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8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82)
미궁이 자리 잡은 고대의 폐허(廢墟)는 원래 거대한 도시였다고 했다.
덕분에 미궁에 다가가는 이들은 옛 유적을 미궁의 일부로 착각하다가 엉뚱한 곳을 헤매는 경우도 자주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런 미궁을 탐사하는 일도 이미 수백 년은 더 된 옛날이야기일 뿐이었고, 지금은 길을 잘못 들거나 우연(偶然)이 겹친 사정이 아니라면 찾아올 이는 거의 없는 곳이었다. 때문에 폐허를 중심으로 어슬렁거린다 싶은 경우는 아예 이곳을 보금자리로 삼고 살아가는 짐승이나 몬스터일 뿐이었다.
그러니 짐승이든 몬스터이든, 서로 만나면 생존을 위해 다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와드득, 치잉!
쇠가 끊어지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 덤불을 울리며 퍼져나갔다.
완연히 다른 품종인 두 마리 몬스터가 갈라서면서 조금 전에 교환한 공방(攻防)의 흔적을 살폈다.
물소의 머리, 낮고 굵은 뿔을 지닌 검은 털이 흔들거리는 머리에 박힌 송아지의 눈망울은 쇠꼬챙이 모양이 돼버린 도끼자루를 보면서 콧김을 세게 내뿜었다. 도끼머리는 저편에 있는 청록색 비늘가죽을 두른 녀석의 손에 움켜쥐어지는 중이었고, 진흙처럼 우겨지고 있었다.
푸륵, 푸륵!
거센 콧김을 뿜어내는 채로 두 발로 선 물소 머리의 몬스터가 노려보니, 청록색 비늘가죽을 두른 몬스터는 길고 억센 입을 열어 사나운 이빨을 가득 드러내며 짓이겨 뭉개서 쇠공을 닮은꼴이 돼버린 도끼머리를 옆으로 내던졌다.
피잉!
물소 머리 몬스터가 쇠꼬챙이가 된 도끼자루를 투창처럼 내던졌고, 청록색 비늘가죽 몬스터는 허공에서 그것을 낚아채 움켜쥐었다.
워어어어! 텅, 텅, 텅!
물소 머리 몬스터가 괴성을 지르며 가슴을 두드렸다.
청록색 비늘가죽 몬스터는 사앗거리는 숨결과 함께 혀를 날름거리면서 노려볼 뿐이었다.
두 마리 몬스터가 다시 격돌을 하려는 듯한데…….
‘타우루스랑…… 리저드만? 뿔 달린 리저드만도 있나?’
투란이 수 킬로미터 너머의 상황을 엿보면서 갸웃했다.
―시침 떼지 마라, 저건 드라고다. 찾으려 해놓고 왜 딴소리야.
드라고니아가 핀잔했다.
투란은 입술부터 삐죽이면서, 서서히 활강하는 채로 대답한다.
‘찾으려고야 했지…… 하지만 가는 길목을 저렇게 막고 있을 줄은 몰랐다고. 운이 좋은 거잖아? 안 그래?’
높이 날아오른 채로 빠르게 미궁 쪽으로 날면서 프로브 수십 기의 탐지 범위를 아주 넓게 확장한 채였다는 것은 살짝 옆으로 미뤄놓고 하는 말이었다. 드라고니아에게는 바로 발끈하라고 부추기는 소리인 셈이었고, 사양 없이 바로 발끈해버렸다.
―뭐가 가는 길목이야! 좌우로 수 킬로미터씩 오락가락하는 채로 더듬고 있었으면서! 아무튼 뭘 알았다 싶으면 참지를 못해요! 야, 그래도 웬만하면 지금 가까이 가지 마라. 저 타우곤(Taugon)이랑 싸움이 끝난 다음에 노리든가 해. 둘 다 교활한 면이 있으니 자기네보다 더 강한 누가 끼어들면 함께 덤비는 수도 있거든.
‘타우……곤?’
투란은 어리둥절해서 되뇌었다.
