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0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03)
‘역시 막으려고 그랬던 거네.’
6층으로 돌아가는 구멍은 벽으로 막혀 있었다.
어차피 밀고 내려왔던 네모난 바위일 테니 밀거나 당길 수 있나 싶어 문질러 봤더니 매끈한 암철의 촉감이 선뜻한 것이 7층 쪽에서 아예 새로운 격벽을 내려 막아놓은 듯했다. 6층에서 바위문을 밀고 내려올 수는 있으나, 그 바위문이 6층으로 돌아간 다음에는 격벽으로 잠가버린 셈이었다.
이는 투란이 7층에 내려오자마자 나가락티가 겨우 한 팔로 한 짓이었다.
그 팔로 휘둘러대는 칼질은 단순히 베는 것이 아니라 얇으면서도 묵직한 쇠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효과도 겸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이 여섯 가닥이나 되는 데다가 나가락티는 그 여섯 자루의 칼을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 곁에서 가네시야가 앞뒤 재지 않고 폭풍을 일으키는 콧바람을 뿜어내려 했을 때도 재빨리 막아냈잖은가.
그리고 그렇게 드러난 나가락티의 성격은 투란에게 일단 물러서서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줬다.
―헬임프라니…… 그런 몰골로 있다가 걸리면 험한 꼴 당할 텐데?
드라고니아는 지금 투란이 드러낸 형상, 비록 마그마 로드의 붉은 줄기와 살갗을 갖추고는 있지만 인간의 어린아이 수준에 불과한 헬임프의 체격을 짚고 있었다. 아무리 튼튼하다 해도 기본적인 질량을 놓고 봤을 때, 이런 작은 몰골로는 타우루스의 발끝에 채여 뒹굴 수밖에 없으니 괜한 걱정은 아니었다.
‘이 구멍 속으로 들어올 수 있는 덩치들이 아니잖아. 들어오면 다들 몸 돌리기도 힘들겠지! 타우루스도 이 구멍에서는 뿔로 천장 긁어대야 할걸? 게다가…… 그물로 중간을 막아놨으니까, 이 안을 탐지해서 날 찾으러 들어오지는 않겠지. 그보다 환마의 소환핵인가 뭔가에 대해서 좀 자세히 말해봐. 되도록 짧게, 요점만 부탁해. 강제로 주입하지 말고!’
나름대로 구멍, 통로의 크기를 가늠하면서 투란이 살짝 으쓱대듯이 말하고 있었다. 마지막 부분은 드라고니아에게 으르렁대는 듯한 말투가 가득했지만.
―쳇, 그편이 더 확실할 텐데? 알았다, 말로 해주지. 소환핵의 개요는 이미 기억시켜준 대로야. 어? 다시 들려줘? 하아…… 아무튼 소환핵이 파괴되면 환마가 해체되고 사라진다. 애초에 마도구 같은 존재라서 죽는다는 표현은 조금 이상하지만, 쉽게 말하면 죽는 거야. 하지만 소환핵이 건재하다면 환마는 마력의 보충만으로 언제든 다시 복구시킬 수 있어. 때문에 소환핵을 어떻게 다루는가는 소환술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고, 그 방법에 따라서 소환술의 계파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해. 이 미궁에서 날뛰는 녀석의 계파를 따져보자면, 에아본 왕족의 방계혈통이 독자적으로 개발했다고 허풍 쳤던 비석(碑石) 계열일 거야.
‘허풍?’
―개발을 하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대마도사의 도움을 받았으니까 독자적이라고 보기는 힘들지. 게다가 대마도사가 나중에 드러낸 타블렛 소환술을 보자면, 그리 열심히 연구한 것도 아니니까.
‘야, 요점만! 짧게!’
―들어! 요점만이니까! 아무튼, 환마상은 소환핵을 간직한 본체가 아니고 비석 혹은 타블렛이 소환핵을 유지한 채로 환마를 구현할 장소에 마법을 연계시켜주는 매체란 말이야. 즉, 그 연계를 끊어놓기만 해도 소환 구현된 환마는 저절로 해체된다는 말이기도 해. 그러니까…….
