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8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78)
―투란? 몬스터 카탈리스트를 복용한 드레이크 새끼는 그냥 녹아내리잖아? 돌봐주는 어미도 없는 상황에서 그런 걸 꿀꺽 삼키는 짓을 꼭 해야겠냐?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몸짓을 놓치지 않고 짚어 말하고 있었다.
‘알아, 준비하고 있잖아.’
투란의 대답은 간단했다.
드라고니아는 곧 투란의 그 준비를 알아차렸기에 가만히 침묵했다.
그 준비는 투란이 가볍게 손에 든 돌조각을 손 위로 띄운 순간에 시작되었다.
처음은 투란의 허리춤과 다리, 발가락 사이에서 불끈거리며 넝쿨줄기가 돋아 주변으로 번지며 뿌리처럼 시커먼 바위를 파고들며 낮게 울타리를 형성했다.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앉은 탓에 울타리는 거의 배꼽 높이까지 금세 올라왔다. 약간의 높이를 갖춘 울타리는 곧 투란을 중심으로 일 미터 정도 간격을 두며 펼쳐진 원형을 만들어냈다. 울타리를 이룬 줄기 틈새에서 시커먼 잉크가 떨어져 시커먼 바위를 윤택하게 적셨고, 그 속에서 이글거리는 붉은 채광이 금을 긋듯 길게 점멸(點滅)했다.
도판을 앞쪽으로 던지며, 울타리가 넝쿨줄기를 두 손처럼 펼쳐 받아들게 하며 투란은 드레이크의 기억을 더듬었다. 새끼 드레이크의 경우에는 온몸이 처절하게 뭉개지는 듯한 험악한 몰골이 되지만, 다 자란 드레이크가 이 시커먼 바위를 삼켰을 때는 그런 극단적인 변화를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몬스터 카탈리스트의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새끼처럼 온몸이 녹아든 듯한 금색의 체액을 배설하듯 방출하는 대신에 금빛 안개 덩어리를 꼬리 아래로 방출하고, 이를 바람과 파동으로 다시 온몸으로 회수한다…… 겉보기로만 판단하면 새끼는 똥 싸고 어미는 방귀 뀐다는 정도는 차이가 있는 정도겠지만, 현실적으로 드레이크의 성년기(成年期)와 유아기(幼兒期)의 신체가 드러내는 격차는 막대한 셈이었다. 게다가…….
‘커서도 다치면 와서 한 뭉텅이씩 뜯어먹고는 했었지.’
성장한 드레이크로서 홀로 나돌 때에도 몸에 이상이 생긴다거나 어딘가 상처가 생겼다는 느낌이 들면 와서 먹는 것이 이 시커먼 바위였다. 그러면 몸 안의 삐끗거린 곳이 싹 사라지니까. 기억을 더듬어 판단하자면, 이 시커먼 바위는 드레이크의 불길을 머금고 그 체내의 불순한 요소를 깨끗하게 배출시켜서 순수한 형태로 가다듬어 다시 몸에 흡수하도록 도와주는 셈이었다.
여러모로 투란에게는 이 바위가 몬스터 로드로서 드레이크의 형상을 이뤘을 때 끼치는 영향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자, 그러면…… 읽으면서 먹는다!”
―한쪽만 하지?
투란의 낮은 외침에 드라고니아가 못 참겠다는 듯이 덧붙였다.
하지만 이미 투란은 울타리 안에서 드레이크의 형상을 이루며, 눈길은 도감에 주는 채로 시커먼 돌조각을 입안에 넣고 우득거리고 있었다. 더 말리는 소리를 하면 집중력만 깨질 터이기에 드라고니아는 다시 침묵했다.
투란은 울타리에 돋은 눈으로 자신을 관찰했고, 온몸에서 전해오는 감각은 드레이크의 기억과 비교했다. 과연 몬스터 로드가 형성한 드레이크, 새끼 드레이크의 정수를 삼키고 어미 드레이크의 기억을 간직한 이 몸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결과는 기다릴 필요도 없이 금방 나왔다.
‘역시 새끼 쪽이네.’
