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9)
“그냥 어디까지 쏟아 내나 보자 하니까, 아주 신나게 지껄이고 있어! 5년 동안 입 처닫고 있다가…… 아, 이거 진짜 화나게 하네!”
키린은 한층 더 씩씩거리는 말투와 표정을 띠며 외쳤다.
이런 모습에 드라고니아, ‘드라코눔의 아칸’은 이제껏 키린이 보였던 심드렁하니 애매하고 어이없어하던 모습이 자기가 한 말을 의심해서가 아니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갑자기 또박또박 설명을 꺼내며 애를 죽이자는 소리를 조리 있게 해 대는 ‘드라코눔의 아칸’, 인간 사이에서 드라고니아라 불리는 자에 대해 기가 막혔던 것뿐이다!
그리고 이는 ‘드라코눔의 아칸’ 스스로를 되짚게 했고, 놀라게 했다.
“내가…… 이성을 되찾았어! 이럴 수가!”
“야, 너 진짜……!”
키린이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또 한 번 울컥하는 표정을 지었다.
순간 키린을 향해서 불꽃으로 이뤄진 머리 형상이 변명을 토해 낸다.
“몰랐다, 내가 이성을 되찾아 말을 하고 있는 줄……. 너무나도 심각한 상황이라 말을 해야 한다고 여겼지만…… 이럴 수가!”
“어이쿠!”
키린의 눈매가 가늘어지면서 ‘정말?’ 하는 듯한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드라코눔의 아칸’, 인간 사이에서는 드라고니아로 불리는 존재는 불꽃을 기반으로 새롭게 드러난 자신의 형상을 보다가, 목 아래로는 검게 물들어 타오르는 그림자색의 불꽃을 확인하고는 자기 할 말을 이어 나간다.
“광분의 마성으로 변한 나는 여전하군! 하지만 그래도 이성이 형상을 갖출 수가 있다니…… 놀라워!”
“그래, 나도 놀랐다.”
키린이 어이없어하며 툭 뱉어 냈다.
이러는 사이에 서서히 목 아래의 형상이 그려졌고, 어깨와 등 뒤로 솟은 황금색과 붉은 비늘이 집결된 듯한 날개와 두툼하고 강인한 가슴팍이 드라고니아라고 일컬어지는 반인반룡(半人半龍)의 형체를 갖추는 듯이 보였다. 형체가 뚜렷해짐에 따라서 가슴팍 아래에서 일렁이는 그림자 불꽃이 점점 짙고 어두워지기도 했다.
키린은 이성의 불꽃을 일렁이는 ‘드라코눔의 아칸’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고 묻는다.
“유지할 수 있어?”
“무리로군. 이 상황의 심각함 때문에 광분의 기세가 잠시 주춤할 수밖에 없는 꼴일 뿐이다.”
침착하고, 침울한 말투의 대답이 나왔다.
키린이 보다 침착하고 담담하게 다시 말한다.
“미쳐 날뛰는 꼴을 지우지 못한다 해도,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태를 따로 유지시킬 수 있냐고. 넌 용신족(龍神族)의 도시 드라코눔의 아칸이잖아. 정신력으로 안 되면 마법이라도 있을 것 아냐.”
“마법, 이성의 조각을 유지하는 마법이 있기는 하지만…… 안 돼. 너와 나의 상황과 처지를 고려해 볼 때…… 쓸 수가 없다.”
한숨처럼 좌절감이 깊이 배어 있는 대답이 나왔다.
키린은 그런 포기 따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묻는 소리를 꺼낸다.
“어떤 상황과 처지인데? 뭐가 문제라고? 너 이렇게 똑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말하고 있잖아. 5년간 보여 주지 않은 엄청난 회복이라고, 이거!”
“키린,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너를 보고 들으면서 느끼는 것은 질투와 시기다. 이성적으로 말하는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너라는 존재에 대해 질투하고 시기하고 있어. 이 검게 물든 것을 봐라. 나는…… 여전히 몬스터일 뿐이다. 드라코눔의 긍지를 더럽힌…… 추악한 드라고니아일 뿐이다.”