‘이 미궁 철벽 한쪽이 비석이면?’
―어?
‘암철로 된 벽 속에 비석 처박아놓고 덧대놓은 거면?’
―어…… 어…….
‘못 움직이게 해놓으니 알아서 환마상으로 되돌려서 풀어놨지, 그건 마력이 넘쳐난다고 봐야 하겠지? 게다가 이 미궁 어딘가에 마력을 축적해 놓고 있다면…… 이 미궁이 마력을 연계해준다면, 저 환마 녀석들은 이 안에서 거의 불사신이란 거잖아?’
―그, 그럴 수도 있겠는데?
갑작스럽게 날카로워진 듯한 투란의 연잇는 물음에 드라고니아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기를 거듭했다.
도대체 투란이 이렇게 예리하게 마법에 얽힌 상황을 읽어내는가?
드라고니아가 품은 의문에 대해 투란은 피식 웃고 입술을 삐죽이며 대답한다.
‘기가둠 왕국 북부에 절벽 속의 미로가 있지. 거기서 자리 잡은 데드워커 때문에 왕국 병사나 몬스터 헌터들이 굉장히 열 받아서 샤오 마을에 들러가는 일이 많았어. 소환핵은 아니지만, 데드워커를 일으켜 세우는 마법의 핵은 있는 곳이지. 그걸 못 찾아서 때려눕힌 놈 또 때려눕힌다는 개지랄을 해야 했다고, 엄청 성질냈지.’
―아…….
드라고니아가 납득한 듯한 낌새를 드러냈는데, 투란은 그 짧은 대꾸 속에서 뭔가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차린 듯한 것을 느꼈다.
‘그 절벽에 대해서 잘 알아?’
―망자(亡者)의 회랑(回廊), 인간 사이에서는 거의 잊혔을 거라 듣긴 했어. 고대의 마법사가 병사들을 던져놓고 일으켜 세워 몬스터를 막기 위해 세운 방어선이었지. 그 마법이 뒤틀려서 긴 세월이 지난 다음에도 여전히 데드워커를 발생시키는 거야.
‘헐!’
담담한 이야기는 투란을 화들짝 놀라게 했다.
오랫동안 마경(魔境)이라 불려온 곳이 일부러 만든 곳이라니, 게다가 그래놓고 그 사연을 홀랑 잊어버렸다니! 거기서 고생하고 죽어간 이들이 알게 되면 죽었다가 벌떡 일어날 일 아닌가! 아니, 그들은 이미 다시 일어나 데드워커로서 그 안을 헤매고 있으니 충분히 성질내고 있는 셈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여기 환마가 그런 경우라면…… 7층을 뒤져서 메듀시아가 없으면 뚫고 내려가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없어. 아, 그 녀석들을 그냥 두고 7층 입구를 열 수 있으려나?
드라고니아가 상황을 돌파할 방법을 이리저리 궁리하며 말했다.
투란도 딱히 다른 방법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마법에 간섭할 수가 없는 데다가 때려부수든 죽이든 별 의미가 없는 상황이니…….
‘어? 간섭?’
흘러간 생각 속에 투란은 아련하게 꿈틀하는 흐릿한 것을 느꼈다.
어지간해서는 그냥 넘겼을 미묘한 느낌, 하지만 왠지 지금 상황에서는 그거라도 잡아보고 싶다는 기분이었기에 투란은 불쑥 묻는 말을 꺼낸다.
‘그 소환술이라는 거, 몬스터 엠블럼보다 복잡하려나?’
―복잡? 어느 수준인가 따져보자는 거냐? 새삼 바보스러운 이야기로군, 몬스터 엠블럼이 대마법의 결정체라는 말은 예전에 지겹게 들었다며? 나도 꽤 한 것 같다만, 소환술 중에서도 신전에서 신수를 위해 비밀리에 전승된다는 대소환술이 있다만, 그것도 몬스터 엠브럼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해. 몬스터 로드를 통해 쉽게 전이되고, 아무 생각 없이 쉽게 사용되고는 있다만 그조차도 대마법의 위업으로 일컬어질 지경이지. 투란? 뭔 생각을 하는 거냐?
