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9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92)
예감(豫感)이 맞았다.
투란은 눈살을 찌푸렸고, 드라고니아는 한층 더 심각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프로브가 제약당할 것 같은데? 4층 정도만 내려가도 프로브가 유지되는 거리가 10여 미터도 안 될 것 같다만, 어쩔 거냐?
2층에서 3층의 입구까지 오는 동안, 묘하게 프로브의 움직임에 제약이 생겨났다. 한층 전체를 탐색하려 했더니, 절반도 못가서 프로브가 강제로 해제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3층으로 내려와 4층 입구를 향해 움직이니, 프로브는 투란에게서 30여 미터 정도 거리를 두면 더 움직이지 않거나 해제되고 있었다.
절벽을 관통하며 탐색하던 프로브가 그리 제약을 받자 드라고니아는 몹시 불쾌해진 듯했고, 투란은 꽤 신기해서 호기심이 커지고 있었다.
‘왜 그렇게 되는 거지? 나는 딱히 무슨 힘이 느껴지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암철의 효과인 부분도 있고, 이 환경을 구성하는 거대한 마법이라서 전체를 관통하며 훑으려는 프로브를 운영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특별히 제약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만…….
‘마법으로 탐색하는 걸 막아놨다는 말이네?’
―그렇지.
‘하지만 몸을 들이대고 조사하는 거는 해볼 테면 해봐라, 하는 거고. 흐흠.’
어둠 너머를 보려는 듯이 눈을 흘기고 두리번거리면서도 투란은 걸었다.
드라고니아의 설명은 조금 애매했지만 상황은 명확했다.
마법의 탐색은 막아놨고, 감각은 어둠에 파묻으려 하는 곳이 바로 이 미궁.
도감에 설명된 바에도 공격이나 방어를 위한 마법을 방해하는 바는 없었고, 단지 짙은 어둠과 강도 높은 석벽이 오감을 제압하는 분위기라고만 했다. 횃불이나 등불, 제대로 된 랜턴을 가져가는 것이 필수이지만, 동시에 어둠을 가르는 빛으로 인해 몬스터가 보다 적극적으로 달려들 수 있으니 각오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어둠 깊은 곳에는 묘하게 몬스터의 낌새가 없었고, 프로브의 탐색은 방해받을 뿐이었다.
“라이트.”
가벼운 빛이 투란의 앞에 맺혔다.
프로브와 다르게 그저 주변을 밝히기 위해 둥실거리며 뜬 빛은 투란에게도 살짝 눈부셨다. 곧 광도(光度)가 적당히 맞춰지고 빛은 느릿하니 투란이 향하는 방향으로 주욱 날아갔다. 거의 이십여 미터를 넘게 날아갔지만 빛은 꺼지지 않았고 아래층으로 열린 구멍 위에서 둥실거리며 멈췄다.
그 광경을 보다가 투란이 고개를 들었다.
아무 흔적도 없는 천장이 저편의 희미한 빛에 일렁거리는 듯했다.
‘대강 여긴가? 여기 거꾸로 매달려 있었던 기분인데?’
―지금 별로 도움이 될 얘기는 아닌 것 같다만?
투란은 쓴웃음과 함께 앞을 보면서, 통로의 바닥에 놓인 뼈의 잔해를 확인했다. 위층과 마찬가지로 여기 또한 살아 움직이는 뭔가는 없어도, 살아 움직였던 뭔가의 흔적은 저리 남아 있었다.
‘이차원의 영역인가 하는 거 말이야…… 내가 거기 반쯤 들어가 걸쳐진 꼴이 되었을 때, 갑자기 툭 닫혀 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야? 내 허리가 동강 나려나?’
투란에게 문득 떠오른 의문이었다.
―대개는 그렇게 되겠지. 아마 그래서 남겨진 게 저 꼬리뼈가 맞을 거다. 라미아가 이차원 영역 안에 몸통이 담기고 꼬리 언저리가 남은 채로 닫혀서 절단되었을 수 있어. 일리가 있는 추측이야.
