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9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90)
고요함 속에서 투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한동안 꼼짝도 않은 탓인가, 몸이 찌뿌둥하면서 배고픔이 느껴질 무렵이었다.
투란은 두리번거리면서 묻는다.
‘얼마나 쉰 거지?’
주변은 고요했고 마냥 캄캄할 뿐이었다.
덕분에 시간을 가늠할 해님이나 달님, 별빛에 의지할 수가 없다.
드라고니아가 혀를 차며 대답한다.
―대강 한 시간 안팎, 그 정도다. 네 팔뚝 속에 촉수 거머리라도 먹어치우지? 악마의 심장이라면 충분히 영양분으로 삼을 수 있잖아.
‘음? 흐흠…… 촉수 만드는 능력이 탐나는걸.’
언젠가 손에 넣을 고무쇠를 떠올리며 투란은 혀를 날름했다.
오른팔은 아직 부푼 모양의 기형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팔을 보며 투란은 피식 웃었고, 장난처럼 중얼거린다.
“만유의 감각 속에서도 놓치지 않은 거머리라니, 나 생각보다 대단하잖아?”
고요한 미궁 안을 메아리치는 목소리까지 낸 탓인가, 드라고니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바로 대꾸한다.
―그래, 너처럼 대단하게 미친놈이 세상에 또 있을 리는 없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다시 웃으려 했던 투란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허리를 굽혔다.
온몸이 찌뿌둥한 것이 단단한 암철 바닥 위에서 휴식을 취한 탓이 아닌 듯했다. 피로가 누적된 채로 체력이 모조리 소진된 탓에 아직은 몸을 가누기가 어려운 듯했다. 조금은 더 편안히, 체력을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조금 더 자세를 편안히 꾸미면서 투란은 앉은 채로 꾸물꾸물 몸을 옮겨 아예 벽에 등을 대고 발을 쭉 뻗었다. 컴컴한 탓에 발가락은커녕 무릎 언저리도 보이지 않았다. 슬슬 이 어둠을 꿰뚫고 보는 눈알을 꾸미든가 해야 할 때였다.
하지만 그 순간에 오른팔에서 꾸물거리는 거머리의 몸통, 촉수를 뻗어낼 엄두도 못 내는 채로 악착같이 도망치려 하는 촉수 거머리의 몸부림이 느껴졌고 이는 이차원의 영역에서 느꼈던 온갖 감각을 되새기게 했다.
눈살을 찌푸린 채로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물어야 했다.
‘지난 다음에 계속 떠오르는 것도 만유의 감각이 지닌 특징이야?’
―그게 가장 큰 장애로 남는다…… 강렬하게 각인된 기억은 단순히 머리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에 새겨진 셈이니까. 단숨에 미치지 않았다면 서서히 미쳐가는 원인이 되지. 괜찮으냐?
‘괜찮아, 그런 거라면 방법이 있지!’
―뭐?
투란의 당당하고 자신 있어 하는 태도는 드라고니아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리고 다른 설명을 더 하지 않고 바로 자세를 취했기에 드라고니아는 가만히 투란을 지켜봐야 했다.
가장 먼저 투란이 한 일은 간단했다.
기형으로 부푼 오른팔을 응축시키면서 그 안에서 꾸물거리던 촉수 거머리의 정수를 획득한 것이다. 아주 쉽고, 자연스럽게…… 마치 ‘악마의 심장’이 그대로 으스러뜨리면서 씹어 삼킨 것처럼.
투란은 ‘천칭’의 풍경 속에서 촉수 거머리를 보이드 껍질로 꽉 움켜쥔 다음에 깊은숨을 내쉬었다. 투란의 몸에서 ‘악마의 심장’이 해체되며 형상을 잃어갔다. 몸 곳곳에 검게 번져 있던 잉크는 그대로 가죽의 흔적만을 남긴 채, 아르고누스가 발현(發現)한 눈알을 모두 치웠다. 뚜렷하고 두껍게 반바지 모양의 가죽만 남긴 채로 다른 흔적 또한 금세 사라졌다.
