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0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98)
므어어엇! 워어엉!
퍼억, 까앙, 콰직!
갑주를 입은 사나운 타우루스 열둘이 갖은 비명과 괴성을 터뜨리며 서로를 찍고 뭉개며 뒤엉켰다. 갑주가 피와 살, 뼈와 함께 갈라지고 뒤엉켰고 양날도끼의 파편, 부러진 자루가 소머리 틈새에서 어지럽게 튀어올랐다.
단순히 궤도가 엉겨 스친 것이 아니라 서로 전력을 다해 파괴적인 힘을 휘두른 결과임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그 난장판을 바닥에 둔 천장에서 두 발을 대고 거꾸로 선 모습으로 카프리곤의 뿔을 지닌 드라고가 가볍게 꼬리를 휘저었다.
도발하는 듯한 그 모습에 나가락티는 거침없이 응했다.
빙글거리며 감아뒀던 뱀의 몸이 한순간에 꼿꼿해졌고, 여섯 손이 여섯 자루의 검을 회오리처럼 휘두르는 나가락티의 상체가 천장으로 쏘아졌다. 뱀의 하반신이 도약과 함께 공중을 후려치듯이 꿈틀거렸다.
거꾸로 그 광경을 보면서 투란은 다시 드라고의 두 손을 섬세하게 움직였다.
그 손가락 끝마다 너울거리는 희미한 실, 거미줄이 흘러나갔다.
―저 녀석은 타우루스보다 수준이 높아! 그 정도로 방향을 바꿀 수는…….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경고하려 했지만, 이어진 광경과 함께 말이 멈췄다.
타우루스 열둘을 격돌시킨 것처럼 그 중량의 중심, 동작의 틈새를 아라크녹스 왕의 거미줄로 휘감아 조작한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투란이 거미줄을 움직였고, 그 결과 나가락티가 얼굴이 납작해진 채로 보이지 않는 벽에 들이박은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섯 팔 또한 거미줄에 걸린 벌레의 지체(肢體)처럼 보였다. 뒤늦게 딸려온 뱀의 하반신 또한 얼굴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벽에 철썩 들러붙어 떼어내지 못하는 몰골이 되고 있었다.
이는 마치 굳이 수준을 따지자면 아라크녹스 왕이 가장 높다고 으스대기라도 하는 듯했다.
하지만 투란은 으스대지 않았고, 드라고니아는 새로운 습격자를 포착하며 다시 경고하고 있었다.
―원숭이다!
‘야, 쇠몽둥이잖아!’
6층 입구를 마주 보는 상황에서 등 쪽으로 날아드는 길고 굵은 화살 같은 것, 투란은 그게 제대로 된 철봉(鐵棒)이란 것을 파악했다. 어딜 봐도 원숭이처럼 생기지는 않았다.
―이 바보가! 던진 놈 말이다, 던진 놈!
꼬리로 철봉을 치면서도 투란은 바닥에 내려섰고, 뒤늦게 드라고니아가 저편에서 나타나 나가락티를 향해 캭캭거리는 묘한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철봉을 내던진 녀석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언제 저기 있었지?’
투란은 경계심을 끌어올리면서 물어야 했다.
분명히 투란도 저 풍경을 봤지만 철봉만 봤고, 저 괴이한 몰골인 하얀 원숭이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나가락티로 인해 곤두선 감각이 착오를 일으켰다는 것이니, 이는 단순히 흘려보는 바람에 알지 못했다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런 투란의 사유(思惟)가 바로 드라고니아에게 전해졌고…….
―하누크샤니까! 나가락티처럼 마하박티 신전에 구전되는 전설의 신수(神獸)다! 눈속임이 취미이고 분탕질이 특기인 놈이야! 이렇게 되면 코끼리는 가네시야일 가능성이 커!
들어도 모를 설명이 괄괄 쏟아졌다.
