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9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88)
‘긴 얘기냐, 짧은 얘기냐?’
슬슬 뒷걸음질 치면서 투란이 소리 없이 말했다.
타우루스를 토해낸 벽면은 조금 더 출렁이며 살짝 더 빠르게 투란에게 다가오는 중이었다. 뭔가를 토해냈으니, 이제 뭔가를 삼키겠다는 듯한 의도가 느껴졌고 그 대상이 투란 자신인가 아닌가는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으니 뒷걸음질 치는 셈이었다.
―이차원 전이를 일으키는 늪이다! 아무 데나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상을 일으키는 몬스터야! 아니, 저거 제압되었다고 들었는데 왜 여기 튀어나오는 거냐고!
‘제압? 아, 긴 얘기야? 그럼, 일단 튀고 나서 얘기하자.’
투란은 감각을 집중해서 출렁거리는 벽면이 바닥으로 번지며 다가오는 것을 파악하다가 냅다 뒤로 뛰면서 격렬하게 불평하는 드라고니아에게 대꾸했다. 아무래도 복잡한 이야기는 이 상황에 전혀 도움이 될 듯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출렁이면서 번져오는 ‘뭔가’는 벽과 바닥, 암철로 구성되었다는 미궁의 면모를 싹 무시하듯이 투란을 향해 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속도는 투란이 빨라진 것보다 더 빨랐고, 투란의 발이 내려서는 자리를 이미 차지하고 있었다.
‘썩을…… 아, 이거 늪이라고 했지?’
출렁임이 벽이나 바닥에서 벗어나 공중으로 쏟아질 듯한 것을 알아차리며 투란은 드레이크의 날개로 훌쩍 더 멀어지려던 것을 멈추며 물었다. 순간적으로 투란의 심상을 엿본 드라고니아가 급하게 외친다.
―헛, 안 돼! 투란, 안 돼!
그 외침이 투란의 마음을 울릴 때, 이미 투란의 발끝은 살짝 출렁이는 면과 닿고 있었다. 바로 투란의 입에서 짧은 소리가 튀어나온다.
“으?”
투란의 발가락부터 허벅지까지 갈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피 한 방울 나지 않았고, 속살 한 점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갈라진 살 속에서 뼈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절단면이 출렁거리는 꼴이 벽면이랑 똑같았다.
그렇다고 고통스러운가 하면, 아예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갈라진 부분이 어디론가 사라진 듯하다는, 근거 없는 생각만 떠오를 뿐이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서 투란은 발끝에 형성시켰던 ‘작은 돌’의 감각이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발가락이 갈라지며 ‘작은 돌’도 갈라져 있었는데, 그로부터 울려오는 독특한 감각이 ‘나는 갈라지지 않았다.’라고 알려주는 느낌이었다.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이런 것을 뭐라 설명해야 할지 투란은 몰랐다.
다만 몬스터 로드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명확하게 깨닫고 있었기에 투란은 그렇게 했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이 강렬하게 투란의 몸에서 맥동하며 퍼져나왔다. 몬스터가 무엇이든, 몬스터 로드는 자신의 힘으로 그대로 맞받아치는 것이 기본이므로.
우우웅, 지이잉.
미궁 어디선가에서 일어난 작은 울림이 명쾌하게 투란에게 느껴졌다.
‘발가락.’
투란은 그 울림이 자신의 발가락, 거기에 맺힌 ‘작은 돌’인 것을 ‘알았다’.
―그건 치우라…… 젠장, 포위당했다! 투란!
드라고니아가 ‘작은 돌’ 스웜 하트에 대해서 반대하다 말고 투란에게 전후좌우, 상하의 풍경을 투사(投射)해줬다. 앞에서 밀려오던 벽면의 출렁임이 투란의 주변 모든 방향에서 일어나 덮쳐오는 광경이 바로 투란의 마음에 비쳤다. 마치 분해된 상자의 각 면이 출렁대며 다가오는 듯했다. 모든 방향에서 바로 투란을 덮치겠다는, 그럴 의도가 없어도 그런 결과를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투란은 반사적으로 이에 대응했다.