이런 변화와 함께 투란의 주변으로 은은한 바람결과 함께 조그마한 불티가 휘날렸고, 어깨와 팔 주변으로 땀방울이 맺히며 티끌이 살살 휘날리는 바닥에 뚝뚝 떨궈지면서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서서히 투란의 가슴에서 검은 무늬가 독특한 ‘천칭’의 형상을 갖추며 드러났고,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을 대신한 순수한 형질의 오러가 투란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가만히 자취를 드러내던 사대(四大)의 정령수가 본격적으로 주변을 에워싸면서, 어두운 풍경 속에서 투란을 지키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불꽃이 너울거렸고, 작은 회오리와 소용돌이, 티끌이 춤을 추는 듯했다.
그 순간에 드라고니아가 한마디 한다.
―파이로의 불빛이 꽤 밝다만, 장막이라도 쳐서 일단 기척을 차단해둘까?
‘그래…… 방어 마법도 하고 싶은 만큼 해도 돼.’
투란은 가볍게 대답하고는 자신이 품은 심상에 더욱 집중했다.
‘천칭’을 완전히 드러나게 한 것은 나름대로 오랜만이었다.
몬스터 엠블럼을 완벽하게 봉쇄하는 셈이었고, 이는 몬스터 로드에게는 꽤 위험한 순간이라 할 수 있었다.
키린이 경고했고, 투란도 이리저리 생각하며 대비한 일.
때문에 순수한 오러가 이리저리 투란의 몸을 휘감는 순간에 정령수 넷이 자연스럽게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 와중에 파이로의 불빛은 사방이 어두운 탓에 꽤 멀리 퍼져나가고 있었고, 드라고니아는 이 빛을 감추자 한 셈이었다. 거기에 대해 투란은 아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윌 라이트의 제어권한을 넘겨준 것이고.
투란의 마음은 몸이 느끼는 모든 감각을 더듬었고, 이차원의 영역에서 느낀 그 기괴함이 샘솟는 듯한 격렬함을 알 수 있었다. 오러조차도 불안하게 너울거리며 그 감각은 기억하는 것조차 위험하다 경고하는 듯했다.
‘알아. 괜찮아.’
투란은 자신을 다독이듯 다짐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키린이 투란에게 오러에 대해 강제로 주입해준 여러 가지 기술(技術), 가히 비술(祕術)이며 기술(奇術)이라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형상(形相)을 조성(造成)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 부분을 화끈하게 알려주려고 공중에서 날개 만들라 하고 그냥 떨어지게도 했고!
그 비술 속에는 키린이 장난스럽게 덧붙인 희미한 말이 있었다.
“조그맣고 쓸모 있는 몬스터를 샅샅이 파악했다면, 오러를 이용해서 그 형상을 만들고 이용할 수도 있어. 이건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돼. 벨 아저씨한테 몰래 배운 거라서, 내가 두 아빠한테도 감추고 있었거든. 하지만 뭐…… 투란, 너라면 괜찮을 거야. 하핫.”
날개 만들며 땅에 처박히지 않으려 버둥거리는 때에는 기억나지도, 키린이 보채고 부추기면서 꺼내는 척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 투란이 자신의 의지로 순수하게 오러를 활용하려 하는 때에는 한번 더 되새겨야 할 부분이었다.
살갗을 덮는 얇은 막처럼 오러를 조절하면서 투란은 키린이 왜 ‘조그맣고’란 말을 했는가를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크고 강력한 몬스터의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오러의 소모가 너무 컸다. 그냥 몬스터 로드답게 몬스터의 형상을 갖추는 편이 더 낫다. 하지만 ‘조그맣고 쓸모 있는’ 경우라면, 위력이라든가 몬스터 형상의 특성이 아니라 몬스터가 가진 잔재주라면 오러를 이용해서 적당히 꾸밀 수 있었다.
