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8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81)
Chapter 157. 미궁 전(前)
고인 피와 절단된 몸뚱이, 굴러다니는 머리통은 땅에 달라붙은 불거진 얼룩처럼 보였다. 거기에 드문드문 섞인 것처럼 조잡하지만 커다란 도끼 수십 자루가 난잡하게 토막 나 섞인 것이 조금 괴상했다. 그 풍경 속에 내려서니 도살장(屠殺場)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펼쳐져 있는 듯한 분위기가 피비린내와 함께 살갗을 스며들었다. 그나마 토막 나지 않은 채로 얌전히 죽은 하나…… 타우루스 족장은 이 풍경과는 완전히 어긋나겠다는 듯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바싹 마른 몰골로 엎어진 채였다.
‘도망치려 한 건가?’
투란은 늘어진 타우루스 무리의 사체, 도살장의 피해자가 된 핏덩이와 절단된 사지들이 놓인 광경의 한쪽 끝에서 등을 돌린 채로 멀어지려는 듯한 모습인 타우루스 족장의 말라죽은 꼴을 다시 살피며 생각해봤다.
아무리 봐도 등 돌리고 도망치다가 바싹 말라 죽은 꼴이 맞는 것 같았다.
―발자국으로 봐서는 등짝을 잡혀서 바로 출혈(出血) 괴사(壞死)한 모양이다. 무리가 모두 토막 난 다음에 말이야.
‘응? 토막 난 다음에?’
―타우루스 족장은 무리와 함께 있을 때 보다 증폭된 괴력을 발휘하지. 무리를 잃게 되면, 바로 자기 앞에서 압도적인 적을 만나 거느린 무리가 몰살당하는 상황이라면 본능적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으니까. 뭐, 본능적이라 해도 생각해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해야겠지.
‘헤에, 죽는 동안 등 돌리고 혼자 도망친 거는 아니란 말이야?’
―족장이 된 타우루스는 무리가 한 마리라도 남아 있으면 돌아서지 않아. 아니, 돌아설 수 없다고 해야 하나? 그게 족장으로서 갖는 본질적인 특성이지. 무리가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그 무리를 위해 괴력이 더욱 증폭되니까 당연한 선택이기도 하고.
‘괴상한 놈이네.’
투란은 도살장의 풍경을 가로질러 말라비틀어진 타우루스 족장 앞으로 갔다.
연한 갈색의 털가죽이 갈라진 채로 터럭이 반쯤 빠져나간 몰골이었고, 힘줄과 핏줄이 가죽에서 도드라진 흔적을 남긴 채로 눌어붙은 상태가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 피 한 방울조차 남기지 않고 몸에서 모조리 뽑아낸 탓인 듯한데, 정작 출혈을 일으킨 상처 자리는 어딘가 알 수가 없었다.
‘뿔은 참…… 오만하다고 해야 하나?’
두 가닥 뿔은 몸의 상태랑 상관없이, 설혹 그 몸이 완전히 뼈다귀만 남은 꼴이 된다 해도 머리에서 장대하게 돋아난 모습이 족장의 위엄을 과시하는 듯했다. 이렇게 말라비틀어진 몰골이 아닌 채로 서 있다면, 2미터 50의 신장(身長)에서 돋아난 두 가닥 뿔의 위엄은 장난이 아닐 듯 보였다.
―남기고 간 찌꺼기잖아? 이런 걸 삼키려고?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갖는 흥미의 본질을 느낀 듯, 투덜거렸다.
투란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찌꺼기라니…… 시체줍기가 쉬운 일인 줄 알아?’
―족장이라 해도 결국은 타우루스일 뿐이야. 증폭된 괴력이 대단해봐야 무쇠뿔 오우거보다 강하지도 않을 테고. 굳이 이런 걸로 채울 필요가 있나?
드라고니아는 투덜거리는 듯하면서도 신중하게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대답한다.
‘아직 내 천칭은 넓고 깊어. 조금만 거리를 두면 얇은 기둥 하나가 간신히 박혀 있는 꼴이라고.’