그러는 사이에 하얀 원숭이는 머리를 긁적이고 턱을 쓰다듬으면서 하품과 함께 허공을 긁적이는 듯한 손짓을 했다. 허공이 출렁이더니 곧바로 철봉 몇 가닥이 나타나서 가차 없이 날아들었다.
투란은 그 몇 가닥의 쇠막대가 아까보다 가늘고 길어진 듯한 채로 나가락티의 주변을 헤집는 광경을 봤다. 나가락티를 구속한 것을 들쑤셔서 풀어놓겠다는 의도가 가득 엿보인 셈이었다. 하지만 이미 왕의 거미줄은 날아든 철봉의 궤도를 피한 채로 나가락티를 더욱 단단히 구속하고 있었다.
하얀 원숭이는 그 광경이 못마땅하다는 듯이 표정을 구겼고, 볼을 긁적였다.
투란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하얀 원숭이와 자신의 사이를 가르는 꼴이 된 타우루스 열둘이 아직 꿈틀꿈틀 푸훗거리는 광경을 놓치지 않으면서, 나가락티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면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간단한 설명 없어? 그 신전에 대해서 전혀 모르겠거든!’
―간단은 무슨……! 끄응!
잠깐 울컥한 듯했지만 드라고니아는 금방 설명을 줄일 방법을 궁리하는 모양이었다. 그 틈에 투란은 자신이 이제까지 들었던 바를 빠르게 정리하고 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환마라는 뭔지 모를 존재, 몬스터이면서도 다른 몬스터를 조련해 부린다든가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 대치하며 서로를 돕는 기괴한 상황…… 그리고 아직 한 마리 더 있다는 이야기까지!
‘마도구 같은 경우라고 했었지?’
묻는 말이라기보다는 자신에게 확인하듯 투란은 되뇌었다.
드라고니아도 그 사이에 뭔가 결론을 내린 듯, 투란의 뇌리를 푹 찔러 휘젓고 흔드는 듯한 상념(想念)을 폭발시켰다. 일일이 말로 하기보다는 몬스터 로드인 투란에게 자신이 지닌 기억을, 지금 필요해진 기억을 정리해 통째로 쑤셔 박는 짓이었다.
‘우악, 야!’
나름 대책을 생각하던 투란이 깜짝 놀라서 으르렁거렸다.
―생각해! 이젠 알잖아!
드라고니아는 엄격하게 외쳤다.
투란도 지금은 더 따질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일단 마음 한편에 강제주입식 학습법을 따라 한 짓에 대해 단단히 새겨두고 전해 받은 길고 긴 설명 속에서 필요한 부분을 찾는 데 집중했다.
일단 제압한 나가락티, 아직 눈에 띄지 않은 가네시야를 치워놓고 검토한 하누크샤는…… 신체를 크거나 작게 조절할 수 있으면서 어디서 꺼내는지 모르는 신비한 흑철봉을 사용하고 날 듯이 도약하며 흰 털로 자신을 꼭 닮은 미니언을 구현해내고 자신을 주시하는 자를 교란시키는 괴상한 능력을 갖춘 지적(知的)인 신수란 이야기였다. 지적인 탓에 농담하듯이 말썽을 피우는 경우도 많고!
그중에서 투란의 마음에 바로 거슬린 부분은 역시…….
‘주시하면…… 교란?’
드라고니아가 봤음에도 자신이 보고도 몰랐다는 그 이상했던 상황.
그리고 지금도 주시하는 중이라면…… 투란은 재빨리 뒤로 튀면서 꼬리를 앞으로 휘저었다.
타앙!
갑작스럽게 공중에 나타난 철봉 하나가 꼬리에 맞고 튕겨나갔다.
하누크샤는 저쪽에서 이 광경에 박수 치듯이 캭캭거렸고, 곧바로 투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곧바로 투란은 꼬리로 바닥을 찍고 두 발로 주변을 훑듯이 걷어찼다.
퍽, 팍!
뭔가가 투란의 발길질을 막더니, 바로 공중에 구속된 나가락티와 부딪혔다.
