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8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83)
‘그냥 보면 시커멓고 뿔이 머리통에 붙은 타우루스인데…… 아, 너 이거 보고 바로 타우곤인 줄 어떻게 알았어?’
타우곤을 밟고 내려다보던 투란은 문득 의아해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머리, 목 아래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형상을 한 몬스터 타우루스…… 타우곤은 그와 다른 특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영체화인가 하는 능력도 드라고니아는 사용하기 전에 말하고 있었으니, 뭔가 보자마자 알아낼 수 있는 특징이 있을 터인데 투란으로서는 그런 부분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눈동자.
‘어?’
짤막한 대답에 투란은 밟아서 불거진 타우곤의 눈알을 짚어봤다.
손바닥으로 짚고, ‘파라블랙․잉크’를 흘려넣어 파악해봤지만, 몬스터답게 눈동자가 풀려서 눈알 위로 번져가는 모양일 뿐이었다. 동공이라든가 다른 부분은 그저 기본적인 눈알이라서 딱히 특징이 있지는 않았다. 시각도 딱히 특별한 영역을 보는 것 같지는 않은데…….
―타우루스의 눈동자랑 비교해봐.
‘음?’
이번에는 살짝 한숨을 쉬듯 말하는 드라고니아였다.
갸웃하면서도 투란은 문장 풍경 속에 담긴 타우루스 족장의 형상을 더듬었고, 그 눈동자의 형태를 살펴봤다. 바싹 말라서 오그라든 모양이 아닌 탱탱하게 부푼 멀쩡한 눈알, 그 위로 은근히 붉은 색채가 맴도는 짙고 선명한 갈색의 눈동자가 뚜렷한 원형으로 박혀 있었다.
‘어라?’
―그래, 타우루스의 눈동자는 짐승의 것 그대로야. 하지만 타우곤은 명력을 담은 눈동자가 원의 형태를 잃고 뭉개진 채이지. 흔한 몬스터의 특징이다만, 타우루스와 타우곤 사이에서는 결정적인 분별이 가능한 특징이다.
‘야, 잠깐! 드라고를 꿰뚫고…… 아니, 통과해서 지나갈 때는 동글동글하지 않았나?’
투란은 싸움의 광경을 되새기다가 퍼뜩 이상한 부분을 깨달았고, 바로 묻고 있었다. 조금 부주의하게 넘기기는 했지만 다시 기억해보니, 타우곤의 눈동자가 어느 순간에는 멀쩡하게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머리통을 으깨놓은 채로 눈구멍에서 불거져 나온 눈알의 눈동자는 확 풀어진 무늬처럼 보인다!
―깃들어 있는 명력이 발휘될 때는 동그랗게 뭉치고, 지금처럼 명력이 발휘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얼룩처럼 번진 꼴이 되지. 타우곤의 특징이다.
‘싸우는 동안 계속 변했구나.’
뒤늦게 프로브를 통해 봤던 광경을 되새기면서 투란도 알아차렸다.
눈가를 잔뜩 찌푸리고 으르렁거리며 두 마리 몬스터가 싸우는 광경에 집중하다 보니, 세심하게 그 눈동자의 형태가 변하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긴장하고 방심하지 말란 말이다. 사소해 보인다고 그냥 넘기지 말고.
드라고니아가 조금 점잖은 시늉을 하며 말했다.
타우곤의 어깨를, 등짝을 다시 한번 밟아 짓이기는 와중에도 입술을 삐죽거린 투란이 불쑥 묻는다.
‘근데 명력이란 거…… 유령처럼 되려고 발휘하는 건가?’
―시각의 영역도 다르다. 유령이 활동하는 위상(位相)을 볼 수 있게 되지. 이야기 들은 적 있지 않나? 인간 중에서도 영매(靈媒)로서 망령이나 유령을 보거나 그 외침을 듣는 경우 말이야.
‘에?’
움찔하는 투란이었다.
드라고니아는 그 낌새를 놓치지 않았다.
―너, 정말로 유령 무서워하는 거냐? 왜?
‘무, 무서워하긴! 그냥…… 상대하기 곤란하잖아! 몬스터도 아니고, 때려잡을 수도 없는 거니까.’
