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8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79)
‘이거 꽤 오랜만이네?’
검게 치솟은 바위를 등지고 걸어나가며 투란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새는 웃음을 입가에 매달면서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둘러봤다.
―오랜만?
드라고니아가 언제 여기 와봤는가 의아하다는 듯이 짧게 물었다.
투란은 자신의 발부터 내려다봤다.
엄지가 둘씩 튀어나온 듯한 맨발, 회색의 살갗이 바위처럼 두툼하게 부푼 발을 감싼 모양이었다. 제대로 그랑츄의 크기가 된 것은 아니지만 검은 가죽 반바지 아래로 부풀어 나온 듯한 발의 형태는 사람의 것이라 여길 수는 없었다.
문득 어깨부터 팔을 문질러 내리면서 투란은 키득거리고 웃었다.
“이렇게 벌거숭이 몰골로 혼자라니, 정말 오랜만이야.”
―새삼스럽기는…….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툴툴거렸다.
돈 들어간 장비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망가뜨리기 싫다고, 마법으로 무장하는 것도 몬스터가 와글거리는 곳에서는 귀찮은 짓이 된다고 결론 내리고 순수한 몬스터 로드로서 미궁을 향해 나선 투란이었다. 이미 데몬스 그라토에서 날갯짓을 시작한 순간부터 오랜만에 ‘천칭’의 힘을 제대로 사용했다 할 수 있었다. ‘악마의 심장’을 늘 형성하고 있는 것은 이제 딱히 힘을 쓴 것도 아니라 느낄 정도였으니…….
“정말로, 이렇게 그랑츄 발로 멀쩡한 땅 디딘 적은 있었나? 흠, 아무튼 이 느낌도 꽤 오랜만이야!”
혼잣말을 소리 내서 흘리는 채로 투란은 앞을 바라봤다.
강가에서 벗어나고, 바위 언저리에서도 멀어지면서 지형(地形)이 완만하게 낮아지며 황무지의 풍경을 보다 노골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덤불과 암석, 작게 뭉치거나 흩어진 채로 흘려진 듯한 풍경 멀리로 컹컹거리며 뛰는 짐승 무리의 울부짖음, 사냥당하는 녀석과 사냥하는 녀석 사이의 긴장감이 가득한 광경은 그 상공에서 내려와 덮치는 새로운 포식자에 의해 파탄 나는데…… 애초에 사냥하던 녀석들은 자신들 또한 포식자란 것을 강경하게 주장하듯, 원래 사냥감에 하나 더 늘었다는 듯이 덤벼들고 있었다.
‘헤에, 히엔나 주제에…… 근데 저 대가리 없는 새는 뭐야? 목이 이빨 가득한 채네? 저렇게 생긴 새에 대해서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수 킬로미터 너머의 풍경을 코앞처럼 들여다보면서 투란은 갸웃했다.
―몬스터 벌쳐잖아? 시체 먹는 독수리가 머리를 잃고 변이해서 몬스터가 된 녀석, 이 황무지에서는 나름대로 흔한 몬스터일 텐데?
‘여기 처음 와본다고!’
―드레이크의 기억을 한참 자랑하더니, 왜 몰라?
‘저런 쪼그만 녀석들이 툭탁대는 거는 별 관심 없어서 기억도 없어. 저런 것보다는 살집이 큰 녀석들이 먹기 좋으니까 그쪽으로는 기억나는 게 좀 있지만.’
투덜거리는 투란의 말에 드라고니아는 쓴웃음을 짓는 낌새를 보이면서 말을 멈췄다. 분명히 다 자란 드레이크의 입장에서 보자면 히엔나는 악취로 적을 쫓는다는 소문이 날 지경이니 그리 맛좋은 먹잇감이 아니었을 테고, 몬스터 벌쳐는 애초에 몸이 반쯤 썩은 녀석이라서 시체 즐겨 먹는 경우가 아니면 아예 쳐다볼 일도 없을 터였다. 삼십여 미터의 몸길이를 과시하는 드레이크에게 저런 광경은 확실히 흘깃하고 넘기고서 홀랑 잊을 일이었다.
