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9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94)
므읏, 므흐읏!
꽈아아아! 꾸앙, 꽈아아아!
뭐라 외치는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 그 뒤를 잇는 섬뜩한 도끼날은 어지간한 사람 몸뚱이만 한 크기를 과시하고 있었다.
카앙.
도끼날에 찍힌 바닥은 파이지도 않고, 그냥 덤덤하게 퉁기는 소리만 냈다.
쉬잉!
바닥에 찍힌 도끼날이 바로 튀어오르며, 양날도끼의 쓰임새를 자랑하듯이 거꾸로 찍고 베는 동작을 잇고 있었다.
부웅, 부우웅!
아무것도 맞추지 못해 허공을 긋는 도끼날의 사나운 움직임이 이어졌다.
므으흣, 푸륵!
양날도끼가 멈춰졌고, 도끼를 휘두르며 뿔을 휘젓던 타우루스가 두어 걸음 껑충 뒤로 물러섰다. 새삼스럽게 자신의 도끼를 피해내는 상대를 관찰이라도 하겠다는 듯한 자세였다.
두툼한 어깨, 팔뚝은 타우루스를 떠오르게 하지만 머리와 허리 아래는 완연히 인간인 괴상한 상대, 그러면서도 타우루스의 과격한 근력을 두려워 않고 피하는 날렵한 몸놀림…… 계단에서 내려서자마자 기습해서 단번에 찍어누르려 했던 타우루스의 첫 계획을 실패하게 한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으로 실눈을 한 투란이 갑자기 신중해진 타우루스보다 그 도끼에 관심을 두겠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거참, 바닥이 도끼날을 씹어먹네?”
―암철보다 강도가 훨씬 약하니까. 그런데도 부서지지 않고 날만 상했다는 것은 오히려 대단한 거다. 과연 타우루스의 도끼라고 할 만해.
드라고니아의 평가에 투란은 그런가 하며 타우루스를 보니, 녀석은 자기 도끼날을 날름날름 핥고 있었다. 연이어 피해낸 투란을 향한 눈초리는 변하지 않았는데 그 틈에 날이 뭉개진 도끼를 입에 가져다 대고 핥는 모습은 조금 어이없어 보였다. 하지만 투란은 도끼날이 다시 날카로워지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기에 금방 납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와, 정말로 배 속에서 게워낸 쇳물로 금방 수선하는구만.”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다만…… 저거, 족장보다 더 세 보이고 오리지널에 가깝지만 오리지널이 아니야. 조심해라, 저거 아무래도…….
드라고니아가 경고하고 있었지만 투란은 그보다 다시 날카로워진 도끼날을 수평으로 눕히며 팔을 한껏 뒤로 뺐다가 휘둘러오는 타우루스에게 먼저 대응해야 했다. 그러니 드라고니아의 이어진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셈이 되는데…….
씨이잉!
서늘한 바람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도끼날을 피해 투란은 납작 앉는 꼴이 되었는데, 바로 타우루스의 발길질이 날아들고 있었다. 그 순간에 보이는 발의 모양은 엄지 쪽은 발톱이 뭉쳐 소의 발굽에 가깝지만, 새끼 쪽은 두툼한 발톱일 뿐인 인간의 형상이었다. 흘려들은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어느 정도 오리지널에 가깝지만 타우루스라는 증표처럼 생긴 형태였다.
―족장보다 상위의 왕족일 수 있어.
뒤늦게 스며온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이 ‘엥? 왕족?’이라 하는 사이 타우루스의 동작은 보다 복잡하고 정교하게 몰려오며 도끼든 발길질이든 주먹질이든 맞으라고 강요하는 중이었다.
첫 도끼질을 피해 앉고 발길질을 피해 옆으로 구르는 사이, 다시 도끼가 스쳐 가고 발이 내리밟으면서 주먹도 당겨 준비하는 타우루스의 자세는 꽤 숙련된 격투술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었다.
단숨에 힘을 쏟아내기보다 적절히 배분해서 투란의 다음 동작을 엿보고 파악하며 들어오려는 그 모습에 대응해서, 투란은 실눈을 크게 뜨고 고르곤 아이를 드러냈다.
