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9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86)
Chapter 158. 미궁 Ⅰ
‘아무것도 없나?’
투란은 어둠 속을 두리번거리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메아리치는 발걸음 소리는 오직 투란의 발아래에서 울렸다가 돌아오는 것뿐이었고, 그 미묘한 반향(反響)에는 다른 흔적이 끼어들지 않았다. 뭔가 몰래 움직이는 낌새도 전혀 없었고, 다양한 시각 속에 포착되는 것이라고는 벽과 바닥, 간간이 흩어진 돌조각이 전부였다.
―아무것도 없는 거 맞는 모양이다.
‘에?’
드라고니아가 시원하게 하는 말에 투란은 조금 당황했다.
분명히 도감에는 지하 1층, 미궁의 입구와 직접 연결된 첫 번째 층부터 숨어 있는 라미아나 타우루스에 대해서 대처해야 한다고 했다.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지하 1층에 머무는 녀석들은 빛을 낯설어해서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이나 되어야 잠깐씩 미궁 입구 근처를 흘깃거리는 경우라 했다. 안에서 자기네끼리 잡아먹다가 견딜 수 없으면 그제야 미궁 밖으로 터전을 옮기는 몬스터들, 그중에서 아직 버티는 녀석들이 바로 지하 1층에 숨어 있다고.
‘진짜 없는 거였어?’
혹여나 시각을 완전히 속여 넘길 수 있는 능력, 그런 은폐가 가능한 몬스터가 아닌가 해서 투란은 자신의 여러 시각을 중첩시키며 이질적인 풍경을 찾고자 했다. 그런 한편으로는 드라고니아가 프로브를 여러 방향으로 뿌리고, 주변을 맴돌게 해서 순찰을 하게 했고.
한데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니…….
그렇다면 이 지하 1층은 그저 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가 5미터이며 좌우로 6미터, 혹은 7미터가량의 폭을 지닌 통로가 이리저리 얽히고 섞인 미로일 뿐이었다. 이 미는 통로 사이 틈새가 방처럼 자리 잡은 곳이 여럿 있었고, 여기저기가 파손된 채로 방치된 채로 텅 빈 것이다.
대단한 함정이나 위험이라고는 몬스터뿐인데 그조차 없다면…….
―없다. 뼈다귀라면 여기저기 흩어진 채다만, 데드워커가 되어 움직일 낌새 따위는 전혀 없어. 언데드의 흔적도 없고.
드라고니아가 다시 한번 프로브를 순찰시키면서 대답했다.
‘그러면 그냥 2층으로 바로 내려가면 된다는 거네?’
투란은 도감에서 본 지하 1층의 형태를 되새기면서 생각했다.
이 지하 1층은 사방이 백오십여 미터인 모서리를 지닌 네모 상자였다.
천장이 대략 15미터 정도 되는 암반이란 점이 조금 특별할 뿐인 비어 있는 미궁, 2층으로 내려가는 입구까지의 길 또한 도감에 적당히 실려 있었다. 이곳을 거친 수백 년 전의 미궁 도전자들이 남긴 기록에서 발취하고 조합해낸 지도는 대략 지하 4층까지의 미궁을 담고 있었다. 내려갈수록 지도에 그려진 범위는 적고, 미궁의 크기는 커진다는 경고와 함께.
―딱히 걸리적거릴 것이 없으니 그렇겠지.
투란의 생각에 드라고니아도 동의했다.
투란은 조금 느슨하게 긴장을 풀고 어깨를 돌리며 보다 차분하게 걷기 시작했다.
어둠 속으로 울리는 것은 담담한 발소리뿐이었고, 여전히 여러 가지 눈에 띄는 풍경에는 변화가 없었다. 때문에 투란은 미궁에 도전했던 이들이 도달했던 최하층, 5층에 대해서 기억을 더듬으며 검토했다.