‘그렇다면…… 여기 갇혀서 뭔지 모를 까닭으로 나갈 수 없는 녀석들한테, 갑자기 다른 곳이…… 다른 곳이란 느낌이 확 닿는 구멍이 뚫렸다면?’
―허? 이런 젠장! 그럴 수 있어. 이차원의 문이 열리고 여기저기 다른 곳으로 통로가 열렸다면, 1층에서 3층까지 그런 전이의 문이 열린 꼴이 되었다면 바로 달아났겠지!
어이없어하는 드라고니아였고, 투란은 불쑥 떠오른 생각을 바로 꺼낸다.
‘타우루스, 오리지널인가가 팔뚝 잘린 것도 갑자기 통로가 닫혀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
―응? 그럴 수도 있겠지만…… 왜?
‘팔 잘린 채로 어딘가의 늪에 떨어졌다가 돌아왔다가,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 세상 여기저기를 막 섞어놓는다면…… 소용돌이 늪처럼 어디론가 뭘 보내고 데려오고 하는 능력이라면서?’
―그렇지. 이 미궁 안에 몬스터를 세상 어딘가에 풀어놨다가 미궁에 침입자가 생기면 적당히 데려다 가로막는다, 그럴 수 있어. 하지만 그 얘기는 이차원의 늪이 확실히 통제되고 있다는 뜻인데?
‘죽었나 살았나 애매하고 살아 있어도 어디서 뭘 하는가 전혀 알 수 없는 대마도사에게?’
투란은 조금 삐딱해진 기분으로 신랄하게 말했다.
드라고니아는 쓴웃음과 함께 한숨을 쉬는 낌새부터 흘렸다.
투란의 기분이 언짢아지고 나쁜 쪽으로 흐르는 까닭은 분명했다.
제압하고 통제할 수 있음에도 사람이 있는 곳에, 투란이 있는 곳에 떡하니 몬스터를 들이대고 풀어놨다는 것. 투란이야 냅다 쪼개고 삼켰다고 하지만, 타우루스 오리지널을 감당하지 못할 경우가 압도적으로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고르곤 아이까지 지닌 놈이라면…… 말 그대로 살육의 함정을 꾸며놓은 셈이었다.
―만약 정말로 침입자를 가로막고 제거하라는 명령을 새겨놓았다면, 이 미궁을 철저히 봉쇄해야 할 까닭이 있었을 거다. 애초에 미궁의 정보조차도 상아탑의 등급을 이용해서 철저하게 감춰놓았잖아. 그게 몇 백년 된 일이니까, 이제는 아예 잊힌 곳이라 해도 좋겠지. 게다가, 여기 산맥의 깊은 곳에서 조금 벗어났다고 하지만 몬스터가 가득 나돌아다니는 북부 황야잖아. 고대도시의 유적이 가득한 곳에서 여기까지 오는 것도 거의 없을걸.
‘왜 편들어? 뭔지 몰라도 착한 사람이라고? 온 세상이 착하다고 해도 나한테 험한 일 겪게 했거든? 흉악하고 못된 마법사일 거야! 틀림없어!’
완전히 비뚤어지기로 작정한 듯이 투란이 툴툴거렸다.
드라고니아가 피식 웃음과 함께 대답한다.
―고약하기는 하지, 하지만 여기 3층까지 아예 비워놨다. 후퇴할 여지는 넉넉히 준 것이라고 생각된다만? 이 정도로 수상한 곳에서 물러서지 않고 계속 들이댈 정도라면 누가 말려도 듣지 않을 성격이 확실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책임도 선택한 본인이 져야 하는 거잖아?
‘흥, 책임지는 거랑 누가 파놓은 함정 때문에 고생하는 거랑 전혀 다르지! 고생 안 하고 책임질 수도 있는 거잖아!’
소리 없이 말을 하는 와중에 투란은 미궁 지하 4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발을 딛고 있었다. 아무런 방해도, 색다른 것도 없으니 딱히 비어 있는 층에서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메듀시아와 만날 때까지, 투란은 이 미궁에서 물러설 수 없기도 했으므로!