하지만 2미터도 되지 않는 인간의 관점에서 보자면, 수십 마리의 히엔나 무리…… 두 발로 뛰는 놈, 네 발로 뛰는 놈이 섞인 큰 개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 사나운 무리와 펼친 두 날개의 끝에서 끝에 이르는 폭이 6, 7미터에 가깝고 이빨 붙은 채로 열린 목구멍으로 사람 한둘은 묶어서 삼킬 지경으로 보이는 몬스터 벌쳐는 웬만하면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상대일 터였다. 하물며 둘이 엉겨서 누가 누굴 잡아먹나 다투는 광경이라면 수 킬로미터 밖에서 보자마자 멀리 돌아갈 궁리부터 하는 것이 옳다 할 수 있었다.
―어쩔 거냐?
투란은 드레이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냥 2미터도 안 되는 평범한 인간도 아니기에 드라고니아는 잠시 후에 묻고 있었다. 길 잡은 방향으로 보자면 저 난장판을 그대로 가로질러 가야 하니까.
‘응? 뭘 어째? 그냥 가야지.’
똑바로 걸어나가며 투란은 심드렁하니 대답했다.
미궁으로 당장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빙 돌아서 멀리 갈 생각도 없었다. 가는 동안에 확인하고 다듬어야 할 것은 도감을 통해 얻은 정보, 미궁의 주변과 그 안에 대한 이야기였다. 미궁 안에 발을 딛기 전에 마음속에 그 이야기를 다듬어둬야 예상한 상황에 대처할 터이고, 예상 못 한 경우에 대한 대처도 미리 해둘 필요가 있으니까.
그리고 잠시 후, 투란이 코를 찡긋하며 멈췄다.
‘이게 뭔 냄새지? 풀똥?’
―배설물 속에 잡초가 가득해서 생긴 냄새 같군.
‘썩은 고기 냄새도 섞여 있잖아?’
―잡식성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건 그냥 잡식성이 남길 배설물이 아닌데?
드라고니아가 냄새의 원천을 찾아내 알려주는 채로 말했다.
투란은 덤불과 흙덩이 사이에 먼지로 덮인 것을 봤고, 낯을 구겼다.
개의 머리뼈처럼 보이는 것이 회색 덩어리와 마른 풀잎뭉치랑 엉킨 채였다. 바람결에 티끌을 잔뜩 뒤집어썼던 것이 뭔가에 밟히면서 속이 터져 짙은 색채를 드러낸 모양이었다. 그 덕분에 냄새도 조금 짙게 바람결 따라 흐르다가 투란에게 걸린 듯했는데…….
‘말? 아니, 소라고 해야 하나?’
배설물을 짓밟은 흔적이 무엇의 발자국인가 투란은 잠시 생각해봐야 했다.
주변에 아직 희미한 흔적으로 봐서는 네발짐승이 지나갔다기보다는 소나 말의 발자국을 남기는 뭔가가 두 발로 지나간 모양이었다.
―타우루스겠지. 미궁에 가까울수록 많아진다고 했잖아. 아직 거리가 좀 있기는 하지만 여기까지 온 놈도 있는 거겠지.
드라고니아가 상식적인 상황을 고려해보자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투란도 딱히 거슬리는 부분이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구겨진 낯은 펼 수가 없었다.
‘이거 지나간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것도 저 녀석들 난리 치는 곳을 곧장 지나간 모양인데…… 저러기 전에 지나간 건가? 아니, 지나간 다음에 안심하고 저 난리 치는 거려나?’
―서로 엇갈렸을 수도 있고, 서로 무관심할 수도 있지. 왜?
‘히엔나…… 자기가 사냥하는 것보다는 딴 녀석이 사냥하고 남긴 거 먹는 취향이잖아. 벌쳐도…… 몬스터라서 다를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시체 먹는 독수리인 벌쳐라면 히엔나랑 비슷하다고.’
―몬스터 벌쳐는 날것을 좋아해. 뱀처럼 산 채로 삼키는 걸 선호하는 편이야. 하지만…… 먹이의 절반은 남겨진 시체로 채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했다. 그러면, 뭘 의심하는지 모르겠다만 아마 네 의심한 일이 맞을걸.