―그 기둥에 매달린 녀석들을 다 쓰지도 않고 있잖아! 가진 거 잘 관리하고 괜한 욕심은…… 야!
조금 설득해보려던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족장의 마른 눈알에 손가락을 짚으며 못 들은 척하자 바로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투란의 정신은 푹 꺼진 눈알 속으로 스며 들어가는 시커먼 잉크에 집중되어 이제는 정말로 뭔 말을 해도 못 듣는 상태였다.
여린 아지랑이처럼 투란의 고유마력이 맥동했고, 타우루스 족장의 눈알을 물들이던 시커먼 잉크 위로 붉은 고리가 티끌처럼 맴돌며 번져갔다. 곧 타우루스 족장의 뿔이 투명해졌고, 연한 갈색의 털이 훌훌 날아가듯 흩어지며 가죽이 으스러지듯 사라져갔다. 남은 것은 소머리뼈, 척추, 허리 근처의 얄팍해진 가죽 조각, 발굽과 손톱이 들러붙은 뼈마디에 불과했다. 덤으로 뱃가죽 틈새에 묘하게 뭉친 진흙이 굳어진 돌덩이 같은 것도 슬쩍 끼어 있었다. 뭘 잘못 먹고 소화하지 못한 것처럼…….
소소한 잔유물에서 마음을 돌린 투란은 문장의 풍경 속에서 강렬하게 보이드의 힘을 맥동시켰고, 문장 속에 삼켜진 타우루스 족장의 정수를 움켜쥐게 했다. 그 감각이 투란에게 바로 알려주는 바는…….
‘모자란데? 이거 그냥 피가 빨려 나간 게 아니야. 이 녀석, 피를 완전히…….’
―소멸당했군. 피에 담겨 있을 정수가 완전히 누락된 채야. 어쩔 거냐?
드라고니아도 투란이 깨달은 바를 파악한 듯, 다시 한번 족장의 상태를 되새기면서 말했다.
투란은 일어서서 돌아서며 간단히 대답했다.
“이것 참…… 족장의 피만 지워버리고 가다니…… 이러면 무리를 그냥 둘 수도 없는데?”
―너, 애초에 저것도 나눠 삼킬 작정이었잖아!
드라고니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는 투란의 고개를 살짝 젓게 했다.
‘안 돼. 이 꼴 낸 녀석이 지금 어디 있는가 전혀 모르잖아. 위험하다고, 여기서 문장을 바꾸는 짓은 하면 안 돼.’
―음? 그러면 따로 보관할 거냐?
욕심내지 않고 신중한 투란의 판단에 드라고니아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웬일로 이리 냉정한가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한 말투였다.
‘내가 바보냐? 왜 바보 같은 소리를 해!’
툴툴거리면서도 투란의 걸음은 토막 난 타우루스 무리의 잔해를 향해 옮겨갔고, 그 걸음걸이마다 검은 발자국이 생겨나며 땅을 물들이고 번져갔다. 어느 틈엔가 타우루스 무리의 잔해는 시커먼 바탕 위에 불거진 듯한 광경이 되었고, 그 시커먼 바탕에서 붉은 고리가 도도하게 번져간 것은 잠깐 사이의 일이었다.
역시 조금 이상하게 뭉친 진흙이 단단해진 돌덩이 같은 것이 도드라지게 보였고, 도끼 수십 자루의 파편 사이에서 타우루스 무리의 뼈와 발굽, 엷게 저며진 듯한 가죽이 팔랑거리는 채로 남겨졌다.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투란은 문장의 풍경 속에 집중했다.
얇고 여린 껍질에 쌓인 타우루스 족장의 말라 뒤틀린 형상 속으로 타우루스 무리의 정수가 흘러 들어갔고, 그 형상은 불끈불끈 부풀면서 무리의 정수를 자기 안으로 통합하고 있었다.
그 상태를 통해 투란은 ‘알아’차렸다.
