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8)
투란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도와준 사람이 이제 와서 묻는 말로는 어울리지 않는 소리였다.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를 형성했다가 해제하지 못하는 이유를 도운 다음에 묻다니?
키린이 투란의 의문을 읽은 듯이 말한다.
“처음에는 감당 못할 몬스터를 욕심내서 꺼냈다가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고착된 것이 아닌가 했어. 대충 그런 경우는 몇 번 봐서 알거든. 그리고 사실 그런 경우였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보이드 엠블럼으로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상하거든. 왜 보이드를 써서 제압하지 않았냐고.”
“네?”
투란의 표정이 더욱 맹해졌다.
눈을 깜박거리면서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는 낯빛을 띠고 투란의 모습을 키린은 잠시 가만히 지켜봤다. 그리고 곧 알아차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때문에 오히려 조바심이 나 버린 투란이 다시 물었다.
“무슨 말이에요, 제압을 하다니?”
“투란, 보이드 엠블럼을 체험했다면 그 텅 빈 것을 분명히 느끼고 알 수 있잖아. 그렇지?”
키린이 가만히 한 걸음씩 내딛는 듯한 말투로 되묻고 있었다.
투란은 멈칫하다가, 정말 다시 생각하기 싫은 그 기억이 솟구치는 것을 꾹 참다가 어쩔 수 없이 대답을 꺼낸다.
“예…… 알기는 알죠.”
“그게 보이드야, 그걸 다루게 된 몬스터 로드는 삼킨 몬스터를 제압하는데 아주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 네 경우에는…… 아예 보이드 엠블럼을 전이받았다면, 그런데도 죽지 않고 살아서 몬스터를 삼킬 수 있게 되었다면, 일단 삼킨 거라면 어떤 몬스터라도 네 마음대로 다룰 수가 있어야 한다고.”
“네?”
투란은 담담하게 이어지는 키린의 설명에 더욱 애매하고 아리송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키린이 하는 말을 듣자니 마치 그 텅 빈 것, 보이드가 무슨 최상급 부적이란 듯하잖은가?
“흠,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가 전혀 감이 안 와?”
키린이 낑낑거리면서 이게 뭔 소리인가 하는 표정만을 연이어 짓는 투란의 모습에 확인하여 물었고, 투란은 항복했다는 듯이 대답했다.
“……예.”
이에 키린은 잠시 생각에 잠겨 드는데…… 투란이 불쑥 묻는다.
“보이드가…… 다룰 수 있는 건가요?”
“응. 다룰 수 있어.”
키린의 답은 간단했고, 확고했다.
너무나 분명한 대답이었기에 투란은 멍하니 입을 벙긋거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그걸 어떻게 다룬다는 것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투란에게는 정말 다시 그 상태를 겪고 싶지 않은, 그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울컥할 듯한 기분만 나게 하는 것인데! 혹시 키린은 보이드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이렇게 쉽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새삼스러운 의심마저 새록새록 투란의 눈빛에 얽혀 들 지경이었다.
키린이 투란의 가늘어지는 눈매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째서 다룰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는 알겠는데, 나도 보이드 엠블럼으로 전이받으면서 힘들게 배운 거니까 그냥은 안 가르쳐 줄 거야.”
“에? 헉!”
투란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투란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이야기였다.
키린이 몬스터 엠블럼을 보이드 엠블럼으로 시작했다니!
“어, 어째서요? 괴물 왕에게 물려받은 문장이잖아요! 그분이 왕자님을 죽이려고 했……을 리가 없잖아요!”
“비전(秘傳).”
짧고 강하게 키린은 대답했다.
과연 투란은 바로 입을 다물면서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투란의 입은 다물린 채로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근질거리고, 가득 피어나는 호기심이 기어코 그 다물린 입을 열어 버린다.
“보이드에 무슨 비전이 있어요! 그럴 리가!”
도저히 참을 수 없고, 믿기 힘든 말에 대해 바로 설명을 원하면서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태도였다.
