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0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02)
‘성장한 거지?’
까닭을 묻고 과정을 따지는 말이 아니었다.
투란은 드라고가 최후의 형태로 성장한 결과를 확인하듯 물을 뿐이었다.
그리고 대답은 이미 나왔으니, 기다릴 것도 없이 투란의 두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거노트를 다시 한번, 머리에서 턱, 가슴, 어깨와 팔뚝을 가차 없이 두들겨 패는 주먹질이었다.
뻑, 뻐벅, 뻐억, 뻑.
찰진 소리가 시원하게 울려퍼졌다.
뿌으읏? 쿠웅.
놀란 소리를 내며 저거노트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투란, 안 통해!
드라고니아가 외쳤다.
투란도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드라고의 두 팔은 뿜어져 나오는 사파이어 광채만큼이나 선명하게 강해져 있기는 한데, 저거노트가 너무 튼튼하고 힘이 좋았다. 저거노트의 그런 괴력이 지금 들어간 드라고, 사파이어 티란트의 힘을 가뿐하게 받아낼 수 있는 수준이라고, 그저 잠깐 드라고가 자신의 주먹질에 부서지지 않은 것에 당황했을 뿐이라고 노골적으로 상황을 드러내고 있었다.
뿌으으읏!
저거노트가 눈을 까뒤집고 두 주먹에 힘을 주며 상아를 뒤트는 낯짝이 되었다.
뭔 일인가 몰라 맞았는데, 맞고 나니 울화가 치민다는 태도였다.
꺄아아— 꺄꺄갹!
사방에서 하누크샤가 울부짖으며 저거노트를 부추기고 응원하는…… 귀를 찢어내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이거 소리로 공격한 거지?’
―그럴 의도가 없어도 공격 맞아.
하누크샤의 비명은 청각을 짓이기면서 눈앞의 광경이 잠깐 휘청하게 만든 괴성이었다. 쇠창살을 두드리며, 사방을 감싼 채로 어떤 놈은 맨손, 어떤 놈은 쇠막대를 따로 뽑아 들고 두드리며 질러대는 비명은 마치 저거노트에게 왜 쳐맞느냐고, 맞는 거 보니 자기가 아프다고 으르렁대는 듯도 했지만 결국은 드라고의 형상 속에 사파이어 티란트로 변모해가는 투란을 향한 공격이었다.
저거노트는 그 괴성에 몇 가닥이나 되는 상아를 뒤틀면서 코를 휘둘렀고, 납작하게 붙어서 그냥 머리가죽이 들떠 있나 싶었던 귀를 열고 펄럭대며 두 팔을 치켜 올린 채로 코나팔을 불어댔다.
뿌으읏, 뿌으으!
몇 대 맞은 것이 억울하다는 듯, 저거노트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잠깐 고개를 젓고 있던 달려드는데…….
‘완전하게 사파이어 티란트가 된 게 아니지?’
―팔, 어깨와 등, 가슴 언저리로만 사파이어의 비늘이 완성된 채다. 허리 아래로는 번져가지 않고 있어. 그 정도면 저거노트랑 넉넉히 싸울 수 있기 때문인가?
‘힘이 모자란데, 뭘 넉넉히 싸워. 그것보다 부딪힐 때 느낌으로 봐서는 순수하게 드라고의 정수가 작용한 거는 아니야. 카프리곤의 뿔이 일으킨 생체파동이란 엮인 탓인 것 같아. 저 꺼먼 놈이랑 맞서야 하니까, 억지로 몸 상태를 끌어올리려다 보니 된 것 같거든.’
차분히 자신을 점검하면서, 날아드는 주먹을 가볍게 몸을 흔들어 피해내면서 투란은 하누크샤의 괴성이 가득한 분위기, 저거노트의 격투 자세를 살폈다. 동시에 나가락티와 가네시야가 기어코 환마상이 되어 풀려나는 것도 확인했다.
