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8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80)
―썬더캣이 사납기는 해도 사냥한 먹이는 반드시 먹는다. 그러니까 저 구석에 있는 녀석은 이런 짓을 저지른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썬더캣의 변종이라서 많이 처먹는다고 쳐도, 지금 먹는 꼴을 보면 물소 한두 마리가 고작이고 코끼리는 한 마리 정도면 더 못 먹을 테니 말이다.
투란은 이야기를 들으며 물가 한편을 봤다.
언덕에서 거리가 좀 있는, 흘러 내려가는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에 시커먼 레오팬저 같은 녀석이 물소의 등뼈를 핥고 으깨며 내장과 뼈를 가리지 않고 뜯어먹는 중이었다. 그 엉덩이 아래로 깔고 있는 발굽과 뿔조각으로 봐서는 저것이 두 마리째인 듯했고, 불거진 배의 꼬락서니는 또 다른 두 마리째의 증거인 듯 보였다.
‘썬더캣?’
해체된 고기 더미 틈새에 그림자처럼 엉겨 붙은 탓에 꾸물거리는 그 머리통, 입가의 움직임조차도 뒤늦게 눈에 띈 녀석이었다. 조금 더 투란이 눈길을 들이대니, 시커먼 입가 위에서 하얀 바탕의 눈알이 번뜩 뜨이는 꼴이 보였다. 음흉하게 입가만 움직이며 고기 더미 그림자 안에 있으면 누가 자신을 보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가 시선을 받으니 짜증이라도 난 듯, 그르렁거림도 함께 나오고 있었다.
‘바보?’
아무리 잔뜩 쌓인 고기 더미 틈새라도, 아무리 납작 엎드린 시늉을 했다 해도 꼬리를 빼고도 3, 4미터는 될 듯한 긴 몸집을 지닌 녀석이 뭔 짓인가!
―영악한 녀석이다. 저 태도는 지금 너에게서 자신을 위협할 요소를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나오는 거고.
‘아, 그래? 그런데…… 저거 몬스터야?’
투란은 조금 애매한 느낌에 썬더캣을 다시 차분히 훑어보면서 움직이지 않는 채로 물었다. 움직이면 저 녀석의 하얀 눈알, 그 속에 선명하게 뜬 황금색 눈동자와 세로로 죽 그어져 내린 동공(瞳孔)이 뭔가 심상치 않은 짓거리를 할 듯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히 아빈가의 여우처럼 허공을 찢거나 하는 괴상한 능력이라도 발휘하면 귀찮으니까.
―몬스터에 가깝다만, 몬스터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마수다. 그 능력 그대로 이름을 붙여놨으니…… 알기 쉽지?
마수란 말에 투란은 어깨를 툭 떨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이름 그대로의 능력이라니?
‘썬더면…… 벼락으로 패는 능력이 있는 거야?’
―벼락처럼 움직이기도 해. 그 움직임 속에서 번개가 다량으로 발생하고, 그걸로 적을 구워버린다. 사냥할 때도 적용되는 상태지. 그러니까…….
‘구운 고기는 안 보이는군.’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하는 바를 깨닫고 그대로 말했다.
물가로 밀려오는 물결의 살랑거림, 거기에 섞여 그대로 번져가는 핏물, 너덜거리는 잔뼈의 흔적에 이르기까지 썬더캣의 주변에는 뭔가를 벼락으로 후려치거나 번개가 할퀴고 갔다는 자취는 전혀 없었다. 즉, 저 고기 더미를 날것으로 우걱우걱 먹어치우고 있는 썬더캣은 누군가 저지르고 간 만찬장(晩餐場)에 들러서 배를 채우고 있을 뿐이란 것.
뒷머리를 긁적이며 투란은 일단 쪼그리고 앉았다.
딱히 여기서 움직일 생각 없이 구경만 한다는 자세인 셈이었고, 썬더캣은 이를 알아들었다는 듯이 다시 눈을 감고 날고기를 탐닉하며 투란에게서 눈길을 떼고 있었다.
투란은 물가와 물웅덩이, 고기 더미를 다시 한번 둘러보고 툴툴거렸다.