그런 투란을 향해 키린은 싱긋 웃어 보였다.
“그냥은 안 가르쳐 준다니까. 자, 그럼…… 먼저 말해 봐. 허리에 차고 있는 가죽, 그 뱀의 왕족은 어떻게 된 거야?”
“에? 왕족요?”
“그 가죽, 뱀의 왕족이라고 하는 엄청나게 크고 사나운 마수 구렁이의 가죽이잖아. 꽤나 귀한 거고, 왕족 중에서도 굉장히 오래 묵은 놈의 것 같은데…….”
“얘가 그런 애였어요! 아니, 그런 녀석이 거기서 그렇게 죽나!”
“거기? 그렇게?”
키린은 투란의 말에 눈을 반짝였다.
마치 투란이 키린의 일에 호기심 가득한 것처럼, 키린도 투란의 일에 호기심을 가득 드러내는 듯했다. 때문에 방금 자신의 모습을 되새긴 투란은 곧 민망한 낯빛을 띠면서 엉거주춤한 말투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 그러니까…… 갑자기 툭 튀어나왔거든요. 숲이랑 늪이 막 엮인 곳이었는데…… 음, 지금 생각하니까 아마 소용돌이 늪이 토해 내는 곳이 아닐까 싶어요. 아무튼 거기서 그 큰 녀석이…… 아, 진짜 컸구나!”
벅벅, 투란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자신이 만났던 거대한 뱀에 대한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느릿하게, 더듬으면서 자신이 겪고 본 그 뱀의 최후에 대해 이야기했다.
키린은 눈동자 속에 반짝임을 끝까지 유지한 채로 차분하게 귀를 기울여 들었다.
“겨우 얻은 거예요.”
투란은 살짝 하품을 하면서, 도마뱀 갈비뼈만 엮인 꼬챙이를 내려놓으며 뱀 가죽을 쓰다듬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슬쩍 슬쩍 키린이 내미는 도마뱀 구이를 계속 먹다 보니, 뭔가 지친 느낌과 함께 졸린 듯한 투란이었다.
눈이 살짝 감길 듯 말 듯 한 투란을 향해 키린이 부드럽게 말한다.
“졸리면 좀 자 둬. 자고 일어나서 또 이야기하자.”
배시시 웃는 모습을 잠깐 보이다가 투란은 옆으로 픽 쓰러지듯이 누워 버렸다. 따듯한 불꽃이 일렁이며 흐르는 맨땅은 부드럽게 투란을 맞이했고, 노곤함과 함께 안도하는 듯한 표정으로 투란은 곧 잠이 들었다.
키린이 조용히 투란을 향해 손짓했고, 불의 파문이 흐르면서 투란을 덮었다.
키린은 가만히 투란이 불꽃의 침낭을 몸에 감은 듯이 불과 흙으로 이뤄진 큰 침대를 깔고 자는 듯한 모습을 지켜봤다.
화르르르르.
고요함이 흐르는가 싶은 시간이 조금 지나고 키린의 등 뒤에서 불꽃이 일렁이며 치솟는데, 그 불꽃의 아래에는 검게 물든 그림자처럼 일렁이는 불길이 보였다. 그 솟구친 불꽃이 흔들거리며 윤곽을 만들어 내고, 그 속을 황금색과 진홍색이 섞인 빛으로 채우며 소리까지 낸다.
“키이이이린…….”
아련한 저 먼 곳의 메아리처럼 울리는 소리가 키린을 돌아서게 했다.
키린의 눈길과 닿은 불꽃의 형상은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해져 갔다.
금색의 뿔, 붉은 광택의 비늘, 푸릇한 빛이 맴도는 이빨과 훤히 뚫린 듯한 검은 눈동자, 길게 뻗은 짐승의 입매…… 사람의 머리와는 전혀 다른, 뿔이 돋고 비늘을 갖춘 그 형상을 향해 키린이 입을 연다.
“오랜 만이네?”
말과 함께 키린은 일어섰고, 한 걸음 디뎠다.