‘의심이라기보다는…… 처음 히엔나 떼가 저기 언덕 아래에서 튀어올랐을 때, 자기네가 사냥하던 것이 아니라 지나가던 뭔가가 치고 간 쉬운 사냥감을 노린 게 아닐까 하는 거야. 몬스터 벌쳐도 그걸 노리……지는 않았으려나? 저놈, 히엔나도 막 삼키고 있는 꼴 보니 배가 엄청 고팠던 모양이네.’
이리저리 생각하며 다시 몬스터 벌쳐와 히엔나의 난투 쪽을 보다가 투란은 처음 생각을 고쳐야 했다.
길고 넓은 날개에 들러붙은 히엔나 몇 마리가 그대로 자신을 뜯어먹으려 하는 광경 속에서, 몬스터 벌쳐는 이빨 달린 채로 훤히 드러난 목구멍―입을 활짝 열고 히엔나를 물어 삼키고 있었다. 그야말로 누가 누굴 먼저 먹나 해보자는 듯한 피투성이 난투인 셈이었다.
투란은 냄새를 풍긴 배설물을 다시 흘깃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바람결에 갑작스럽게 짙어진 냄새에 조금 멈칫했지만 별 흔적이 없으니 다시 갈 길을 가는 셈이었다.
배설물 속에서 뭔가가 꾸물거리며 움직이는 낌새가 있기는 했지만, 투란에게는 그게 남겨진 것을 먹는 청소부 벌레란 것이 훤히 보였기에 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렇게 반쯤 무심하고, 반쯤 흥미를 지닌 채로 난투를 향해 다가가는 사이에 싸우던 놈들은 그럭저럭 상황을 정리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히엔나 떼가 몬스터 벌쳐에게서 거리를 두고 멀어지고 있었다.
힘에 부쳐 물러나는 광경은 아니었다.
뒤늦게 새로 나타난 몬스터 벌쳐들이 상공에서 툭툭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래에서 동족이 히엔나를 먹는 광경을 보고, 멀리 있다가 뒤늦게 나눠 먹자고 내려오는 듯한 광경이었다. 아무리 한 마리라면 한 무리로 상대할 수 있다 각오한 히엔나 떼라도 몬스터 벌쳐가 떼를 이루면 이길 수 없는 것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물러나는 듯이 보였다.
투란은 그런 광경을 향해 나아가면서 드라고니아에게 묻는다.
‘드라고웜, 얼마나 작아? 새끼손가락만 해? 빠르기는 한가?’
드라고니아는 이 물음에 잠시 씁쓸한 기분을 드러내다가 가만히 대답을 한다.
―배설물 속에 들어가는 버릇은 없다. 거기서 다른 벌레랑 섞여 있다가 튀어나올 일은 없어. 작지도 않아. 손가락 셋을 겹쳐놓은 정도의 굵기인 데다가, 웬만해서는 삼십 센티 가까운 굵직한 밧줄 토막처럼 생겼지. 하지만 머리부분은 명백하게 드래곤 헤드를 갖췄다. 뿔과 척추가 일체인 데다가, 척추에서 돋아난 가시가 몸의 중심을 표시하면서 꼬리까지 돌출되어 있어. 그래, 그것도 아다만틴 본이지. 숙주 없이 기어다닌다고 가볍게 덤볐다는 그대로 임시 숙주가 되는 거야.
‘그러면, 일단 이 근처에서 볼일은 없다 치고. 프로브 정찰은 얼마나 했어? 저 벌쳐랑 히엔나 말고는 계속 아무것도 없는 맨땅이야?’
―그렇다고 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이 근처를 맴도는 타우루스가 보통 놈이 아닌 모양이다.
‘응? 왜?’
―앞으로 12킬로 더 가면…… 지금은 주변 언덕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것이 확실히 드러날 거야. 일단 네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편이 좋겠어.
드라고니아가 조금 애매하게 말하자마자 투란은 발에 힘을 줬다.
무릎이 굵어졌고, 발목이 넓어진 채로 투란은 달리기 시작했다.
이는 바로 몬스터 벌쳐와 히엔나, 두 무리에게 영향을 줬다.
쿵쾅거리는 사나운 소리를 울리는 채로 투란이 다가서는 것을 몇 킬로미터 거리를 둔 채로도 바로 알아차린 듯, 두 무리가 갈라서며 피하고 있었다.