타박하기는 했지만 덧붙여진 경고가 왠지 심상치 않게 들리잖나.
드라고니아가 그 의아함에 설명을 보탠다.
―저게 소머리를 했지만 타우루스라고 분류되지 않는 타우곤이란 얘기다. 조금 특별한 경우거든. 닥치고 들어! 몬스터 타우루스 중에서도 명계(冥界)의 힘, 명력(冥力)이 깃든 놈이 저거야. 영체화(靈體化) 능력…… 쉽게 말해서 유령(幽靈) 같은 몸이 될 줄 아는 몬스터다.
‘진담이냐? 유령이 되는 몬스터라니, 난 처음 듣는다고!’
―처음? 희한하군…… 영체화니 뭐니 하는 거야 처음이라고 쳐도, 정말로 유령 되는 몬스터에 대해 처음 들어봐?
‘그냥 유령이면 몰라도 몬스터가 유령이 왜 되냐고! 죽어서 유령 되는 거는 음침하고 음흉한 마법사라든가, 미친놈인 거잖아!’
―그건 또 무슨 해괴한 소리냐? 세상에 대한 집착이 영격(靈格)을 갖춰서 그림자 같은 흔적으로서 남는 것이 유령인데…… 그게 꼭 미친놈이라든가 마법사일 리가 없잖아!
‘몰라, 그게 뭔 소리인가 모르겠고…… 저거 정말 드라고 맞는 거야? 눈알 한쪽도 허옇게 물들어 있고, 은근히 몸에 상처도 많아 보이는데? 타우곤인가가 그리 특별하면, 드라고가 지는 거야?’
투란은 땅에 발을 딛으며, 다시 격돌해가는 둘을 보는 채로 물었다.
―그건…….
촤악, 퍼억!
검은 털가죽이 베어지듯 갈라지며 속살을 드러냈고, 청록비늘의 팔뚝 위로 꽂힌 주먹은 요란한 소리를 터뜨렸다.
어디서 구했는가 모를 도끼를 잃은 타우곤은 주먹 쥔 채로 드라고에게 덤벼들었고, 드라고는 맹금(猛禽)의 발과 닮은 손가락을 펼치면서 맞서고 있었다. 타우곤의 주먹은 드라고를 밀어내지 못했지만 드라고의 손톱은 타우곤의 가죽을 베어버리듯이 갈라놓고 있었다.
므흐엉! 퍼엉!
타우곤이 괴성을 지르며 발길질을 했고, 드라고는 이를 몸으로 받아내고 밀려났다. 그 와중에도 드라고의 손톱이 타우곤을 할퀴었고, 타우곤은 어깨, 팔뚝, 가슴 언저리가 쩍쩍 갈라지는 상처를 입어야 했다. 마치 서로 누가 더 뚝심이 좋고 대담한가를 겨루듯이 막지 않고 공격만 해댄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뒤로 물러서서 다시 간격을 두고 둘이 서로를 마주 보는 사이, 타우곤의 갈라진 상처가 꿈틀거리면서 저절로 맞물리며 자연스럽게 봉합(封合)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드라고는 움푹 파인 비늘이 일그러진 채로 곤두서면서 떨어져나가는 중이었다.
이 상황은 드라고가 두 눈을 부릅뜨게 했는데, 한쪽 눈은 황금색인 데 반해 한쪽 눈은 상처가 난 다음에 아물지 못한 듯 허옇게 눈알 흔적만 남은 탓에 흉악한 분위기가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타우곤은 그런 드라고를 보며 비웃는 것처럼 푸릇거렸다.
‘헐, 저거 힐링 팩터잖아?’
투란은 놀라 소리 없이 웅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더 효율적인 걸로 보이는군. 타우곤에게 자기치유 능력이 있다고는 들었다만…… 수준이 꽤 높아.
‘그러면 드라고가 지는 거네?’
투란의 결론은 간단했다.
