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9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95)
투툭, 꼬아놓은 듯했던 라미아의 머리카락이 풀리며 쏟아지는 물처럼 흘러내렸다. 훤히 드러났던 가슴 한쪽이 머리카락에 살짝 덮이며 가려지는 시늉이라도 하는 듯했다.
그 모습은 그냥 멍하니 보고만 있어야 할 듯한 아름다움이 철철 넘쳐났기에 고르곤 아이를 고정한 것처럼 눈길을 주기는 했지만, 투란은 여전히 그 가녀린 팔에 달린 손이 도끼를 뭉개는 채로 꽉 잡고 있는 광경도 놓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도끼자루 한쪽을 잡고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한껏 펼치려던 투란의 팔이 어중간하게 뻗은 꼴이었고, 도끼날은 투란의 어깨와 라미아의 손아귀 사이에서 움찔거리고 있었다. 후려쳐내다가 잡혀서 거꾸로 밀린 상태…… 움직임을 멈췄으니 그럭저럭 밀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이 모양이었다.
분명히 고르곤 아이의 힘은 통했다.
그런데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라미아의 손은 여전히 힘센 채로 가녀리고 여린 아름다움을 잇고 버티며, 그 와중에 다른 한 손은 봉긋한 가슴 한쪽을 살포시 쥐고 가린 것이 부끄러운 척이라도 하는 듯하다니.
―꼬리 끝은 아직도 팔딱거리고 있어. 아무래도 고르곤 아이는 몸의 신경(神經)을 제어하는 방식인 모양이다. 시각을 통해서 침투한 힘이 번져가는 와중에 이어진 동작이라든가, 시각 신경계에서 멀어진 부분이 여전히 활동적인 꼴을 보니 말이야. 이십여 미터에 가까운 라미아니까, 이 정도면 오히려 고르곤 아이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 거야. 아니, 라미아의 신경반응이 빠르다고 해야 하나? 뭐, 아무튼…… 못 알아듣겠냐?
‘반쯤 알아들었어. 고르곤 아이가 그 몸에 퍼져 있는 신경 그물을 건드려서 멈춰 세운다는 말이지? 길고 큰 몸은 신경 그물이 넓고 기니까 오래 걸리고.’
―그래, 핵심은 그거야.
드라고니아는 굳이 더 자세한 생체(生體)의 신경구성 이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중요한 부분은 고르곤 아이가 지닌 특성, 한계가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가, 그에 따라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가를 투란이 알아차리면 그만일 뿐이니까.
투란은 도끼를 쥐지 않은 한 손으로 느릿하니 라미아의 목 줄기를 쥐었다.
머리카락을 헤치고 손이 목에 닿으며 라미아의 얼굴을 살짝 돌리는 과정 속에서 투란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예쁘다, 정말 계속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아.’
―야, 그렇게 홀리지 말란…….
좌악, 라미아를 쥔 손아귀에서 샤벨투스의 이빨이 거칠게 튀어나왔고 목 줄기에서 얼굴까지 확 그어버렸다.
‘음? 뭐?’
―아니다.
드라고니아는 자신이 하려던 말을 포기했다.
아름다움에 취해서 정신줄 놓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지만 내 할 일은 그냥 한다는 투란의 태도가 조금 어이없지만…… 몬스터인 라미아를 상대하는 데 잘못된 부분은 없잖은가.
샤벨투스의 이빨이 거둬졌고, 그 갈라진 틈새로 투란의 손이 적당한 크기로 변화하며 스며들었다. 금방 우득거리는 소리가 라미아의 목 줄기 안에서 울려나왔다. 그러는 사이에도 투란의 눈길은 쪼개진 라미아의 얼굴에 고정된 채였고, 마음속에서는 끊임없는 감탄을 흘리는데…….
‘우와아, 반쪽 내놨더니 아까랑 다르게 예쁘다! 얘, 조각조각 내도 이쁜 거 아냐? 살갗도 매끈매끈하고…… 음? 이거 축축한 게 너무 조이는데?’