과격하게 움직이던 타우루스가 도끼를 당기는 동작인 채로 기우뚱하며 멈췄다. 조금 더 기울어지면 아예 쓰러질 듯했지만 생각보다 유연하고 빠른 반응을 지닌 타우루스의 몸은 마비상태에서도 균형을 잡고 쓰러지지 않는 듯했다.
“대단하네, 정말…… 잔뜩 휘두르니까 넘어질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냥 치마 두른 녀석이 아니었어.”
일부러 주변에 퍼지도록 소리 내어 말하는 투란이었다.
―야, 치마 아냐. 저런 양식의 옷은 처음 보냐? 몬스터가 입었다고 해서 인간에게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확실하게 인간의 문명 속에 있는 옷차림이니까. 아랫도리를 대강 둘러막은 가림막 형태의 의복일 뿐이라고.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저 차림을 하고 있을걸.
‘적어도 춤추는 산맥 어딘가는 아니겠네. 저런 차림이면 똥오줌 냄새를 그냥 풍기고 다니는 꼴이라고. 몬스터나 마수가 아니라 짐승한테 먼저 발각당해서 다치기 딱 좋아. 웬만한 도시 안에서도 아랫도리 금방 까 보일 생각 아니면 아예 입지 않게 생겨먹었다고, 저건…….’
툴툴거리며 대답하는 동안에도 투란은 고르곤 아이를 훤히 뜬 채로 타우루스의 경직된 손아귀에서 도끼를 빼내고 있었다. 손에 전해오는 묵직함이 금방 투란의 관심을 끌었다.
‘이건 무지막지하다고 해야 하나?’
날을 살리려고 바른 침은 이미 말라 없어진 듯했고, 방금 물에 식힌 듯한 미묘한 열기가 도끼날에서 풍겨나오는 듯했다. 기교 없이 네모난 모양에 요령 없이 날만 휘어진 꼴을 했음에도 일단 커다랗기에 박력이 느껴지는 셈이었다. 그냥 벽에 기대놨다가 떨궈져서 넓적한 면으로 사람을 때려도 뼈를 부술 지경이었다.
―밀도가 꽤 높아, 웬만한 야장(冶匠)의 기술로는 이 정도로 압축된 쇠를 만들어낼 수 없을걸.
드라고니아도 투란의 감상에 바로 동의했다.
스윽, 주변을 다시 둘러보면서 눈앞에 있는 녀석에게 다시 한번 눈길을 주고…… 고르곤 아이를 통한 제압을 보다 확실하게 하면서 투란은 갸웃했다.
‘그런데…… 얘네, 완전히 따로 노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건가? 계단 바로 아래를 틀어막고 있는 녀석도 혼자, 멀찍이 구경하는 녀석들도 전부 따로따로…… 전혀 무리 지을 생각이 없는데? 라미아가 섞여 있어서 그런가?’
―그보다는 왕족이라 그럴 가능성이 크다. 영역을 구축하고 그 영역에 대해 절대적인 지배를 하려 드는 것, 그게 타우루스 왕족의 특징이니까. 원래는 홀로 미궁을 장악하고 군림하는 폭군이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여기서는 그게 어려우니 저리 따로 노는 모양이 아닐까 싶다. 막연한 추측일 뿐이지만 그것 말고 다른 생각은 안 나는군. 아무튼 좋은 거 아닌가? 한꺼번에 상대하면서 힘 빼지 말고 착실하게 길 찾아 들어갈 수 있으니까.
‘그 왕족에 대해서 좀 자세히 말해봐.’
투란은 눈앞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눈동자부터 핏대를 세우고 눈알을 붉게 물들이는 타우루스를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고르곤 아이의 억압이 두어 번 되풀이되니, 타우루스가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진 듯했다. 이쯤 되면 억압을 힘으로 뚫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만이 타우루스에게 남은 선택인 듯 보였다.
투란이 그 선택을 대행(代行)했다.
푹.
샤벨투스의 이빨이 가차 없이 타우루스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움직여 흉골 사이를 헤집으며 타우루스의 가슴을 수평으로 찢어놨다. 억압된 타우루스는 그대로 부들거리며 드러내던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쓰러지지 않고 여전히 서 있었다. 이제는 굳어버린 근육이 여전히 균형 잡힌 자세를 버티는 듯…….