한쪽은 쩍쩍 갈라질 듯 베어나가지만, 한 걸음 물러서는 사이에 회복되고 한쪽은 쳐맞은 상처가 쌓이는 중이니까. 드라고가 한 방에 타우곤을 쳐죽이지 않는 한, 오래 싸울수록 불리하고 결국 질 수밖에 없어 보였다.
―글쎄다…… 지능이 짐승 수준이기는 하다만, 눈앞에 저리 훤히 보이는 상황을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닐 텐데 저대로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 싶다만…….
‘응? 뭔 다른 재주가 있어? 단번에 타우곤을 쳐죽일 수 있는 거야?’
―타우곤이 단번에 드라고를 죽일 궁리를 하는 것 같은데?
‘뭐?’
갑작스러운 말에 투란은 둘의 싸움에 집중했다.
프로브가 그 주변으로 널찍하니 펼쳐진 덕분에 투란은 더욱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타우곤은 몸을 낮추고 있었다.
그 두 손은 허리에 붙인 채로 몸을 잔뜩 낮추고 드라고를 향해 뿔을 들어대며 단숨에 뛸 자세를 만드는 것이 꽤 노골적인 셈이었다.
드라고는 그 의미를 알아차린 듯, 날름거리던 혀를 집어넣고 그르렁거리면서 이를 악물며 활짝 가슴을 펴고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굵은 꼬리가 드라고의 등줄기를 거스르듯이 꼿꼿이 서고 있었고, 날카롭게 돋은 손톱 발톱이 단숨에 상대를 찢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듯했다.
잔뜩 부픈 다리 근육을 폭발시키듯 타우곤이 땅을 박찼다.
푸르흣! 크르륵!
두 몬스터의 거친 숨결이 험한 소리를 흘렸다.
‘우아앗! 뭐야, 저거!’
투란은 당황했다.
―영체화한 채로 강체파동을 사용했어! 과연 얕볼 수 없는 녀석이었어!
드라고니아는 묘하게 감탄하는 듯했다.
하나, 멀리서 지켜보는 이를 놀라게 한 광경은 아직 멈추지 않고 있었다.
타우곤의 몸은 거뭇한 안개처럼 변했다가 흐릿해졌다.
드라고가 마주 쳐오며 사납게 손톱을 휘두르고 발톱으로 땅을 더욱 억세게 굴렀지만, 타우곤의 흐릿해진 몸은 그대로 드라고의 몸통을 관통하며 두 손을 모은 자세로 지나칠 뿐이었다.
그렇게 엇갈린 다음, 형체를 드러낸 타우곤의 두 손아귀 사이에는 펄떡거리는 채로 핏줄기를 뿜어내는 심장이 들려 있었고…… 드라고는 꼬리로 땅을 찍으며 몸을 돌리며 타우곤을 향해 튕겨 쏘아지고 있었다.
타우곤의 뒤편에 바싹 붙은 드라고의 다음 움직임은 몇 배나 가속한 듯이 빨랐다.
촤악, 와드드득!
드라고의 손톱, 발톱이 타우곤의 뒷머리부터 등줄기를 갈기갈기 찢어발기듯이 휘저었다. 뒷머리가 반쯤 뜯기고, 척추와 등짝이 너덜거리며 터져나간 상태가 되니 타우곤도 어쩔 수 없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엎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드라고 또한 가슴팍을 움켜쥐면서 옆으로 쓰러지는 중이었다.
타우곤의 손에 들린 심장은 더욱 세차게 핏줄기를 뿜어내는 채로 맨땅에 떨어져 굴렀다.
‘저거…… 드라고의 심장?’
투란은 어이없어서, 믿기지가 않아서 물어야 했다.
―맞다, 드라고의 심장이야.
드라고니아는 확실하게 확인시켜 줬다.
드라고의 몸에는 심장이 적출당한 흔적 따위는 전혀 없었다.
가슴이나 등짝 어디에도 심장이 들락일 구멍 따위는 남겨지지 않았는데도 적출된 채로 타우곤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었던 것이다.
