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0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96)
Chapter 160. 미궁 Ⅲ
크워엇!
드라고의 입에서 포효가 터져나왔다.
눈치 보는 녀석들에게 가까이 오고 싶으면 와라, 덤비고 싶으면 덤벼라, 모조리 쳐죽여주마……라는 경고를 하는 듯한 포효였다.
―야, 저거 고치…… 알 깨고 달아나는데?
‘알아!’
짧은 대꾸와 함께 눈가에서 흘러내린 시커먼 잉크가 뿔 아래를 휘감으며 귓가로 흐르듯이 움직였다. 잉크 속에 작은 파문과 함께 칼날을 머금은 듯한 촉수가 튀어나왔고…… 드라고니아가 말한 것을 향해 벼락 치듯이 뻗어나갔다.
쿡, 끽, 쿡, 끽.
라미아의 찢긴 목덜미 속에 맺혀 있는 고치, 알로부터 느릿하게 기어나와 가속하던 하얗고 작은 두 마리, 갓 태어난 유아(幼兒)라 할 수밖에 없는 라미아가 조그마한 비명과 함께 칼날촉수에 꿰인 채로 고르곤 아이 앞으로 당겨졌다.
‘이거, 뱀의 왕족 녀석이랑 닮았네?’
꼼짝 못 하게 된 하얗고 작은 라미아는 상반신과 하반신의 크기가 비슷했다.
상반신은 갓 태어난 인간 아기의 모양이었고, 하반신은 뱀이라기보다는 올챙이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상반신이 그냥 뱀의 형상이었다면, 투란이 역병의 수해에서 삼킨 뱀의 왕족과 거의 비슷했다. 역병으로 인해 세상에 내놓을 수 없지만, 그 기괴한 탈피와 재생, 성장이 너무나 신기해서 지니고 있는 뱀의 왕족처럼 라미아 또한 죽음을 회피하는 탈피를 해 보인 것이다.
―뱀의 왕족 중에 라미아의 피를 이은 경우가 있다고도 하니까. 정말로 그런 경우였는지도 모르지. 역병 속에서 그 피가 깨어났기에 라미아의 특별한 재생이 가능해진 거라고 볼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겠지.’
대답과 함께 투란의 눈앞에서 굳어졌던 유아 형태의 라미아, 다 자란 몸을 통째로 벗어던지고 달아나던 두 마리의 하얀 살갗 속으로 핏빛 고리가 스산하게 번져갔다. 오로지 라미아의 정수만 담겨 있는 씨앗뿐이었다는 듯, 작은 두 마리는 그대로 투명한 거품처럼 꺼져갔다. 머리가 뽑히고 밟힌 커다랗고 긴 몸뚱이는 여전히 투란의 발아래 놓여 있는데…….
투란은 잠시 드라고의 사나운 손아귀에 들린 라미아의 머리통 둘을 둘러봤다.
표정이 없는 기묘한 낯빛은 죽었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삶과 죽음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 그저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야, 너 정말 홀리지 않았냐?
어이없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위태롭다 싶은 순간에 투란의 행동은 거침없었고, 냉정했다.
하지만 조금만 틈이 나면 라미아의 미모(美貌)를 넋 놓고 바라보며 세상 잊은 듯한 태도를 과시하듯 드러낸다. 이쯤 되면 정신이 둘로 나뉘어서 따로 논다 싶을 지경이 아닌가.
드라고의 입꼬리가 뒤틀리며 피식 웃는 듯한 표정을 꾸민 채로 투란이 답한다.
‘신기하잖아. 몬스터가 인간의 모습을 했고, 이렇게 이쁜 걸로 유혹해서 인간을 잡아먹는다니…… 시체가 똘똘 뭉쳐서 사람 죽이고 꿰어 넣는다는 경우보다는 훨씬 볼만하기도 하고. 아무튼…… 이대로 버리기는 아까워.’
―응? 어쩌려고?
‘허물은 간직해야지. 곱게 말이야.’
투란의 대답과 함께 드라고의 형상, 얼굴 위로 스산한 웃음이 얹히는 듯했다.
손아귀에 들린 라미아의 둘의 얼굴에 핏빛 고리가 나타났다.