지도에 그려져 있지 않은 5층, 거기까지 도달해서 살아 돌아온 파티는 내려가자마자 바로 돌아섰고 미궁에서 탈출했다. 내려가서 바로 던진 횃불에 성난 타우루스 몇 마리가 흉악하게 포효하며 덤벼든 탓에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했다. 그대로 지하 3층을 거쳐 탈출하려 했다면 몰살당했을 테지만, 그 파티는 미궁을 얕보지 않고 적절한 마법물품을 미리 준비해서 단숨에 미궁 밖으로 전이(轉移)해서 도망쳤다고 했다. 그리고 미궁의 4층까지 자신들이 만든 지도와 경험을 팔고 은퇴했다는…… 몬스터 헌터로서 마지막 도전을 마치고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딱히 이상할 것 없는 이야기였다.
지하 5층의 미궁은 그렇게 도전자를 물리치고 어둠에 싸인 채 밝혀진 부분이 없다고 하면 끝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상아탑과 헌터 길드는 또 다른 도전자 파티에 대해 기억했다.
5층으로 내려갔고, 6층의 입구까지 도달했다면서 자세한 정황과 기록은 나중에 전하겠다고 가격을 협상해보자는 메시지를 남긴 채로 사라진 파티…… 하나둘이 아닌 거의 열 몇이나 되는 파티들이었다.
그들에 비하자면 5층에 내려가자마자 돌아온 이들은 겁이 많았고, 약했다고 할 수 있었다. 혹은 위험을 미리 회피한 현명한 이들이었다고 할 수도 있었다. 어쨌든 5층에 도달해서 더 전진한 이들이 남긴 지도는 2층이나 3층 정도가 고작이었고, 4층부터는 상하층의 출입구만 대충 표기해놓든가 한 것뿐이었다. 그나마도 전진하기 전에 만약을 대비해 남겨둔 유물에서 찾아낸 기록이었는데…….
‘왜 비어 있는 걸까?’
투란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 일이었기에 그 원인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글쎄…… 뭐가 있어야 추측이라도 해보지. 이렇게 텅 빈 채라면 완전히 엉뚱한 상상밖에 할 것이 없군.
‘엉뚱한……? 무슨 상상인데?’
―나가기 싫어하는 몬스터, 낮이 싫고 오직 어둠만을 좋아하는 놈이 아래층에서 올라오며 타우루스도 라미아도 모조리 잡아먹고 도로 내려갔다든가, 밖에서 들어온 놈이 라미아나 타우루스를 몰살시키면서 내려갔다가 메듀시아를 만나 돌이 된 채로 다시 나올 수 없게 되었다든가…… 그럴듯한 정황은 얼마든지 꾸며볼 수 있잖아.
‘흐흠…… 여기 대체 몇 층이나 될까? 층마다 비슷한 넓이에다가 비슷한 높이로 꾸며져 있는 거라면…… 이 바닥도 저 천장처럼 십여 미터짜리 두께일까?’
―그건 아니야. 최상층의 천장은 지상과 미궁을 완전히 격리시키려고 일부러 두껍게 꾸민 거고, 1층과 2층을 나누는 격벽의 두께는 기껏해야 3, 4미터…… 2미터 14센티로군.
상상과 추측 속에서 어림잡던 드라고니아가 느닷없이 정확한 수치, 2미터 14센티를 말했기에 투란은 어이없어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정확해지냐?’
―구멍이 뚫려 있어.
‘에?’
―조금 전까지 없던 구멍이야. 이 벽 너머다.
‘어?’
프로브, 투란이 걷는 길과 다른 길을 택해서 통로의 벽 너머로 움직이던 프로브로부터 전해오는 감각 정보가 분명하게 바닥에 뚫린 구멍을 알려주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포착되지 않는 구멍이었다.
투란은 발을 멈췄고, 프로브에 감각을 집중해서 구멍을 살피다가 한번 더 놀랐다.
‘매끈한데?’