그렇게 투란이 막 마지막 계단에서 벗어나 4층 바닥에 발을 딛는 순간, 가까운 곳에서 사륵거리며 다가오는 것의 음향이 전해졌다. 자연스럽게 투란이 생성시킨 눈알들이 어깨에서, 눈가에서 움직이며 그쪽…… 투란의 왼편으로 다양한 시각의 눈길을 집중시켰다.
‘어? 우와, 예쁘다!’
색채가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몸의 윤곽, 다양한 시각 속에 포착되어 합성되어 투영된 모습이 투란이 처음 만나는 미모(美貌)를 과시하고 있었다. 머리에서 허리, 드러난 배꼽까지 완벽한 균형이 뭔가를 보여주는 듯했고 허리 아래로 굵고 긴 뱀의 형체 또한 그런 균형을 유지하듯이 움직임이 우아하고 섬세했다. 덕분에 어느 순간부터 그 움직임이 일으키는 음향조차도 아름답다고 청각이 호소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사아아.
부드러운 숨결을 토해내며 라미아는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투란에게 다가섰다. 그러는 사이에 라미아의 배꼽 아래가 수직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식욕이 돋은 라미아는 더욱 부드럽게 움직이며 숨결을 토했고, 투란의 기묘한 형상 속에서 빙글거리는 여러 눈알로부터 쏟아져 오는 다양한 눈길을 느꼈다. 하지만 라미아는 상대가 자신의 모습을 명확하게 보면 볼수록 좋다는 것을 아는 듯, 더욱 부드럽고 여유롭게 그 미모를 발산하듯이 움직였다.
그리고 투란이 손을 힘껏 내뻗으면 그 손끝이 라미아의 봉긋한 가슴에 닿을 정도로 간격이 좁혀들었을 때, 라미아는 투란의 눈꼬리에서 불룩 새로운 눈알이 치솟는 것을 봐야 했고 멈춰야 했다.
세로로 열린 동공이 황금색 홍채를 드러냈고, 라미아를 강제로 억압해 멈추게 한 것이다. 고르곤 아이가 생성되며 라미아가 우아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멈추는 순간, 투란의 왼팔이 붉고 검은 털이 무성한 가죽을 드러내며 부풀어 올랐다.
겨우 손끝이 닿았을 간격은 부푼 팔이 한순간에 라미아의 목을 잡아당길 정도에 불과했고, 억센 털가죽 사이로 반질거리는 불그스름한 손아귀는 사양 없이 움직여 라미아의 가냘픈 목을 우악스럽게 움켜잡았다.
스르륵, 우득.
라미아가 어떻게든 움찔거리기라도 해보려는 듯했지만, 움직임은 우악스러운 손아귀로 인해 당겨진 탓에 흔들린 것 말고는 없었다.
‘우아아, 진짜 예뻐! 이렇게 예쁜 거 처음 봐!’
―목뼈를 부러뜨리고 할 말이냐?
새삼 투란이 즐겁고 기쁘게, 아름다움에 감탄하자 드라고니아가 질렸다는 듯이 투덜거리고 있었다.
라미아를 만난 자들은 대부분 그 아름다움에 취해서 무방비상태가 되고, 산 채로 잡아먹힌다. 때문에 라미아와 싸우기 위해 눈을 감는다는 터무니없는 선택부터 정신 차리기 위해 악취를 자욱하게 뿌리든가 고막을 찢어놓을 듯한 소리를 내는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 통상적인 대처법이었다. 어떻게든 눈으로 보고 정신이 홀려버리는 상태, 그 ‘날 잡아 잡수세요!’ 하는 넋 나간 몰골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고르는 셈이었다.
‘이쁜 건, 이쁜 거고. 날 잡아먹으려는 몬스터잖아. 당연히 할 일은 해야지.’
―몬스터 로드는 어떤 형태의 정신적 침해를 막는 능력이 있다더니, 이런 것에도 적용될 줄은 몰랐네. 하아…….
투란은 명확하게 선을 긋고 있었고, 드라고니아는 자신의 상상한 선을 넘는 몬스터 로드다운 대처에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는 사이에 투란의 오른팔 또한 타우르스, 오리지널의 굵은 형상으로 변해서 라미아의 머리를 잡았고…… 가차 없이 목을 빙빙 돌렸다. 부러진 뼈가 한층 더 억센 소리를 내면서 완전히 절단되는 섬뜩한 음향이 퍼져나왔다.
