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0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00)
‘에, 어쩌지?’
―뭘 어째?
조금 당황스러워하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퉁명스럽게 반문했다.
바로 투란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6층의 곳곳으로 흘려보낸 나노미터 사이즈의 군단, 암철을 물들인 회색과 똑같이 위장한 채로 움직이는 탓에 보고 느끼고 할 것도 없는 상태였다. 7층으로 통하든가 마지막 관문이든가 할 문을 건드린 것 또한 나노미터의 영역에서 저질러진 일.
멀리 숨어서, 사실은 아직 6층의 입구가 저쪽 한 귀퉁이만 돌면 훤히 보일 곳의 천장 구석에 숨어서 보는 투란이 뭘 하고 어쩌고 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리 강력하고 튼튼한 저거노트라 해도, 나노미터의 아라크레온 군단에 뭘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뿌우우우!
콧김이 거칠게 뿜어져 나오며 저거노트가 나팔과 함께 함성이라도 지르는 듯한 괴성을 퍼뜨렸다. 뒤이어 저거노트의 시커먼 주먹이 거침없이 미세하게 손상된 문을 완전히 부숴버리겠다는 듯이 후려쳤다.
콰앙! 터어엉!
‘어, 저건 또 뭔 짓이지?’
―아케인 패턴을 주먹질로 자극했군.
드라고니아가 어리둥절해하는 투란과 다르게 아쉽다는 듯한 말을 했다.
금방 투란도 그게 무슨 뜻인가, 문에 들러붙은 나노미터의 아라크레온 군단을 통해서 바로 알 수 있었으니…….
칠이 한 겹 벗겨지듯이 나풀거렸다.
암철로 이뤄졌을 것이 분명한 문에는 여린 빛의 무늬가 번져가고 있었다.
무늬는 저거노트의 연이은 주먹질에 따라 더욱 밝아졌고, 들러붙어 있던 회색의 막을 한 겹 밀어내고 있었다.
그 회색의 막을 향해 저거노트가 세차게 콧김을 뿜어냈다.
콧바람으로 찢어발기겠다는 시도였고, 어렵지 않게 그런 결과를 얻어냈다.
하지만 얇게 문에서 벗겨져 나와 콧바람에 으스러지고 너울거리는 회색은 연기처럼, 바람결을 그려내는 것처럼, 안개처럼 그 자리에서 살랑이며 이어진 부드러운 가닥들을 벽과 천장으로 분명하게 흘려냈다.
저거노트가 그 회색의 잔영을 짓이기겠다는 듯이 주먹질을 했고 콧바람을 뿜어냈다. 거칠어진 그 동작은 괴력으로 인해 역류하는 연기, 안개, 그려진 바람결을 형성했고 저거노트의 코와 주먹, 몸 곳곳에 회색의 잔영이 들러붙게 했다.
그야말로 거미줄 짙은 곳을 치우겠다고 손짓하다가 온몸에 흩어진 거미줄이 들러붙게 되는 광경이었다.
저거노트가 다시 뿌우뿌우하는 콧소리를 내며 코를 늘려 자신의 몸을 후려치고 콧바람을 뿜어냈다. 몸에 들러붙은 것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데…….
―어쩌려고?
‘뭘 어째, 일단 썰어봐야지. 썰어서 죽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어리둥절해하는 드라고니아에게 이번에는 투란이 아쉽다는 듯이 대꾸했다.
환마란, 제압하든 쳐죽이든, 망가뜨리든 전혀 얻을 게 없다는 점에서 아쉬워한다는 것을 드라고니아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냥 둘 수도 없기는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 하면, 투란이 저거노트와 치고받고 싸우며 피투성이가 될 일 없이 한 귀퉁이에 편안히 숨은 채로 일방적으로 뭘 해본다는 점이었다.
뿌읏, 크으응!
우둑, 와드득.
저거노트가 잔뜩 늘린 코가 팔뚝에 들러붙었다.
