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0)
“기회는 지금뿐이다. 키린, 이건 세계가 너에게 도움을 청한 상황이라고! 위협이 되는 존재를 배제해 달라는 요청이야!”
“잠깐 조용히 좀 해 줘.”
키린은 가만히 손짓해서, ‘드라코눔의 아칸’을 그려 내는 불꽃을 지웠다.
아련하게 사라져 가는 드라고니아의 형상이 뭐라 더 꽥꽥거리는 듯했지만, 키린의 관심은 투란에게 향할 뿐이었다.
작게 엎치락뒤치락하는 투란은 자연스럽게 냠냠거리는 소리를 흘리기도 했고, 헤죽거리며 웃기도 했다. 때때로 ‘우헤에, 내가 괴물 왕자다.’ 같은 소리를 하면서 주먹질 시늉을 해서 키린이 민망함으로 등골에 슬쩍 식은땀을 흘리게도 했다.
작은 불꽃으로 감싸인 요람의 어린애처럼 새근거리며 더 깊은 잠에 빠져드는 투란이었다.
지켜보는 와중에 키린은 ‘드라코눔의 아칸’이 한 말을 차분하게 되새기고 정리하면서 저리 서둘러 외친 이유를 깨달았다.
‘서로 다른 시간으로 흘러간다!’
뒤틀려 버린 시간의 왜곡으로 인해 서로 만났고, 어느 순간부터는 둘의 시간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그러면 둘은 수십 년의 시간을 사이에 둔 채로 갈라져 살아가게 된다. 이 경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이라면 그냥 그대로 미친놈 하나 만났다는 정도로 기억하고 잊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코눔의 용신족, 그들은 그 의미를 알고 이를 이용한다는 말을 ‘아칸’이 얼핏 실토하잖았던가? 그 의미를 알고 이 장소를 찾는 자가 분명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면 아주 현명하게 이용할 수도 있다!
물론 어떤 경우라도, 기본적으로 여기에 들어와 살아 나갈 능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먼저 갖춰야 할 조건!
‘투란은 반드시 빠져나가겠지. 오래 걸리더라도.’
드라고니아가 광분마저 억누르고 이성을 돌이켜 또박또박 말하게 한 사연이 바로 그것이었다.
“흠.”
키린은 가만히 앉아서, 몸을 뒤척이는 투란의 헝클어지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투란이 우왕좌왕, 두서없이 쏟아 냈던 이야기를 하나씩 더듬어 보았다.
불의 울타리가 주변을 맴돌면서 포근한 바람을 당기며 상쾌하고 맑은 풍경을 새기듯이 밝혔다. 하늘의 해가 기울어지고, 서서히 밤이 내려앉으며 불꽃으로 덮인 풍경은 괴물과 요목이 날뛰는 곳에서 가장 이질적인 느낌으로 반짝이며 일렁였다.
그리고 깊은 밤이 되었다.
“흐아아!”
투란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하품을 했다.
꼬르륵, 위장이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손은 저절로 눈을 비볐다. 이내 앞이 보인 투란은 멍하니 눈을 깜박거렸다. 허공에서 무슨 물방울처럼 생겨서 길게 늘어진 불꽃이 밟게 일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 불꽃을 늘어뜨린 줄도 불로 되어 있고, 줄이 이어진 천장……이라고 해야 할 것도 작게 솟구치며 소용돌이치는 듯한 불길이다.
“어?”
온통 불로 된 세상이라는 듯, 투란이 맹하게 고개를 쳐들고 보니 누운 곳도 불꽃이 들쑥날쑥한 흙바닥이고, 덮고 있는 것도 불로 짜인 담요인 것이다.
“깼니?”
돌연 누군가 한 말이 투란의 정신을 번쩍하게 했다.
“아!”
잠이 덜 깬 순간이 확 사라졌다.
투란은 발딱 일어나 앉았다.
