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0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99)
콰웅!
허공이 찢기는 소리가 격렬하게 울려퍼졌다.
뿌웃?
뒤이어 울린 콧소리는 시커멓고 길쭉한 코가 갸웃거리는 시늉을 하는 와중에 굉음처럼 울려퍼졌다.
꺄? 꺄꺅.
회랑 틈새에 숨어서 머리만 내민 하누크샤가 손끝으로 자기 볼을 긁적대는 표정으로 의아하다는 듯한 소리를 냈다. 조금 전까지 저거노트의 주먹 앞에 있던 침입자가 어디로 갔느냐고 묻는 듯한 낌새를 띤 채였다.
저거노트는 코끼리 머리를 흔들고, 삐죽하고 긴 여러 가닥의 상아를 우물거리듯이 움직이며 코가 눈이라도 된 듯이 여기저기 훑어보는 시늉을 했다.
가네시야가 뿌뿌거리는 소리를 내며 엉거주춤하니 일어서려는 시늉을 했지만 나가락티와 들러붙은 채로 갈라서지를 못해 뱀의 하반신을 깔고 뭉개면서 뒹구는 몸짓만 드러낼 뿐이었다.
므흣, 푸르륵!
짓밟혀 뭉개진 타우루스 무리 중의 한 마리가 거친 소리와 함께 일어섰고, 주변에 다른 타우루스가 완전히 뭉개져 죽거나 죽기 직전이거나 자신처럼 우악스러운 괴력을 드러내며 일어서려 안간힘을 쓰는 광경을 둘러봤다.
므흐핫! 와드득.
먼저 일어선 한 마리는 거침없이 자신의 갑주를 뜯어냈고, 뿔 사이에 걸친 투구를 억센 손으로 긁어내서 뭉갠 다음에 내동댕이쳤다. 쇳소리가 바닥을 울렸고, 타우루스는 자신의 양날도끼를 움켜줬다. 도끼자루를 쥔 손에 힘줄이 돋은 순간, 타우루스가 높이 뛰었다. 도약한 채로 두 손을 모아 도끼자루를 쥔 타우루스는 저거노트의 시커먼 뒤통수를 온 힘을 다해 내리찍었다.
쩍.
도끼날이 저거노트의 뒤통수로 몇 센티 스며드는 듯하면서 둔탁한 소리가 짧게 울렸다.
덥석.
타우루스의 발이 바닥에 닿기 전에 돌아선 저거노트의 손이 그 목을 움켜쥐었다.
숨통이 막히는 순간에 타우루스는 저거노트의 손목을 두 손으로 잡고 있었는데…….
저거노트는 갸웃하면서 코로 자신의 뒤통수를 긁적였다.
몇 센티 꽂혀 있는 듯했던 타우루스의 양날도끼가 뎅그렁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궈졌다.
우드득.
저거노트의 손이 조여들고 타우루스의 목뼈가 으스러졌다.
털썩.
타우루스를 내던진 다음, 저거노트는 다시 코를 움직이며 두리번거리는 시늉을 했다. 하누크샤는 여전히 회랑 틈새에서 볼만 긁적였고, 가네시야는 나가락티와 떨어지려 버둥거렸다. 나가락티는 납작해진 낯짝에도 다시 노래를 하려 들지만, 이상하게 목 줄기가 조인 듯 새된 소리만 내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살아남은 타우루스 몇몇이 중상을 입은 채로 일어섰고, 입고 있던 갑주를 찢어발기며 도끼를 들었다. 한 팔만 남은 녀석은 한 손만으로, 다리 한쪽이 뭉개진 녀석은 외다리로…… 격노로 물든 듯이 시뻘겋게 변한 타우루스의 눈알 위에는 더 이상 눈동자가 없었다.
그런 채로 타우루스 몇몇은 저거노트를 향해 동족의 짓이겨진 몸뚱이를 밟으며 도끼를 들고 덤벼들었는데…….
‘와, 진짜 상대가 안 되잖아.’
―가죽이 황당할 정도로 유연하군. 아니, 저건 유연함이 아니라 괴이함인가? 날카로운 거미줄에도 저 도끼랑 똑같이 반응했으니 말이야.
