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
뭘 어찌해야 하는지, 투란은 머리가 멍할 뿐이었다.
하지만 가슴속에서 두근대는 심장은 저 안에서 버틸 수 있는가 없는가를 냉정하게 검토하고 있었다. 물고기가 저렇게 크다면, 오히려 그 배 속에 머물 만한 곳이 있지 않을까 기대마저 하는 듯했다.
‘삼켜지지 않으면 좋겠지만, 삼켜지면 안에서 상황을 본다.’
담담한 결론이 내려졌다.
딱히 다른 방법이 있는가, 하고 가슴속에서 다시 물음이 나왔지만 투란의 머리는 역시 아무 대답도 낼 수가 없었다.
차라리 물고기가 헤엄치는 물속이었다면 투란도 헤엄쳐서 도망가는 시도라도 할 텐데, 공중에서 떨어지는 나무에 매달린 상태니 그런 선택지는 없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은 냉정한 악마의 심장 투란에게 빠른 체념과 포기를 강요하며, 잡아먹힌 다음의 일에 대비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
하지만 샤오콴 마을에서 자란 소년 투란은 돌연 분노를 느꼈다.
그 대상은 당연히 다가오는 중인, 입 벌린 물고기!
‘여기가 물속이냐! 늪도 도망갔거든! 그래서 내가 지금 바닥없는 허공에서 떨어지는 중이라고! 근데 넌 뭐야? 물고기 주제에 그렇게 커도 돼? 그렇게 큰 주제에 왜 지느러미는 날개처럼 생겼어! 날개처럼 퍼덕여서 멀리 가라고! 왜 그 이빨 사이에도 안 낄 것 같은 나한테 주둥이를 들이미는데!’
소년의 분노는 마음 깊은 곳을 헤집으며 번져 나갔다.
그러면서 투란은 사람의 머리와 악마의 심장을 통해서 깨닫고 있었다.
정말 지금의 자신은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투란은 몬스터 로드가 되었지만, ‘괴물 왕자’처럼 되지 못했다.
그저 아무도 삼킬 리가 없는 하찮은 몬스터, 넝쿨이 느리기만 한 동그란 뿌리, 누가 악마의 심장이라는 이름을 붙여 놨는지 알 수 없는 놈으로 보이드 엠블럼을 채웠을 뿐.
이 상황은 투란의 기억을 자극했다.
“괴물 왕자처럼 되려면 몬스터 로드가 되어야 하는 거 알지? 뭐, 네 나이도 그럴 때가 됐으니 몬스터 엠블럼을 전이시켜 주마. 아, 우선 괜찮은 몬스터를 한 마리 잡아야겠군. 내가 여분으로 삼켜 둔 놈이 없거든.”
샤오콴 마을에서 사흘 정도 거리인 ‘혼돈의 늪’ 언저리에는 몬스터가 자주 나타나고 가끔 떼로 몰려나오기도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해서 ‘혼돈의 늪’이라 불리는 곳, 그 때문에 사람이 다가갈 수 있는 시기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곳으로 투란을 이끌어 가던 날, ‘아버지’라는 작자가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고 투란은 지금 가슴에서 울컥한 분노가 심장을 쥐어짜는 듯했고, 크게 울린 가슴이 거친 소리를 밀어냈다.
“살아서 다시 보자고!”
소년의 분노가 새삼 악마의 심장을 냉정하게 사고하게 했다.
―그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지.
언젠가 들었던 말이 되새겨졌고, 이번에는 투란도 그에 완벽하게 동조할 수 있었다. 할 수 없는 일을 떠올리고 거기 매달려 봐야 소용없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점검하고, 저 물고기의 입속에 담긴 뒤에도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할 때다.
기죽어 얼어붙어 있을 때가 아닌 것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투란은 외쳤다.
“와라아아아아!”
굳이 힘겨운 압력 속에서 뭐라 하지 않아도 커다란 물고기의 입은 다가오고 있었는데, 투란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귓가에 닿기도 전에 흩어져 사라지는 와중에 눈앞에 보이는 것이 싹 바뀌었다.
‘어?’
투란은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놀라 버렸다.
모든 것은 정말 짧은 동안,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이게 뭐야?’
투란은 입을 꽉 다문 채로 생각했다.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겨우 고쳐진 눈이 본 광경만 투란의 뇌리에서, 가슴에서 몇 번씩 되풀이되며 제대로 ‘본’ 것을 알려 줄 뿐이었다.
그것은 그림자가 사라진 일부터 시작되었다.
거대한 물고기 목살 동굴이었던 목구멍 너머로 저편의 풍경이 보이면서, 그림자가 사라졌다. 다가오던 입이 기울어지고, 투란이 여전히 다리로 꽉 감은 채 매달린 나무가 떨어져 내리던 방향과 반대로 향하는 광경이 그다음에 보였다.
그 큰 입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서 투란은 위쪽을 봐야 했다.
거대한 물고기의 긴 몸이 갈라지고 쪼개져 흩어지고 있었다.