그러면서 투란의 고개가 홱홱 돌아가고, 눈동자가 사방을 쓸다가 한 곳에 딱 멈췄다. 입에서 작은 소리를 여전히 내고 있는 밝은 불꽃 속에서도 선명한 모습.
아작, 아작.
도마뱀의 굵은 다리를 씹으면서, 그 갈고리발톱이 빠진 발가락을 입에 문 키린이 거기 있었다.
꼬르륵.
투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아오! 뭐야, 이게!’
잠에서 깨어나며 뭔가 신나는 꿈을 꾼 것 같은데, 홀랑 잊어버렸다.
잠들기 전에 보고 듣고 이야기했던 것이 진짜인가 꿈인가조차 가물거렸다.
그런 와중에 키린을 보고, 기쁨이 샘솟으려는 찰나…… 배가 고프다고 난리라니!
투란은 자신이 대체 언제부터 이런 먹보였나 황당했다!
하지만 키린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는 낌새가 없이, 바로 굵고 덩치가 제법 있어 보이는, 두 팔로 겨우 들어야 하는 도마뱀을 밀어 주었다. 부드러운 흙 위로 불꽃이 넓적한 그릇처럼 바싹 구워진 도마뱀을 바치고 함께 밀려온다.
“먹어. 배고프면 사람이 바보가 되거든.”
“에? 예.”
잠깐 어리둥절하다가 투란은 바로 얌전하게 대답하고 도마뱀을 당겨 꼬리부터 찢어 냈다. 잠들기 전에 먹은 녀석들이 뭔가 날렵해서 꼬챙이에 꿰인 꼴이 그럴듯했다면, 지금 불꽃 받침에 실려 온 이 녀석은 굵고 두툼한 데다가 꼬챙이 도마뱀보다 두 배는 될 듯한 크기였다. 찢어 낸 꼬리도 꽤 굵었고, 맛도 색다르면서 좋았다.
으적으적.
투란이 먹는 모습을 보면서 키린은 먹던 것을 삼키고 천천히 말을 꺼낸다.
“투란, 네가 잠든 동안에 생각을 좀 해 봤는데…….”
“네? 음…… 냠냠.”
“그냥 먹으면서 들어.”
어떻게든 대꾸를 하려다가 물고 있던 고깃점이 튀는 것을 급하게 손으로 받아 다시 입에 넣는 투란의 모습에 키린이 애매한 웃음을 띤 채로 말했다. 조금 볼이 붉어지더니, 이번에는 입을 열지 않고 투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키린이 조금 더 편안한 자세로 앉으려 하자, 불꽃이 주변을 감싸면서 길고 둥근 소파처럼 자세를 받쳐 주었다. 그 불꽃의 소파가 어느 틈엔가 투란 주변까지도 감싸며 받쳐 주니, 투란은 으적거리는 와중에도 신기해하며 눈동자를 반짝거리는 모습이었다.
잠깐 키린은 투란이 기웃대는 걸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말한다.
“투란, 너는 보이드 엠블럼으로 몬스터 로드가 되었다고 했잖아. 하지만 정작 보이드를 다루는 것에 대해서는 모르고…… 뱀의 왕족이 죽은 곳에서 그 가죽을 얻었지만 그게 뱀의 왕족이었다는 것도 모르고, 오러 몽거의 심장에 대해서 모르고 그냥 삼키기도 했고…….”
“냠냠, 네…….”
투란이 시무룩하니 고개를 끄덕거리고, 도마뱀 뜯어 먹는 속도가 조금 늦어졌다.
키린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는 눈길로 말을 잇는다.
“그런데 괴물 왕자 키린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음?”
투란의 눈이 살짝 크게 뜨이면서 휘둥그렇게 눈동자가 드러났다.
갑자기 키린이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듯한 말을 꺼내는 것이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이 역력하게 투란의 얼굴에 떠올랐다.
“정말로 세상에서 50년이 지났을까? 나는 여기 5년이 아니라 50년을 머문 걸까? 아니면…… 투란이 말한 괴물 왕자는 이름이 우연히 나랑 같은 다른 사람은 아닐까?”