나가락티는 무표정하게 꼬리와 몸을 흔들며 구속을 찢겠다는 듯이 움직이는데, 그 머리를 끌어안는 듯한 자세로 하얀 원숭이가 나타났다.
―본 거냐? 어떻게 감지했지?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투란은 얼렁뚱땅 대답했다.
드라고니아는 캐묻고 따지지 않았다.
투란 스스로도 조금 전에 어떤 식으로 자신이 대처했는가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니까. 카프리곤의 뿔이 진동했고, 흐느적거리는 거미줄이 주변을 여리게 휘젓듯이 풀려나갔기는 했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어떤 식으로 투란이 하누크샤의 은신, 은폐를 간파한 것인가는 모호했다. 그야말로 기분 내키는 대로, 몸이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 된 셈이었다.
그리고 투란은 그 상태를 유지한 채로 나가락티를 향해 뛰어올랐다.
하누크샤는 잡아둔 나가락티가 아닌 자신을 목표로 삼는 줄 안다는 듯, 곧바로 사라졌다. 그다음 나타난 자리는 허우적거리며 중상 속에서 뒤엉켜 씩씩거리는 타우루스 무리의 한복판이었는데, 하누크샤는 조금 전까지 나가락티에게 대롱대롱 매달린 것은 자신이 아니란 듯이 두어 마리 타우루스를 포개고 깔고 앉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저것이 대체…….
드라고니아가 하누크샤의 괴상한 짓거리에 어이없어할 때, 투란은 드라고의 꽉 움켜쥔 주먹으로 나가락티를 후려 팼다.
터엉, 째앵!
이질적인 타격음이 울려퍼졌다.
마치 둔탁한 살덩이를 팼다는 소리와 함께, 여리고 섬세한 그릇을 깼다는 소리가 완전히 겹쳐진 채로 울린 듯했다.
그리고 투란은 나가락티의 복부가 주먹에 밀려 움푹 파이는 와중에 그 몸을 덧씌운 커다란 무늬가 불쑥 튀어나와서 흔들거리는 것을 똑똑히 봤다. 거기에 대해 바로 드라고니아가 반응했다.
―헛? 소환의 아케인 패턴!
‘마도구 맞네.’
투란의 감상은 간단했다.
드라고니아도 그 순간에 깨달은 모양이었다.
―몬스터 로드……!
부주의하게 마법물품을 망가뜨리고 마법을 망치는 말썽꾸러기.
몬스터 로드의 힘, 그 고유마력은 마법이면서도 그런 성질머리를 자랑했다.
투란은 그 힘을 노골적으로 한 손에 모아 나가락티를 후려친 것이다.
단순히 나가락티의 몸뚱이를 깨부수기보다, 나가락티라는 존재를 규정하고 구성하는 마법의 구조 자체를 망가뜨리겠다고!
그 의도가 통했기에 조금 전의 괴상한 음향이 터진 것.
이에 대해 맞은 나가락티보다 하누크샤가 먼저 과격하게 반응했다.
께에, 꺄아, 꺄꺄꺅!
부우웅!
괴상한 외침과 함께 투란은 자신을 향해 시커먼 기둥이 날아드는 광경을 봤다.
갑자기 나타난 기둥이 한끝은 하누크샤의 손에 쥐어져 있는 광경이 아주 기괴했다.
흡사 하누크샤가 쥔 작은 철봉이 늘어나면서 한쪽만 굵어진 듯했다.
‘뭐야, 몸뚱이가 아니라 쇠몽둥이를 크게 하는 거였어?’
―저것도 크게 되고, 몸뚱이도 커져! 따질 때냐!
정보 누락에 대한 투란의 항의를 묵살하겠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렸다.
투란도 순순히 인정했다.
‘도망칠 때지.’
―뭐?
드라고니아는 흠칫했다.
너무 순순히 물러선다는 말을 하는 투란이 의심스럽잖은가.