‘그러게…….’
―이제 어쩔 거냐?
드라고니아의 물음에 투란은 일단 조금 전의 상황을 되새겼다.
가네시야를 나가락티랑 엮어놓고 달려오는 저거노트의 발목을 거미줄로 잘라보려고 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거미줄은 타우루스의 도끼처럼 저거노트의 가죽을 꾸욱 누르며 절단(切斷)하지 못했다. 타우루스가 뒤엉킨 자리를 짓밟는 질주도 멈추게 못 했다.
그 상황에서 투란은 두 가지 선택지를 골라냈다.
한 가지는 ‘호오? 이 건방진 것 좀 보게?’라며 치솟는 왕의 기분에 맞춰서 용암과 거미줄로 통로를 가득 채운 다음에 환마가 뭔가, 저거노트가 뭔가 장난감 삼아 묶고 뒤흔들며 해부(解剖)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다른 한 가지는 낯선 부류인 환마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할 여유를 갖기 위해 물러서고, 6층의 상황을 관찰해 보는 것이었다.
투란은 물러서서 지켜보는 쪽을 골랐다.
그 선택의 결과, 드라고의 감각으로 카프리곤의 도약력을 사용해서 움직인 짓은 저거노트와 다른 환마라 불리는 녀석들에게서 완전히 벗어나는 결과를 이뤄졌다. 그 순간에 드라고니아가 뭣 때문에 놀라는가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을 흘리기는 했지만.
남겨놓은 얼룩 속의 티끌 같은 눈알로 그다음에 벌어진 광경을 관측하고 나니, 투란에게는 이 6층의 상황이 한층 더 모호하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중이었다.
‘타우루스가 좋아서 갑주 입고 병정놀이하는 거는 아닌 셈이지?’
―병정놀이는 재밌지만 자기네가 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즐길 생각이었는지도 모르지.
드라고니아는 조금 냉소적으로 말했다.
쓴웃음과 함께 투란이 달래는 듯이 말한다.
‘나가락티 목을 졸라놓으니까 노래를 못하고, 노래를 못 하니 타우루스에게 이래라저래라 못 하는 것일 수도 있어. 일어서자마자 전부 저 시커먼 저거노트한테 덤벼드는 꼴로 봐서는…… 맞고 가만있지 않을 정도의 성질은 남아 있는 거겠지.’
―뭐, 어느 쪽이든…… 미궁 안에서 타우루스를 지배하는 능력이란 점에서 이미 어지간한 경우는 아니지. 환마니까 때려잡아도 네가 얻을 수 없는 능력이고 말이야. 그러니까, 어쩔 거냐?
살짝 누그러진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투란은 침착하게 생각하며 자신이 들러붙은 천장 귀퉁이에 조금 더 몸을 웅크리고 담듯이 밀착시켰다. 쟈카라 산림에서 마수 거미가 숲과 암벽의 그늘진 귀퉁이에 들러붙어서 촘촘한 그물로 위장하고 숨는 짓을 재현하는 중이었다. 마력의 탐지도 막아내는 그물이었고, 주변과 완전히 동화되는 그 색채와 질감은 은폐로서 아주 뛰어났으니까 이렇게 써먹기에 딱 좋았다. 왕의 능력을 기반으로 했기에, 이 은폐는 마수 거미가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이니 생각할 여유는 넉넉히 확보한 셈이었다.
그런 채로 투란은 다시 상황을 하나씩 되새겼다.
‘나가락티, 배가 뚫리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내장을 쏟아내고 뱃가죽이 뒤집어질 듯했어. 근데 피도 안 나고 그 얇은 뱃가죽이 뚫리지도 않았지. 그런 척하려다가 갑자기 그 무늬가 나타나면서 충격을 회피했단 말이지…… 그 무늬도 몬스터 엠블럼의 힘에 꽤 흔들리는 꼴이었는데 말이야.’
―그건 녀석의 소환핵이 그 몸뚱이에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투란.
드라고니아가 씁쓸하게, 담담하게 말했다.