―뭐? 때려잡아? 몬스터가 아닐 수는 있지만, 왜 때려잡아?
‘너넨 유령 나오면 대체 어떻게 하는데?’
의아해하는 드라고니아가 의아해져서 투란이 물었다.
―몬스터가 된 유령, 그걸 보통 망령이라 한다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유령과 소통이 가능한 영매를 이용해서 원인이 되는 잔재(殘在), 집착을 제거해서 사라지게 한다만.
‘아, 설득해서 쳐죽인다고?’
투란은 되풀이된 ‘영매’란 말에 문득 스쳐갔던 이야기를 간신히 떠올리면서 중얼거렸다. 드라고니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한다.
―뭘 쳐죽여, 쳐죽이긴! 이미 죽어서 남은 잔재를 뭘 어떻게 또 죽여!
‘사라지게 한다며? 그게 그 얘기지 뭘.’
타우곤의 꿈틀거리는 팔을 발로 밟고 비틀어 부러뜨리는 채로 투란은 그 손아귀 너머 맨땅에 떨어져 아직도 펄떡대는 심장을 바라봤다. 그 심장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드라고는 입가에서 피를 토해내며 눈꺼풀만 꿈틀거리는 몰골로 쓰러져 있었다.
한쪽은 머리통 반쪽부터 등짝까지 너덜거리는 꼴이 되어 쓰러졌고, 한쪽은 흔적도 없이 심장만 적출당한 상황…… 냉정하게 이 결과를 낳은 싸움 광경을 되새겨봐도 드라고가 우세했지만, 죽고 사는 결투에서는 타우곤이 이겼다.
이대로 투란이 자리를 비우면 타우곤은 몸을 회복시켜 결국 다시 저 심장을 쥐고 일어설 터였다.
‘어라,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심장을 먹으려 했던가?’
뒤통수를 찢기는 와중에 타우곤이 보였던 몸짓, 손짓을 떠올리며 갸웃하니, 드라고니아가 바로 대답한다.
―필수적인 과정이다. 소모된 명력을 다시 채우기 위해서 말이지. 그러지 않으면 체력이 지속적으로 소모되는 것이 타우곤의 약점이기도 하고…….
‘헐? 그럼 이놈이랑 싸울 때는 일부러 유령 되게 했다가 심장을 못 먹게 해야 한다는 거야?’
―타우곤을 제압하는 방법으로 가장 상식적인 거지. 단번에 사지 절단하고 참수할 수 없다면 말이야. 그러고 나서 다시 소각하고 정화하는 과정도 거쳐야 하고…….
‘불사신?’
―타우곤은 수명이 짧아. 대강 십여 년 내외로 활동하다가 노쇠해서 죽어. 명력이란 특징이 없다면, 영체화란 능력이 없다면 그냥 빠르게 성장하고 빠르게 죽는 타우루스라서 쉬운 놈 소리 들었을 거야.
‘음, 그거참…… 애매한 놈이지만…….’
콰득!
뿔 사이를 내리밟으며 투란은 소리 내서 투덜거렸다.
“거참, 잠깐만 한눈팔아도 꾸준히 복구되는구만!”
―용의 숨결은 타우곤을 소각, 정화하는 좋은 수단이다만…….
드라고니아가 한 말은 투란을 멈칫하게 했다.
드레이크의 불꽃, 드래곤 브레쓰라고도 불리는 그 불길이 넘실거리는 숨결로 타우곤을 처단할 수 있다니…… 한데 다른 타우루스 역시 드레이크의 불길을 견딜 일은 없을 것 아닌가!
‘이게 약골이란 건지 아닌지.’
투란은 자꾸 복구되는 타우곤부터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 전에 조금 떨어진 주변에서 시끄럽게 쉿쉿거리고 통통 튀어다니는 독사 다크림보 몇 마리와 엉겨 싸우는 푸르딩딩한 두꺼비 떼가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파이로와 테라트를 이용해 해자를 파고 불의 장벽부터 둘러야 했다. 두 마리 몬스터의 결투장에 끼어들지도 못했고 쓰러진 다음에도 가까이 붙을 낌새는 없었지만, 척 봐도 드라고나 타우곤의 잔해가 위협이 아니라 느끼면 달라붙을 녀석들이니까.