일단 사방이 쇠창살로 막힌 상태이니 풀려난 둘이 온다 해서 딱히 달라질 바가 없을 듯하기는 했지만 나가락티가 7층을 밝히면서 벽을 열어 타우루스 무리를 풀어놓았던 광경을 떠올리면 그렇게 간단히 생각할 수만은 없었다. 게다가 덤벼들면서 저거노트를 꽁무니에 붙인 채로 별 볼 일 없는 짓만 하는 듯했던 가네시야가 계속 그리 하찮기만 할지도 의심스러웠다.
뿌우읏! 붕, 붕, 붕!
주먹질에 코까지 덤으로 휘둘러대는 저거노트의 성난 모습은 투란에게 한숨을 쉬게 했다. 저거노트의 괴력, 몸뚱이의 견고함은 대단하기는 했지만 드라고가 비스트 단계를 유지하는 하반신의 속도로도 넉넉히 피해낼 수가 있었다. 투란의 드라고가 온몸을 완전히 사파이어 티란트로 성장시킨다면 전체적인 파괴력, 속도가 몇 배로 증가할 터이니 저거노트 하나뿐이라면 이 상황은 그냥 적당히 넘길 수도 있었다. 아예 무시하고 7층을 돌아다니면서 메듀시아를 찾는 일에만 집중할 수도 있고!
―일단 아까처럼 묶어버리지그래? 그리고 묶은 놈을 들고 뛰어다니면 하누크샤라도 바로 손댈 수 없을 테니까 말이야. 그다음에…….
드라고니아의 이어지는 계획은 투란에게 그럴듯하게 들렸다.
지금까지 나타난 환마는 넷, 더 늘어날 낌새라고는 하누크샤의 괴상한 분신 말고는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드라고니아가 이야기하는 계획은 투란에게 여유를 주기 딱 좋은 생각이었다.
‘좋아! 그렇게 하자!’
결정을 내린 순간, 투란은 저거노트에게서 한 걸음 떨어졌다가 바로 바닥을 박차고 천장을 향해 튀어올랐다. 곧 드라고를 기본으로 해서 카프리곤의 발목, 뿔을 섞고 꼬리에는 전갈의 껍질을 씌워놓은 형상이 저거노트가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사방을 박차며 튀어다니기 시작했다.
텅, 팍, 채앵!
천장이나 바닥은 얌전한 발소리를 남겼지만 하누크샤의 쇠창살은 요란하게 울리며 굵어졌다 얇아졌다 하는 변화를 드러냈다. 쇠창살 밖으로 탈출하지 못하게 막느라 강해졌다 약해졌다 하는 듯했다.
투란이 사방을 짓밟으며 튀는 사이에 저거노트는 제자리에서 맴돌며 이쪽저쪽으로 열심히 걸음을 딛고 손을 뻗고 코를 휘두르며 여러 가닥의 상아로 쿡쿡 쑤시는 동작을 되풀이했다.
하누크샤 또한 쇠창살 틈새로 가끔 손을 내밀면서 꼬리나 발목, 가까이 닿을 듯한 드라고의 몸 어디든 잡아보겠다는 시늉을 했다. 쇠창살에 격렬한 충격이 일어나는 순간에 재빨리 그 손을 빼기는 했지만 얌전히 등을 대고 서기라도 하면 목이라도 휘감고 조를 듯한 낌새가 역력한 하누크샤였다.
길게 이어지는 듯한 잔영을 남기는 기묘한 도약과 춤을 추는 듯한 시커먼 형체, 쇠창살을 두드리며 손을 뻗는 하얀 원숭이…… 미궁의 7층에는 느닷없이 괴상한 풍경이 만들어진 듯했다.
그 풍경 속에서 여리고 흐릿한 회색의 너울이 연기처럼 번져갔고, 쇠창살 안쪽을 가득 메웠다. 환마 둘은 그런 광경보다 그 중심에서 거침없이 튀는 도약을 반복하며 쇠창살을 걷어차고 자신들을 두드리는 채로 탈출을 시도하는 듯한 투란에게 집중하는 듯했다. 스쳐가는 와중에 모조리 흩어지고 지워지는 회색의 잔상(殘像) 따위는 관심을 둘 대상이 아니므로.
그 결과…… 저거노트는 고치가 되었다.
