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9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91)
Chapter 159. 미궁 Ⅱ
“좋아, 그러면 드라고에 대해서는?”
투란의 명랑한 외침이 ‘천칭’의 풍경을 울렸다.
별무리가 찰랑거리면서 반짝였다. 하지만 타우루스의 내장(內臟)에 대해 장황(裝潢)한 설명을 마친 드라고니아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미 삼켰잖아, 여기 있잖아. 내가 몸으로 겪어보고 알기를 바라냐? 아, 그러고 보니 이젠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한 상태네? 손톱도 훨씬 섬뜩하잖아? 헤에, 이 정도면 타우곤, 저 녀석의 팔을 그냥 절단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 안 해줄 거야?”
이러쿵저러쿵 떠들면서 투란이 드라고니아에게 드라고에 대한 아는 바를 말해달라 재촉했다. 그럼에도 드라고니아는 깊은 한숨을 쉬는 낌새만 보이며 뭔가 생각하는 듯, 별무리가 찰랑이는 반짝임을 보이기만 했다.
* * *
‘거참, 뭘 꺼림칙하게 생각하는지라도 말해보라고.’
풍경을 울리는 말을 소리 없이 되뇌면서 투란은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일어섰다. 나름 오래 앉아 있던 탓인가 다리에서 뿌득뿌득하며 힘줄이 요동치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팔을 돌리고, 다리를 이리저리 쭉쭉 펴보고…… 온몸을 기지개 켜듯이 투란이 이리저리 한 번씩 움직이기를 거의 마칠 무렵, 드라고니아의 말이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청(靑)의 드라고, 네가 삼킨 녀석은 드라고웜에게 심하게 시달린 녀석이다. 척추도 몇 번 끊어졌었고, 머리도 반쯤 짓이겨진 꼴을 겪기도 했겠지. 그 흔적이 흉터로 남은 것이 연녹색 비늘이었다만, 정수를 통해 구성된 몸에는 그런 흉터가 남아 있을 리가 없지. 그나마 청의 드라고니까, 드라고웜에게 그런 피해를 입으면서도 나름대로 대항해서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을 거다. 체내합성 효소(酵素)를 이용해 온갖 환경,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이 청의 드라고가 지닌 특성이니 말이야. 타우곤에게 심장을 뺏기지 않고 살아서 한 십 년, 늦어도 이십 년 정도 지났다면 흉터도 깨끗하게 사라졌을 거야. 그리고 다시는 같은 상황에서 그런 흉터를 얻는 일도 없었을 테지. 적응해서 말이야.
‘이십 년 걸릴 일을 내가 삼켜서 바로 해치운 거?’
―그 이십 년 동안 녀석이 성장하는 부분을 빼앗았으니, 사파이어 티란트로서의 가능성을 상실당했다고 봐야겠지.
‘티란트?’
―청의 드라고는 삶에 있어서 세 가지 형태를 지닌다. 갓 태어났을 무렵을 해츨링, 성체로서 제 기능을 갖춘 때부터가 비스트, 모든 가능성을 이끌어낸 완성체를 이루면 티란트라고 부른다.
‘드라고라서? 아니면 드라고니아도 그렇게 되는 거야?’
―청의 드라고가 지닌 특징이라 했잖아! 아무튼, 타우곤에게 심장이 뽑히기 전에 녀석은 해츨링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인 성체, 상처투성이 비스트였을 뿐이다. 너한테 삼켜진 정수 속에는 비스트로서 완전히 회복된 형상이 담겨 있는 것이 당연하지. 하지만 그 회복과정이 누락된 탓에 티란트로서의 성장은 당분간 어려워. 티란트는 목숨을 건 투쟁에서 살아남은 비스트가 도달하는 형태야, 그러니까 괜히 키울 생각 따위는 하지 마라.
‘티란트란 거, 뭔가 굉장히 다른 모양이라 되는 거야? 그렇게 특별해?’