가만히 듣다가 갑작스럽게 킬킬거리며 키득거리는 소리까지 내는 투란이었기에 드라고니아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히죽거리는 채로 투란이 느릿느릿 대답을 한다.
‘있잖아…… 몬스터이면서 몬스터 엠블럼에 간섭했던 녀석…….’
―뭐? 그건…… 로드 오브 몬스터?
드라고니아가 멈칫하다가 퍼뜩 알아차린 듯이 중얼거렸다.
하피이면서 여왕의 자태를 뽐내며 몬스터 대군(大群)을 이끌며 엘데인을 강습(强襲)하려 했던 로드 오브 몬스터, 몬스터 로드인 투란과 만나자 분명히 자극했었다. 몬스터 엠블럼의 바탕이 되는 심연의 각인을 자극해서 그 마력을 격동시키려 했었다.
그리고 지금 문장의 풍경 깊은 곳에서 날개로 온몸을 가린 채로 얌전히 웅크리고 있는…… 하피 여왕이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퍽, 주르륵.
걷어차인 고치가 풀렸고, 통로를 따라 저거노트가 미끄러져 나왔다.
꼼짝도 못 하게 꽁꽁 묶인 몰골이었지만 저거노트를 묶은 실은 너무 가늘어서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저거노트 혼자 자기 몸을 끌어안고 바닥에 늘어져서 뒤뚱대며 뿌우뿌우하는 괴상한 상태였다.
투란은 통로의 입구 언저리에 쪼그리고 앉아 이를 가만히 지켜봤고, 드라고니아는 이 틈을 타서 묻는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 대체 뭔 재주로 묶은 거냐? 아라크녹스 왕의 힘인가? 아니면 아라크레온 여왕의 능력만 사용한 건가? 어떻게 저놈의 가죽 안팎을 꿰뚫어 묶은 거야?
‘콧구멍이랑 입으로 들어가서 안에서 당기고 묶은 거야. 온통 마법으로 만든 몸이라지만 저거 꽤 짐승 같거든. 숨도 쉬고, 피도 돌고, 힘줄이나 뼈대도 아주 멀쩡하지. 그런 쪽으로 보면 환마가 아니라 그냥 몬스터라고 생각할 밖에 없어. 그래서…… 아, 왔네. 나중에 얘기해.’
가만히 앉아 심심한 틈에 대답하던 투란은 하누크샤가 저거노트 곁으로 툭 떨어지듯이 나타나는 것을 보며 말을 멈췄다. 이 구석 저 구석으로 슬슬 눈치 보는 듯하더니, 결국 뿌우거리는 저거노트의 보채는 듯한 울음에 일단 다가와 본 듯했다. 그러면서도 하누크샤의 눈길은 한편으로 투란을 살피는 중이었다.
투란이 멀뚱히 쪼그린 채로 마냥 구경만 하는 듯하자, 하누크샤는 수상하기는 하지만 자기 할 일은 한다는 듯이 다시 꼬챙이를 만들어내서 저거노트를 찔렀다. 저거노트가 파르르 떠는가 싶었고, 곧 그 몸이 해체되어 꼬챙이가 부푸는 듯했는데…….
그 과정을 지켜보던 투란의 눈가가 어느 순간에 찡끗했다.
꺄아?
하누크샤가 흠칫하는 소리를 냈다.
저거노트의 모습을 새기며 부풀던 꼬챙이 한 귀퉁이가 돌연 푹 꺼진 때문이었다.
곧바로 저거노트가 뿌우읏 하는 격한 소리를 내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하누크샤의 눈길이 바로 투란을 향했다.
쪼그리고 앉은 투란의 눈매는 어느새 살짝 눈꼬리를 흘리며 요요하게 빛나는 눈알을 담고 있었다. 시커먼 색채가 그런 눈가를 가득 메웠고, 미세한 눈알들이 그 시커먼 살갗 속에서 티끌처럼 맺혀 있기도 했다.
하누크샤는 볼을 불룩이다가 다시 꼬챙이에 두 손을 모으며 열심히 문지르고 비비적거렸다. 꼬챙이가 다시 타원형 알처럼 부풀면서 저거노트의 부조(浮彫)가 맺히는 듯한데, 그 한구석이 흐릿해지며 확 쪼그라들었다.