‘무슨 뜻이야?’
―저 몸뚱이를 발기발기 찢어서 현재의 구성형태를 파괴한다 해도, 마력이 축적되면 멀쩡하게 다시 그 몸이 생겨난다는 말이다. 소환핵이 있는 한, 그 소환핵이 마력을 다시 쌓을 수 있는 동안에는 소환된 환마는 되살아난다고 보면 된다.
‘그 핵, 찾을 수 있어?’
―탐지마법을 철저히 봉쇄해놓은 미궁이잖아.
간접적인 대답이었지만, 투란에게는 명확하게 근거 있는 판단이었다.
‘이 미궁, 애초에 저 환마란 녀석들을 두고 소환핵을 보호해둘 목적으로 탐지 계통 마법을 꽉 틀어 막아놨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직 다른 이유가 될 만한 광경은 못 봤으니까.
살짝 비틀어대는 대답이었지만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동의할 수 있었다.
다른 까닭이 없다면, 다양한 형태의 탐지 마법을 막고 소환핵을 감춰놓고 환마를 풀어놓는다는 것은 미궁의 침입자를 격퇴하기 위한 최적의 수단이 분명했다.
하지만 투란은 한층 더 이 아리송한 상황에 의혹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지?’
―뭐?
‘여기 뭘 뒀기에…… 설마 닥치는 대로 돌 만드는 메듀시아를 지키자고 쳐들어오는 누구든지 다 찍고 패서 죽이겠다는 환마를 풀어놓지는 않았을 거 아냐. 아, 저 환마도 돌이 되나?’
―잠깐 움찔할지는 모르겠다만, 생명체라기보다는 마법구성체인 환마에게 메듀시아의 석화능력이 통할 것 같지는 않군. 입구에서 옷자락이나 마법검, 검갑이 그리 멀쩡했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야.
‘그러면…… 침입자를 무조건 죽인다는 것으로 봐서는 메듀시아를 지킨다고 보기는 힘들어. 메듀시아를 가두고 지키는 거라면 몬스터 시켜서 저렇게 쳐죽이는 짓은 안 할 테니까.’
―으흠…… 어쩌면 메듀시아 또한 저 환마와 같은 까닭에 여기 있는 건지도 모르지.
‘어? 같은 까닭?’
―환마를 배치한 자가 메듀시아까지 미궁 안에 두고 침입자를 대처한 것일 수도 있단 말이야. 미궁 안의 뭔가에 침입자가 결코 닿지 않게 하려고.
‘음, 메듀시아랑 저 환마들이 똑같은 경비병이라 이 말인데…… 야, 그러면 이번 층에 메듀시아가 없을 거 같은데?’
―전술적 방어를 고려해본다면, 그게 정상이겠지. 한 층에 마하박티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수를 환마로 저리 잔뜩 몰아넣고 거기다가 메듀시아까지 둔다는 것은 여기가 최종 방벽일 경우뿐이겠지.
‘에? 최종?’
―이 미궁이 몇 층까지 있나 모르잖아, 그러니 여기가 최하층이라 하면…… 그럴 때는 메듀시아가 이 미궁이 지키려는 마지막 관문의 문지기일 수도 있는 거다. 아래층이 더 있다면 저 환마들이랑 메듀시아를 한 층에 두지 않는다고 보는 편이 이치에 맞고.
‘흠…… 어쨌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저거랑 싸우는 짓은 엄청나게 피곤하고 귀찮기만 한 일이란 거지. 프로브도 몇 걸음 떼어놓지도 못하고…… 그렇다면…….’
투란은 ‘천칭’을 더듬었다.
드라고니아가 그 감각을 알아차린 듯, 바로 외친다.
―역병은 건드리지 마! 너 아직 버닝 데드로 통제하는 방법을 제대로 몰라! 여기서 시험해보는 짓 따위는 하지 마! 괜히 미궁에서 튀어나간 몬스터가 역병을 싣고 춤추는 산맥을 질주하기라도 하면…….
‘안 건드려! 조용히 좀 해봐!’
뾰로통한 대꾸를 하면서 투란은 집중했다.