남의 팔도 아니고 바로 자기 팔에 감겼기에 저거노트는 당황한 듯했다.
갑자기 팔에 조이고 구획을 나누는 듯한 마름모 그물 무늬가 번지면서 생긴 결과였다. 길게 내민 코 또한 그런 식의 무늬를 지닌 채로 팔에 들러붙어 감는 듯한 꼴로 꼼짝 못 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저거노트는 지닌 능력을 그대로 발휘하려 했다.
코와 팔에 힘을 주고 둘을 찢어놓는 것, 오로지 괴력과 튼튼한 몸을 믿고 저지르는 짓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저거노트는 한쪽 다리를 접고 외다리로 껑충거리다가 엎어지고 말았다. 팔에 힘을 주니, 갑자기 발목이 당겨졌고 무릎이 조여들면서 발바닥이 엉덩이로 향한 꼴이 된 탓이었다. 그 꼴로 기우뚱하는 와중에 코와 떼어내려 한 팔에 들어간 힘으로 인해 어깨가 허우적대다 보니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여러 가닥의 상아로 암철의 바닥을 쑤시는 꼴로!
카캉.
저거노트의 상아와 암철의 바닥이 격돌하며 불티가 튀어올랐다.
저거노트는 아직 어디 묶이지도 않은 다른 팔을 움직였고, 그 손으로 코를 잡아 다시 한번 우악스럽게 당겼다.
그 순간, 저거노트의 팔다리가 팽팽해지면서 멈췄다.
꽁꽁 묶인 탓에 요란한 소리를 내지 못하는 코로 뜨거운 콧김을 뿜어내면서 저거노트는 온몸에 힘을 주고 어떻게든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온몸을 조이는 기괴한 힘은 저거노트 자신의 괴력과 완벽하게 버금갔고, 맞먹는 그 힘을 어쩌지 못하니 저거노트는 엎어진 꼴 그대로 꿈틀거리며 다시 움직이지 못하는 괴상한 상태일 뿐이었다.
―저놈 힘에도 끊어지지 않는 거냐? 아라크레온의 실이라 해도 저 녀석 정도면 몇 가닥 정도는 끊어질 줄 알았는데……?
드라고니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전설적인 신수의 거미줄이라 해도 분명히 한계는 있었다.
게다가 투란이 더듬고 짜낸 실이었다.
아라크레온의 능력을 아무리 잘 다뤘다 해도 저거노트를 살갗 안쪽에서 묶고 구속해 자기 팔다리끼리 엮어버린 저 실가닥은 너무 강력하잖은가.
투란은 그 의문에 심드렁하니 대답한다.
‘저거 아무리 팔다리를 휘둘러도 자기 힘줄을 끊어먹는 놈은 아니잖아.’
―에? 엥?
‘좋은 본보기가 있으면 아라크레온은 그 소재로 바로 실을 자아내고 그물을 짜낼 수 있어. 뭐, 이번에는 굳이 그러지도 않았고 그냥 저 녀석의 힘줄이랑 섞이는 거미줄을 짜내고 맞물린 것뿐이야. 하클 영감의 도구 구조를 조금 참조해서 한 거니까,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려나?’
딱히 자신이 머리 짜낸 부분이 없다는 점을 되새기면서 투란은 살짝 한숨 쉬듯이 설명하고 있었다.
이는 드라고니아를 어이없게 했고…….
―아니, 그 정도면 충분히 대단한 것 같다만? 어디가 대단치 않다는 거야?
오히려 두둔하고 칭찬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투란은 이 말에 우쭐하고 싶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저놈의 흐리멍덩한 허연 원숭이가 뭐 하려는 거지?’
하누크샤가 저거노트가 쓰러져 끙끙대는 곳에 다가서고 있었다.
조금 더 그 광경을 멀리서 차분하게 지켜보는 시야를 확보해서 투란이 상황을 지켜보니…….