강조하는 드라고니아의 말투에서 신기함을 느낀 투란이 물었다.
그러면서 문장의 풍경, 그 심상 속에 담긴 드라고를 다시 살펴보니 청록의 비늘이 모두 깔끔해진 상태였고 보다 더 짙은 청색을 머금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타우루스 녀석들이 엉거주춤하니 어깨를 으쓱거리는 자세로 서 있는데 유독 드라고만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였고 팔다리를 가슴에 모으며 꼬리와 머리도 가슴 쪽으로 모은 모습은 마치 알 속에서 쉬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티라노스, 공포를 자극하는 특이능력을 지닌 몬스터를 일컬을 때 하는 말이다. 공포를 통해 어떤 결과를 이끌어내는가는 제각각이지만, 사파이어 티란트는 공포를 통해 대상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보통 그런 식의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 능력의 근원인 본체(本體)는 오히려 약한 경우가 많다만 청의 드라고는 자신이 지배하는 대상을 섭취, 육체적 특질을 흡수하고 더 강한 성능을 발휘한다. 그래, 드라코눔의 아칸이 무투술로 싸울 수 있는 상대는 청의 드라고 비스트까지이고 사파이어 티란트인 경우에는 마법과 아티팩트를 다 동원해야 한다는 말이야.
드라고니아가 잠시 말을 멈췄다.
투란은 이야기를 되새기며 정리했고, 몸을 추스르며 아직 경계상태인 정령수를 거둬들였다. 그리고 마음속에 피어난 의문을 드라고니아에게 드러냈다.
‘몬스터 로드가 그 티란트를 삼켰을 경우는?’
―할라트가 그걸 시도했었지만, 실패했다. 삼킨 다음에 몸부림치다가 결국 없애는 데는 성공했지만 말이야. 사파이어 티란트를 형성시켜 제어하는 것은 완벽하게 실패했어. 그 뒤로 자신의 육체를 강화하려는 시도를 아예 포기했다고 하더군.
‘할라트라면……?’
갑자기 나온 이름에 투란이 흠칫해서 제대로 나온 말인가 확인하듯 되뇌었다.
―그래, 그 할라트. 황금매의 문장을 상아탑의 공인 말살 대상으로 만들어버린 할라트 맞아.
너무 엉뚱한 이름이 툭 튀어나왔는데, 다시 확인해도 맞다는 말에 투란은 살짝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꽤 엄청난 말썽으로 재앙 소리 듣던 작자였는데 사파이어 티란트를 삼키고 어쩌지를 못했다니…….
‘어, 잠깐! 사냥에 성공은 했던 거야?’
문득 투란은 청의 드라고, 사파이어 티란트까지 성장한 녀석을 삼켰다는 의미의 다른 부분을 짚었다. 약간의 한숨이 섞인 듯한 대답이 금방 흘러나왔다.
―할라트의 정신 조작에 지배당한 로그메이지, 상아탑의 마법사, 몬스터 헌터들…… 당시 브로큰 킹덤의 왕국 군단까지도 소모되었지. 그런 엄청나게 희생으로 겨우 잡았다고 했다. 그러니 재앙이라고 불린 거고, 다시는 용납해서 안 되는 존재로 경계대상이 된 거다. 더불어 그런 힘을 발휘하게 한 근원적인 이유, 황금매의 문장도 말살대상이 된 거지.
쓴웃음이 바로 투란의 입가를 뒤틀었다.
결국 할라트 본인이 나서서 사파이어 티란트와 맞선 것이 아니란 말이었다.
시체줍기를 하는데, 시체 만들 사냥꾼을 잔뜩 몰아넣는 짓을 했던 셈이다.
몬스터 로드로서 최악의 선택이라고 투란은 바로 단정 지을 수 있었다.
‘실패할 만했네.’
―뭐?
드라고니아가 어리둥절했다.