한순간에 짙은 연기가 되고, 구름처럼 안개처럼 휘몰아치며 덮쳐온 회색에 휘감기고 말려버린 것이다.
꺅?
고요해진 분위기 속에서 쇠창살 밖에 있던 하누크샤가 한 마리만 남아서 어처구니없다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맞춰 쇠창살이 사라졌고, 하누크샤의 어깨에 기댄 채 늘어진 긴 철봉 하나만 남았다.
투란은 드라고의 머리를 좌우로 까닥이며 목을 푸는 시늉과 함께 하누크샤에게 손짓했다. 가까이 와보라는 그 손짓을 하누크샤는 꺄갹대는 소리와 함께 부정하는 듯, 금방 훌쩍 뒤로 뛰면서 거리를 벌려놓고 있었다.
시익거리는 숨소리와 섞인 나지막한 노래를 입가에서 흘려내는 나가락티가 뿌뿌거리는 가네시야와 함께 한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 순간부터 와 있었는가 애매했지만 저거노트가 돌돌 말린 고치 꼴이 되는 것은 확실하게 본 모양이었다.
“그래서…….”
드라고의 입을 통해 굵고 거친 투란의 말소리가 흘러나와 이어졌다.
“덤빌 거야, 말 거야? 말을 알아듣기는 하는 거냐?”
사르릉, 나가락티가 여섯 손에 여섯 자루의 칼을 빼 들며 낮게 노래하며 뱀의 하반신을 휘감아 똬리를 틀었다. 가만히 그 곁에서 멀어지는 가네시야도 두 주먹을 불끈 쥐는 꼴이 저거노트처럼 덤벼보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하누크샤는 철봉으로 바닥을 찍으며 더욱 멀어지고 있었다.
투란은 하누크샤에게 더 눈길을 주지 않고 가만히 가네시야를 주시하며 곁눈질로 나가락티를 살폈다. 노래하며 미궁의 환경을 변화시키거나 타우루스를 불러내는 채로 함께 칼질해 덤비는 나가락티는 이미 겪었지만, 아직 가네시야는 제대로 겪지 못했기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셈이었다.
이런 투란의 조심성은 금방 보답을 받았다.
두 주먹을 불끈 쥔 가네시야가 입까지 벌린 채로 코를 한껏 뻗어내면서 숨을 잔뜩 들이쉬는가 싶더니, 그 콧구멍으로 투란을 겨냥하며 입을 꽉 다물며 잔뜩 부푼 볼을 단숨에 쪼그라뜨린 광경……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조심해서 봤기 때문에 투란은 그 콧김이 최소한 에어볼트는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피했다.
터어엉! 퍼엉!
“켁?”
사라졌던 긴장감이 투란의 배 속부터 치고 올라왔다.
뭔가 느릿느릿하던 상황이 격변하고 있었다.
여유롭게 저거노트를 다시 고치로 말고, 환마를 한 마리씩 붙잡아 고치로 만들고 생각은 나중에 하자는 드라고니아의 계획이 단숨에 망가지고 있었다.
가네시야는 콧바람으로 질풍(疾風)을 생성해냈고 그 질풍은 투란을 스쳐간 다음에 폭풍이 되어 터졌다!
나가락티는 그 바람을 맞아 몸을 열심히 흔들고 칼질을 하는데, 그 꼴은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가지처럼 열심히 버티는 중이었다. 하누크샤는 이미 일찌감치 자리를 피해 미궁의 격벽 저 너머에서 이 폭풍을 피신했고…… 저거노트의 고치는 데굴거리며 여기저기 부딪히는 채로 바람 따라 굴렀다.
투란은 바닥에 압착시킨 발바닥 가죽이 비늘째로 벗겨지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다가 그냥 몸을 날려야 했다.
콧바람 폭풍을 일으킨 가네시야가 두 번째로 긴 코를 웅크렸다가 투란을 겨냥하며 입을 꼭 다물고 있었으니까.
뭔지 몰라도 제자리에서 처맞아 좋은 일은 전혀 없는 것은 분명하니까.