라미아의 비늘과 어우러진 살갗에 맺힌 것이 투란의 두껍게 부푼 살갗을 일그러뜨리며 찢고 뭉개고 있었다. 땀을 흘린 것이 맺혔는가 싶었는데, 그냥 땀방울이 아닌 모양이었다.
―독이다, 이 바보야! 그걸로 도끼날도 뭉갠 거야! 쇠도 녹이고 살도 흐느적거리게 녹인다고!
‘아, 그냥 이쁘면서 힘센 것이 아니었나?’
투란은 흥미로워하며 라미아의 상체, 여인의 몸인 부분과 입을 활짝 열어놓은 뱀의 부분을 관찰했다. 라미아의 몸에 맺힌 땀방울을 배꼽 아래를 열고 드러낸 커다란 구렁이의 목구멍을 가득 채운 침방울 같은 체액(體液)과 일치했다. 이걸 가득 바른 채로 삼킨다면 쇠든 뭐든 일단 다 뭉개서 녹여 먹을 것처럼 보였다.
‘이상하네, 라미아는 독이 없고 삼킨 장비는 그냥 토해낸다고 했는데?’
지난 기억을 더듬으며 투란이 갸웃했다.
―토하는 게 아니라 싸지르는 거겠지. 어쨌든 모든 장비를 다 배출시키는 것은 아니잖아? 소화할 수 있는 거는 전부 체내 영역에서 처리한 다음에 배출시킨다고 봐야지. 그 소화액을 체표(體表)로 방출시켜 독의 역할을 하는 모양이고…….
‘이런 도끼까지 녹일 정도면 거의 다 녹여 없앨 것 같은데?’
투란은 라미아의 목 줄기 안에 맺힌 고치에 문장의 힘을 집중시키며 중얼거렸다.
라미아의 형상이 흐릿해졌고, 희미한 거품 같은 허물을 남기면서 으스러졌다.
잔해에 불과한 허물이었지만 투란은 그 윤곽 속에서 여전히 라미아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가 있었다. 은근히 피어나는 아쉬움은 얼굴의 허물을 따로 베어내서 가면이라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할 지경이었다.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이런 미련에 어이없었지만 이러쿵저러쿵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이쁘다 어쩌다 하면서도 투란은 가차 없이 라미아를 제압하고 찍어누를 뿐이니까. 한데…….
‘라미아마다 얼굴이 똑같지는 않은 거지?’
돌연 투란이 갸웃하며 묘한 호기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똑같을 리가 없잖아. 뱀 비늘의 무늬도 달랐다. 4층에서 삼킨 거랑 지금 삼킨 거랑도 크기부터 뭐 하나 닮은 부분이라고는…… 투란?
‘없어!’
―뭐?
‘4층에서 삼킨 거, 문장 안에 없어! 라미아가 달랑 하나야!’
―음?
드라고니아는 투란에게서 풍겨나오는 문장의 풍경을 지각(知覺)했다.
보이드에 휘감긴 라미아는 투란의 말대로 하나뿐이었다.
고요하고 짙게, 라미아의 정수를 품어 라미아의 형상이 이뤄졌지만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어디 간 거야!’
돌연 투란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고, 라미아의 남겨진 허물을 둘둘 말아 감으면서 끙끙대며 셈을 하고 있었다.
‘4층에서 타우루스 하나, 라미아 하나…… 잠깐, 4층에서 삼킨 타우루스도 없네? 어라? 그러고 보니 타우곤, 족장, 오리지널이랑…… 5층에서 잡은 왕족뿐이야! 이게 뭔 일이야! 어디 갔어! 왜 없어!’
―야, 진정하고…… 완전히 같은 품종의 몬스터 에센스라면, 자연스럽게 통합되는 거 아니었냐?
달래는 말과 함께 드라고니아가 추측했다.
‘에? 나는 분명히…….’
투란은 움찔하면서 상황을 되새겨봐야 했다.