‘잡아삼킬 몬스터는 자신이 사냥한다, 그게 기본이라고.’
―시체 줍기를 즐기는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만?
‘몬스터가 몬스터를 찢어발기는 곳에서 숨어 지켜볼 수 있는 것도 능력이거든. 아무튼 직접 몬스터를 마주하고 시체가 돼가는 과정을 보지 않았다면…… 아주 하찮은 몬스터라도 그냥 삼키면 위험해. 그 정도도 몰랐다니…… 황금매의 마법에 너무 기댄 모양이네, 할라트는…….’
그렇게 되는 건가?
갸웃하면서도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말을 수긍하는 듯했다.
적어도 투란이 시체줍는다고 설쳐댈 때는 늘 그 파괴적인 상황이 벌어진 곳에 직접 머물고 있기는 했으니까. 할라트처럼 여기저기 외교사절을 보내서 몬스터의 잔해를 요청하는 짓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 투란이니까.
‘야, 근데…… 드라코눔에서는 할라트랑 시비 붙어서 싸우지 않은 모양이다? 너 말할 때 보면 드라코눔은 딱히 엮인 것 없이 구경만 한 남의 얘기 하는 것 같아.’
맞다. 할라트가 드라코눔에 음흉한 속셈을 품었는지는 몰라도, 춤추는 산맥에서 벗어나거나 따로 찾아온 적은 없었으니까. 우리로서도 인간 왕국의 일에 함부로 개입할 수 없고 말이야. 한 걸음 떨어져서 본다면, 할라트는 조금 특이한 능력을 지닌 자가 인간 사회의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사납게 움직인다는 정도일 뿐이었다.
‘상아탑은 당한 게 많았나 보네…….’
투란은 황금매에 대해 라비엔에서 루케인이 보였던 반응을 떠올리며 고개를 젓는 시늉을 했다. 드라고니아도 거기에 동감한다는 듯이 말을 잇고 있었다.
아무튼 정신적인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강인했던 할라트조차도 포기했던 놈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비스트잖아. 딱히 티란트도 아니고. 티란트가 되면서 뭔가 확 달라지는 부분이 있는 거니까, 지금 나한테는 아무 상관 없는 거야. 내가 드라고를 티란트까지 성장시킨다면, 그 경우에는 나도 함께 성장하는 거니까 상관없을걸.’
투란은 몬스터 로드로서의 상황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드라고니아도 이에 생각이 꼬인 듯, 조금 멈칫하다가 말한다.
그랬으면 좋겠군. 정신적으로 사파이어 티란트의 역량을 갖출 수 있다면…… 그건 대단한 이점이겠지. 하지만 투란, 방심하지 마라.
‘네엡!’
장난스럽게, 하지만 소리 없이 대꾸하면서 투란은 어두운 통로를 걷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프로브는 사방을 모두 뒤졌고, 역시 지하 1층에 남겨져 있는 것은 오래되어 부식된 검, 방패, 화살의 파편과 부서진 뼈와 뿔의 흔적이 고작일 뿐임을 확인한 다음이었다. 이전처럼 바닥에 뚫린 구멍도 없었고, 벽을 통해 뭐가 들락거리는 일도 없었다. 달라진 것이라면 투란이 남겨놓은 붉은색 소용돌이무늬뿐이었다.
그렇게 텅 빈 통로의 고요한 어둠을 지나서 투란은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입구 앞에 섰다. 이번에는 계단참도 없이, 굽어지는 곳도 없었다. 계단은 그저 아래층으로 곧게 내려가는 채로 훤히 뚫려 있었다. 느리고 여린 바람결은 아래층의 입구를 타고 흘러내리는 듯했다. 투란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어둠이 가득한 계단 아래를 바라봤다.
‘계단 곁에 뭐 숨어 있어?’
없다.
‘크기나 깊이는?’
계단 길이는 10여 미터 정도, 아래층 역시 바닥과 천장 사이는 5미터 정도야. 통로 폭도 그렇고…….
