남을 수 있다면…… 몬스터 로드가 감히 넘보지 못하는 몬스터 하나를 소개해주지. 그리고 내가 왜 여기 온 너에게 말을 걸었는가도 숨김없이 알려주마. 푸하하핫.”
―그래, 나중에 잘 들어주마!
투란은 슬쩍 본심을 드러내며 이제까지 노골적으로 감춘 얘기가 있다고 에둘러 털어놓는 몬스터 세란드에게 으르렁거리듯 대답했다.
뭔가 내기를 걸어버린 듯하지만, 몬스터 세란드는 진심으로 투란이 메듀시아를 이길 수 없다고 확신하는 것이 느껴졌기에 반발하는 기분이 가득 치솟은 참이었다. 동시에 ‘천칭’의 풍경에 대해서 몬스터 세란드가 전혀 모른다는 것, 드라고니아가 이쪽을 엿보기 위해 투란의 의지를 기반으로 한 윌 라이트를 필요로 한다는 것 등이 새삼스럽게 투란의 마음에 새겨졌다.
어쨌든 투란은 새로운 정보를 하나 얻었으니, 이제 다시 ‘천칭’으로 옮길 때였다.
대도감이나 도감 속에 ‘미궁 도전기’에 대한 부분이 있는가를 찾아볼 필요가 있었다. 거대한 용암 호수를 이뤘던 마그마 로드조차 품은 투란이 실패할 거라 단정 짓는 까닭을 알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