똑같은 품종의 몬스터라 할지라도 투란은 두 마리를 따로 감금(監禁)하듯이 분리해 놓을 수 있었다. 몬스터의 정수가 한 가지일 뿐이라도, 삼킨 개체에 따라 나눠놓을 수 있는 까닭은 ‘천칭’이 품은 보이드 덕분이었다. 따로 껍질을 씌워 분리해놓을 수 있게 해주니까. 하지만 그 작업은 분명히 나름대로 마음을 써야 했다. ‘천칭’이 자연스럽게 정수를 거르고 통합하는 과정을 의도적으로 제어해야 했다. 만약 그 과정에 의지를 담아 다루지 않는다면, 다른 뭔가에 투란이 몰입된 상태라면 ‘천칭’은 당연히 할 일을 한다!
―라미아의 아름다움이 전혀 효과 없는 것은 아니었구나.
드라고니아가 금방 상황을 파악하고 정리하듯 말했다.
‘젠장!’
투란은 억울하다는 듯이 웅얼거렸다.
그 입에서 나는 소리는 크응거리는 묘한 목울림이었지만…….
―투란…….
‘알아.’
쪼그리고 앉아 라미아의 잔해, 허물을 긁어모으고 접어 개듯이 뭉치는 투란의 앞뒤 어둠 속에서 고요한 움직임이 있었다. 투란이 웅크린 채로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듯하자, 앞에서 슬그머니 타우루스 둘이 고개를 내밀었고 뒤에서는 라미아 둘이 꼬리와 머리를 동시에 내밀고 있었다.
통로 좌우에서 한 마리씩 나왔지만 서로의 영역을 존중한다는 듯, 타우루스도 라미아도 곁에 있는 동족의 행동에 간섭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의 움직임을 상의라도 한 듯이 맞추고 있는 듯했다.
그 결과는…….
천장에 붙은 라미아와 바닥에 붙은 라미아는 가만히 투란 쪽을 바라보면서 혀로 입술을 핥았고, 꼬리를 내밀고 있었다. 가까이 붙어서 머리를 가까이했던 라미아가 허물만 남기고 사라진 광경을 이해한다는 듯, 꼬리는 미약하나마 여전히 움직였던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꼬리를 내밀고 뒤따라 길고 굵은 뱀의 몸통을 들이대는 셈이었다. 당장은 느릿한 움직임이었지만, 가속한다면 가히 통나무나 쇠기둥으로 후려치는 효과가 여실히 드러날 듯했다.
라미아 두 마리가 천장과 바닥에서 서로의 간격, 움직일 궤도를 정하고 그리 협력할 때 타우루스 두 마리 또한 통로의 좌우 벽에 적당히 붙은 채로 서로의 움직임을 제약하지 않는 범위를 잡은 듯이 도끼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타우루스 한 마리는 양손에 한 자루씩, 두 자루의 도끼를 들었고 다른 한 마리는 크고 긴 양날도끼 하나를 두 손을 모아 움켜쥐고 있었다.
네 마리 몬스터는 서로의 영역, 동작범위를 존중하듯 자리를 잡았고 오직 하나뿐인 침입자를 노려보면서 자세를 굳혔다.
신호는 커다란 양날도끼를 든 타우루스가 뿜어내는 거친 숨결이었다.
그 숨소리가 세게 어둠에 던져지는 순간, 양날도끼를 쥔 타우루스의 두 팔에서 돋아나는 굵은 힘줄이 어깨까지 번져나갔고 나란히 서 있는 두 자루 도끼를 든 타우루스가 세찬 콧김을 내뿜었다.
하지만 두 타우루스는 바로 움직이는 대신에 기다렸다.
맞은편에서 라미아 둘이 상하로 범위를 정한 채로 길고 굵은 뱀의 몸통으로 침입자를 공격하는 순간에 비늘과 바닥, 허공이 그에 대한 반응을 보일 무렵에야 타우루스 둘은 바닥을 박차며 도끼를 겨냥한 채로 내달렸다.
침입자가 라미아 둘의 거대한 꼬리, 몸통에 밀려 앞으로 튀어나오면 타우루스 둘이 제각각 휘두르는 도끼의 궤적 아래 놓일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침입자는 피할 수 없이 이 공격에 노출된 셈인데…….
“이 녀석들, 정말 누가 조련한 거 아냐?”