타우루스 무리는 피로 맺어진 관계…… 인간 사회의 혈연(血緣)과 전혀 다르게 서로 격돌하고 어우러진 다음에 피를 섞음으로써 이뤄진 맹약(盟約)으로서 유지되는 ‘일족(一族)’. 어버이가 누군가는 중요하지 않았고, 오직 서로를 물어뜯고 싸우고 성장하다가 ‘족장(族長)’의 자격을 지닌 개체가 나타나면 ‘일족’이 형성된다. 그 중심인 ‘족장’이 무리를 잃게 되면 성장을 통해 갖추게 된 ‘힘’ 또한 상실(喪失)한다. 족장의 자격을 잃은 타우루스는 그냥 타우루스일 뿐이었다. 다만 새로운 무리에 합류할 경우, 한번 갖췄던 ‘힘’이었기에 되찾기도 쉽기는 했다.
그런 타우루스 족장의 정수에 거느렸던 무리의 정수가 합류하니…….
‘그게 정수를 통해서도 가능한 거였나?’
투란은 타우루스 족장의 형상이 2미터 70센티까지 성장하며 다듬어진 근육질의 몸을 부풀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단순히 힘만 겨룬다고 할 때, 무쇠뿔 오우거의 괴력에 맞먹을 정도가 아닌가!
―굉장한 생명력이군.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문득 투란도 깨달았다.
타루우스 일족, 몰살당한 일족의 정수가 하나의 형상 속에 집결된 탓인지 아니면 원래 족장의 능력인지 아리송했지만 그 생명력은 결코 한 마리 몫이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강성(强盛)하게 번져 나오고 있었다.
투란이 거기에 집중하니, 몬스터 엠블럼으로부터 짙은 오러가 맥동하면서 번져나와 땅 위로 옅은 파문을 일으킬 지경이었다. 그야말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러 웨이브라는 재주를 부린 듯했다.
‘타우루스가…… 오러 로드였나?’
맥동하는 오러를 느끼면서 투란이 갸웃했다.
―오러 계통의 능력은 사용하지 않는다. 타우루스는…… 그 몸을 통해 독특한 재주를 부리기는 하지. 우리는 강체파동(剛體波動)이라고 부른다만, 인간 오러 윌더들은 그걸 타우루스의 오러 스타일이라고 부르기도 하더군. 인간 마법사들은 그리 부르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말이야.
‘강체……?’
투란은 한층 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생체파동이라면 나름대로 잘 아는 편이었다.
강체란 말도 은근히 익숙해 있었다.
그 둘이 섞인 듯하면서도 뭔가 미묘하게 다른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한데, 구체적으로 그게 뭔가 알 수가 없잖은가. 게다가 딱 짚어 ‘인간’ 쪽의 오러 윌더와 마법사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하니, 투란으로서는 더욱 알 리가 없는 이야기였다.
드라고니아가 쓴웃음을 머금은 듯한 말투로 이야기를 더한다.
―강인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발휘되는 능력이다만, 오러라는 형질을 갖춘 채로 발휘되지는 않아. 모조리 뼈와 근육, 맥동하는 피의 흐름 속에 집결된 것처럼 그 능력이 발휘되거든. 말하자면…… 강철(鋼鐵)로 변질(變質)된 듯한 상태가 되어서 충격파(衝擊波)를 흘린다고 할까? 뭐, 이제부터 겪다 보면 무슨 말인지 알거다. 그보다 투란, 타우루스 족장의 증오가 느껴진다만?
‘음?’
투란은 갑작스러운 말에 멈칫했다.
확실히 보이드의 힘에 쌓인, 그 껍질에 쌓인 채로 타우루스 족장은 증오를 바탕으로 한 격노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격노의 대상은 일족을 삼킨 투란이 아니었다.
자신의 무리, 일족이 모조리 죽여 맨땅에 버려진 잔해를 만들고 결국 지나가던 몬스터 로드인 투란 안에서 족장과 하나가 되게 한…… 바로 그 몬스터에 대한 증오가 타우루스 족장의 본질 속에 새겨져 있었다.