포톤 거스트를 다 자란 것처럼 장대하게 뿜어낼 수 있었고, 응용해서 포톤 가드조차 형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드레이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몬스터 로드였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순수한 그 정수로서 형성된 몸은 새끼 드레이크의 수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그 증거를 보이겠다는 듯이 시커먼 조각은 배 속에 담기자마자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며 용해되었고, 곧바로 온몸을 녹이며 금색의 체액을 배출시키는 생리현상이 바로 터져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드러난 것은 기억 속의 새끼처럼 망가진 몰골의 투란…….
격렬한 몸의 반응을 멀찍이 구경하는 것처럼 감상하며 투란은 너덜거리는 두 날개 끝을 하늘 높이 치켜올리고 드레이크의 생체파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어미가 없는 대신, 울타리에 금빛이 맴돌며 드레이크의 체조직이 형성되었고, 가느다란 날개의 파동에 호응해서 보다 강렬한 파문을 일으켰다.
질펀하게 울타리 안을 채우던 금색의 체액이 방울방울 솟구치며 날개의 떨림이 일으키는 바람을 타듯이 소용돌이의 궤적을 그리는 채로 투란의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작고 미세한 살점 조각으로 스며들고, 금이 간 듯한 뼈를 물들이고, 너덜거리는 거죽을 타고 번지며 그물을 짜고 새로운 살집을 부풀리는 금색의 방울은 빛을 머금으며 더욱 찬란해져 갔다.
그렇게 재구성되는 몸을 관조(觀照)하며 투란은 통찰(通察)할 수 있었다.
‘강금룡처럼 맞물리지 않아…… 엷게 계속해서 바른다고 해야 하나? 한 꺼풀 두 꺼풀 계속 쌓인다고 하는 쪽이 맞으려나?’
말로 하기 어렵지만, 투란의 감각은 계속해서 알려오고 있었다.
빛과 바람이 마음껏 스쳐가며 머물고 채울 수 있는 틈새, 그런 구조로 몸이 형성되고 있었다. 시커먼 돌조각을 삼키기 이전보다 더 여유롭고, 더 자유로운 틈새는 단단히 밀착하면 뼈와 힘줄, 핏줄, 가죽의 밀도가 더욱 치솟으며 강인(强靭)해지는 듯도 했다. 성장 혹은 강화로 봐야 하는 미묘한 변이인 셈이었다.
하지만 강금룡의 유골을 통해 투란이 획득한 정보와 비교하면, 이 몸의 강인함은 강철이나 암석과는 그 성격이 바탕부터 다른 것이었다. 부딪혀서 약한 상대를 으깨버리는 강체(剛體)가 아니라, 유연하게 압박을 넣고 쌓아 올린 힘으로 밀어내는 것…… 쉴 새 없이 스쳐가는 바람이나 빛의 강력한 끈기였다.
‘이거 꼭 온몸으로 숨 쉬는 것 같네?’
갸웃하는 기분으로 투란은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내려다봤다.
힘을 주는 순간에 살집이 채워져 가는 손톱을 타고 광채가 흘렀고, 손톱 끝에서 빛의 환영이 맺혔다.
―샤이닝 에지?
드라고니아가 흠칫해서 외쳤다.
그 소리에 투란도 움찔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몸의 변이는 지속되는 중이었지만, 두 손끝에 맺힌 빛의 칼날 같은 손톱은 꼼지락거리는 손짓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게 이렇게 되는 거였네.’
쓴웃음처럼 투란이 소리 없이 툴툴거렸고, 드라고니아도 동의했다.
―포톤 거스트를 굳이 뿜어내지 않아도 되는 거였군. 아니, 몬스터 로드라서 그런 것인가?
‘아닐걸. 그냥…… 그냥 몸 안에서 빛과 바람을 끌어당기는 걸로 충분해. 근데 드레이크는 그런 거 거의 신경 안 쓰니까. 포톤 거스트 좌악 뿜어내고 그 위로 발톱 확 그으면 되는 거니까, 따로 발톱 끝에 힘줘서…… 직접 힘줘서 이런 빛의 발톱을 만들 궁리는 안 하지. 어쨌든…… 포톤 거스트 농도를 조절해서 할 필요가 없다는 거는 확실해졌네. 되게 힘들었는데…….’
아쉬운 기분이 투란의 마음속에서 살살 피어올랐다.