왼팔은 밖으로 뿌리며, 마그마 로드가 만들어낸 유틸리티 밴드로부터 후크 라인이 뻗어나갔다. 아직 멀쩡한 벽면을 향해 쏘아져 나간 후크 라인은 거기에 닿기도 전에 소용돌이치듯 갈라지는 가지를 뻗어냈고, 그물처럼 여러 방향으로 번지며 미궁의 벽과 바닥, 천장에 마구 들러붙었다.
오른손은 좀 더 크고 두꺼운 ‘악마의 심장’이 되어 쥐고 있던 늪 촉수를 덮어 담았다. 늪에서 만날 경우에 늪 촉수―거머리 몰골을 민달팽이처럼 웅크리게 하고 감싸듯이 삼켜놓는 형태―를 그대로 흉내 낸 셈이었다. 당장 몬스터 엠블럼으로 삼키지 않고 일단 팔뚝 속에 담가 보존하는 셈이었다.
그다음의 변화도 신속했다.
벽에 들러붙은 후크 라인의 끝에서 시커멓게 번져간 잉크빛은 곧바로 마그마 로드의 결정으로 변화하며 부풀었고, 마그마 로드의 결정으로 이뤄진 ‘악마의 심장’이 맥동하기 시작했다. 후크 라인에서 갈라져 나간 가지, 아라크녹스 왕의 감각으로 뻗어낸 실가닥 또한 닿은 곳에 번지면서 조그맣게 맥동하는 ‘심장’의 형태를 꾸몄다.
팽팽한 후크 라인을 느끼면서 투란은 두 팔을 가슴으로 모았다.
곧바로 촉수 거머리를 머금은 오른팔이 부풀며 오러 몽거의 팔뚝이 되었다.
이렇게 움직일 생각은 전혀 없이 뭐가 오든 버틴다는 윗몸의 자세를 갖추면서 투란의 배꼽 아래는 드라고니아의 괴성이 터지게 하는 형상으로 변하고 있었으니…….
―투우우우라아아안! 그딴 짓 하지 말라고오옷!
‘작은 돌’이 ‘큰 돌’이 되는 상황이었다.
이제까지처럼 손바닥 한 귀퉁이, 손가락 끝자락에 맺힌 꼴이 아니라 배꼽 아래의 하반신을 모조리 스웜 하트를 형성하고 있었다. 강렬한 감각이 투란의 마음에 그대로 스며왔고, 투란은 자신이 제대로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발가락 끝에 맺힌 작은 조각일 때와 다르게, ‘큰 돌’이 돼버린 스웜 하트는 투란의 갈라진 몸이 사실은 갈라지지 않은 채로 전혀 다른 공간에 점유된 채란 것을 선명하게 느끼게 해줬던 것이다.
하지만 그 감각을 이용해 뭘 하기 전에 머리 쪽에서 내려온 출렁임이 투란을 삼키고 있었다.
“잉?”
투란은 갑자기 자신이 어디론가 불쑥 내밀어졌다는 것을 알고 짧은 소리를 냈다. 동시에 오른팔이 스윽 갑자기 머리 위로 치고 올라가는 것을 알고 흠칫해야 했다. 오러 몽거의 형상은 아직 투란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슴팍에 대고 고정하듯이 형성했다.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머리 위에 뭐가 있나 내밀듯이 치고 올라가는가?
“으크큭!”
뒷골이 땅기고 목과 가슴, 상체 곳곳에서 쥐 나는 듯한 묘한 감각이 투란의 신음을 쥐어짜 냈다. 그 까닭은 완전히 덜렁거리듯이 위로 늘어지는 오른팔의 몰골을 통해 바로 알 수 있었다.
위아래가 뒤집어진 탓이었다.
투란은 어딘가의 바닥으로 자신의 윗몸이 툭 튀어나왔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천장에서 바닥을 향해 툭 튀어나온 채였다. 위를 향해 고정한 오른팔은 당연히 아래를 향해 떨궈진 것이고…….
이런 소소한 감각의 혼란과 착오를 투란은 바로 잊어야 했다.
