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9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93)
‘어쭈, 달리네?’
투란이 이 생각을 했을 때, 달려오던 타우루스는 고개를 숙여 뿔을 내밀었고 그대로 투란을 관통하겠다는 의도를 바로 드러내고 있었다. 이에 대처하려는 듯이 투란의 몸집도 부풀어 올랐고, 외팔이였던 타우루스 오리지널의 형상을 두 팔 멀쩡한 모습으로 형성시켰다.
콰앙!
힘찬 발 구름과 함께 달려들던 타우루스가 고개를 홱 젖히더니 냅다 주먹질을 해오고 있었다. 그대로 계속 뿔에 주의하며 잡으려고만 했다면 이 갑작스러운 주먹에 그대로 머리든 가슴이든 얻어맞았을 듯했다. 하지만 투란은 이미 반사적으로 이런 격투전에 대해 생각 없이 몸으로 대응하고 있었으니…….
주먹을 내지른 손목을 투란의 손등이 찍고 밀어냈다.
거친 가죽의 마찰음, 미묘하게 달아오르는 감각 속에서 투란은 곧바로 날아드는 굵고 큰 무릎을 알아챘고, 팔꿈치로 그 무릎 위편 허벅지를 내리찍었다. 그러면서 투란은 살짝 감탄했다.
‘이놈 보게? 뿔을 미끼로 걸고 주먹질에 무릎차기까지 날려? 뭔 격투 훈련이라도 했나?’
키린 때문에 투란은 억지로 그런 동작을 몸에 새겼다.
하지만 이런 컴컴한 미궁 속에서 만난 타우루스가 어디서 이런 것을 배웠단 말인가. 도무지 납득이 가는 상황은 아니었다. 물론 납득이 가지 않아도 투란의 손은 반사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니…….
주먹을 밀어낸 왼손으로 타우루스의 목 줄기를 움켜쥐었고, 허벅지를 찍어 무릎차기를 막은 오른손은 주먹을 쥐고 당겨 한 대 칠 준비를 했다. 그 순간에 타우루스 또한 두 손으로 목 줄기를 잡은 투란의 팔뚝을 재빨리 잡으며 힘을 주려 했다.
치솟는 뿔 아래에서 고르곤 아이가 눈구멍 속에 자리 잡은 것은 이때였다.
어느새 투란은 덤벼든 녀석과 비슷할 정도로 우람한 체격의 타우루스 모습을 하고 있었고, 눈가에는 여러 눈동자가 데굴거리며 사방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그 틈에서 고르곤 아이가 무럭무럭 커지며 투란이 갖춘 타우루스 오리지널의 눈을 채운 시커먼 잉크 속으로 굴러갔고,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리고 덤벼든 타우루스와 투란이 우악스러운 드잡이질을 하려고 상대를 가늠하며 막 눈길을 마주쳤을 때, 투란은 자기 팔뚝을 잡은 타우루스의 두 손에서 힘이 풀린 것을 알아차렸다.
‘어라? 이놈, 발 꼬라지는 오리지널인데 고르곤 아이가 아니네?’
그러는 사이에도 이미 투란의 오른손은 샤벨투스의 이빨과 함께 타우루스의 배를 찔렀고 가슴을 가르며 심장도 쪼개는 중이기는 했다.
―야! 원래 타우루스한테는 고르곤 아이가 나타나질 않는다고! 그래서 괴상한 놈이라고 말했잖아!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렸다.
‘에? 아, 그랬지. 흐흠.’
투란은 멋쩍을 수밖에 없었다.
푹, 푹, 푹.
―그만 찔러!
부들거리는 타우루스의 몸통을 투란이 몇 번 더 찌르는 꼴에 드라고니아가 버럭 했다. 고르곤 아이에 제압된 순간에 찌르고 벤 것만으로도 완전히 사망한 상태인데, 확인하듯이 찔러대는 꼴이 마땅치 않은 모양이었다.
‘확실히 해야지, 방심하지 말고!’
히죽거리듯이 말했지만, 투란은 숨소리 하나 허투루 흘리지 않으면서 주변을 훑어보고 있는 중이었다.