물고기가 뭔가에 찢기고 쪼개지고 으스러지면서 몸부림치는 듯 날개 같은 지느러미를 펄럭인 모양인데, 그 바람에 꺾이고 뚫리고 갈라진 지느러미 조각이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투란을 삼키려던 거대하고 긴 물고기, 지느러미를 날개처럼 펄럭이며 다가왔던 괴물의 머리통이 끊어진 채로 돌며 다시 한 번 투란을 향해 눈동자를 들이댔다. 아까 투란을 보던 눈동자의 반대편이다.
그 눈동자가 응축되고 꼬물거리면서, 그 안에서 실 가닥 같은 것이 뚫고 나오는 광경은 인상적이었다. 투란의 상식에는 전혀 맞지 않았지만.
조금 거리가 있는 탓에 실 가닥으로 보이던 것은 금방 머리, 몸통, 꼬리 부분에서 제각각 날개가 돋은 뱀 혹은 지렁이로 형상을 분명히 했다. 마치 이빨거머리가 꼬불거리듯, 거대한 물고기 눈동자에서 나온 것들이 세 쌍이나 되는 날개를 퍼덕이며 흩어지려는 순간, 황색의 질풍이 스쳐 갔다.
‘아, 저거다!’
투란은 본능적으로 몸을 잔뜩 움츠리면서 팔다리를 나무에 붙었다.
누런 먼지 줄기, 단순히 그렇게만 보이는 그 황색의 질풍이 거대한 물고기를 절단하고 박살 내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추락하는 반대 방향으로 치솟듯이 불고 있었다. 저 아래쪽에서.
투란이라고 질풍이 피해 갈까?
―그럴 리가.
너무나도 냉정한 가슴의 판단에 투란은 재빨리 팔다리를 좀 더 웅크리며 아래편을 봤다.
황색의 질풍이 아주 짙어져서 사방을 스쳐 갔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를 다치게 할 정도로 가깝게 지나가지는 않았다.
운이 좋은 것일까?
‘그럴 리가.’
이제는 냉소적인 느낌을 주는 대답을 투란 스스로 찾을 수 있었다.
떨어져 내리는 곳의 바닥이 보였으니, 답이 알아서 찾아온 셈이기도 했다.
황색의 질풍을 가로막고 있는, 그래서 일단은 투란이 거기에 맞아 산산조각 나지 않게 해 주는 것은 바닥이었다. 얼핏 봐도 허옇고 단단해 보이는, 뭔가 낡은 뼛조각 같은 느낌도 주는 바윗덩이처럼 보이는 바닥이 그 윤곽에 황색의 질풍을 매단 채로 아래에서 솟구쳐 오고 있었다.
이게 뭔 상황인지 겨우 깨달은 투란을 약 올리는 듯.
“야, 세상 만만한 줄 알아? 좋은 일이 그냥 좋은 일이 아니라고. 좋은 일만 쳐다보다가 다가오는 나쁜 일을 피할 수 없을 때도 있다고.”
‘누가 그랬지? 싸구려 폭죽 팔던 연금술사였나?’
지나가던 뜨내기가 어린애 앞에서 과시하려고 입에 담아 읊던 소리를, 투란은 새삼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저 바윗덩이 덕분에 일단 황색의 질풍을 쏘이지는 않게 되었지만, 저게 떨어져 내리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이 상황을 대체 어쩔 것인가!
―충돌에 대비하자.
담담한 결정이 금세 가슴속에서 울려 나왔다.
딱히 다른 방법은…… 역시나 없었다.
어쩌면 물고기 배 속이 좀 더 장기적인 측면에서 나아 보이는 상황이었다.
투란은 짧은 순간을 길게 느끼면서 몸을 점검하고, 가능한 한 붙들고 있는 나무를 아래편으로 까는 방향으로 몸을 사렸다. 바위에 부딪치는 순간에 나무를 박차고 뛰어오르거나 하면 좀 몸이 덜 망가질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대비도 그다지 쓸모가 없다는 것을 곧 알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바위, 그 커다란 것이 선명하게 보이면서 거기 새겨진 틈이 점점 넓어지는 것도 또렷하게 보이잖나!
아무래도 저 큰 바위도 황색의 질풍에 밀려 솟구치면서 깨져 나갈 모양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저 부딪쳐서 버텨 살아남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부딪쳐서 버틴 다음에 다시 달라붙어야 했다!
틈이 없는, 금이 가지 않는 좀 더 단단한 바위 조각에 매달려야 했다.
―좋아, 그렇게 하자.
본능적으로 투란이 머리에 떠올린 바가 간단하게 가슴을 두드리며 인정받았다. 순간적으로 투란은 살짝 어이가 없었다. 이게 지금 남 이야기 하듯 대꾸를 했는가? 우습잖은가? 어째서 생각이 두 갈래로 따로 놀며 어긋난 꼴인가? 이래도 괜찮은가?
갑작스럽게 투란을 헤집은 잡념은 오래갈 수가 없었다.
상황이 다시 그의 각오와 대비를 무시하듯 변하며, 생각을 처음부터 다시 하게 강요하고 있었으니!