평소라면 몇 가닥의 ‘투란’이 이모저모로 생각하며 주변 상황도 관측하는 상태를 유지할 텐데, 라미아랑 엮이면서 자꾸 하나뿐인 투란…… 자기 자신으로서 상황을 둘러보려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몇 가닥의 ‘투란’조차 동원해서 라미아를 더 자세히 보고 싶다는 기분, 충동이 강렬했던 셈이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4층부터의 타우루스, 라미아의 정수가 동종(同種)으로서 모조리 하나로 융합했는데, 그에 대한 후회조차 없었다!
만약 다시 라미아가 몇 마리 더 나타난다면, 투란은 또 그 머리와 몸의 허물을 수집하면서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모든 시야를 동원해서 바라볼지 몰랐다. 그런 상태가 반복된다면 투란은 지금 하려는 짓을 계속 망칠 수가 있었다. 하나의 자신이 아닌, 여러 자신…… 셀 수 없는 자신으로 의지를 나눠야 하는 일은 상당한 집중력을 필요로 하니까.
사아, 사사삭.
투란을 감추고 있는 그물 사이로 짙은 회색이 그림자처럼 번져 나왔다.
회색은 계속해서 주변을 채워 갔고, 미궁의 벽이 지닌 색에 맞춰 농도와 채도를 조절했다. 회색이라 할지라도 다르다고 볼 수 있었던 요소가 사라지며, 그물에서 흘러나온 회색은 그림자처럼 벽과 천장, 바닥을 따라 번져갔다.
―야, 이거 역병의 숲 앞에서 만났던…….
‘역병 없는 몬스터라고. 작지만…… 모양은 아라크레온, 퀸의 모양에 맞춰놨으니까 상황에 대응하기도 좋아. 조용히 해봐. 얘네 다루는 거, 생각보다 힘들어.’
투란이 툴툴거림으로 드라고니아가 확인하려는 말을 막았다.
드라고니아도 더 뭐라 말하지 않았다.
아라크녹스의 왕과 싸울 때, 투란은 이 나노미터 사이즈의 여왕을 이용했었다.
거대한 하나이면서 무수히 미세한 작은 조각들이기도 했던 몬스터에게 아라크레온 여왕의 형상을 부여해서!
그때랑 다르게 이 미세한 아라크레온 여왕이 나노사이즈인 채로 떼로 몰려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한다면…… 과연 이 미궁 6층에서 그 탐색을 회피할 뭔가가 있을까?
드라고니아는 스스로 떠올린 의문에 대해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면서 기다렸다.
그 기대에 응하듯, 오래가지 않아 투란은 자신이 수집한…… 먼지보다 작은 벌레 사이즈의 군단을 운용해서 채집한 정보를 드라고니아와 공유하며 의논을 시작했다.
‘저 문, 7층 입구겠지?’
―일단 문 열고 봐야 확실하겠지만, 달리 생각해도 이 6층의 중심부란 점은 분명하겠지. 7층 입구가 아니라면, 저기가 메듀시아가 지키는 마지막 관문일 거다. 저기 없다면 메듀시아는 아래층에 있을 테지.
‘저 근처에서 움직이면…….’
―환마가 몰려올 거야, 당연히.
‘몰래 들어갈 수 있을까?’
―나노미터 단위로도 침투를 허용하지 않고 있잖아. 몰래는 힘들어. 어떻게든 건드리면…… 건드렸냐?
‘살짝, 아주 살짝. 아…….’
―저거노트가 문지기였나.
막힌 문을 찾아내서 그 주변을 둘러보다가, 나노미터 사이즈에서조차 꽉 닫힌 문을 이리저리 조사하다가 투란은 슬쩍 미세영역에서 그 문을 갉아내고 할퀴어봤다. 나노미터의 영역에서 그랬을 때,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그 크기 그대로 구멍을 내고 그 문 안쪽의 상황을 엿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환마는, 저거노트는 나노 사이즈의 침입 시도에도 반응하고 있었다.
뿌우우! 쿵, 쾅, 쿵, 쾅.
코울음과 발소리로 층을 울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