사방에서 슬그머니 코끝을 내밀 듯했던 낌새가 사라졌고, 눈에 보이는 범위 내에서는 타우루스도, 라미아도 더 이상 튀어나오지 않을 듯했다. 라미아 한 마리, 타우루스 한 마리를 거의 단숨에 잡아버린 투란이 두렵다는 듯, 모두 피해 숨는 듯한 분위기가 아련하게 풍겨나오고 있었다.
그 때문에 뭔가 다른 녀석들이 자리를 옮기는 타우루스나 라미아를 피해 파닥거리는 소란스러움은 구체적인 소리로, 희미하고 여리지만 날갯짓과 함께 허공을 울리는 찍찍거리는 비명 같은 외침과 함께 희미하게 투란의 귓가를 울렸다.
순수한 경외(敬畏)인가, 단순한 공포(恐怖)인가 모를 분위기에 젖어 멀어져 가는 몬스터 무리를 느끼면서 투란은 목 줄기를 쥔 타우루스에 코를 들이대며 킁킁거렸다.
―뭐 하는 거냐?
이젠 지쳤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갸웃거리면서 투란이 대답한다.
‘고르곤 아이…… 가진 녀석이랑 갖지 못한 녀석이랑 왠지 달라. 타우곤이랑 족장이랑도 달랐고, 오리지널도 달랐는데…… 오리지널도 고르곤 아이가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다른 것 같아.’
―그건…… 당연한 일 같은데? 고르곤 아이가 어떻게 타우루스 오리지널에게 생겨났는가 굉장히 희한하기는 하다만, 그런 요소를 발현시킨 녀석이라면 동족 중에서도 돌연변이일 테니까 말이야.
‘그러고 보니, 고르곤 아이의 몬스터 에센스는 아예 타우루스랑 별개로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한데?’
―아르고누스로 삼켜서 끼워 넣은 거는 너잖아. 아, 그러면 문장으로 삼키지 않았으니, 아르고누스를 거치지 않고는 쓰지 못하게 된 건가?
‘헐?’
투란은 움찔했다.
드라고니아가 짚은 대로였다.
싸우면서 빠르게, 주위에서 일어날 이변에 대비하기 위해 빠르게 처리하다 보니 타우루스 오리지널에게서 고르곤 아이를 바로 뽑아냈고, 당장 써먹을 수 있도록 ‘파라블랙․잉크’로 흡수했다. 그렇다면 아르고누스의 형상을 통해서 고르곤 아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겠지만…….
뒤늦게 드라고니아가 덧붙이는 말은 투란의 마음을 더욱 아쉽게 했다.
‘젠장, 서두른 만큼 실수를 한 건가.’
―딱히 실수라고 할 것도 아니잖아?
굳이 문장으로, 아르고누스로 따로 꿀꺽거리며 삼켜봐야 달라질 바가 없었다.
어차피 눈알 굴리는 것은 아르고누스에게 전적으로 맡기다시피 한 채로 부지런히 ‘파라블랙․잉크’를 다양하게 끌어내 사용하는 투란이니까.
‘아냐, 온갖 경우를 대비해서 아주 다양한 대책을 생각한다면 따로 간직해둘 필요가 있었어. 엄청난 실수를 한 거야. 쳇!’
아쉬움 가득하게 투란은 중얼거렸고, 샤벨투스의 이빨이 낸 상처 속에서 괄괄 쏟아지는 타우루스의 피를 손에 받았다. 여전히 왼손으로 목 줄기를 쥔 채로 투란은 피를 움켜쥔 듯한 오른손으로 축 늘어진 타우루스의 상처를 찔렀다.
투명한 바람결처럼 타우루스가 해체되며 잔해가 바닥에 뿌려졌다.
뿔과 뼈, 손톱, 발톱…… 그중에는 배 속에 간직하고 있을 듯했던 쇳덩이가 없었다.
‘오리지널도 위장이 여럿인데, 얘네는 도끼나 이런 거 안 쓰나?’