히엔나 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투란과 먼 방향으로, 투란이 향하지 않는 쪽으로 내달렸고 몬스터 벌쳐는 둔한 날갯짓과 억센 움직임으로 파닥거리며 날려 하고 있었다. 달리며 그 광경을 본 투란은 문득 어이없어 물어야 했다.
‘쟤네, 분명히 날아서 내려왔잖아? 왜 다시 못 날고 자꾸 처박힌데?’
―날기 시작하면 제법 날기는 한다만, 원래 날아오르는 것이 아주 서툴고 둔한 녀석들 맞다. 그래서 내려앉았을 때 공격당하면 열심히 싸우지. 싸울 수가 없는 상대다 싶으면 뛰어서 달아나고.
‘과연 샤오 마을 근처였다면 며칠 못가서 몰살될 놈들이었구만. 그러니 내가 들은 적이 없지!’
투란은 멋대로 결론을 내리면서 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몇 킬로미터는 몇 분 만에 사라졌고, 몬스터 벌쳐 떼는 그럭저럭 투란이 내달리는 궤도에서 비켜난 채로 허우적거렸다. 그럭저럭 수십 미터의 간격을 둔 녀석들을 흘깃하며 지나치는 채로 투란은 히죽 웃었고…….
―그런데 너, 왜 이렇게 느릿느릿 달리는 거냐? 저 녀석들 겁먹는 거 구경하는 게 재밌는 거냐?
드라고니아는 갸웃해서 묻고 있었다.
굳이 몬스터의 형상을 하지 않고 기교만 발휘해도 몇 배나 빨리 달릴 수 있으면서 투란은 빠르지도 않은 느린 몬스터의 두 다리, 그냥 튼튼하기만 한 다리의 형상을 꾸민 채로 이 구경 저 구경 다 하는 채로 달리고 있었기에 묻는 말이었다.
‘구경? 관찰이잖아, 관찰!’
―볼 거는 아직 한참 멀었다만?
‘아니, 쟤네들! 벌쳐의 이름을 지닌 녀석들이 진짜 벌쳐랑 얼마나 다른가 봐둬야지. 다리 굵기 보라고, 사람 몸통만 하잖아. 저 발톱이면 어지간히 덩치 좋은 아저씨라도 몸통이 뚫릴 정도는 되잖아. 이런 거 봐둬야 나중에 멀리서 보고 상황에 맞춰 움직일 수 있다고.’
―하급 헌터 흉내 낼 때 말이냐?
‘그렇지! 아, 지금 가는 방향 맞아? 한눈팔다가 방향이 조금 꺾였나?’
―흔들리기는 했다만, 어차피 언덕 위에 서면 보이는 거는 비슷할 거다. 중간에 볼거리도 없으니 빨리…….
‘그래, 빨리!’
투란의 두 발목이 변했다.
무릎 아래로 산양을 닮은 형상이 살짝 드러난다 싶은 순간, 투란의 몸은 쏘아진 화살처럼 지면에서 튕겨 단숨에 수십 미터를 돌파했고 두 번째에는 거의 백여 미터를 단번에 가로지르는 도약을 하고 있었다.
그다음에는 팔길이 정도의 크기를 한 드레이크의 날개가 살짝 투란의 등짝에 돋아서 세 번째 걸음을 딛지 않고 바로 드라고니아가 말한 언덕 위에 도달해 내려서고 있었다.
그 언덕에서 내려다보자마자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애매하게 여긴 것이 뭔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얼레? 이게 뭔…….’
언덕으로 둘러싸인 듯한 모양이 절반 정도인 물웅덩이가 저편으로 기울어진 것처럼 작은 시내가 되어 흘러가는데, 물가에는 온통 망가진…… 시체가 되었다기보다는 그냥 해체된 고깃덩어리가 마구 쏟아져 있는 듯한 괴상한 짐승의 잔해가 가득한 채였다.
장난삼아 죽인 것인지, 먹으려고 사냥을 한 것인지…… 도통 애매했다.
―물소랑 코끼리가 물가를 갈라서 머물고 있었던 모양이다만…….
드라고니아가 자신이 파악한 바를 말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