하지만 곧 투란이 그런 말을 하는 까닭을 알 수 있었다.
뿌우우우!
길게 뻗은 코로 나팔소리를 내면서도 발소리는 내지 않는 괴상한 짓을 하는 코끼리 머리의 덩치가 두 발로 뛰어오는 중이었다. 하누크샤랑은 또 다른 등장을 하고 있는 셈인데, 타우루스보다 부푼 몸집에 비슷한 키를 지닌 그 코끼리 뒤에 두 배는 될 듯한 시커먼 그림자로 보이는 뭔가가 따라온다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퍼억, 째앵!
다시 한번 투란이 나가락티를 때리고 걷어찬 것은 처음의 주먹질을 바로 잇는 듯이 순간적으로 이어진 짓인데, 이 움직임으로 투란은 나가락티를 밟고 후려치면서 6층 입구 쪽으로 튀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투란은 뿌우거리는 코끼리 머리통, 그 너머의 시커먼 것을 보다 자세히 바라봤고……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코끼리 머리통을 한 가네시야의 뒷덜미를 시커먼 것이 콱 잡더니 냅다 던진 것이다. 아무리 체격의 차가 크다 해도 저렇게 간단히, 과격하게 내던져서 나가락티랑 겹쳐지면서 투란까지 맞추겠다고 날아드는 광경은 비정상적이었다.
‘뭔 힘이야?’
분명히 타우루스 수십 마리도 견뎌낼 거미줄의 점착성(粘着性)이었는데, 너무 쉽게 무시당했다.
그 괴력을 보고 드라고니아가 신음했다.
―저거노트……!
‘뭐? 아는 놈이야? 근데 왜 말 안 해?’
―저렇게 생긴 줄 몰랐으니까! 시커먼 가네시야란 얘기는 들은 적 없어!
‘어?’
투란은 천장을 박차고 아래로 내려서면서, 머리 위로 가네시야와 나가락티가 휭 지나가는 광경을 느끼면서 다시 저거노트란 녀석을 쳐다봤다. 가네시야랑 같이 나타나서 무슨 그림자가 일어나서 두텁게 뒤뚱거리는 괴상한 광경인가 싶었는데, 이제 보니 시커먼 채로 두 배는 부푼 가네시야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 입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이빨이 예닐곱은 돼보이는 것이 체격이 같더라도 더 사나운 증거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러 몽거가 처음 발견되었던 시절에는 저게 더 유명했다. 그래서 소환된 채로 이 이 세상에 묶여버린 저거노트가 변한 것이 오러 몽거가 아니냐는 말도 잠깐 있었다고 했었지. 이젠 거의 잊힌 놈인데…….
‘여기도 잊힌 미궁이잖아. 그래서 특징은?’
투란은 타우루스를 짓밟고 달려오는 저거노트를 봤고, 옆의 회랑으로 잽싸게 피해서 꺅꺅거리는 하누크샤를 확인했다. 6층의 입구에 격돌하듯이 나뒹구는 나가락티와 가네시야는 거미줄이 뒤엉킨 것에 묶여 잠시 놔둬도 될 듯한데…….
―튼튼하고 힘세다?
뭔가 멀뚱하고 멋쩍게 내놓는 드라고니아의 말이 투란을 당황시켰다.
‘야……!’
―내달리면서 밟히는 거는 다 짓뭉개고, 절벽에도 들이박는 성질머리라서 웬만하면 정면충돌하지 말라는 말도 있기는 하군.
이어진 말은 왜 오러 몽거가 처음 등장했을 때 저거노트로 오인받았는가를 투란에게 확실히 일깨워주고 있었다.
‘바위 트롤도 거의 똑같지.’
크고 세고, 튼튼한 녀석들.
굳이 몬스터가 아니더라도 몬스터라 불리는 녀석들은 대부분 그런 특징을 드러내기 마련이었다.
그중에서도 심상치 않은 듯한 괴물이 분명한 저거노트가 투란의 코앞으로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