황색의 질풍을 막아 주던 바윗덩이에 골고루 금이 갔고, 시원한 느낌의 포말을 금 간 틈새에서 뿜어내며 바위가 터져 버렸다.
그리고 투란을 삼킨 것은 높은 곳을 향해 솟구치는 격류였다.
늪의 진액과는 아주 다른 맑은 물줄기가 격렬하게 치솟으며 하늘을 향해 기둥을 세우듯이 큰 강줄기를 만들었다.
그 속에서 투란이 할 수 있는 일은…….
“어푸푸우우우, 풋!”
입을 벙긋대고 허우적거리며 물살에 떠밀리는 것뿐이었다.
이 순간, 투란은 황색의 질풍에 꿰여 박살 나는 일도, 바위에 충돌해서 납작해지는 것도 다 잊을 수 있었다. 그 모든 일은 예상했지만 벌어지지 않은 일에 불과했고, 지금 물에 빠져 떠내려가는 것이 진짜로 벌어진 일이므로!
다른 무엇보다, 투란은 한 가지 사실에 집중하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 헤엄 못 쳐!’
샤오콴 마을의 곁에는 가끔 강이 흘러갔다.
맑고 시원한 강이 산맥 안에서 툭 튀어나와 흘러갈 때면,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씩씩한 물고기들도 넘쳐 났다. 그럴 때면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면서 뛰어가 막대기로 물고기를 잡기도 했다. 넓게 퍼진 강은 아이들의 허리춤에 겨우 닿을 정도로 얕았다.
하지만 가끔 그 시원한 강은 느닷없이 깊어질 때가 있었다.
어른 키를 살짝 삼킬 정도로 깊어지면, 그때는 아이들도 조금 주의했다.
헤엄을 쳐야 하는 상황도 상황이지만, 강 깊이가 갑작스럽게 변할 때면 가끔 괴물도 튀어나오고는 하니까.
투란이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다 죽을 뻔한 것도 그런 때였다.
무릎밖에 오지 않던 물이 갑자기 허리를 채웠고, 허겁지겁 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뛰는데 한순간에 머리를 때리며 물살이 덮쳤다. 깊은 물을 제대로 겪어 본 적이 없었기에 투란은 헤엄 따위는 말로만 들었고, 그냥 물을 삼키며 떠내려가야 했다.
그때 빠져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갑자기 불어나고 깊어졌던 강이 또 갑자기 쪼그라들면서 얕아진 덕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투란을 죽일 듯하다가 살려 준 셈이다.
그 뒤로 투란은 흐르는 물가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노는 버릇이 생겼다.
투란이 안심하고 물장구를 치는 곳도 샤오콴 마을의 샘물이 고인 연못 근처로 한정되고 말았다.
절대로 어린아이의 무릎 높이보다 낮게 유지되는 연못에서는 헤엄치는 법을 배울 수가 없었고, 그런 투란이 커다란 물살에 휩쓸리면 할 수 있는 것은 떠내려가는 일뿐이었다.
허우적거리며 벙긋대다가 물을 잔뜩 머금은 입으로 마음에만 들리는 소리를 내뱉으면서!
‘나, 헤엄 못 쳐!’라는.
물살에 머리가 담가졌다가 튀어나왔다가 하면서 코와 입으로 물결을 가득 채우다 보면 어느 순간에 사람의 의식은 제자리를 찾을 길이 없어 반쯤 정신 나간 상태로 기절한 꼴, 꼼짝없이 물에 빠져 죽는 꼴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이라도 강력한 격류에서는 헤엄 못 치는 사람처럼 그런 꼴이 나기 쉬우니, 헤엄 못 치는 경우에는 더 빨리 기절하고 의식을 잃은 채로 익사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투란은 물결에 휘둘리며 하늘 높이 솟구치는 이 과정이 전과 다르다는 것을 가슴에서 맥동하는 심장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다른 것은…….
‘숨이 괴롭……지가 않아?’
투란은 입을 꽉 다물려고 했고, 입은 꽉 다물어졌다.
물결이 코로 들어와 허파를 채우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그렇게나마 버티려 한 것이다.
나름대로 급한 상황에 떠올린 기특한 생각이었다.
코로 들이켠 물결도, 다급하게 다물어진 입에 머금게 된 물도 투란을 전혀 괴롭히지 않았다. 그야말로 숨이 꽉꽉 막힌 상황이라 답답하고 머리가 터져 나갈 듯해야 하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투란은 물결이 몸속으로 한껏 스며들면서 활기가 넘쳐 나는 싱싱한 ‘몸’을 느끼고 있었다. 온갖 것이 섞인 채로 혈관으로 스며들어 심장에서 걸러진 다음, 양분이 되어 번져 가던 늪과 다른 느낌으로 물이 몸에 채워지는 꼴이었다.
그 느낌은 마치…….
‘청소?’
악마의 심장이 갑작스럽게 들이친 맑은 물을 쭉쭉 삼키면서, 투란의 몸속에서 필요 없는 것을 깡그리 씻어 내려는 듯이 고동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