‘잘린 부분만 보고 뭐가 그랬는가 바로 알 수 있다더니…… 전혀 모르겠네! 할퀸 거야, 썰어낸 거야. 도대체 뭔데 물소랑 코끼리를…… 쟤네들도 마수 아닌가? 아니, 마수 떼가 이꼴 났으면 그게 더 이상한가?’
―지금 중요한 일은 아닌 거 같다만?
불쑥 드라고니아가 한 말은 투란을 움찔하게 했다.
갑작스럽게 눈앞에 나타난 기묘한 상황에 호기심이 발동했고,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는 기분이 피어나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스테노아가 나직하게 울음을 흘리기 시작한 것이다. 가는 길에 왜 딴짓하냐고 살짝 묻는 듯한 그 울음은 투란이 본격적으로 이 자리에 주저앉아 수수께끼를 모두 풀겠다고 하면 굉장한 울부짖음으로 돌변할 낌새가 역력했다!
‘알아, 하지만 여기서 이런 짓을 저지른 놈한테 뒤통수 맞고 싶지는 않다고! 괜히 미궁까지 따라 들어와서 계속 시비 걸면 어쩔 거야? 미리 알아낼 만큼 알아둬야 하는 거잖아!’
딱히 드라고니아를 설득하려는 말은 아니었다.
투란이 자신을 납득하기 위해 하는 말이었고, 이는 스테노아에게 홀랑 먹혔다!
메듀시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방해가 될 요소를 미리 제거한다니, 바로 울음이 낮아지며 낮은 그르렁거림이 되었고 그저 잊지 말라는 희미한 울먹임처럼 돼버렸다.
살짝 새려는 한숨을 참으며 투란은 윌 라이트의 마력에 집중하며 드라고니아에게 말한다.
‘프로브, 조금 더 퍼뜨려보자고. 생각해보니, 여기서는 잔뜩 부려먹어도 되는 거였잖아?’
―이미 십여 기(機) 이상 움직이고 있다만?
‘그런데 아무것도 못 찾았어?’
드라고니아의 도도한 대꾸는 투란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찾기는 했다만…… 애매하기는 여기랑 비슷하고, 미궁으로 직진하는 길이 아니라서 말이지.
직진이란 말에 미묘하게 어려 있는, 놀리는 낌새를 투란은 바로 느꼈고, 울컥하면서도 침착하게 정보를 요구했다.
‘이보셔어어! 일단 뭔지 보여나 줘봐!’
―썬더캣이 있는 쪽으로 2킬로 조금 넘은 곳이다.
대답과 함께 투란은 시야에 겹쳐지는 색다른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썬더캣이 날고기를 뜯어먹는 물가의 풍경과 완연히 다른, 그러나 역시 뭔가 썰려서 토막 난 채로 뒹구는 광경이었다. 소에게서 떼어낸 듯한 머리통이 굴러다녔고, 털이 가득 덮인 사람의 몸통은 굵직해서 토막 난 채로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타우루스?’
헝겊 쪼가리와 투박한 모양에 날카로운 날이 붙은 못생긴 도끼가 토막 난 핏덩이 틈새에 섞여 있었다. 몬스터이면서도 어디서 났는가 알 수 없는 도끼를 휘두르는 것이 타우루스, 심지어 어떻게 구했는지 모를 헝겊으로 몸의 일부를 가리고도 다닌다 했다. 그러니 저 광경의 피해자는 분명히 타우루스인데…… 타우루스가 한두 마리 토막 나서 저리 될 리가 없었다.
―여기랑 다른 점은 역시 이거겠지.
드라고니아가 콕 짚어주는 또 다른 타우루스의 사체(死體)는 투란의 관심을 바로 끌었다.
‘말라죽었어?’
웅장한 뿔, 다른 소머리도 제법 삐죽거리며 긴 뿔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다른 녀석들처럼 토막 나 죽지 않고 온몸이 말라비틀어진 채로 죽은 한 마리는 격이 다르다 싶은 뿔을 머리에 달고 있었다. 말라비틀어진 몸집이 토막 난 녀석들보다 더 굵고 대단해 보이는 것도 그 한 마리가 완전히 다른 수준이란 것을 드러내는 증명이었다.