회한과 분노가 물씬 배어 나오는 대답을 들으면서 키린은 황금색 광채와 붉은 비늘이 번들거리는 형상 아래로 피어나는 검은 그림자의 일렁임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추해 보이지는 않아. 강해 보이지.”
툭 꺼내는 말이 불쑥 키린의 입에서 나왔다.
곧 길고 두툼한 입에서 푸르스름한 이빨이 보이며, 마치 쓴웃음을 짓는 듯한 소리가 대꾸한다.
“그건 몬스터 로드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겠지. 그리고 키린, 지금 중요한 것은 나의 이 추한 몰골이 아니야. 물론 너에게는 중요한 일이겠지만…… 우리보다 저 아이, 투란의 일이 더 급하다! 내가 이성을 유지하는 동안 확실히 해야 해. 키린, 저 애를 이 산맥 밖으로 내보내서는 안 돼! 죽여야 한다.”
“왜? 단지 투란이 무척 강할 거라는 것 때문에? 몬스터의 힘을 사용하는 몬스터 로드라서, 언제 광란할지 몰라서?”
삐딱한 키린의 말투가 잠시 불꽃으로 이뤄진 형상을 침묵하게 했다.
하지만 이 침묵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닌 듯, 잠시 뒤에 깊고 그윽한 소리가 보다 깊은 의미를 담고 나온다.
“그런 거는 인간에게는 문제일지라도, 우리 일족에게는 아니다. 내가 미쳐 날뛰었다고 해서, 드라코눔에서 따로 나를 정리할 자를 보내지 않았을 거야. 마찬가지로 저 아이의 위험함이 누군가 죽거나 도시가 좀 부서지거나 하는 정도라면, 나도 관심 없다. 저 아이는 세계를 가르고 뒤틀 정도의 위협이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키린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되묻고 있었다.
이에 이미 준비된 듯한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데몬 워, 그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나 들은 적 있지?”
키린의 고개가 살짝 끄덕여졌다.
산맥 깊은 곳, 인간이나 이 세상의 존재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만 아예 다른 세상에서 불러낸 존재라면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마도사들은 이계의 악마를 불러냈다. 그들을 부려서 저 안에 있다는 혼돈의 문을 닫아걸든가, 제약을 걸어서 조금이라도 약화시키기 위해서.
그 일은 결국 소환술의 불완전함 때문인지 악마들이 풀려나고 전쟁이 벌어지는 것으로 끝장났다.
키린이 어렴풋이 데몬 워에 대한 이야기를 더듬어 기억해 내는 사이, ‘드라코눔의 아칸’이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그 소환술은 우리 일족조차도 감탄할 정도로 완벽했다. 천상이든 지옥이든, 그 소환에 응한 자는 이 세상에 존재가 구현되는 순간, 꼼짝없이 소환자의 의지 아래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그 소환술을 사용한 마도사들의 생각은 정확했고, 그들의 계획은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완벽했다. 그 완벽한 계획의 시작이 악마들을 부려서, 저 암벽을 쌓은 일이었다. 혼돈의 문, 저 성궤가 뿜어내는 마력을 역이용해서 쌓는 암벽은 세상이 그 힘에 받는 영향을 확실히 줄여 줬지. 아다만티르의 암벽은 그렇게 세워졌고, 이 세상이 끝장나든가 아니면 저 혼돈의 성궤가 사라지든가 해야 아다만티르의 속성을 잃고 해체될 것이다. 암벽을 세우는 계획이 무사히 끝났기 때문에 사실 다음 계획도 별문제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우리 일족의 현자들도 그대로 성궤가 봉인되어 사라질 것이고, 이 세상을 헤집는 혼돈이 마무리 될 거라 믿었었다.”
잠시 말이 멎었고, 침묵이 맴돌았다.
키린은 기다리지 않고 묻는 말을 꺼내 재촉한다.