꺄아?
하누크샤는 저거노트와 몇 미터 거리를 두고 선 채로 머리를 긁적였다.
숲이 아니라 나무가 없지만, 나무만 있었으면 그 가지 위에 올라앉아 쪼그리고 아래를 보며 ‘이거 괴상하네?’ 하는 시늉을 하는 원숭이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 태도였다.
하누크샤는 잠깐 그러고 있다고 두 손을 내밀었다.
흰 털이 가득한 팔이지만 손바닥은 붉은 가죽이 도드라진 모양의 손에 적당한 크기의 쇠막대 둘이 쥐어졌다. 둥근 원통형태의 쇠몽둥이가 네모진 쇠막대의 형태로 나타난 듯했다.
캉, 캉, 캉.
하누크샤가 두 손을 흔들면서 쥐고 있는 쇠막대를 마주쳤다.
은은한 음향과 함께 저거노트가 꿈틀거렸다.
그 몸은 마치 음향에 반응하려는 듯한데, 단단히 묶여서 꼼짝도 못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누크샤는 저거노트의 상태를 파악했다는 듯, 입술을 삐죽이고 꼬면서 히죽이 웃는 얼굴이 되었다. 환마로서 동료가 처한 곤경이 매우 우습고 한심해 보인다고 웃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표정과 다르게 하누크샤의 두 손이 마주치는 중이었고, 쇠막대는 겹쳐지면서 하나가 되었다.
합쳐진 쇠막대는 곧 줄어들었고, 둥글둥글해졌다.
타원형의 알처럼 된 쇠막대를 하누크샤는 두 손으로 이리저리 주무르고 당기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은 용광로에 달궈진 쇠를 꺼낸 대장장이가 하는 짓을 떠올리게 했고, 그다음에 보인 광경은 달궈진 쇠가 두들겨지며 변화하는 상태를 그대로 재현하는 듯했다.
어느새 하누크샤의 비비적거리는 두 손 사이에는 뾰족한 꼬챙이가 들려 있었다. 한쪽은 뭉툭하고 한쪽은 원뿔처럼 삐죽한 꼬챙이를 두 손으로 꽉 쥔 채로 하누크샤는 여전히 바닥에 엎어져 버둥거리려 애쓰지만 버둥거리지도 못하고 꿈틀거리기만 하는 저거노트에게 차분하게 다가갔다.
저거노트는 다가오는 하누크샤를 보며 흐릿한 뿌우소리를 내려 했다. 마치 저리 가라고, 혼자 알아서 한다고 으르렁거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급한 낌새가 저거노트의 껌벅이는 눈망울 속에 드러나는 듯했다.
하누크샤는 그런 거 모른다는 듯이 적당히 몸을 굽히며 저거노트의 눈과 눈 사이, 이마와 가까운 곳을 꼬챙이로 찔렀다.
꼬챙이는 저거노트의 살갗을 뚫지 않았고, 눌린 흔적도 내지 않았다.
그냥 저거노트는 그 자리에 놓인 환영이란 것처럼 그 속으로 스며들 뿐이었다.
하지만 뭉툭한 손잡이가 완전히 구슬 반쪽 모양이 될 때까지 스며들고 나니, 저거노트의 살갗이 꿈틀거리며 사나운 힘줄, 핏줄이 울퉁불퉁 돋아난다!
그 변화는…….
―회수(回收)로군.
‘헐! 저거노트가 해체되고 있잖아!’
드라고니아가 침착하게 말했지만, 투란은 놀란 외침을 터뜨렸다.
―하나의 환마가 어떤 식으로든 제압되면 다른 녀석을 이용해서 일단 형상을 회수하도록 되어 있었어. 회수된 환마는 이상상태를 벗어난 채로 다시 형상을 구성할 수는 있을 듯하다만…….
‘뭐? 도로 멀쩡해져? 어, 그냥 막? 아니면 뭔가 조건이 있어?’