남겨진 몬스터 에센스가 으스러지고 사라진 잔해, 라미아 머리의 허물을 투란은 고이 접어서 손아귀의 갈라진 틈새를 열고 밀어넣었다. 데몬스 러그가 작용하는 광경을 보며 드라고니아가 넋두리처럼 중얼거린다.
―젠장, 악마종의 비술은 대체 어떤 원리인 거냐. 몬스터 로드의 몸뚱이에 들러붙어서도 멀쩡하게 기능하다니…….
‘같은 소리 대체 몇 번 해? 몸의 일부가 된 채라고 몇 번이나 확인해놓고…… 자꾸 까먹는 거야?’
―결과는 그렇다만, 그런 결과물을 만든 과정을 아무리 봐도 이해를 못 하겠다는 말이다!
‘몬스터 엠블럼도 이해 못 하기는 마찬가지 아니야? 어떤 거는 퉁겨내고 어떤 거는 고이고이 받아들이고…… 포기해.’
―닥쳐!
으르렁거리는 드라고니아에게 한번 웃는 듯한 심상을 전해주면서 투란은 라미아의 몸통과 타우루스 둘을 연이어 ‘천칭’으로 삼켜버렸다. 그러는 사이에도 주변의 상황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기도 했다. 동시에 문장 속에서 다시 몬스터의 정수가 융합하는 것까지 확인하고 있었다.
‘4층에서 만난 벌거숭이 맨손 타우루스부터는 계속 같은 정수를 지녔나 본데? 라미아도 그렇고…….’
투란은 더 이상 가까이 오지 않으려는 몬스터의 기척을 확인하면서 꼬리를 허공에 세게 휘둘러봤다. 피잉거리며 허공을 찢는 듯한 소리가 도발적으로 울려퍼졌지만, 이를 위협으로 받아들인 듯이 타우루스의 발자국 찍히는 소리와 라미아의 기묘한 숨소리는 멀어지기만 했다.
―확실히……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르겠다만, 처음에 한 마리씩 덤비고 둘씩 짝을 지어 포위한 다음에 기습하고, 지금 멀어지면서 자신들을 보존하는 꼴은 제대로 조련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군. 좀 더 긴장해라, 투란.
드라고니아도 어느새 신중함을 되새기듯이 말하고 있었다.
‘긴장이고 뭐고…… 프로브를 멀리 보낼 수 없잖아. 여기서 엄청 시간 끌고 헤매기 싫은데…… 길 찾는 좋은 방법 없어?’
투란은 다른 시각 속에서는 여전히 어둠이 가득하고, 고르곤 아이를 통해서만 꿰뚫어보는 미궁의 풍경을 둘러보면서 한숨 쉴 수밖에 없다는 듯이 말했다. 몬스터가 피해준다고 해도, 이 미궁은 아래층으로 내려올수록 넓어지는 중이었고 통로와 벽이 온통 시야를 막으며 이리저리 꼬인 채로 형성한 미로는 돌아다니다 보면 한번 지난 곳인가 아닌가 헷갈리기 딱 좋아 보였다.
이런 일리 있는 투란의 투정에 드라고니아가 피식 웃는 듯이 대답한다.
―프로브가 탐색과 정찰의 기능만 가진 것은 아니라고 했을 텐데?
‘음? 뭔 소리야?’
―기록하고 전해주는 기능을 얕보지 말란 말이지.
‘어?’
투란이 갸웃하는 사이, 드라고니아가 윌 라이트의 마력을 이끌어 새로운 프로브를 생성시켰다. 이전의 프로브는 싹 지우고 생성된 새것이 새롭게 전해오는 지각은 투란을 흠칫하게 했다. 어둠 속을 헤매며 시각 이외의 정보를 모으던 것과 이전 것과 달리, 새로운 프로브는 어둠이 없다는 듯이 색채까지 선명하게 주변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광경은 투란에게는 이제 익숙한 시각의 결과였다.
‘고르곤 아이?’