“그런데 그게 왜 실패했는데?”
“풀잎, 작은 열매가 박힌 풀잎이었다고 한다. 성궤 근처에 모든 준비를 갖추고 갔던 악마들의 발에 차인 작은 열매가 박힌 풀잎, 그것이 그 완벽했던 소환술의 모든 구속을 해체해 버렸다는 거야. 게다가…… 원래 그 구속이 해체되면 소환술 자체가 해제되면서 악마들은 본래 자신들의 세상으로 귀환되어야 했는데, 이 세계에 붙들린 것처럼 남겨지고 말았다. 그 때문에, 악마들은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고향을 재현하려 했다. 하지만 그 고향이란 이 세상의 입장에서 보면, 다름 아닌 지옥이었지. 그게 그 전쟁의 진짜 원인이었다. 이 세상을 자신들의 고향, 지옥을 만들려는 악마들과 타협이고 뭐고 할 여지가 없었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키린, 작은 풀잎이었다. 그저 열매가 박힌 작은 풀잎이 현명하기 이를 데 없는 대마도사의 심오한 소환술을 완벽하게 깨 버리고…… 이 세상에 재앙을 불러온 거야.”
키린은 말을 멈추며 똑바로 자신을 보는 검은 눈동자를 마주 봤다.
자신의 광기마저 억누른 채로, 세계를 수호하고자 하는 강인한 의지가 기묘한 불꽃이 되어 그 눈동자를 휘감고 있었다. 도저히 꺾을 수 없는 듯한 그 의지를 향해 키린은 일단 되는대로 던져 보듯 말한다.
“음, 그런 일이었나. 그런데 투란은 몬스터 로드잖아. 몬스터 로드에게는…….”
“심연의 각인을 기반으로 갖춰진 몬스터 엠블럼! 그러니까 혼돈을 소모하고 섭리로 정제(整除)하는 존재로서 별문제가 없다? 틀렸어, 키린. 몬스터 로드이기 때문에 그 힘을 마구 휘둘러 댈 수 있단 말이야! 세계의 섭리를 섭리로 파괴하는 자가 될 거야!”
이 말에 키린이 잠시 깊이 생각해야 했다.
‘드라코눔의 아칸’은 세상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오래전에는 알려져 있었다 해도 이제는 완전히 잊혔다 할 수 있는 고대의 마법까지 거론하고 있었다. 고대 왕국의 성립보다도 먼저 완성되었다고 하는 대마법 심연의 각인, 몬스터 엠블럼의 근본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고대 왕국의 마법을 해석해 내는 데 성공했고, 그것으로 에테온이 새로운 왕족을 받아들이게 한 대마도사 슐테그조차도 몬스터 엠블럼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이 또한 잊힌 고대의 마법이니 마법사로서 호기심을 갖고 도전해 볼 만하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던지는 충동질에도 슐테그는 전혀 넘어가지 않았다.
키린이 그 단호함을 신기해하자, 궁정 마도사로서 왕자인 키린에게 마법에 대해 가르치던 슐테그가 슬쩍 흘린 말은 간단했다.
“이미 고대 마법을 전부 손에 넣은 대마도사가 있어. 왕국의 수호에 관련된 마법은 내가 얼마든지 손대도 되는데, 몬스터 엠블럼 쪽은 관심 끄라고 하더라고. 아직 내 실력이 안 되는 부분이라 했지. 나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
슐테그가 새로운 호기심을 일으키기에는, 왕국에 감춰진 마법이 너무 많다고 했다. 그 해석과 재현에만 몰입해도 남은 생애가 모자랄지 모르기 때문에 다른 쪽으로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것이 슐테그가 키린에게만 털어놓은 사정이었다.