투란은 샤벨투스의 이빨이 갈라놓은 틈새로 그대로 손을 밀어넣었다.
이빨을 대신해서 타우루스의 가슴팍에 꽂힌 손아귀로부터, 붉은빛이 피어나고 핏빛의 고리가 톱니를 세운 채로 타우루스의 신체를 갉아내듯이 번져갔다. 타우루스의 뿔이 붉은 금이 가는 듯하다가 안쪽에서 무너지며 떨궈졌고, 이빨과 손톱, 발톱, 뼈마디 몇 곳을 담은 얇고 헐렁한 가죽이 흐트러지며 타우루스의 몸뚱이가 스러졌다. 스러지는 사이로 조금 길고 뭉툭한 쇠뭉치가 두엇 툭툭 떨어지기도 했다.
그 사이에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딱히 자세히라고 할 것도 없어. 타우루스 중에서도 왕족이라 분류되는 경우는 일단 상위 계층을 형성하는 몬스터이고, 그만큼 강하지. 하지만 왕족은 족장처럼 초원이나 산악을 헤매는 무리를 짓지는 않아. 그 대신 미궁을 장악하든가, 토굴부터 파기 시작해서 자신만의 미궁을 꾸미지. 미궁이란 환경 속에서 그 힘이 몇 배로 증폭한다는 말도 있지만…… 아무튼 혼자 미궁 안에서 왕 노릇을 즐긴다고 해야 하나? 그런 독자적인 생태(生態)를 지녔기에 반쯤 놀리는 말로 왕족이라 부르는 셈이기도 해.
‘정수가 합치지 않네.’
이야기를 들으면서 투란은 문장의 풍경 속에서 타우곤, 타우루스 족장과 오리지널을 나란히 하고 거기에 지금 막 삼킨 타우루스를 덧씌우듯이 비교해보고 있었다. 그 결과는 몬스터 로드의 힘으로 이종(異種)의 몬스터를 융합하는 것과 비슷했다. 각각의 타우루스는 그 외관에서 보이는 것과 다르게, 각자의 특징이 또렷한 독자적인 에센스를 지닌 별종의 몬스터인 것이다.
‘이거 참…… 근육이나 골격이 닮았지만 내장이랑 핏줄이 다른 탓인가?’
지하 5층에 내려서자마자 도끼 들고 덤빈 타우루스는 여섯 개의 위장을 지녔고 그 쓰임새가 보다 확장된 듯했다. 거기서 나온 쇠뭉치만 둘이었고, 두 쇳덩이는 단단하다는 것 말고는 색깔부터 완연히 다른 상태였다. 그런 내장 형태를 지닌 탓에 핏줄이나 엉킨 내장의 배치, 구조조차 전혀 달랐다. 외형과는 달리 속내는 말과 소, 개처럼 다른 품종이라도 된 것처럼 타우루스마다 완전히 다르니 이쯤 되면 뭉뚱그려서 타우루스라고 부르는 것이 바보 같을 지경이었다.
―어느 쪽도 도끼의 재질과는 다른걸, 아무래도 저 둘을 혼합해서 도끼의 소재가 되는 모양인데?
쇳덩이를 판별한 드라고니아가 감탄한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도 도끼를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써먹어 볼 만하네.’
다른 녀석들이 도끼 들고 한꺼번에 몰려나온다면 맨손보다는 조금 나을 터였다. 엉터리로 휘두른다면 차라리 맨손이 나을 수도 있겠지만…… 키린으로부터 배운 궁정 무투술을 떠올리며 투란은 몸을 변형시켰다.
팔다리가 두툼하고 굵직해졌고, 이마 언저리고 불룩하니 솟구쳤지만 털가죽이나 뿔의 형상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순수한 인간이 거구(巨軀)를 이루고 근육을 뽐내듯이 키운 모양이었다. 거기에 두껍고 탱탱한 가죽의 반바지가 허벅지에서 배꼽까지 꽉 조이는 모양까지 잡고 나서 투란은 양날도끼를 어깨에 걸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저벅저벅, 두어 걸음 걷는 사이 투란은 고르곤 아이를 감추듯이 실눈을 만들었다. 가늘게 작게 눈을 드러내면 고르곤 아이는 그저 압박하는 분위기만 띨 뿐, 완전히 제압해서 마비시키는 위력은 발휘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각은 실눈으로도 충분히 시야를 확보할 수 있으니, 멀리서 겁먹고 달려들지 않는 녀석을 유혹해보자는 속셈이 가득한 꼴이었다.