―이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타우루스의 족장(族長)이라고 해야 할 거다. 타우루스가 무리를 꾸미고 뭉쳐 다니면, 일단 부족화했다고 보니까. 그중에서 족장은 다른 녀석을 완벽하게 힘으로 찍어누른 개체이고, 족장이 되는 순간에 그 힘이 증폭되는 특성도 있지.
‘그런 특성은 처음 듣는데? 무리 지었다고 우두머리가 더 강해지다니, 무슨 마법이야, 그게?’
―그래서 그냥 우두머리가 아니고, 족장이라고 불러주는 거다. 타우루스는 주변 환경과 조건에 따라서 아주 다양한 특성을 드러낸다는 거는 알지? 그 특성 중의 한 가지야. 하지만…… 그런 족장이 저 몰골로 죽었다. 상태로 봐서는 무리 전체가 몰살당하기 전인 것 같은데, 타우루스 부족이란 같은 수의 타우루스가 그냥 모였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만큼 개체마다 힘의 증폭이 있다는 말이다. 족장이 죽었다면 부족원은 차기 족장이 되기 위해서 힘의 증폭 정도가 더욱 상승하지. 그런 것들을 저 꼴 냈다는 것은…….
‘드라고?’
―아니야. 드라고가 족장을 쳐죽일 수는 있겠지. 일대일로, 간섭없이 전력으로 싸운다면 말이야. 저건 그런 조건에서 어긋나 있다. 게다가 드라고는 사냥꾼이야. 저런 무리한테 싸움을 걸지 않아. 사냥한 것은 그 자리에서 먹어치워. 아, 이런 거 다 치워놓고 저렇게 말려 죽이는 능력은 아예 없어.
‘토막은 낼 수 있고?’
―힘으로 찢는 거면 몰라도, 저렇게 깔끔하게 토막은 못 내지.
드라고니아의 단정 짓는 말에 투란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썬더캣과 눈이 마주쳤다. 가늘게 뜬 눈으로 투란을 보며 어딜 보는 건지 의아해하는 묘한 눈길을 보내기는 하는데, 그 눈 아래에서 우물거리며 부푼 볼은 아직 한참 배고픈 채라고 외치는 듯한 몰골이었다.
투란은 피식 웃어주고 다시 저편의 광경과 이쪽 물가의 풍경을 비교하며 생각에 잠겨들었다.
타우루스 족장을 말려 죽이고 나머지는 토막 내 죽였다, 물가에서는 닥치는 대로 모조리 토막 내 죽였다…… 날카로운 흉기를 갖추고 대상을 말려 죽이는 괴상한 능력을 가진 몬스터는 무엇인가?
‘모르겠는걸? 넌 뭐 알겠어?’
투란은 갸웃하면서 금방 자신의 아는 것 중에 타우루스 무리랑 맞서서 저런 짓을 저지르고, 지나는 길에 먹지도 않을 짐승들을 토막 내는 경우는 없다고 인정하고 말았다. 더 생각해봐야 쓸모없으니, 시간과 노력을 아끼는 셈이었다.
―애매하다고 했잖아. 토막 내고 저리 말려 죽이는 녀석은 쉽게 떠오르질 않아.
‘헤에…… 그래도 아는 게 있기는 하네. 좋아, 그렇다면! 묻자!’
―뭐? 묻다니 뭘…… 도감?
어리둥절하던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냉큼 도감을 꺼내고 로어 트럼프를 꺼내서 물가의 토막 난 고기 더미의 풍경을 담는 것을 봐야 했다. 그리고 이어진 요청…….
‘프로브로 보이는 풍경, 여기 환영으로 보여줄 수 있지? 로어 트럼프로 그려넣을 수 있도록 말이야.’
―가능할 거다.
말과 함께 드라고니아가 투란 바로 앞에 프로브의 형체를 드러나게 했고, 드러난 프로브는 하얀 광채를 뿜어내면서 타우루스 무리가 몰살당한 풍경을 허공에 그려냈다.
그르릉, 썬더캣이 털끝으로 번개의 조그마한 조각을 드러내며 투란이 하는 짓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투란은 이를 싹 무시하고 로어 트럼프에 연거푸 담은 화상(畫像)을 확인하며 도감을 향해 속삭인다.