도도한 ‘작은 돌’…… ‘큰 돌’이 된 스웜 하트가 여기저기 들쑤시면서 격렬하게 파악해내는 감각이 순식간에 투란의 마음을 가득 채운 탓이었다. 그 감각 속에서 투란은 격하게, 소리도 못 내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 대체 뭔 늪이야?’
온갖 것…… 온갖 풍경이 뒤섞이고 있어서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원래 늪이라 하면, 물이 고인 곳에 적당히 끼어든 이물질이 걸쭉하게 섞인 채로 고인 것이라 해야 하는데…… 물이 없었고 이물질 대신에 풍경이 뒤죽박죽으로 엉킨 채 느껴질 뿐이었다!
과연 이걸 늪이라고 해야 하는가?
새록새록 피어나는 의혹 속에서 투란은 보다 적극적으로 스웜 하트, ‘큰 돌’의 지각(知覺)에 집중했다. 맹렬하게, 돌이라 불러도 돌이 아니란 것처럼 맥동하며 스웜 하트는 이 괴상한 늪의 ‘맛’을 보고 있었다. 즉, 이것이 늪이라 불리는 현상과 어느 정도는 일치한다는 것인데…….
‘야, 아까 뭐라고 했었지? 이차원?’
―이 얼빠진 놈아! 소용돌이 늪 같은 거라고! 아니, 그보다 더 악질이지! 이건 몬스터라서 아무 곳에나 불쑥 튀어나와서 공간을 뛰어넘게 하고 뒤섞는 거란 말이다! 어디에서 끌어다가 어디로 처박을지 전혀 모른단 말이야!
‘소용돌이 늪?’
투란은 퍼뜩 떠올렸다.
‘혼돈의 늪’에 빠져 삼켜졌을 때 뒤엉킨 채로 보였던 그 풍경들…….
그런 풍경들이 조각나서 마구 뒤섞이고, 풍경에 담긴 것들은 여기저기 삐죽삐죽하는 중이라면? 물을 바탕으로 뭔가 섞는 대신에 화이트 아우트처럼 자신만의 영역을 바탕으로 그런 풍경들을 제멋대로 섞는 것이라면?
지이이잉, 우웅!
‘큰 돌’이 투란의 사고(思考)에 반응했다.
마치 진실을 간파했다는 것처럼!
이제는 더 더듬을 필요가 없다는 듯!
투란은 곧바로 ‘큰 돌’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오롯한 이차원의 영역 속에 세상의 파편처럼 보이는 온갖 풍경을 뒤섞어 품고 있는 기이한 괴현상…… 바로 이 늪의 정체였다.
악의(惡意)도 선의(善意)도 없었다.
그저 세상에 덩그러니 던져졌으니, 할 수 있는 짓을 한다.
여기 잠깐 기웃, 저기 잠깐 기웃.
저기 있는 놈을 여기로, 여기 있는 녀석을 저기로.
풍경을 뒤섞고, 풍경에 담긴 것을 뒤섞는다.
그런 현상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어느새 외곬으로 몰입한 투란은 ‘작은 돌’을 이용했던 경험을 되새겼고, 이를 바로 지금의 ‘큰 돌’을 통해 재현하려 했다. 제멋대로인 늪을 삼키고, 잘 다룰 수 있는 늪을 낳는 것을!
와글와글, 치잉, 치칭.
보고 듣는 것이 온통 제멋대로인 채, 기묘한 울림만 가득한 듯했다.
‘이게 뭔……?’
온갖 풍경 속에 풍경이 하나 더 끼어들기는 했다.
투란의 의지가 닿는 그 풍경은 그 많은 풍경 속에 섞인 채로 ‘나, 여기 있음! 말 잘 들음!’이란 시위를 하듯 움직이고는 있는데…… 전체적인 영향력은 거의 없었다. ‘큰 돌’이 삼켰을 때, 확 줄었다가 다시 펼쳐지는 순간에 원래대로 복구돼버린 듯했다.