문득 떠오른 생각이 투란을 갸웃하게 했다.
―쓴다, 오리지널이라면 애초에 양손에 도끼 한 자루씩 들고 다니는 이미지가 퍼져 있을 정도니까.
‘타우곤도 끊긴 토막이 되었어도 도끼 좀 휘두른 것 같았고, 족장 무리도 이래저래 잔뜩 갖고는 있었던 것 같은데, 미궁 안에 있는 녀석들은 온통 주먹질만 하는 건가? 여기 4층에 있는 녀석들도 딱히 도끼 든 꼴은 없는 것 같은데?’
투란은 고르곤 아이를 통해 주변을 둘러보면서 확신했다.
―걸치고 있는 것도 없었지. 확실히 좀 수상한 낌새가 많다만…… 지금 그 까닭을 알아낼 수가 있을까?
‘없네.’
약간은 빈정거리는 듯하면서도 신중한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입술을 삐죽이는 채로 대꾸했다.
이 미궁을 찾아온 마지막 탐색, 도감에 남겨진 기록을 작성한 이들 이후에 어떤 모험가도 발 딛지 않은 수백 년이란 시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여전히 타우루스와 라미아가 나돌아다니고 있지만, 과연 지금의 모습이 예전과 같은지 다른지…… 투란이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찌이익, 찍!
상념(想念)을 단절(斷切)해보겠다는 듯한 울음소리와 함께 뭔가 투란의 곁을 스쳐 지나가려 했다. 날카로운 바람결을 남기며, 살갗을 에일 듯한 바람의 압력을 흘리며 지나가는 것은 투란은 바로 낚아챘다.
우람한 타우루스의 손아귀에 잡힌 것은 우득거리며 거칠게 몸부림쳤다.
날개뼈가 부러지고, 비명을 지르는 작은 것은 머리에서 발 끝까지 대강 30센티미터 정도였고 크고 넓은 귀와 들창코 아래로 뾰족한 송곳니 한 쌍을 내밀고 있는 박쥐였다. 보통 박쥐와 비교하면 꽤 커다랗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지만, 그 체격보다 부러진 날개가 날카롭게 번뜩이며 타우루스의 손아귀 가죽에 흉터를 남기는 광경이 더욱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었다.
‘이거, 칼날박쥐잖아?’
투란은 문득 알아차렸다.
―블레이드윙 뱃이로군.
드라고니아도 간단히 말했다.
박쥐지만 어두운 동굴 속에 살지 않고 깊은 숲과 늪이 함께하는 지역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녀석이었다. 무리를 지어 서식하며 날개로 일으킨 칼바람이나, 아예 날개를 칼날로 사용하는 작은 괴수(怪獸)…… 분명한 몬스터였다.
‘이게 이런 곳에서 사는 놈이 아닐 텐데?’
투란이 웅얼거렸고, 드라고니아도 간단히 대꾸한다.
―촉수 거머리도 이런 곳에서 타우루스에 들러붙을 리는 없는 경우였지.
‘아, 몰라!’
뽀각.
약간 뾰로통하니 성질난 한마디를 소리 없이 웅얼대며 투란은 칼날박쥐의 머리통을 따서 버렸다. 그리고 머리 없는 몸통의 목 줄기로 굵은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칼날박쥐의 날개가 이슬처럼 맺히다가 사라졌고, 몸통이 푹 꺼지며 두 발의 날카롭던 발톱 언저리가 흐릿하다가 티끌이 되어 없어졌다. 그렇게 남은 잔해는 딴 머리통처럼 버렸다.
―그건 왜 삼키는데!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렸다.
‘위장용.’
투란은 쉽고 간단하게 대꾸했다.
금방 드라고니아도 그 위장용이 무슨 뜻인가, 투란이 전하는 심상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드레이크의 화려한 금빛 날개를 대신해서, 그 날개의 형상 위에 덧씌울 용도로 간직하겠다는 의도였다.
―도대체 그게 뭔…….
드라고니아가 한탄하려는 듯한 순간, 투란은 내달렸다.