이런 투란의 유혹은 대강 스무 걸음 정도 나아가다가 바로 보답을 받았다.
하지만 투란이 기대한 대로는 아니었다.
―투란, 위!
드라고니아가 다급하게 외칠 때, 투란도 고개를 들고는 있었다.
여전히 바닥에서 5미터 높이에 있는 천장, 거기 구불거리는 뱀의 몸을 드러낸 채로 들러붙어서 나타난 것은 조금 전까지 없던 것이었다. 딱히 은폐했다가 몸을 드러낸 것이 아니었다. 가볍게 한 걸음, 편안하게 뒤꿈치가 닿고 막 앞 발가락이 바닥을 짚는 짧은 사이에 미궁의 복잡한 통로, 뚫린 벽 사이에서 튀어나왔을 뿐이었다. 바닥을 기는 대신에 천장을 기어오는 조금 괴상한 자태로, 보이는 광경 속에 있는 구불거리는 몸을 펴기만 해도 대강 십여 미터는 가볍게 넘을 듯한 라미아였다.
‘워어, 엄청 빨라! 엄청 예뻐! 4층보다 더 크고 예뻐!’
―야! 정신 차려!
미묘하게 투란의 반응이 늦어진다는 것을 알아차린 드라고니아가 벼락처럼 외쳤다.
그 외침이 투란의 마음에 닿는 순간에는 투란도 이미 반응하고 있기는 했다.
먼저 두 눈을 부릅뜨고, 더 자세히 보겠다는 듯이 고르곤 아이를 드러냈고…… 어깨에 걸친 양날도끼를 부드럽게 위로 밀어 올리듯이 휘둘러 떨어져 내리듯 덮쳐오는 라미아를 후려 찍고 있었는데, 기대하지 못한 상황이 이어지고 말았다.
투란의 머리 위편에 자리하자마자 덮쳐 내린 라미아는 이미 배꼽 아래를 활짝 열고 휑 뚫린 구멍 같은 속내를 드러낸 채였다. 그러면서 여인의 상반신은 봉긋한 가슴을 두 손으로 감싸쥔 듯한 자세였는데, 양날도끼가 움직이자 바로 한쪽 손을 내밀어 도끼날을 잡고 있었다.
아름답지만 양날도끼의 우악스러움으로 인해 한층 더 여려 보이는 손이었으니, 당연히 갈라지고 쪼개지리라는 예상을 하게 되었지만 양날도끼와 손은 맞닿는 순간에 서로에게 박힌 것처럼 멈춰지고 말았다.
라미아의 손에서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광경은 투란에게 양날도끼 쪽이 뭉개지고 손이 박힌 꼴이란 것을 알게 해줬는데, 그 사이에 한쪽 가슴이 출렁하는 광경을 드러낸 라미아의 하체, 뱀의 몸이 천장에서 통째로 떨어지며 투란의 주변을 휘감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명확하게 뱀이었고, 먹이를 감아 그대로 삼키는 구렁이의 자태였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투란과 라미아가 서로 얼굴을 가까이하며 마주 보는 자세가 되었을 때 멈췄다. 한 손으로 우악스러운 양날도끼를 날째로 잡아 밀어내고, 한 손은 자신의 가슴 한곳을 가리듯이 움켜쥔 라미아가 배꼽 아래를 활짝 열어 거대한 뱀의 목구멍을 그대로 드러낸 듯한 꼴로 멈춘 광경은 투란에게 한숨을 쉬게 했다.
‘아오, 안 통하는 줄 알았네.’
―고르곤 아이에 걸린 상태에서도 이만큼 움직였다라…… 고르곤 아이의 효과가 어떤 과정을 거쳐 발휘되는가 검토해야겠다. 스테노아랑은 결과만 비슷하지, 전혀 다른 식으로 적용되는 모양이다.
드라고니아는 이 상황이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쓴웃음과 함께 투란은 찬찬히 라미아의 얼굴부터 훑어내리는 눈빛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