그 예상대로 투란이 있던 자리의 허공이 출렁이며 쇠가 찢기는 듯한 굉음이 처절하게 울려퍼졌다. 듣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서고 소름이 끼치는 그 소리는 미궁이 철벽조차 사납게 긁으며 살아 있는 것을 갈기갈기 찢을 의도를 드러냈다.
그리고 뒤를 이은 뿌우뿌우하는 코나팔 소리…….
천장으로 튀어오르고 벽을 밟고 달리면서 내닫는 투란을 향해 가네시야가 주먹을 불끈 뒤며 마주 달리고 있었다. 콧바람은 장난이었고 주먹질이 자기 본래 의도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뻐억! 퍽, 퍽, 퍽.
하지만 드라고의 주먹이 일방적으로 가네시야를 두들겨 팼다.
뿌읏? 뿌우, 뿌뿟!
가네시야의 당황한 듯한 코울음이었다.
시아앗, 샤아! 챙, 채챙.
입술 사이로 스산한 혀놀림 소리를 내며, 들고 있는 칼날을 부딪치는 채로 나가락티가 움직였다. 칼날은 한 자루도 투란 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대신 꼬리가 삐죽하게 창끝처럼 겨냥된 채로 투란을 찌르는 척했다. 투란이 가네시야를 타고 넘으며 자리를 바꾼 순간, 그 꼬리가 가네시야를 휘감아 당겼다.
뿌으읏!
동료의 곁으로 간 가네시야가 성난 콧김을 뿜으며 다시 힘차게 숨을 들이쉬려는 듯했다.
땡!
나가락티가 칼등으로 꼬리로 감고 있는 가네시야를 쳤다.
가네시야가 뿌읏 하며 나가락티를 봤고, 투란은 멈칫하며 둘을 쳐다봤다.
시이잇, 시잇! 뿌으, 뿌뿌.
나가락티가 가네시야에게 뭐라 꾸짖는 듯한 괴상한 광경이었다.
코를 늘어뜨리고 펄럭대던 귀까지 찰싹 머리에 붙이는 가네시야의 몰골로 봐서는 조 금 전에 위험한 짓을 하려 하다가 야단맞는 분위기였다.
―저놈이 콧바람, 미리 자세 잡지 않으면 나가락티한테도 위험한 모양인데?
드라고니아가 문득 알아차렸다는 듯이 말했다.
투란도 이를 부정할 수가 없었다.
동료 곁에서 험한 짓 하려다가 한 대 맞은 꼴이 딱 맞으니까.
심지어 하누크샤는 미리 도피해 있잖은가.
‘환마란 녀석들…… 말을 알아듣고 말을 할 줄 아는 건가?’
투란의 진지한 물음에 드라고니아가 잠시 침묵했다.
잠깐 사이에 태세를 정비한 나가락티와 가네시야는 다시 간격을 둔 채로 투란을 향해 덤비려 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툭탁이던 것은 이미 정리가 끝났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투란은 한숨과 함께 윌 라이트에 집중했고, 과감하게 마법을 썼다.
―야?
드라고니아가 놀란 사이에 마법은 나가락티와 가네시야의 정면에서 터졌다.
섬광(閃光)이 가득 퍼졌고, 얼마 동안 지속되었다.
딸랑거리는 요란한 방울소리도 덩달아 피어나서 주변을 가득 메웠다.
뿌으으? 시이앗!
가네시야가 킁킁거리며 눈을 비비고, 나가락티는 반사적으로 여섯 자루 칼을 휘두르며 제자리에서 빙빙 돌았다.
성대한 섬광과 요란한 음향이 사라졌을 때, 투란도 그 자리에 없었다.
굴러다니던 저거노트의 고치도 없었다.
꺄꺄?
하누크샤가 뒤늦게 나타나서 나가락티와 가네시야를 보고 ‘뭐 하냐?’란 듯한 소리를 토해냈다.
눈을 비비던 가네시야가 눈을 뜨고, 칼춤 추던 나가락티가 멈췄을 때는 하누크샤도 그 자리에 없었다. 둘이 뭘 하든 자신의 일을 하겠다는 듯, 하누크샤는 킁킁거리면서 남겨진 흔적을 따라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