캬아아아!
이번에는 제대로 이빨을 드러내며 하누크샤가 투란을 노려봤다.
아까는 아리송했지만 이번에는 분명히 투란이 방해한 것을 안다는 듯, 아주 성난 표정을 드러내며 털까지 곤두세우는 하누크샤였다.
투란은 그렇게 노여워하는 환마를 보며 피식 웃었다.
―전부 모였군.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저편에서 나가락티와 가네시야가 돌아오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환마 넷, 투란이 7층에서 만난 환마 넷이 다시 한자리에 모인 셈이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투란이 느릿하니 몸을 일으켰다.
그 사이에 투란의 눈알은 시커멓게 물들었고, 눈동자에는 별빛이 일렁이듯 맺히고 있었다. 더불어 어깨에서 팔을 타고 금색과 갈색이 섞인 깃털이 송송 돋아나기도 했다. 입술은 한층 더 선명한 핏빛을 띠었고, 오므린 채로 둥글어졌다.
피잇!
투란의 입술 사이로 짧은 소리가 새는 순간, 하누크샤의 목 줄기가 관통되었다.
하누크샤의 형체가 출렁였고 파문이 관통된 목 줄기에서 번졌다.
하누크갸는 곧바로 금색 털 한 가닥을 남기며 사라졌다.
저거노트에게 꽂았던 꼬챙이는 일렁이는 허연 빛무늬를 남기고 사라졌다.
저거노트가 뿌으거리며 격하게 떨었고, 꼬챙이 자리에서 일렁이는 빛무늬가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저거노트는 그 광채가 지워지니 축 늘어지며 헐떡거리는 숨결을 토해내고 있었다.
―호오, 분신의 핵을 소릿살에 관통되기만 해도 분신이 통째로 사라지는 건가.
드라고니아가 상황을 파악한 듯, 흥미로워했다.
‘얄팍해서 그렇겠지. 흰 원숭이 분신이란 거, 제대로 된 환마랑 비교하면 몸의 마력줄기가 엄청나게 가늘잖아.’
투란이 천천히 한 걸음 내디디며 말했다.
시커먼 눈알에서 맴돌던 별빛이 어느새 눈동자에 집중되었고, 별빛을 따라 시커먼 색채가 집중되며 눈알은 완전히 새하얗게 변해갔다. 그런 변화를 담은 눈으로 환마를, 미궁을 시야에 담으면서 투란이 묻는다.
‘이 정도면 여기 마법을, 저 녀석들의 마법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지 않아?’
드라고니아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투란이 하피 여왕, 로드 오브 몬스터의 감각을 활짝 열고 쏟아붓는 광경이 잠시 드라고니아의 사고(思考)를 압도한 때문이었다.
피와 살, 뼈와 가죽의 모든 것을 갖춘 탓에 결코 마법의 구성이 드러날 리가 없는 환마의 형상 속에서 마력의 흐름이 훤히 보이고 있었고, 그 흐름이 자아내는 맥락과 이어진 미궁의 풍경 또한 어마어마한 마력의 흐름을 간직한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미궁에 선 투란이 그야말로 거대한 마력의 대해(大海) 속에서 나뭇잎이 되어 놓인 듯했다.
‘야, 정신 차려. 마법, 이해할 수 있냐고. 어떻게 건드리면 되는가, 모르겠어?’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격하게 드러내는 기분을 알아차렸고, 보챘다.
―자, 잠깐! 잠깐 기다려…….
드라고니아는 미궁의 광대한 풍경에서 환마의 조촐한 모습으로 겨우 눈길을 돌린 것처럼 대답했다. 하지만 곧 드라고니아에게서 다시 끙끙거리는 기분이 투란에게로 전해져 왔다.
‘왜?’
―정밀하고 섬세한 것이 정말 대단해!
묻자마자 환마를 이루는 마법에 대한 감탄이 터져나왔다.
투란으로서는 왠지 한숨을 쉬며 알아서 해야 할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