그 순간 투란과 키린 사이에 불의 장막이 벽처럼 그어지면서, 바로 반구형으로 키린과 새로 생겨난 형상을 휘감으며 단단한 성채를 이뤄 냈다.
성채의 중심이 된 형상, 무엇인가의 머리만 둥실거리며 뜬 채로 그 아래편에 검게 물든 그림자 불꽃을 둔 것이 보다 선명한 소리를 낸다.
“키이이이리인!”
“뭘 그리 길게 끌어? 좀 깔끔하게 말해 보라고.”
키린은 차분하게, 그 형상을 향해 핀잔을 줬다.
이에 그 형상이 보다 확실하게 한마디를 한다.
“키린!”
“좋아! 오늘은 똑바로 말할 수 있는 날이군! 오랜만이야, 드라코눔의 아칸!”
손뼉이라도 쳐 줄 듯한 말투로, 손뼉을 치지 않는 채로 키린이 칭찬하는 것처럼 말했다. 이에 이형(異形)의 머리가 그 검게 뚫린 눈동자를 부라리는 듯이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길고 큰 입을 움직여 ‘말한다’.
“키린, 저 애는 죽여야 한다!”
키린은 깜짝 놀랐고, 바로 눈을 크게 뜨면서 어처구니없어했다.
전혀 납득하지 못할 일을 꺼내는 ‘드라코눔의 아칸’에게 어이없다는 듯도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불꽃으로 이뤄진 머리가 길쭉한 짐승의 입 사이로 푸릇한 빛이 어린 이빨을 보이며 또 ‘말한다’.
“아다만티르의 암벽을 넘은 아이다! 저 애를 세상에 나가도록 둬서는 안 돼! 심지어 그린스포어의 늪과 숲, 그 뱀의 왕족조차도 견뎌 내지 못한 곳에서 살아 나왔다! 절대로 저 애를 세상에 내보내서는 안 된다! 키린, 저 애를 죽여!”
“헐!”
키린의 얼굴이 한층 더 굳어졌고, 절대로 납득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팽팽하게 자리 잡았다. 뭔가 그 정도로는 설득당할 수 없다는 듯한 키린의 낌새는 ‘드라코눔의 아칸’이라 불린 머리 형상을 자극한 듯, 더 많은 말을 하게 했다.
“아다만티르의 암벽 너머는 너희 인간 마도사들이 혼돈의 문이라 하는 것, 우리 드라코눔의 현자들이 혼돈의 성궤(聖櫃)라 하는 것의 영역이다! 거기는 생명을 가진 자가 살아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아무리 인간 중에서는 특별하고, 이 세계의 모든 존재 중에서 특이하다고 하는 몬스터 로드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살아 나올 수는 없다! 거기서 나왔다는 것은, 저 아다만티르의 암벽을 넘었다는 것은…… 저 애가 이미 섭리의 존재가 아니란 의미다! 그러니 죽여야 한다!”
“음…….”
키린은 잠깐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손가락 끝으로 긁적였다.
뭔가 납득이 갈 듯 말 듯 하다는 그 태도는 뿔 달린 머리 형상을 자극했고, 더욱 뜨겁고 강한 말을 토해 내게 했다.
“저 애가 악마의 심장을 지닌 채로 거기 빠졌다고 했던 말을 기억해 봐! 혼돈의 성궤 영역 안에서 악마의 심장은 어쩌면 그 본질을 각성했을지도 모르고, 저 애는 그 힘에 이끌려 거기서 벗어났을 수도 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나? 키린, 고대 왕국의 왕족으로서 배우며 자란 너라면 알고 있잖은가! 그 끔찍한 데몬 워(Demon War)의 참상에 대해서!”
“음, 심장의 본질이라…… 데몬 워라니, 가물가물한데.”
키린이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면서, 한 팔은 팔짱을 끼려는 듯한 모습으로 다시 애매한 소리를 냈다. 들어 본 듯한데 기억이 잘 안 난다는 태도였다. 이는 다시 한 번 열변을 불러낸다.