뭔가로 때려부수거나 강제로 헤집어 파낸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구멍이었다. 마치 물렁거리는 것을 고스란히 도려낸 듯한, 바위조차도 단숨에 베어낼 수 있는 날카로운 뭔가 잘라서 끄집어낸 듯한 모양이었다. 단지 잘라낸 모양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 네모도 동그라미도 아닌 들쭉날쭉한 괴상한 꼴인데…….
―투란, 암철(暗鐵)이란 광물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냐?
드라고니아가 불쑥 묻고 있었다.
‘암철? 혹시 어둠의 쇠인가 뭔가 하는 거?’
―그래, 다크니트, 다크니투스라고도 하는 거 말이다. 얼마나 알고 있지?
‘그런 식으로 부르는 거는 못 들어봤고, 어둠쇠라든가 어둠돌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불린다는 말은 들어봤어. 어? 아, 그게 뭐냐는 이야기라면…… 무지하게 튼튼하고 단단하면서 찌그러지는 쇠인데, 햇살 아래 놔두면 처음 가공한 형태로 되돌아간다는 정도? 베어내거나 썰어내면 어쩐다는 얘기까지는 모르겠고. 근데 그게 왜?’
―이 미궁을 구성하는 소재로 쓰였다, 이 미궁 전체가 암철로 되어 있단 말이지.
‘뭐?’
투란은 당황했다.
재빠르게 다시 벽과 바닥, 미궁을 구성하는 석재(石材)를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모두 회색(灰色), 잿빛바위 그랑츄의 살갗을 떠올리는 색채였다.
어둠에 물들어 있었지만, 근접거리에서 발휘된 드레이크의 시각은 분명하게 회색을 포착할 뿐이었다. 여기저기 패인 흔적에서는 살짝 검푸르거나 검붉은 색채가 엿보이기는 했지만, 벽과 바닥은 기본바탕이 회색인 것은 아주 분명했다.
의아한 투란을 향해 드라고니아가 다시 말한다.
―도색(塗色)된 암철이다. 잘 모르는 거냐? 암철은 제대로 도색하면 그 색채를 노출된 표면에 계속 유지한다. 몇 백 년이 지나든 말든 암철이 소멸하지 않는…….
‘그거 말고! 이 미궁이 통째로 암철로 만들어졌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암철의 도색에 대한 이야기를 싹둑 자르면서 투란이 으르렁거렸다.
이는 드라고니아를 어리둥절하게 한 모양이었다.
―응? 무슨 말이냐? 미궁이 통째로 암철로 조성(造成)되면 안 될 이유라도 있어?
‘야! 암철이라면, 어둠쇠라면 엄청 구하기 힘든 거 아니냐고! 아다만투스처럼 희귀한 거잖아! 그런데 이렇게 미궁을 만들 수가 있냐고!’
투란이 다시 으르렁거렸다.
분명히 샤오 할배가 했던 말이었다.
“암철은 이제 세상에는 아마 없을걸. 워낙 희귀한 거니까. 여태껏 남아 있는 고대 유물에서 뜯어내서 고쳐 만드는 게 아니라면, 새로운 암철로 뭔가 만들어지는 경우는 없을 거야.”
샤오콴 마을까지 찾아와서 희귀광물을 찾는 이에게 분명히 그리 말했었다.
춤추는 산맥의 깊은 곳이라면 온갖 희귀한 것이 ‘우연’히 생성되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까,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 없다 해도 샤오콴 마을에서는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왔던 상인에게 말이다.
투란이 그 기억을 되새기며 내던지는 물음에 드라고니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대답을 한다.
―뭔 얘기야? 암철의 연성술(練成術)이야 에아본 왕국과 함께 사라졌다지만, 그때 만들어진 암철 광맥은 아직 여기저기 남아 있을 텐데? 찾는 거야 금광 찾기보다 까탈스럽기는 하다만…….
‘연성술? 야, 설마 암철을 연금술로 만들어냈다는 말이야?’
―당연히…… 모르는 거냐? 음…… 암철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야. 간단히 말하자면 에아본 왕국에서 제조법을 알고 있던 마법의 광물이다. 에아본 왕국의 유물 중에서, 그 폐허 속에서 암철 소재로 된 것이 많이 나오는 까닭이 그 때문이지. 하지만 이렇게 미궁 전체를 암철로…….