투란에게는 어리둥절한 일이었다.
‘희한하네, 몬스터 에센스에 제대로 기억이 남겨져 있는 건가?’
드레이크와 공명 말고는 딱히 몬스터가 살아온 기억 따위는 투란에게 전해진 적이 거의 없지 않은가. 붉은 오우거처럼, 무쇠뿔 오우거처럼 특별한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어지간해서는 아르고누스처럼 삼켜지는 과정에서 깔끔하게 홀랑 잊는다!
―고르고니아도 자매를 찾으려는 본능이 있었지. 타우루스 족장 또한 무리를 이끈다는 본능, 지킨다는 본능을 지닌 모양이다.
드라고니아는 바로 그럴듯한 말을 덧붙이고 있었다.
‘그런가.’
뭔가 조금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꼈지만, 투란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이글거리며 치솟는 증오를 타우루스 족장 안에 가둬두고 그 영향이 마음을 물들이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투란은 흘깃 주변을 둘러보고 살폈다.
타우루스 무리를 몰살시킨 녀석의 흔적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고, 어디로 향했는가도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미궁 쪽으로 가지 않았네.’
아쉽다고 해야 하는가,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가.
혹은 타우루스 족장의 증오, 격노를 바탕으로 분하다고 느껴야 하는가?
투란은 그 모든 것을 짓누르고 노려보는 듯한 고르고니아 스테노아의 나지막한 울음을 먼저 느낀 채로 미궁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등 뒤에 남겨진 타우루스의 잔해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듯…….
몇 걸음 걷던 투란이 소리 없이 말한다.
‘내가 윌 라이트에 집중하면 프로브를 얼마나 늘릴 수 있지?’
―음? 직접 관제(管制)해 보게? 지금 너라면…… 내게 배분한 마력의 서너 배는 간단히 운영할 수 있으니까, 대강 사오십여 기? 너를 중심으로 어림잡아 칠팔십 킬로미터는 단번에 관측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해볼래?
‘머리 아프려나…….’
투란은 살짝 한숨을 쉬었다.
탐색과 정찰의 결과물로서 프로브가 쏟아내는 감각은 사람의 지각(知覺) 영역에 확실하게 과부하(過負荷)를 일으킨다. 드라고니아가 어떻게 생겨먹어서 그런 것을 감당하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투란은 멀쩡한 사람으로서 그런 짓을 하지 않겠노라고 단호하게…… 몇 번 겪은 다음에 가능한 한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었다.
―그건 생각 없이 멍청하게 저질렀을 때였지! 귀찮아서 살살 피하려고 잔머리 굴리다가 헛짓한 것을 제대로 된 마법 탓하지 마라!
‘역병의 수해’에서 투란이 징징거리며 한 다짐에 대해 드라고니아가 다시 생각해도 짜증 난다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내가 무슨 마법사냐? 제대로 된 마법을 척척 부리는 거는 마법사나 하는 짓이고…… 난 나답게 할 수밖에 없지.’
투란은 툴툴거렸다.
그 툴툴거림과 함께 어깨, 등, 팔뚝, 다리에 핏줄과 힘줄이 툭툭 불거지면서 매듭처럼 뭉친 흔적이 튀어나왔다. ‘악마의 심장’ 속에서 여러 ‘투란’이 호응하며 자리 잡은 다음, 투란은 윌 라이트에 집중했다.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고 우길 수 있는 몬스터 로드다운 짓이었고, 순식간에 발생한 팔십여 기의 프로브가 앞을 향해 쏘아져 갔다.
―대체 뭘 찾고 싶어서 그러는 거냐?
드라고니아가 금방 냉정해진 말투로 묻고 있었다.
‘가는 길 정찰이잖아. 찾기는 뭘…….’
투란은 진심으로, 마음 한구석에서 살살 피어나는 욕심을 감추면서 말했다.
운이 좋지 않으면 가는 길목에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