“예?”
“투란, 여기 춤추는 산맥이야. 무슨 이상한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 곳이잖아. 산맥 밖에서는 한 마리 보기 힘든 것이 여기는 우르르 몰려다닌다고, 이 흙도마뱀처럼!”
잔뜩 구워져서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굵은 도마뱀이 갑자기 키린의 손에 꼬리를 잡힌 채로 들렸다. 투란은 지금 열심히 뜯어 먹는 도마뱀이랑 같은 종류의 도마뱀을 잠시 눈을 깜박이며 보다가 꿀꺽 입안의 고기를 삼키고 한마디를 겨우 토해 냈다.
“흙도마뱀……!”
키린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모습에 투란은 잠깐 목청을 가다듬으며 묻는다.
“그, 그럼 이전에 먹었던 거는……?”
“날도마뱀.”
“겨드랑이에 가죽이……!”
“불에 구우면 싹 녹아 없어져, 그 날개 같은 가죽.”
“헉?”
“흙도마뱀도 날도마뱀도 여기서는 무리를 지어. 샤오…… 샤오콴? 그래, 그 마을에서 자란 너라면 알겠지. 흙도마뱀이나 날도마뱀은 혼자 살고, 동족을 만나면 바로 죽이려 하는 마수지. 덩치는 사람 절반도 안 되는 것들이 어지간한 거한도 순식간에 죽일 정도로 강한 마수.”
“맛있는 거였군요.”
꼴깍, 넘어가는 침을 삼키면서 투란은 겨우 이렇게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키린이 빙긋 웃었다.
“독도 있어.”
“크어!”
“물론 없앴지.”
해쓱해지는 투란의 얼굴을 보며 장난처럼, 손끝에 살짝 불꽃을 피워 올리며 덧붙이는 키린이었다.
한숨을 쉬면서도 투란은 눈길을 손가락을 심지처럼 감싸며 일렁이는 불꽃을 바라봤다. 마수의 몸에 밴 독이란 것이 그냥 불로 굽고 지진다고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때문에 마수 사냥꾼이라든가, 몬스터 헌터처럼 마수와 만나 싸울 일이 많은 이들도 마수를 잡았다고 구워먹거나 할 수는 없다.
“성스러운 불꽃인가요?”
기억을 더듬다가 불쑥 투란이 물었다.
키린의 눈가에 살짝 그늘이 생겨났다.
“왜 성스러운 불꽃이란 생각을 했지?”
투란은 키린의 눈동자를 똑바로 보면서, 조금 쓴웃음을 띤 채로 대답한다.
“괴물 왕자님 키린은 성스러운 불꽃으로…… 드라고니아의 무서운 마법을 모조리 해체하고 방어했으니까요. 거느리고 있는 반인반마(半人半魔)의 근위대조차도 그 불꽃에 의해 정화되어 마물의 본능보다 사람의 이성을 더 깊이 마음에 품은 이들이라고 했어요. 어…… 음유시인이요, 음유시인이!”
말을 하다가 조금 더 구겨지는 키린의 표정에 투란은 서둘러 어디까지나 이건 자신이 들은 이야기일 뿐이라고 강조해야 했다. 뭔가 잘못 말한 듯하기는 한데, 투란은 자신이 꺼낸 이야기의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들은 이야기이고, 직접 보고 겪은 것이 아니니까.
키린은 곧 그런 투란의 의혹에 답하듯이 한마디를 꺼낸다.
“반인반마라니…….”
“아, 그건…….”
“웨어비스트였는데.”
키린의 입에서 투덜거리듯이 나오는 소리에 투란은 뚱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엥?”
웨어비스트면, 절반은 사람이고 절반은 짐승인 마물 혹은 괴물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이잖은가! 그렇다면 ‘반인반마’란 말이 딱 맞는데!
투란의 표정을 읽은 듯, 키린이 미묘하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면서 말한다.