분명히 ‘큰 돌’이 그 모든 풍경을 품은 이차원의 늪을 삼켰고, 투란에게 복종하는 녀석을 낳았을 텐데…… 섞이는 순간에 원상태로 되돌아가며 달라진 점이라고는 그 한 조각이 투란을 따른다는 것뿐이었다.
이 상황은 투란에게 아주 낯설었다.
어째서 이리 작은 영향력만 남긴 채로 다시 제멋대로가 되었는가?
다시 한번 시도하기 전에 투란은 ‘큰 돌’에 집중하며 이차원의 늪을 통찰했다.
‘아예 저걸 삼키는 늪이라면?’
생각이 떠오른 순간, ‘큰 돌’에서 조그마한 파편인 듯한 늪이 흘러가며 섞였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저 투란의 의지에 닿는 풍경의 파편이 하나에서 둘이 될 듯 말 듯 하다는 미묘한 변화가 있을 뿐인데, 영향력이 살짝 부푼 듯한 정도였을 뿐이었다.
‘대체 왜? 새로 만들어진 늪이 왜 이전 녀석이랑 섞이면서 하나가 되는 거지? 이건 꼭 세상에 나 혼자만 있어야 된다고 우기는…… 어라?’
생각을 거듭하던 투란은 문득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는 것을 느꼈다.
늪과는 무관한 샤벨투스의 이빨, 완전히 분석해서 두 자루, 세 자루를 마구 휘두를 수 있다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샤오 할배가 새겨놓은 각인으로 인해 생겨난 특수한 속성, 유니크한 특성 탓에 오직 한 자루만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와 닮은 상황이었다.
어쩌면 이 늪이 유니크의 속성을 지녔기에 세상 어디에든 자신과 같은 존재가 둘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투란은 이 생각이 지나친 억측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는 했다.
하지만 만약 옳은 생각이라면, ‘큰 돌’이 아무리 새로운 이차원의 늪을 낳는다 해도 결국은 오롯하게 하나뿐인 이차원의 늪으로서 원상복구되는 것일 수 있었다. 마치 잠깐 자신을 잊었다가 원래의 기억을 되찾는 것처럼, 한쪽 조각을 먹어치워도 곧바로 새로운 조각을 기억해내는 것일 수 있었다.
‘그런 거라면, 되든 안 되든!’
어차피 이대로는 상황에 아무런 변화를 줄 수 없었다.
그래서 투란은 결심했고, 신속하게 행동으로 옮겼다.
먼저 여전히 팽팽하게 당겨진 채인 후크 라인이 이글거리는 붉은 광채를 띠는 것을 확인했고, 저편 어딘가에서 마그마 로드의 형상으로 빗어진 ‘악마의 심장’이 맥동하는 것을 느꼈다.
‘위층……?’
맥동은 천장에 처박혀 거꾸로 몸을 내민 몰골인 투란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거의 두어 층 위에 있다고 알려오고 있었다. 동시에 몸의 여러 부분이 멀찍이 떨어진 여러 곳에서 미묘하게 느껴졌다. 마치 누더기 포대에 쌓여 해진 구멍 곳곳으로 몸이 삐죽거리면서 내밀어진 듯한 느낌이었고, 그나마 윗몸은 커다란 구멍으로 불쑥 튀어나왔다는 기분이었다. 그 내민 구멍마다 전혀 다른 장소일 뿐이고.
그 감각을 기억하며 투란은 강렬하게 ‘큰 돌’에 염원을 담았다.
‘큰 돌’의 표면이 바로 투란의 가슴으로 번져왔고, 금방 온몸에 얇게 씌워진 피막처럼 둘러씌워졌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지(認知)와 감각 속에서 투란은 자신에 호응하는 늪의 파편을 불렀고, ‘큰 돌’을 통해 보다 강력하게 명령했다.
‘안으로! 불타는 라인을 유지하는 채로 안으로!’
후크 라인이 한층 더 달아오르며 옅은 불꽃이 맺혔고, ‘큰 돌’의 형상을 입은 투란은 그대로 늪의 안쪽으로 담가졌다.
이차원의 늪이 파문을 일으키며 오그라들었다.
출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