지금처럼 ‘악마의 심장’이 가슴에서 엷은 줄기를 형성하며 살며시 매달려 있는 모양을 가볍게 꾸밀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러로 이뤄진 ‘악마의 심장’은 오랫동안 겪어온 투란의 경험에 따라 ‘천칭’으로 꾸며진 진짜처럼 투란의 온몸을 더듬으며 들락이고, 몸이 간직한 ‘기억’을 뜯어냈다. 그 ‘기억’은 ‘악마의 심장’ 속으로 고스란히 옮겨갔고, ‘천칭’의 문장 속으로 스며들었다.
호오오…… 하아…….
투란이 숨을 고르며 가볍게 내쉬었다.
드라고니아가 바로 묻는다.
―오러를 재생에 이용한 거냐? 리프레쉬 같은 효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만? 그걸로 만유의 감각을 떨쳐낼 수 있어? 다시 기억나지 않게 할 수 있는 거냐?
‘드레이크 때처럼 한 거잖아. 단지 오러를 응용해 쓴 거고.’
―드레이크 때처럼……?
‘헷갈리지 않게, 내가 드레이크라고 느끼는 나를 맡은 악마의 심장을 만들어서 얌전히 문장 속에 담가뒀잖아. 몰랐냐? 음…… 아무튼 기억을 담은 악마의 심장을 오러로 만들어서 내 고유마력 속에 담아놓는 거야. 잊지는 않는 거고, 잊을 생각도 없는 거니까. 아무튼 이제 내 몸은 거기 얽매이지 않는 깨끗한 상태가 된 거지.’
―너는…… 지금 오러로 한 짓을 그렇게 이해한다는 거로군. 알았다.
드라고니아가 미묘하게 어이없어하는 낌새를 품은 채 말했기에 오히려 투란이 갸웃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어째 자신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납득해버리는 듯한 이 기묘한 낌새는 뭔가?
‘왜?’
투란은 반사적으로 묻고 말았다.
잠깐 망설이는 듯하다가 드라고니아가 한숨처럼 대답한다.
―투란, 방금 네가 사용한 오러의 용량, 밀도, 역량으로 사용한 그 재주는…… 팔다리가 몽땅 재가 되어 날아간 다음이라도 곧바로 재생성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오러의 특성이 강력하게 반영되어서 새로 만든 팔다리라도 이제까지 단련해 온 힘이 모두 담겨 있고, 연마한 손재주조차 바로 발휘될 수 있었어. 투란, 넌 지금 오러를 이용해, 오러만으로 힐링 팩터를 구성하는 마법을 재현한 거야. 그게 얼마나 대단한 짓인지…… 모르겠냐?
‘어, 그런 건가?’
맹하니 투란이 대꾸했다.
하지만 그 맹한 와중에 투란도 문득 기억해냈다.
드라고니아를 만나기 전에 왼팔이 새로 돋아난 것처럼 낯설게 움직였던 일, ‘악마의 심장’으로 그 낯섦을 물리쳐야 했던 경험.
아무래도 지금 오러로 형성했던 몬스터 형상인 ‘악마의 심장’이 그때처럼 해주었다는 말 같잖은가.
‘뭐, 괜찮잖아?’
―그래…… 괜찮겠지. 괜찮은데…… 투란, 키린에게서 혹시 오러 메이지라든가 오러 메자이의 기술에 대해 전해 받은 바는 없는 거냐?
‘음? 에, 그게…… 아마 있을걸? 되도록 기억하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지. 몸에 팍팍 새겨드는 거라, 꽤 아플 테니까.’
―조금 전처럼 기억을 절단해서 아프지 않게 하지그래?
‘에이, 아프더라도 꼭 필요하니까 그러면 안 되지. 이차원 몬스터랑 경우가 다르잖아. 자아, 아무튼…… 아, 이제 정리 좀 해야 하는구나.’
투란은 다리를 접고 고개를 이리저리 꺾고 어깨를 돌리는 시늉을 하면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가만히 사그라들고 있는 정령수를 제대로 치워놨다. 다시 어둠이 짙은 와중에 프로브 몇 기가 맴돌았고, 드라고니아도 방어 마법을 해제했다.
‘구멍 뚫린 곳, 여전히 구멍 난 채야?’
먼저 투란은 미궁 지하 1층의 상황부터 파악하기로 했다.