드라고가 심장을 잃은 채로 마지막 발악을 하듯 타우곤의 뒤에 붙어서 난자한 광경은 대단히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한순간에 유령처럼 변해서 그 심장을 뽑아낸 타우곤의 능력은 황당했다.
때문에 투란은 되새기면서 다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게 타우루스……라고 할 수 있나?’
―타우곤이라고 했잖아. 아예 별개의 품종은 아니야. 타우루스 중에서 특별하니까, 조금 다르게 부를 뿐이라고.
드라고니아가 다시 분명하게 말했다.
쉭! 쉬이잇!
투란이 그 말을 되새기는 사이에 뭔가가 거친 소리를 내며 다리에 부딪혀 왔다. 거기 관심 두지 않고 투란은 타우곤과 드라고가 함께 엎어진 광경을 되새기며 그 주변을 둘러보는데, 부딪힌 것이 종아리를 콱 깨물고 있었다.
“엥? 아니, 넌 뭔데…….”
종아리 속으로 화끈한 느낌이 스며왔기에, 단순히 물린 것이 아니라 제대로 독이 쏟아져 들어왔기에 투란은 결국 저편을 보는 눈알을 눈가에 띄운 채로 옆을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가늘고 긴 검은 뱀이 투란의 종아리에 이빨을 박아넣고 있었다.
그 이빨 속에서 독이 신나게 퍼부어지는 중이고!
―다크림보잖아. 독사 중에서 성질 더럽기로 소문난 녀석이다. 아무래도 투란 네가 녀석이 다니는 길목에 서 있던 모양인데?
‘독사가 길 가다 마주쳤다고 막 물어? 전혀 독사답질 않잖아!’
투란은 어이없어하면서도 몸을 낮춰 손을 뻗었다.
보통 독사라면 먹이를 사냥할 때, 자기에게 위험이 닥쳐왔는데 피할 수 없을 때에 그 독이빨을 박아넣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독사는 먼저 건들지 말라고 하는 말이 있잖은가. 한데 이놈은 길 가다 만났으니 콱 문다니, 정말 성질 더럽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그래서 투란도 성질 더럽게 대응하기로 했다.
이미 ‘악마의 심장’이 살갗을 파고든 다크림보의 이빨을 꽉 붙들고 있으니, 손으로 그 목 줄기를 잡아 가차 없이 뜯어내서 이빨을 뽑아버렸다. 그리고 이빨을 잃고 당황해서 들려지는 와중에 꼬리와 몸통을 흔들어 때리려는 독사의 머리통을 투란은 사정없이 입으로 가져가 물어버렸다.
금빛비늘이 맴도는 입술 사이에 독사가 끼워졌고, 걸걸하게 목구멍을 채우는 듯한 불길이 가릉거리는 울림과 함께 입술 사이를 채우듯이 뿜어져 나갔다.
바싹 구워진 독사를 뼈째로 으적거리며 씹으면서 투란은 다시 날개를 펼쳤다.
펄럭!
―또 시체 줍기 하려고?
쏜살같이 날아가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툴툴거렸다.
‘이런 행운을 놓치면 바보지!’
투란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넓게 펼친 채로 둘러보면서 찾아냈으니, 사양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날아서 타우곤과 드라고 사이에 내려선 투란은 먼저 타우곤의 머리를 한번 더 밟아줘야 했다. 으스러진 채로 반쯤 파여나간 머리로 땅에 흩어진 뇌수(腦髓)가 다시 모여들어 채우고 뼛조각이 맞춰지는 중이었으니, 이쯤 되면 힐링 팩터보다 상위수준이라고 할 만한 자기치유 능력이었다.
‘이거 목 잘려도 도로 들고 붙이는 놈 아냐?’
왠지 섬뜩함을 느끼며 투란은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영체화 능력 때문에 치유능력의 범위가 꽤 넓은 것 같긴 하다만…….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 드라고니아였다.
혀를 차면서 투란은 타우곤의 목 줄기, 등짝을 더 세게 밟아 부숴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