투란은 설명을 들으면서 깡충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서늘하면서도 눅눅한 희한한 분위기가 짙어졌다.
―1층보다 더 넓군. 아래로 내려갈수록 미궁의 크기가 커지는 모양이야.
투란이 2층에 발을 딛는 순간,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그런데도 전부 암철?’
―그래, 아무래도 고대왕국의 기술이 고스란히 유지되던 때에 지어진 미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군. 이 정도면 지금 세상에서 가끔 발굴되는 어지간한 암철광맥보다 더 많은 암철이 사용된 거라고 해야겠어.
‘흐흠, 나중에 좀 캐가도 되겠지?’
―하지 마라. 미궁 전체를 암철로 꾸몄다는 것은 미궁 전체를 아우르는 마법이 발현되었다는 뜻이야. 분명히 명확한 목적이 있기에 암철로 꾸민 미궁이다. 메듀시아가 여기 있는 까닭은 모르겠다만, 애초에 이 미궁은 메듀시아를 감금하기 위한 목적은 아닌 것 같으니 말이야. 손상시켜서 좋은 일은 없을 거야. 파편도 괜히 들고 나갈 생각하지 말고.
‘쳇.’
조금 아깝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투란은 억지 부려서 암철을 쪼개 나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가끔 마법의 물품이란 것은 부서져도 한자리에 모아놓기만 해도 그 효과를 발휘할 때가 있었다. 특히나 몬스터 로드를 지켜주는 부적에는 그런 경우가 많았다. 미궁이 안쪽에서 어떻게 부서져 있다 한들, 그 조각이 미궁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다면 마법은 유지된 채일 수 있었다.
‘뭔 마법인가는 몰라?’
―일단 여기 입구 근처를 제외하면 층간에 전달되는 진동이나 음향은 완전히 막아놓는 것인 듯한데…… 마법과 건축구조를 연계한 것이 대단하군.
‘뭐? 그게 뭔 소리야?’
―입구, 이 계단 언저리에 서 있으면 층간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지만 입구에서 멀어지면 그 탐색을 방해한다는 말이다. 층마다 독립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 그래 놓은 듯하다만.
드라고니아는 차분하게 설명했지만, 투란은 어이없어 어둠이 가득한 지하 2층을 두리번거려야 했다.
‘그러니까…… 이 오가는 입구, 계단 근처가 아니면 위아래 층에서 뭔 일이 벌어지는가 아예 모르게 해놨다? 그 말이지?’
―그래. 아마 소란을 쫓아 위아래 층을 오가는 것을 막아두려고 한 것 같기도 하다만, 처음부터 몬스터를 가둬두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군. 그 도감에서는 이 미궁의 초기 상태에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지?
‘어, 미궁이 있고 메듀시아가 있고 타우루스와 라미아가 가득하고…… 또 뭐가 더 있을지 모른다고는 했지. 5층 너머로는 확실히 확인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말이야.’
사박사박, 발이 차가운 바닥을 딛으며 내는 묘한 소리에 투란은 귀를 쫑긋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도감을 통해 기본적으로 1층에서 4층까지 이어지는 경로를 알고 있기에 일단 따라가 보는 셈이었다. 도감이 없었다면 일단 프로브를 날리거나 정령수 에어로를 이용해 주변을 뒤져봤겠지만…….
―묘하군, 1층처럼 여기도 비었는데?
드라고니아가 프로브 몇 기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다가 말했다.
‘역시…… 나도 그냥 벽이랑 벽이랑 벽만 느껴져. 온통 암철이라 착각한 거는 아닌 모양이네. 그렇다면…… 가보자고. 조금 더 내려가면 내가 튀어나와 박혀 있던 천장도 나올 것 같다.’
대꾸하면서 투란은 문득 깨달았다.
아무래도 지하 3층에 이르러서도 역시 비어 있을 듯한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