‘묘하게 많은 녀석들이네.’
갸웃하면서도 투란의 손은 일단 타우곤의 뇌수를 파고들었다.
피와 살이 엉기고 뼈와 뿔의 단단한 촉감이 쥐어지는 사이, ‘천칭’의 붉은 고리가 그 본질을 향해 번져가니…… 타우곤은 뿔과 골격, 얇게 저며진 가죽, 흩날려 사라지는 터럭 사이에 진흙처럼 뭉친 쇳덩이 하나를 남기고 사라졌다. 투명한 티끌이 휘날리는 그 광경 속에서 투란은 문장의 풍경을 확인했고, 타우곤을 단단히 감금하는 심상을 품었다. 그다음 투란의 눈길은 다시 쇳덩이에 닿았고, 새삼스러운 의아함을 떠올린다.
‘얘도 있네? 타우루스 녀석들도 그렇고…… 얘네, 쇠를 먹고 되새김질하나?’
타우루스 무리 사이에서도 저 묘한 쇳덩이가 하나씩 나왔었다.
몬스터 에센스랑 관련이 없는, 그저 배 속에 담아둔 듯했던 기묘한 쇳덩이.
되짚어보니 이놈들이 단체로 쇠를 씹는 잔치라도 했는가 궁금해진다.
처음에는 그냥 돌덩이인가 했는데…….
―위장에 품고 있던 액화철(液化鐵)이 단단해진 거잖아. 타우루스가 광물질을 먹고 체내에서 합성시키는 거다만…… 몰라? 저걸로 도끼라든가 쇠몽둥이라든가, 들고 다니는 병기를 만들어 내잖아.
‘뭐?’
―너, 정말 몰랐어? 타우루스의 도끼에 대해서 몰라?
‘진짜야? 정말로 자기 몸으로 소화시킨 쇠로 도끼를 만든다고?’
―옷도 자기 입에서 토해낸 걸로 만든다만?
놀라는 투란을 더 놀라게 하고 싶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투란은 그 의도에 충실하게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가 뭔가 몸에 두르거나 무기로서 휘두르는 것, 대부분 조악하게 아무거나 걸쳤다거나 주웠다거나…… 혹은 인간에게서 빼앗았다거나 하는 경우였다. 고블린 중에서는 인간의 기술을 훔쳐 만든다는 경우도 있는 듯하지만, 지금 들은 바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길어질 것 같은데, 이대로 불 울타리 안에 앉아서 들어볼 테냐?
‘어? 아니, 나중에.’
드라고니아가 하는 말에 투란은 다시 주변에 주의를 기울였고, 파인 해자로 굴러떨어지다가 불타오르는 뱀과 두꺼비 무리의 치열한 전쟁을 알아차렸다. 몬스터 두 마리 눈에 안 띄려고 멀리 있던 녀석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영역 다툼이라도 벌이는 듯했다. 불을 겁내지 않고 저러는 건지, 적들을 불구덩이로 몰아넣으려 저러는 건지 많이 애매한 상태였지만 아무튼 물러서지 않고 참 잘 싸우는 중이었다.
덕분에 투란으로서는 얼른 이 자리를 정리하자는 기분이 더 짙어질 뿐이었고, 드라고를 다시 살피며 집중할 수 있었다.
‘이놈, 꽤 심한 상처가 많았던 녀석이네.’
망가진 눈알 쪽으로 돋은 뿔은 끝자락이 부서져 나간 듯했고, 청록의 비늘을 대신한 연한 새싹 같은 비늘이 길게 가로지르듯이 자리 잡은 부위가 몸 곳곳에 보였다. 쉽게 생각해도 역전(力戰)을 거듭해온 거친 흔적이었다. 심장을 잃은 지금도 손톱 끝, 발톱 끝이 바르르 떨리며 입가에서 토해내는 피와 눈꺼풀의 흔들림은 드라고가 완전히 죽지 않았다고 부르짖는 듯했다.
―삼킬 거라면 완전히 죽인 다음에 하라고 권하겠다만.
드라고니아는 아직 희미하게 살아 있는 낌새를 드러내는 드라고보다는 머리통이 날아가서 정신줄 놔버린 타우곤 쪽이 더 안전했다는 듯, 드라고도 그런 상태로 만들라고 권하듯이 말하고 있었다.