드레이크를, 완전히 성장한 녀석을 삼켰을 때에 조금 더 조심스러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단지 사람의 머리로 짧게 생각했음에도 그 파괴력이 격변했던 포톤 거스트를 뿜어낼 수 있었잖은가. 만약 성장한 드레이크를 품고 다룰 수 있었더라면 새끼의 여린 호흡에 기대는 포톤 거스트를 갖고 빛의 장막을 꾸미거나 빛의 발톱을 만들려고 낑낑거린 짓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을 터였는데!
―미련 두지 마라. 거기서 다 죽은 듯했던 녀석이 정신공명을 시도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보다, 저건 지금 뭘 하는 중인 거냐? 눈알 굴리고 넝쿨 손가락을 계속 도감 페이지에 끼워넣고 있잖아? 왜 그러는 거야?
드라고니아의 엄격한 다독임, 뒤이은 물음은 투란에게 멋쩍은 쓴웃음을 짓게 했다.
그때는 말리고 으르렁거리더니 이제는 말을 돌려서 잊게 하려 해주다니, 함께해온 시간이 길다 보니 제법 친해진 느낌이잖은가?
그래서 투란도 도감에 하는 짓에 대해 소리는 내지 않아도 상냥하게 이야기한다.
‘읽으면서 다시 보고 생각할 곳을 짚어 두는 거야. 손가락으로 짚지 않고 줄기로 짚어 두는 거지. 얇은 실로 글자 위를 표시하는 거랑 마찬가지로 말이야.’
―얇은 실?
‘응, 책에 중요한 대목이 있으면 거기에 얇은 실을 붙여서 표시하잖아? 아니냐?’
―보통 밑줄은 펜으로 긋는다만……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에? 펜으로 그어? 그럼 안 지워지잖아? 실은 나중에 살살 떼어내면 된다고. 떼어내면 새 책처럼 되지만, 잉크칠 하면 낡은 책 되잖아?’
―뭔 말인지 알겠다. 아무튼, 뭔데 자꾸 지도랑 오락가락하면서 저리 많이 표시를 하는 거야? 지금 두꺼워진 부분은 미궁과 관련된 것이 아닌 모양인데? 입술까지 만들어서 도감에 붙여서 뭐라 한 거냐?
왠지 어릴 적에 본 사제의 책관리법이 이상했던가 갸웃하면서도 투란은 자신의 몸을 살피며, 도감을 어찌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읽다가 좀 더 알고 싶은 부분에 대해서 계속 찾아두라고 하는 거지. 이를테면…… 드라고웜이라든가…….’
드라고니아가 미묘하게 침묵했다.
그 사이에 투란은 몸이 다시 온전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붉은 늑대’가 사람의 형상을 기반으로 늑대의 형질(形質)을 덮어씌운 것처럼, 투란은 사람의 몸을 바탕으로 드레이크의 형질을 덧씌웠고 그 결과는 꽤 그럴듯했다. 몬스터 카탈리스트에도 적합하게 반응해서 새롭게 획득한 몸의 특성은 전보다 더 가볍고 집중력이 높았다. 바람과 빛이 더욱 큰 용량으로 몸에 따른다는 느낌이 강해졌을 뿐 아니라, ‘샤이닝 엣지’ 또한 더 쉽고 분명해져 있었다.
다 자란 루미널 골든 드레이크가 포톤 거스트를 잔뜩 뿜어내서 몸 주변에 배치하고 생체파동을 일으켜 몸에 두른다는 ‘샤이닝 엣지’인데, 체내에서 빛과 바람을 직접 다스리는 사고능력, 상상력을 갖춘 채로 몸의 기능이 받쳐주니 그냥도 손끝 발끝, 날개 끝에 빛이 어리면서 형성되고 있었다. 소모되는 체력, 사용되는 생체파동의 크기 또한 아주 적은 채로!
이를 관찰하며 잠시 틈을 둔 다음, 투란이 드라고니아에게 묻는다.
‘드라고웜이 뭐야?’
―도감에 뭐라 나왔지?
한숨처럼 드라고니아가 되물었다.
투란은 간단히 읽은 내용을 들려준다.