“이렇게 토막 내고, 이렇게도 토막 내고, 이렇게 말려 죽이는 능력을 지닌 채로 메듀시아 미궁 근처를 멀리 떠도는 몬스터. 이게 뭐지?”
차례대로 들이댄 화상을 모조리 ‘이렇게’로 짚으며 하는 말이었다.
도감은 그 얼렁뚱땅 얼버무린 물음에 답을 하는 페이지를 거침없이 펼치니…….
―정말 이거 만든 자가 누군가 궁금하군.
드라고니아가 기대했으면서도 놀란 듯이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투란은 펼쳐진 페이지를 보고 놀라 중얼거린다.
“언데드 워리어? 부쳐?”
―음? 언데드? 부쳐?
드라고니아도 한 박자 늦게 페이지의 내용을 보며 흠칫했다.
⚫ 거대한 전투도끼를 든 언데드 전사.
⚫ 별칭 ‘부쳐’는 지나쳐가다가 만난 생명체를 막무가내로 토막 내는 때문.
⚫ 강력한 생명력을 지녀 토막 내서 죽일 수 없는 경우를 만나면 뱀피릭 블래스트를 사용한다. 본래는 대량 흡혈(吸血)을 통해 생명을 갈취하는 능력이나, ‘부쳐’는 이를 출혈을 유도해 상대를 약화, 사망시키는 용도로 사용한다.
⚫ 본래 형태에 대해서는 언더 섀도우에서 흘러나온 뱀파이어 전사라는 추측이 있으나, 뱀파이어의 특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존재이며 뱀피릭 블래스트는 지니고 있는 전투도끼에 각인된 능력일 가능성이 크다.
⚫ 미궁의 주변을 돌며 접근하는 자는 물론 미궁 안에서 흘러나온 몬스터들까지 적대시하며, 한번 노린 적은 맹목적으로 추적살해하는 습성이 있다.
⚫ 언데드인 탓에 낮에는 그 힘이 절반가량 하락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타우루스 치프를 압도하는 괴력. 낮이라도 거침없이 뱀피릭 블래스트를 사용하니, 뱀파이어란 가설은 더욱 근거가 희박하다.
“만나면…… 귀찮아지겠는데?”
―그렇군. 굉장히 귀찮겠어. 그런데 투란, 몬스터 로드가 언데드를 삼키면 어찌 되는 거냐?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중얼거림에 동의하다가 불쑥 물었다.
투란은 눈을 깜박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
―들은 적 없어?
‘없지……는 않지? 버닝데드도 일단 언데드……잖아?’
―몰튼노트 같은 몬스터가 깃들어서 움직이는 거 말고. 유령이라든가, 망령이라든가 구울 같은…… 그런 언데드 말이야.
‘아니, 그거나 그거나…… 그게 나눠서 따져봐야 하는 건가? 아무튼…… 이야기에 나오는 유명한 데쓰나이트도 언데드였지? 그러니까 어떻게든 되는 거 아닌가? 몬스터니까 말이야.’
맹하니 대답하며 투란은 일단 도감을 덮고 집어넣었다.
그르릉, 조금 더 험한 소리가 썬더캣에게서 나왔다.
마치 악마의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썬더캣에게 거슬리는 듯했다.
“시꺼. 머리 복잡하니까, 그만해라.”
투란은 썬더캣을 슬쩍 노려보면서 낮게 으르렁거렸다.
썬더캣이 순식간에 털 사이로 작고 가는 번개를 머금는가 싶더니, 물가에서 사라지듯 멀어져 꽤 거리를 둔 곳에 나타나며 투란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굉장히 빨랐고, 적대적인 모습이기는 했지만 이를 보는 투란은 픽 웃고 말았다.
“마수라서 아깝다…… 잡아 뜯어보고는 싶지만, 다음에 바쁘지 않을 때 만나면 그 때 생각해볼게. 잘 있어.”
금빛 날개가 조그맣게 투란의 등에 돋았고, 투란의 눈길은 타우루스 무리가 쓰러진 곳을 향했다.
펄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