투란은 쪼그리고 앉아 앞뒤의 상황을 지켜보다가 어이없어 새는 헛웃음과 함께 이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말과 함께 드라고니아에 대한 핀잔을 잊지 않고 소리 없이 찔러주기도 했다.
‘야, 왕족이라 따로 논다며? 각자 영역에서 꿈쩍도 않는다며?’
―조련된 경우라면 이럴 수도 있지. 그래서, 맞아줄 거야?
왠지 태연한 드라고니아의 대꾸였다.
‘아니!’
우드득, 투란의 머리에서 거칠게 뿔이 돋아났다.
빙글 돌아가며 감기는 듯한 뿔의 모양은 소보다는 산양을 먼저 떠올리게 했다.
뿔은 돋아나기가 무섭게 맹렬한 파동을 일으켰고, 파동은 투란의 온몸을 휘감았다.
두 발목이 뿔과 어우러지듯이 카프리곤의 형상을 머금었고, 그 순간에 투란은 천장을 향해 튀어올랐다. 굵고 거대한 뱀의 몸통 두 가닥이 투란이 앉아 있던 자리를 위아래로 휩쓸었지만, 그 틈새로 투란은 튀어나가 벽을 박차며 라미아에게 도달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체격을 조절하고, 카프리곤의 도약력을 응용한 결과였다.
그 움직임을 그대로 이어 투란은 먼저 천장에 매달린 라미아의 머리통을 움켜쥐었고, 바닥에서 막 상체를 일으키는 라미아의 머리도 내리찍듯이 움켜잡았다. 이 순간에 투란의 두 손은 푸른 비늘이 감싼 채로 사나운 손톱이 돋아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연이어 내려서는 투란의 발 또한 푸른 비늘을 머금고 억센 발톱을 뿜어내며 라미아의 가슴 아래쪽을 찍어 누르며 부여잡았다.
천장에서 잡은 라미아의 몸은 그 머리를 따라 바닥에 떨어져 내렸고, 투란의 발은 여지없이 그 가슴 아래를 짓밟으며 부여잡았다.
두 발이 새롭게 두 손처럼 드라고의 형상을 갖췄지만, 그 발목과 종아리는 카프리곤의 형상을 유지한 채였다. 그렇게 복합된 형상 속에서 투란의 머리 또한 카프리곤의 뿔을 지닌 드라고의 형상으로 바뀌고 있었다.
크르르…… 낮고 사나운 울림이 드라고의 목을 울렸다.
라미아 둘의 머리가 그대로 몸통에서 뽑혀 나왔다.
그 순간에 타우루스 두 마리의 도끼질이 그대로 투란의 등짝에 떨어졌다.
굵고 무거운 양날도끼의 둔탁한 충격, 작지만 날쌔고 강렬한 두 자루 도끼의 연타(連打)…….
터엉, 카카캉.
드라고의 비늘이 카푸리곤의 뿔이 일으키는 파동을 머금은 채로 이를 가볍게 퉁겨냈다. 동시에 드라고의 꼬리가 두 자루 도끼를 든 타우루스의 가슴을 꿰뚫었다. 강렬한 파동을 머금었기도 했지만, 어느새 날카로운 세모꼴의 전갈 껍질을 덧씌운 꼬리였기에 타우루스의 두꺼운 가죽은 아무런 저항도 못 했다.
꼬리가 거칠게 어깨에 걸쳐지면서 타우루스를 투란의 앞쪽에 팽개칠 때, 양날도끼를 든 타우루스가 섬뜩한 포효와 함께 드라고의 목을 향해 도끼질을 했다.
그 꼴을 보겠다는 듯이 드라고가 고개를 돌렸고, 입을 열어 도끼를 물었다.
콰득.
길쭉한 드라고의 입안에서 이빨이 으스러졌는지, 도끼날이 으깨진 것인지 모를 소리가 울렸다.
전갈의 껍질을 쓴 드라고의 꼬리가 또다시 움직였고, 양날도끼를 빼내려는 타우루스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리고 다시, 꼬리는 앞쪽으로 타우루스를 내팽개쳤다.
털썩, 크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