―조건이 있…… 망할!
설명하려 든 드라고니아가 흠칫하며 짜증이 섞인 외침을 흘렸다.
투란은 ‘어?’ 하면서도 다시 하누크샤의 주변을 관찰했다.
반쯤 드러난 타원체는 거뭇했고, 그 속에 담긴 무늬는 저거노트를 그리고 있었다. 하누크샤는 바쁘게 그 타원체, 알이라 할 만한 것을 열심히 손으로 문지르면서 그 무늬를 선명하게 하려는 듯했다. 그 노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듯, 무늬로 그려지는 저거노트는 보다 분명해지는데, 남겨진 저거노트의 몸은 그럴수록 흐릿해지면서 푹푹 꺼지면서 검은 안개를 흘려내며 흩어지고 있었다.
하누크샤가 만지작거리는 타원체는 그렇게 흩어지는 저거노트의 절반 남은 머리에 아직 반쯤 박힌 채였다. 하지만 이제 곧 완전히 드러날 듯, 저거노트의 해체상태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막아! 환마상(幻魔像)이 되기 전에 저 짓 못 하게 해야 해!
급한 외침은 투란을 일단 움직이게 했다.
숨어 있던 곳에서 뛰쳐나오며, 한때 쟈카라 산림의 공포로 알려졌던 ‘절규하는 마물’의 거미줄을 뿜어내면서 투란은 하누크샤가 있는 곳으로 최단 경로를 골라 허공을 가르며 날았다. 동시에 묻는 중이었다.
‘그게 뭔데?’
―환마상을 사용하면 해체된 그 자리에서 바로 복원시킬 수 있어! 마력만 충분하다면 말이야! 마력이 모자랄 것으로 보이지 않잖아! 저런 식이면 환마 저거노트는 거의 불사신이나 다름없고, 어떤 제약도 통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야!
‘흰 원숭이랑 같이 때려잡든가 해야 한다는 거네?’
―그래! 아니, 가네시야와 나가락티도 마찬가지일지 몰라!
드라고니아는 이 상황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투란은 그 격앙된 기분이 뭣 때문인지 몰랐지만, 그래도 일단 머리 한구석을 냉정하게 굴리며 짚기로 했다.
‘걔네는 아직도 들러붙어서 낑낑거리거든. 아무래도 저 원숭이가 복구시켜주는 대상은 저거노트만이겠지. 어쩌면 서로 하나씩 지정된 것일 수도 있고. 너무 흥분하지 말고, 대체 환마상이 뭔가 천천히 설명하라고. 저건…… 내가 좀 때려주고 있을 테니까, 알았지?’
반쯤 달래는 말과 함께, 투란은 하누크샤의 뒤통수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
펄럭, 하누크샤가 사라졌고 저거노트의 무늬를 담은 타원체는 바닥에 탱 하는 소리를 내면서 떨궈졌다. 하지만 이제는 굳이 하누크샤의 손길을 빌릴 필요가 없다는 듯, 저거노트의 해체는 가속하는 중이었고 타원체의 무늬는 보다 선명한 음각(陰刻)을 드러내고 있었다.
투란은 자신의 태세를 정비했고, 양쪽에서 동시에 날아드는 쇠몽둥이의 타격을 확인했다. 저절로 투란의 넋두리가 피어오를 수밖에 없었으니…….
‘이건 또 뭣인가요?’
하누크샤는 두 마리가 있었다.
빠악, 빡!
쇠몽둥이 둘이 투란의 두 손에 잡혔다.
그 순간에 투란은 앞뒤로 찍어내리는 쇠몽둥이를 알아차렸고, 좌우 말고 전후로도 하누크샤가 한 마리씩 더 있는 것을 확인했다.
어느새 하누크샤는 네 마리가 있었던 것…….
꺄아아, 꺅!
네 하누크샤의 주둥이가 횡재했다는 듯이 흥겹게 포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