투란도 드라고의 온전한 다른 쪽 눈알이 가늘게 꿈틀거리며 자신을 노려보는 듯한 인상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여전히 핏방울을 뚝뚝 떨구는 심장을 주워 들면서 드라고의 두 눈가로 흔드는 채로 단호하게 대답한다.
‘드레이크 때랑 달라. 이 녀석에게 공명하는 능력 따위는 없잖아? 있다 해도 드레이크와 공명한 나를 어떻게 해볼 수는 없을 테고 말이야. 그렇지?’
―그렇기는 하지.
‘그럼, 됐어.’
심장을 드라고의 눈 사이에 얹으며 투란은 다시 한번 ‘천칭’에 집중했다.
피에 젖은 손에서 서서히 피어나는 붉은 고리가 채도(彩度)를 달리하며 심장 위로, 핏방울 위로 번져가며 드라고의 눈 속으로 스며들었다. 투명한 광채가 드라고의 뿔, 비늘 아래 가죽을 채워가며 서서히 흩어져갔다.
잠시 후, 투란은 드라고의 이빨과 손톱, 발톱, 청록색비늘과 흉터자국 같았던 연록 새싹빛의 비늘이 남겨지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문장의 풍경 속에서 드라고는 어떤 상처도 없는 온전한 두 눈, 두 가닥 뿔과 척추에서 가시가 돌출된 듯한 등짝, 새싹빛 따위는 전혀 없는 청록의 비늘이 가득 덮인 자태를 자랑하며 타우곤과 타우루스 족장 사이에 서고 있었다.
주변을 맴도는 뜨거운 열풍, 남겨진 비늘조각이 붙어 있어야 할 곳이 없어서 흩날리려는 듯한 것을 보며 투란은 몇 조각을 손으로 쓸어 올렸다. 손에 올려진 것의 감각은 청록색 비늘이 단단하고 연록새싹빛의 비늘은 유연한 것을 알려줬다. 하지만 어느 색이든 강철보다 강인하다는 점 또한 분명했다.
‘꽤 좋은 소재가 되겠네?’
투란은 에어로를 불러 드라고의 잔유물을 쓸어모았다.
팔뚝 사이가 열리며 블랙레온이 삐죽이 튀어나왔고, 그 속으로 드라고의 잔유물이 쓸려 들어갔다. 블랙레온을 다시 데몬스 러그 안으로 밀어넣은 다음, 투란은 가야 할 방향을 봤다.
여전히 와글거리며 상대편 무리를 불길이 넘실거리는 구덩이로 몰아넣으려는 듯한 독사와 두꺼비의 난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이렇게 떼로 나온 거야.’
새삼 궁금해지는 투란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그 호기심을 캐기보다는 한 걸음 디디며 파이로와 에어로에게 명령하고 있었다. 길을 열라는 그 명령이 닿자마자 불의 장벽은 불의 융단이 되어 한쪽으로 바람결과 엮인 채로 몰려나갔고, 그 앞에서 싸우던 독사와 두꺼비 떼를 한꺼번에 재로 만들었다.
서로 싸우며 물고 터지며 사나웠던 두 무리가 순식간에 갈라섰고, 도주했다.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겨우 깨달은 것처럼!
투란은 높이 뛰어올랐고, 폐허 속에 아직 흔적이 남아 있는 포석(鋪石)과 석벽(石壁)의 자취를 둘러봤다. 황무지의 먼지 속에 가라앉은 듯했지만, 여전히 고대의 흔적은 또렷했고 그 속에서 찾던 무늬를 볼 수 있었다.
뿔이 돋은 날씬한 그리폰, 포석의 무늬를 통해 그려진 거대한 문양을 통해 투란은 가야 할 방향을 확인했고 나아갔다.
‘기사단의 석상(石像)이 있다고 했었지…….’
간간이 보이는 크고 기묘한 뱀꼬리, 소뿔이 석벽과 굴곡진 주변에서 멀어지려는 듯한 분위기가 은근히 커지고 있었지만 투란은 이를 무시하고 도감이 알려준 이정표를 향해 나아갔다.
미궁의 문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