‘잠깐! 조용히.’
투란은 몸을 낮추면서 경계하는 자세를 취했고, 드라고니아의 이야기를 멈추게 했다. 드라고니아 또한 미궁의 소재에 대해 떠들 상황이 아니란 것을 바로 파악한 듯, 말을 멈췄다.
이런 경계를 하게 한 은은한 괴성은 아련하게 먼 곳에서 메아리쳐오는 듯했다.
더불어 저 아래편 어딘가에서 뭔가가 벽을 사납게 치는 듯한 기묘한 분위기도 느껴졌다. 암철로 이뤄진 2미터 14센티의 바닥, 그 너머에서 어떻게 저런 분위기와 아련한 괴성이 전해지는 것인가?
투란은 오래 의문을 품고 있을 수가 없었다.
바로 몇 미터 앞에서 갑작스럽게 툭 튀어나오는 손을 본 탓이었다.
투란이 나아가는 방향, 통로의 왼쪽 벽에서 나온 손이었다.
벽이 뚫리거나 무너지거나 하지 않았고, 그냥 훤히 열린 허공이란 것처럼 두꺼운 털가죽에 뭉툭한 손톱을 지닌 손이 나왔고 그와 비슷하게 털가죽에 덮인 ‘인간의 발’도 나왔다. 그다음에는 굵게 휘어지는 뿔을 지닌 소머리가 나왔다.
음므흐흣.
소머리가 뿔로 허공을 휘젓듯이 갸웃거리며 콧김을 내뿜는 소리가 요란할 때, 드라고니아가 신음하듯 흘리는 말이 투란의 뇌리에 울렸다.
―이차원(異次元)…… 전이!
투란은 문득 화이트 아우터를 떠올렸다.
지금 벽을 나서는 타우루스, 눈두덩이 부어올라 완전히 감긴 괴상한 몰골로 킁킁거리며 어둠을 더듬겠다는 듯이 코를 찡긋거리는 녀석은 마치 화이트 아우터가 만들어낸 이질적인 영역에서 나오는 듯했다. 금방 자신이 겪은 화이트 아우터 때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자각했지만, 투란에게는 분명히 그때의 경험을 되새기게 해주는 ‘뭔가’가 느껴졌다.
그리고 투란의 냄새를 맡은 타우루스가 완전히 통로에 서면서 몸을 돌렸을 때, 마주 선 녀석의 왼쪽 팔을 보며 투란은 또 다른 기억도 되살렸다.
“늪 촉수……?”
촉수 거머리라고도 하는 것이 타우루스의 왼쪽 팔을 감싸 쥐듯이 덮고 있었다. 팔꿈치 언저리부터 없는 불구의 왼팔이었는데, 늪 촉수라는 몬스터가 무슨 마개라든가 붕대처럼 그 절단부위를 꽁꽁 싸매고 있는 상태였다.
그 광경을 보다가 투란은 다시 그 발 언저리를 봤다.
역시 ‘인간의 발’에 털가죽이 덮인 모양이었다.
‘이놈, 타우루스 맞나?’
투란에게 새로운 의문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오리지널, 타우루스 오리지널이다. 암소나 인간 여성을 이용해 세대를 이은 경우가 아닌, 황금왕의 보물궁전을 수호하는 타우루스의 원형 몬스터, 최초의 세대가 저렇게 생겼지.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타우곤과 타우루스 족장의 발 모양을 되새김질해보려는 사이에 말하고 있었다. 그 안에 뭔가 복잡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었기에 투란에게는 제대로 그 의미가 전해질 수는 없었지만, 투란은 더 이상 그 이야기를 파고들 수가 없었다.
음므으으? 음므어엇!
탐구 대상이어야 할 녀석이 저리 외치면서 송아지 이빨의 흔적 따위는 전혀 없는 송곳니 가득한 아가리를 열고 덤벼드는 중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