“뭐가 가물가물해! 고대 마법사들이 저 혼돈의 성궤, 너희가 문이라 부르는 것을 닫아걸겠다고 불러냈던 이계의 데몬, 그 악마종자들이 이 세계를 정복하겠다고 일으킨 전쟁이잖아! 저 심장이란 것은 그때 그 악마의 유체(遺體)이고, 진정한 본질은 악마의 육신을 재생시키기 위한 섀도 하트! 악마가 자신의 그림자에 담아 둔 재생 능력의 결정체잖아! 악마가 격렬해진 전쟁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파멸에 이르렀다 해도, 자신의 그림자에 심어 둔 저 그림자 심장을 통해 완벽하게 부활하고는 했다. 저 애가 그 힘을 통해 완전히 악마, 이계의 데몬으로 변할 수도 있단 말이다!”
“그거…… 무지하게 무서운 이야기야?”
키린이 불쑥 묻는 말은 뭔가 뚱한 느낌이 가득했고,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는 말투였다. 한편으로는 ‘섀도 하트? 뭐냐, 그건!’이란 작은 중얼거림도 슬쩍 섞이기도 한 물음이었다.
뿔이 바르르 떨리는 듯했고, 머리를 그려 내는 불꽃이 화난다는 듯이 일렁거렸다. 그럼에도 짐승의 입이 이빨을 가는 듯한 표정과 함께 나오는 말은 왠지 차분하고 또박또박한 분위기가 잔뜩 담겨 있었다.
“무서운 이야기냐고? 장난하지 마라, 키린! 고대 왕국과 우리 드라코눔의 결속이 왜 존재하는가! 데몬 워를 거치면서 우리는 이 세계의 존재로서, 함께 이계의 침략자와 맞서기 위해서 힘을 합쳤다! 또다시 그 씨앗이 세상에 흘러 나가게 둬서는 안 된단 말이야!”
“흐흠…… 아, 그거 사명감이 넘치는 사연인데!”
삐죽거리는 입술로 키린은 조금 서늘한 눈빛을 한 채로, 심드렁한 말투를 통해 대꾸하고 있었다. 이 모습은 ‘드라코눔의 아칸’이 하는 말을 뭔가 근본적으로 의심하는 것 같기도 했다.
“거짓 없이 하는 말이다! 넌…… 내가 하는 이 말이 진실인 것을 알잖나! 너야말로 나를 삼킨 몬스터 로드니까! 내가 지금 한 조각의 거짓 없이, 너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 대체 왜!”
억울하고 분한 듯, 뿔 달린 형상이 파르르 떠는 분위기로 하소연까지 토해 냈다.
그러자 키린도 바로 눈꼬리를 확 치켜 올리면서 으르렁거리는 듯한 사나운 소리를 토한다.
“야, 인마! 이 못된 드라고니아야!”
“크르륵! 그렇게 말 부르지 마! 난 드라코눔의 아칸……!”
거세게 목젖 울리는 소리를 내며 따지려 하는 말은 바로 터져 나오는 키린의 목소리에 묻혀 버린다.
“너 지금 쏟아 낸 말이 나한테 5년 동안 했던 것보다 몇십…… 아니, 거의 백 배는 많은 소리란 거, 그것부터 짚고 넘어가야지! 이 못된 놈 같으니라고! 여태 제대로 대화 한마디 할 생각 없이 끄앙, 크앙, 키엑…… 이 따위 소리만 질러 대다가 오늘 겨우 꺼낸 소리가 뭐? 힘들게 저 안에서 살아 나온 애를 죽이자고!”
기세 좋게 열변을 토하던 머리 형상의 불꽃이 잔뜩 움츠러들면서 우물쭈물하는 태도가 되고 말았다.
“그, 그건…….”
“앙? 이미 또박또박 씹어뱉어 놓고 또 말꼬리를 흐려? 똑바로 말 안 해!”
키린이 보다 사납게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과거 에테온 왕국에서 ‘드라고니아의 광분’을 일으켰던 자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