그런 와중에도 라미아는 물끄러미 투란을 바라보는 듯했다.
완전히 늘어진 라미아의 몸을 확인하면서 투란은 라미아의 얼굴을 아래로 향하게 머리를 잡고 그 목덜미를 굵고 거친 손톱으로 긁었다. 옅은 가죽이 훌렁 까지면서 목뼈가 드러나는데, 목뼈 중심이 빈 듯한 모양이었고 거기에 허연 뭉치가 담겨 있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갈라진 거죽으로 인해 주변이 피맺힌 속살을 드러내는데, 뼈에 감싸인 허연 뭉치는 피 한 방울 묻지 않는 고치처럼 느리고 여린 맥동과 함께 아주 멀쩡해 보였다. 그 위, 아래의 목뼈는 으스러진 채이나 고치를 감싼 목뼈는 완강하게 비틀림을 버텨낸 듯하니, 그 강도(强度)가 주변 뼈보다 몇 배는 더 강한 것이 분명했다.
‘이거로군, 라미아의 알이란 게.’
투란은 도감의 내용을 떠올리면서 왼손으로 고치 주변의 뼈를 움켜쥐고 뜯어냈다.
라미아의 경직된 몸이 한순간 허우적거리면서 거칠게 반항하는 듯한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금방 멈췄고, 곧 완전히 늘어진 채로 라미아에게서 모든 움직임이 사라지는데…… 목뼈가 부러지고 빙빙 돌려져 절단되는 동안에서 두근거리며 뛰던 심장 박동조차도 멈추고 있었다.
―먹는다고 라미아처럼 예뻐지지는 않을 것 같다만?
‘어떤 손상을 입어도 이 알에서 새로운 몸으로 되살아난다잖아. 그러니까 타우루스가 라미아랑 싸울 때는 목뼈를 물어뜯고 이 부분을 확실하게 씹어 삼킨다고. 몬스터 헌터도 목을 베고 찍어서 확실히 짓이겨놔야 한다고 도감에 친절하게 쓰여 있었다고.’
―도감이 아니었으면 원래 어떻게 했을 건데?
‘어? 글쎄? 내가 아는 거는 일단 쳐죽이고 찢어서 포장한다는 이야기였는데? 이리저리 쓰이는 곳이 많다고 말이야. 이 알 부분에 대한 얘기는 못 들었어.’
―하긴 라미아를 쳐죽일 정도로 패다 보면 목뼈를 성하게 내버려둘 리는 없겠지. 그런데 투란, 주변이 조금 이상해 보이는 거 아니냐?
‘고르곤 아이가 이상한 시각을 지닌 탓이겠지.’
투란은 슬쩍 주변을 둘러보면서 드라고니아의 말을 인정했다.
어둠이 가득했던 풍경은 이제 색채가 넘실거리며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비록 여전히 회색으로 덮인 암철의 미궁 바닥, 벽, 천장은 색이 뭔지 모르겠다는 듯이 여전했지만 라미아의 연한 녹색 비늘가죽, 찢긴 목에서 드러난 핏방울, 허옇게 부서진 목뼈가 색을 가득 머금은 채로 보이고 있었다.
고르곤 아이가 어둠 따위는 몰라라 하듯이 평범한 광경을 보게 해주는 셈이었다. 별빛 하나 없는 이 풍경 속에서…….
덕분에 투란은 기둥 사이로, 벽 사이로 멀어지는 라미아 몇 마리의 꼬리를 흘깃 볼 수 있었고, 저편에서 우람한 뿔을 과시하며 이쪽을 노려보다가 콧김을 세게 뿜으며 다가오는 타우루스도 볼 수 있었다.
쿵, 쿵.
타우루스의 거친 발 구름 소리가 금방 투란의 귓가를 울렸다.
―아예 뿔로 들이박으려는 모양이다만?
‘그러네.’
투란은 왼손을 꽉 움켜쥐면서 얼른 라미아의 알을 ‘삼켰다’.
쿵쿵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