―너의 감각을 공유하는 프로브니까, 너의 의지를 기반으로 생성된 마력을 통해 존재하는 마법 기물(器物)이니까. 그리고 그 기록은 입체적으로, 네가 바라보는 그 자리에 마음속의 환상으로 투영 가능하다고 했잖아.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잠시 고개를 끄덕이다가 갸웃했다.
투란이 지금 형성하는 몬스터의 감각능력을 프로브가 이어받은 부분이야 깜박 잊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멀리서 보고 온 것을 그 자리에서 보고 들은 것처럼 전해주는 환상을 만드는 기능을 왜 잔뜩 강조하는가?
―홀랑 잊었냐?
한심하다는 듯, 드라고니아가 핀잔하며 바로 투란의 시각 속으로 환영(幻影)을 투사(投射)했다. 곧바로 투란은 자신이 선 자리 주변을 그려내는 환영을 봤고, 기억 속에서 되새김질할 수 있었다.
절벽과 산림을 관통하며 주변의 풍경을 가득 담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듯, 관통해서 통찰하듯 보여줬던 프로브의 기능이 투란이 선 자리와 눈에 보이는 통로를 고스란히 담아 그려내는 듯한 작은 지도…… 종이에 담긴 것이 아니라 진흙이나 모래를 쌓아 올려 꾸민 듯한 입체적인 지도로 보여주고 있었다.
‘맵핑……? 이게 뭐?’
문득 역병의 수해에서 지나온 길을 기록하던 것을 기억해낸 투란이 물었다.
높은 곳에서 역병의 수해를 미리 관찰하고 너무 위험한 곳은 피하기 위해 열심히 했던 짓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프로브가 광대한 영역을 미리 헤집고 돌아다니며 관측했던 결과인데, 그걸 여기서 어찌 쓰자는 것인가?
―기억은 하는데, 쓰임새는 제대로 깨닫지 못하다니…… 생각 좀 해라! 미궁의 미로는 결국 너의 위치를 곡해해서 지난 곳을 또 지나고 끝없이 헤매게 하는 것! 이대로 지난 곳, 확인한 곳을 지속적으로 기록해서 위치를 확인하면 결국 넓다 해도 완전히 파악하게 되잖아!
‘어? 아…… 이거 이대로 계속 기록을 더할 수 있는 거였구나.’
투란은 멋쩍게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단숨에 주변을 싹 둘러보고 한꺼번에 보여줬기에 작은 조각들을 이어붙여서 커다랗게 완성한다는 생각은 못 했다. 소소한 선입견 때문에 드라고니아가 말한 대로 프로브의 기능을 얕보고 있었던 것이다.
―흥! 이제 알았다면…… 방심해서 흘려보다가 놓치지 말고 제대로 길 찾기를 하라고. 이 기능 쓰면서 그냥 지나친 곳이 생기면, 그건 순전히 네가 바보인 거야!
‘에이, 설마 입구가 보였는데 그냥 지나치겠냐.’
투란은 키득거리는 대꾸를 하며 발목에 힘을 줬다.
그 와중에 프로브를 둘을 더 생성시켜서 앞에 하나, 뒤에 둘을 배치한 채로 투란은 거칠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타닥, 타앙, 터엉!
때로는 바닥 대신에 벽을 딛고 달리면서 되도록 큰 소리를 내면서도 충돌을 피하는 질주였다. 그렇게 5층의 입체적인 지도는 만나는 타우루스와 라미아의 위치까지 표시되는 채로 작성되었다.
―역시 넌 바보야.
‘야, 너도 똑같이 봤으면서 못 찾았잖아!’
므흐하앙! 쉬이잇!
투란이 드라고니아의 놀리는 소리에 으르렁거릴 때, 뒤통수를 밟혀 분노한 타우루스와 꼬리를 밟혀 성난 라미아가 한참 쫓아와서 마침내 잡았다는 듯이 달려들고 있었다. 아무리 접근을 꺼렸던 강한 자라 해도 가만히 있는데 와서 뒤통수와 꼬리를 밟았으니 그냥 보낼 수는 없다는 몬스터의 순수한 분노가 가득한 행동이었다. 딱히 그렇게 자극해서 어찌하나 볼 생각은 없는 투란이었지만, 덤비는 몬스터를 그냥 두기에는 지금 치솟는 짜증과 울화가 너무 심했다.