도감에 기록된 최단 경로를 밟으며, 지하 5층의 입구를 향해 쿵쾅거리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투란에게 덤벼드는 녀석은 없었다. 간간이 스쳐가는 칼날박쥐 역시 딱히 투란에게 가까이 올 의사는 없다는 듯, 동족이 실수 한번 했다가 죽은 것을 안다는 듯이 멀찍이 간격을 둔 채였다.
달려나가며 투란은 고르곤 아이를 통해 훤히 보이는 미궁 곳곳을 흘깃거렸고, 역시 위층에서 열심히 탐사해봤던 것과 별다를 바 없는…… 단지 몬스터가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는 층이란 것을 확인하면서 5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도달했다.
그리고 곧 투란은 새로운 흥미를 일깨우는 광경을 봤다.
‘헤에, 이게 뭐지?’
4층까지 내려오는 동안 계단은 그냥 아래로 뻥 뚫린 구멍에 턱 걸쳐진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5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벽 사이에 놓여 있었고 문틀의 형상까지도 갖추고 있었다. 고르곤 아이의 시각 속에 포착된 계단은 곧게 뻗어나가지 않고 휘어지는 채로 아래를 향하고 있기도 했다. 거대한 나선의 계단을 거쳐야 5층에 도달한다고 알려주는 듯했다.
―이런 얘기는…….
‘없었지.’
투란은 묵직하게 의혹을 말하려는 드라고니아에게 바로 호응했다.
도감에 기록된 부분은 5층의 계단에 대해 특별한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다.
미궁 도전기를 남긴 이들도 4층에서 5층으로 내려갔다가 바로 도망쳤다고만 했다.
이렇게 척 봐도 5층부터는 완전히 다른 형식이라고 대놓고 알려주는 장식이 문틀을 꾸미고 붙어 있다는 말은 전혀 없었다.
‘고대의 미궁을 손대서 이렇게 고칠 만한 사람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있는 거야?’
―대마도사만 떠오른다만, 그가 여기에 이런 짓을 할 까닭이 있을까? 솔직히 다른 누가 떠오르지 않으니까 만병통치약처럼 대마도사만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야.
‘대마도사가 들으면 억울해할지도 모르겠네.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잘 모르면 대마도사님이 그랬다고 하는 거잖아?’
―어, 그건…… 오랫동안 자주 있었던 일이라 익숙할 거다.
‘얌마!’
슬쩍 발뺌하는 드라고니아의 괴상한 말에 투란은 헛웃음과 함께 꽥, 한마디를 질러대는 시늉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드라코눔의 아칸이란 작자조차 정말 무슨 일 생겨서 영문을 모르겠으면 전부 대마도사에게 떠넘기다니! 괜히 온갖 해괴한 일의 원흉이 돼버린 대마도사는 대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드라고니아는 그런 일 따위는 모르겠다는 듯, 투란이 문틀의 기괴한 장식을 더듬는 것을 보며 돕겠다는 듯이 말한다.
―따로 마법이 새겨진 장식은 아니야. 수많은 뱀이 뭉치고 꼬여서 이뤄진 형태로 봐서는 여기 메듀시아가 있다는 것을 표현한 듯도 싶다만…….
‘아니면 여기 뱀들이 들러붙었다가 메듀시아랑 눈 마주치고 돌이 되어 문틀이 되었다든가?’
―그건 아니야. 메듀시아의 석화는 암철을 만들어내지 못하니까.
‘엥? 이 문틀 장식도 암철이야? 색이…….’
―도색까지 정성껏 해놨지. 이 어둠 속에서 무슨 의미인가 모르겠다만, 까닭이 있으니까 보랏빛으로 뱀의 비늘을 선명하게 살릴 정도로 정성껏 칠해놨겠지. 내게는 메듀시아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다.
‘흠…… 누가 심심해서 이래 놓지야 않았겠지만…….’
투란은 일부러 거친 숨결을 흘리는 채로 계단을 밟고 미지(未知)를 내려갔다.
눅눅함이 사라진 서늘하고 상쾌한 바람이 5층에서부터 치솟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