‘암석군, 그쪽이 원래 드라고의 활동영역이었는데 거기서 드라고웜의 자취가 드러나면서 이쪽으로 피해온 것 같다는 얘기. 드라고웜이 드라고랑 다른 거지? 그런데 그게 뭐야?’
―드라고웜에 대해서는 찾아보지 않았나?
‘아직…… 먼저 너한테 좀 들어보려고.’
우득, 우득. 몸을 뒤틀고 기지개를 켜는 채로 정돈하면서 투란이 대답했다.
드레이크의 형상이 서서히 수그러들면서 거둬지고 있는 상태에서 드라고니아의 대답이 차분하게 투란의 뇌리에 울린다.
―기생자(寄生者). 기본적으로는 그렇게 부르는 경우가 많다만, 그 기원을 알고 붙은 공식 명칭은 분명히 드라고웜이다. 이름에서 바로 짐작할 수 있었겠지만, 그 또한 고대에 전락한 드라고니아의 일족이다. 드라고와 다르게, 몸조차 압축시켜 웜…… 거의 지렁이에 가깝게 변질돼버렸고, 이 세계의 존재에 들러붙어 기생하는 자가 돼버렸지. 스킨리퍼를 기억하지, 투란?
‘음? 스킨리퍼? 아, 라비엔에서 봤던…….’
―드라고웜의 기생은 그거랑 비슷해. 단지 숙주를 죽이지 않고, 그냥 숙주의 모든 것을 차지할 뿐이야. 숙주가 지성(知性)을 갖췄다면 드라고웜도 지성을 갖추게 되고, 숙주가 사고능력이 없는 짐승이라면 드라고웜도 짐승이 된다. 일단 드라고웜이 기생하는 숙주는 빠르게 그 생명력을 소진하고, 드라고웜은 새 숙주를 찾아 옮겨가지. 보통은 새 숙주를 사냥해서 헌 숙주를 버리고 바로 옮겨간다만…… 버려진 숙주는 금방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그렇다는 것은…… 드라고가 꽤 센데 굳이 드라고웜이 들러붙은 녀석을 피할 필요가 있었다는 거니까, 대체 뭐에 들러붙어서 설쳤길래 드라고가 피신한 거지?’
새로운 의문에 투란이 갸웃했다.
씁쓸한 기척을 담은 드라고니아의 대답이 바로 나온다.
―숙주가 뭐냐는 중요하지 않아, 투란. 드라고웜은 자신이 깃든 숙주에게 아다만틴 본을 부여하니까.
‘아다만……?’
멈칫하며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에 집중했다.
드라고니아가 그 신중함에 보답하듯 말을 더한다.
―아다만투스에 준하는 강도(剛度)를 지닌 뼈야. 그걸 외골격(外骨格) 형태로 부여할 수가 있는 몬스터가 바로 드라고웜이다. 숙주의 생명력을 쥐어짜 낸 결과물이라서 수명을 단축시키기는 하지만, 일단 기생이 시작되고 자리 잡으면 힘으로 줘 패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지. 그러니 드라고가 피한 거야. 우리 관점에서는 미친 녀석이기는 하지만, 몬스터로서 최소한 짐승의 자기보호 본능 정도는 남아 있으니 말이야. 이길 수가 없고, 이겨도 다음 숙주가 될 뿐이니까 피하는 것이 정답이기도 했을걸. 서로 맞닥뜨려 패기 시작하면, 한쪽은 뼈에 긁히고 찢기지만 한쪽은 뼈를 갑주처럼 두른 채로 멀쩡한 척하니까 말이야.
‘아다만투스에 준하는 강도를 지닌 뼈다귀를 살갗에 둘렀다면, 피하는 게 맞네. 드라고도 생각보다 덜 미친 거 맞는 것 같은데?’
투란도 드라고니아에게 살그머니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드라고니아가 다시 말한다.
―가다가 우연히 마주치면 몰라도, 되도록 피해가자고 권하고 싶다만?
‘어? 아, 드라고…… 찾아다닐 생각은 없어. 미궁에 도달하는 것이 먼저이고, 미궁에 대한 확실한 준비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투란은 스테노아의 낮은 울음소리를 되새기며 확고하게 답했다.
촤아악, 울타리가 뿌리를 들고 다시 투란의 몸으로 회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