“그냥 지나왔는데 뭘 죽자고 쫓아와! 피할 줄은 알면서 참을 줄은 몰라!”
버럭 소리치면서, 투란은 양날도끼를 휘두르는 타우루스의 목을 찢었고, 꼬리와 얼굴을 동시에 들이대는 라미아의 목을 전갈 껍질을 지닌 꼬리로 꿰뚫었다.
―거참, 다른 방향에서 와서 한 통로에서 만난 것들이 그렇게 성난 상태에서도 협력해서 덤비다니…… 몬스터의 본성을 완전히 억누른 것은 아니지만 조련시킨 부분은 완전히 본능처럼 보이는구만.
두 마리 몬스터를 밟았던 곳,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거쳤던 미로를 환영으로 보여주면서 드라고니아가 감탄했다. 투란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는 했다. 밟힌 두 마리가 성난 채로 투란을 쫓을 때, 그 경로에 있던 다른 녀석들은 길을 비켜주기도 했다. 투란과 직접적인 접촉이 없는 경우에는 자기 자리를 고수(固守)한다는 그 태도는 도저히 몬스터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상황보다 투란을 짜증 나게 하는 것은…….
‘어째서지? 다 돌아다녔잖아. 왜 6층으로 가는 입구가 없는 거야? 놓치고 지나친 부분이 있었나?’
여전히 5층에서 헤맨다는 점이었다.
드라고니아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고, 이제껏 모아온 프로브의 지도 환영을 정밀하게 다듬으면서 세심하게 검토했다. 그 사이에 투란은 새로 잡은 타우루스와 라미아를 삼키고 정리했다.
―아무래도…… 이쪽 주변이 수상하군. 고르곤 아이가 어둠을 꿰뚫어보기는 하지만, 시각적인 착오를 일으키도록 짜인 부분을 투시해 보지는 못하니까. 직접 발 딛고 지나치지 않은 이쪽을 다시 가볼 수밖에 없겠어.
‘착오?’
―벽과 벽이 겹쳐져서 틈새를 가려놨을 수도 있어. 멀리서 보면 그냥 이어진 벽이라 겹쳐진 것을 파악 못 할 수도 있거든. 무엇보다…… 여기 말고 다른 곳은 전부 직접 지나갔으니까, 가보는 수밖에 없단 말이야.
‘쳇.’
프로브가 축적해 보여주는 입체적인 지도를 보며 투란은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벽의 두께, 통로의 배열을 보면 확실히 다른 곳은 전부 지나치는 와중에 그 한 곳은 멀리서 봤을 뿐이었다. 멀리서 봐도 그냥 벽이 두툼하게 쌓였나 싶은 정도에 불과해서 지나쳤는데…… 그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타우루스와 라미아가 좀 많아 보였다.
―왜? 문지기 노릇이라도 해서 덤빌까 봐?
‘몰살시키자고 들어온 것도 아니잖아. 그보다 이 정도면 확실히 메듀시아는 없는 거 맞겠지?’
―숨어 있다가 튀어나올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만?
‘음…… 역시 그런가.’
살짝 황금매에 라미아와 타우루스를 담을까 하던 궁리를 투란은 바로 마음 한편으로 치웠다. 메듀시아의 위력은 입구에서 이미 봤다. 입구까지 나온 녀석이 이 근처에서 갑자기 튀어나올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높았다. 아직은 스테노아의 대비가 철저하게 필요했다.
그래서 터덜거리며 마지막 남은 5층의 흐릿하고 애매한 곳으로 가니, 어슬렁거리던 몇 마리 타우루스와 라미아가 몇 번 목젖 울리는 소리를 내면서 슬슬 투란에게서 멀어지며 노골적으로 먼저 덤비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역시 요철(凹凸) 형태였나.
드라고니아가 맞물린 채로 감춰진 틈새를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6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그렇게 요철 형태로 꾸며진 커다란 벽 틈새에 숨겨진 자태를 드러냈는데, 투란은 몇 미터 아래 계단참에 세워진 석문(石門)을 보고 한숨을 쉬어야 했다.
‘이젠 문이 제대로 달렸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