멀뚱거리며 앉아 있다가 또 뭐가 튀어나와 덮치는 꼴을 놀라서 구경할 수는 없으니까. 하물며 자신이 그 피해자의 입장이 되는 것은 더욱 사양할 일이었다.
―없어졌다. 애매하기는 한데, 삼켜지면서 그동안 갖고 놀던 이차원의 영역이 해제는 와중에 섞인 것들이 모두 정상으로 돌아간 모양이야. 여전히 몬스터나 짐승의 자취는 잔해만 좀 남은 채이고…… 여기 1층에서 살아 숨 쉬는 거는 너 말고 없다고 해야겠군.
‘아, 그래. 그러면…….’
투란은 조금 편안하게 앉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바로 깊은숨을 들이쉬면서 문장의 풍경에 집중했다.
* * *
“타우곤, 타우루스 족장, 타우루스 오리지널…… 드라고!”
감개무량한 듯한 말투로 투란은 일단 쩌렁쩌렁 외쳤다.
별무리 속에서 심드렁하고 비아냥거리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대꾸가 바로 나온다.
“뭣 때문에 삼켰는지 모를 녀석들이로군. 미궁에서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있잖아!”
뇌리를 간지럽히는 소리와 다른, 마법과도 다른 풍경을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투란이 웃음을 실은 말투로 외친다.
“그건 미궁 지하 1층에다가 이차원을 풀어놓은 대마도사에게 가서 따져! 아하핫! 원래는 얘네들로 몰래 숨어 들어가거나 염탐할 수 있었단 말이지…… 하하하, 그건 어려웠으려나? 아, 그런데…… 타우루스 품종은 발 모양이 전부 이리 다양하냐?”
넉살 좋게 떠들다가 투란이 갑작스럽게 물었다.
타우곤은 카프리곤이 양의 발굽인 것처럼 소의 발굽 모양이 또렷했다.
타루우스 족장은 발가락을 모으면 소의 발굽 모양이 그럭저럭 나타났고 뒤꿈치를 살짝 들고 있다가 힘주면 도로 꽉 디디며 굽이 발가락 모양으로 갈라지는 듯했다. 마치 두꺼운 발톱이 발굽을 대신할 수 있다는 듯한 형태였다.
타우루스 오리지널, 투란에게는 이상한 타우루스라 불리게 돼버린 녀석은 그냥 사람의 발 모양이었다. 소가죽과 털이 덮여 있고, 우람해서 그 체격만큼이나 사람보다 크기는 했지만 명확하게 소가 아닌 사람의 발 모양이었다.
“말했잖아. 몬스터 첫 세대인가 아닌가에 따라서 차이가 난다고. 몬스터로서, 그 품종의 시조로 나타난 것이 그 오리지널이다. 이제는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버젓이 튀어나와 너한테 삼켜졌지. 그다음 세대가 족장과 무리였고, 타우곤은 그중에서도 명계의 영향력을 많이 받아 태어난 돌연변이인 거야. 조금씩 개성도 다르고 특징도 다를 수밖에 없어…….”
“아참, 얘네 도끼. 그거 훔치거나 뺏거나 주운 게 아니라고 했었지?”
투란이 퍼뜩 생각난 것을 물었다.
별무리가 찰랑이다가 대답이 나온다.
“이 풍경 속에서는 바로 그 녀석들 내장을 볼 수 있지? 살펴봐라, 소처럼 몇 개의 위장이 있을 거야. 진짜 소와 다르게 타우루스는 그 위장을 용광로, 재단사로 이용한다. 적으면 셋, 많으면 다섯일 때도 있는 것이 바로 타우루스의 기괴한 배 속 밥통이니까.”
“용광로? 재단사? 흐아!‘
투란은 곧바로 세 종류의 소머리 몬스터를 해부(解剖)한 몰골로 만들면서 이어지는 설명을 듣고 있었다.
심상 속에 자리 잡은 문장의 풍경을 모처럼 나들이 온 것처럼 즐기면서.
그러는 사이에 투란의 힘은 차분히 회복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