그리고 슐테그는 고대의 지식을 통해서 몬스터 엠블럼에 대해 알아낸 것을 많이 알려 줬다. 왕자라는 지위보다, 몬스터 로드로서 아주 특이한 길을 걷고 있는 키린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키린, 왕자고 뭐고 필요 없어. 몬스터 로드로서 심연의 각인을 품었다는 것만으로도 너는 영웅의 후예가 되는 거야. 세계를 구하려 한 용사들의 뒤를 잇는 자인 거지! 아, 정말 이 이야기를 세상에 다 털어놓고 싶지만…… 하아, 그러면 안 된다니. 하지만 키린, 저 미친 카엘 아저씨도 알고 있으니까 너도 알아 두라고!”
에테온의 대마도사가 그렇게 알려 줬던 지식을, ‘드라코눔의 아칸’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광기조차 억누르는 이성을 드러내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참, 곤란하네.’
키린은 슬쩍 투란 쪽에 감각을 돋우었다.
폭신한 흙, 따스한 불에 휘감겨서 상쾌한 표정을 지은 채로 투란은 데굴거리면서 아주 편안하게 잠에 빠져 있었다. 먹고 자고, 정말 모든 것을 키린에게 맡긴 모습으로 저렇게 쉬고 있었다.
그런 투란을 가만히 느끼다가 키린이 불쑥 중얼거렸다.
“그런데 왜 저 녀석은 50년이 지났다고 하는 거지? 설마 내가 여기서 이 미친 드라고니아를 붙잡고 보낸 시간이…… 아, 투란이 거짓말을 한 거야! 저 깊은 곳에서 나오지 않았…….”
“아니거든!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발끈한 소리가 바로 검게 일렁이는 그림자를 살짝 머리 아래까지 끌어 올린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키린이 뚱하니 바라보는 눈길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드라코눔의 아칸’이 말을 잇는다.
“키린, 저 애가 두르고 있는 뱀 가죽! 저 뱀의 왕족 껍질로 주머니까지 달고 있는 거, 그 속에 심상치 않은 뭔가 있다는 것은 너도 느끼고 있잖아! 뱀의 왕족 정도 되는 마수의 가죽이 아니면 바로 튀어나왔을 것을 저 애가 집어 왔다! 느끼고 있잖아, 저건 정말로 아다만티르의 암벽 가까이가 아니면 얻을 수 없는 거라고!”
“음, 하지만 50년이라고 뻥을 치는…….”
키린은 말을 살짝 돌리면서 투란이 거짓말을 한 쪽으로 몰아가려 했다.
사실은 50년이니 뭐니 하며 뻥을 친 것뿐이고 매우 혹독한 꼴을 겪은 몬스터 로드니까 별 위협이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드라코눔의 아칸’은 보다 단호했다.
“그것도 뻥이 아니야. 저 애는 분명히 너와 내가 에테온을 떠나고 50년이 흐른 세상에서 왔을 거다.”
“그럼 내가 보낸 5년이……!”
“아니, 우리도 분명히 5년만 이곳에 머물렀다. 너의 시간 감각은 잘못되지 않았고, 이곳은 시간의 금역이 아니야.”
“아니야? 그럼 대체…….”
“여기는 시간의 교차역(交叉域)이다.”
“응?”
키린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한숨처럼 ‘드라코눔의 아칸’이 설명을 잇는다.
“이 세계의 아주 희귀한 곳 중의 한 곳이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각기 다른 흐름으로 꼬여서 만나는 곳이라고. 금역처럼 완전히 다 갈아엎어 버리고 독자적인 시간의 흐름을 휘둘러 대는 곳은 아니지만, 잠시 이곳에 머무는 자는 자신과 다른 과거나 미래의 존재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엇갈리며 공유되는 곳이야. 우리 일족은 이런 곳을 확보하고…… 미래의 존재를 통해 예정된 계획을 확인하고는 했다.”
“그게 뭔 소리야?”
키린으로서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드라코눔의 아칸’이 씁쓸한 말투로 조금 더 쉬운 말을 찾아 꺼낸다.
“이곳에서 벗어나면 너는 5년이 지난 세상으로, 저 애는…… 50년이 지난 세상으로 간다는 말이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