“웨어비스트는 원래 몬스터가 아니야. 몬스터로 전락한 자들이 많기는 하지만, 원래는 짐승과 인간의 양면을 동시에 지닌 변신 능력을 지닌 자들이야. 수신(獸神)의 축복이기도 하고, 저주이기도 한 가호를 뒤집어쓴 이들이지. 어느 쪽을 드러내며 살고, 그들이 전락하는가 마는가 하는 일은 웨어비스트 자신보다 그를 대하는 방식에 더 많이 영향을 받지. 사람 사는 곳에서 그들이 짐승으로 날뛴다면, 그곳의 사람들이 사실은 짐승처럼 살고 있다는 뜻이라고.”
투란은 눈을 깜박이면서 키린의 말을 들었다.
설마 웨어비스트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고, 듣다 보니 뭔가 애매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가장 먼저 푹 떠오르는 것은 그랑츄와 툭탁대며 거세게 싸웠던 웨어울프!
‘여긴 사람도 없고 그놈은 그냥 괴물…… 아, 괴물투성이라서 괴물…… 아니지, 그놈 그냥 몬스터니까 삼킬 수 있었잖아!’
투란에게는 그냥 애매했다.
키린이 그 모습에 살짝 더 덧붙이려는 듯이 말한다.
“뭐, 나중에 몬스터인 웨어울프를 만나서 잡아 삼키게 된다면 그 양면성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거야. 사람이었다가 짐승이었다가…… 표정이 왜 그래?”
“예…… 아니, 그게 그러니까…….”
투란은 우물쭈물했다.
키린이 그 망설임를 간파한 듯, 곧장 묻는다.
“설마 오러 몽거 말고 웨어울프도 삼켰어? 그런 것도 떠내려갔던가?”
약간 어이없어하는 말투였고, 시체 줍기에 대한 황당함을 담은 듯도 느껴지게 하는 소리였다.
주춤하는 모습으로, 멋쩍어하는 표정으로 투란이 대답한다.
“……떠내려온 거는 아니고요, 그게…… 어, 그러니까 그랑츄 패거리랑 싸우던 놈인데…….”
“웨어울프가 그랑츄 패거리랑 싸워?”
키린이 놀란 소리를 냈다.
투란도 그 의미를 알기에 서둘러 말을 잇는다.
“굉장히 센 놈이었어요. 그러니까 달빛을 은색 불꽃처럼 쳐다볼 때면 훨씬 세지기도 하는 그런 놈이었거든요. 음, 역시 이런 깊은 곳이라 그런 녀석이 사는 것 같았는데…….”
“그랑츄 패거리라는 거, 투란이 떠내려온 저 안쪽에 있던 녀석들 말하는 거지?”
“어……, 예. 그러고 보니…… 그놈들도 꽤 세 보였네요. 하지만 이 웨어울프는 그런 그랑츄 머리를 뜯어내서 죽일 정도로 힘이 셌거든요! 그게, 그랑츄 두목이랑…… 아, 그 두목이란 거는 훨씬 큰 놈이었는데, 그놈이랑 싸우다가 한 팔이 없어서 당했는데…….”
투란이 두서없이 이어 가는 이야기와 함께, 키린은 등을 기댄 불꽃 속에서 내면을 향해 쩌렁쩌렁 부르짖는 ‘드라코눔의 아칸’의 말도 듣고 있었다.
—뭔 웨어울프! 그거 울프 그림 로드잖아! 엘리트 그랑츄 무리랑 그딴 식으로 싸울 수 있는 웨어울프처럼 생긴 놈은 울프 그림 로드뿐이다! 그건 그냥 두발로 걷는 괴물 늑대라고! 수신의 그림자를 찢고 도망쳤다는 신화 속의 마물이잖아! 키린, 투란 저 애는……!
‘시꺼. 생각 좀 하자.’
키린은 귀와 마음을 울리는 투란과 ‘아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편안하게 좀 더 생각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