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0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04)
먼저 프로브가 제약을 받는 광경부터 확인했다.
상황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프로브를 형성하는 마력이 미궁에 흘러넘치는 마력에 휩쓸려서 깎여나가고 뭉개지다가 닳아 없어지는 것뿐이었다. 마력에 바탕을 둔 프로브이기에 마력이 바닥나니 사라질 뿐이었고, 윌 라이트의 마력이 유지되는 투란의 곁에서는 그나마 유지되는 셈이었다.
그 단순하고 명쾌한 상황 속에서 투란을 섬뜩하게 한 것은 미궁의 마력이었다.
환마 넷을 구성하는 마력의 원천, 너무 거대한 흐름이라서 미궁의 독특한 분위기이겠거니 하고 그냥 넘어갔던 눅눅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모두 마력 탓이라 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마력이 깃들어 가만히 있으면서도 공명(共鳴)하는 듯한 철벽, 암철이라는 미궁의 소재였다. 미궁의 마력이 암철을 두들기고 암철은 그 일부를 흡수하며 다시 내뱉고 순환시키는 중이었다.
투란이 대강 읽어낸 것은 이런 거대한 특성이었는데, 드라고니아는 꽤 섬세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환마를 관찰하며 연이은 감탄을 터뜨리고 있었다. 대부분 말을 꾸미지도 못하는 ‘오!’ ‘허!’ ‘우앗!’이라는 짧은 소리를 투란의 뇌리에 울리는 꼴로 봐서는 뭔가 자기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뭔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 감성적인 분위기에 투란은 참여할 수가 없었다.
지금 뭐라 핀잔을 줄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당장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그 일은 거대한 미궁의 마력, 그 힘에 호응하는 환마의 마법구성…… 하누크샤가 보여줬던 것을 바탕으로 나가락티와 가네시야의 마법 구성 속에도 저거노트를 환마상으로 바꾸는 부분이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
‘봐도 모르겠지만…… 틈도 안 주네.’
투란이 관찰에 집중하려 잠깐 멈춰 선 듯한 모습을 보이자마자 나가락티의 칼날이 날아왔다. 가네시야 또한 코를 잔뜩 말아놓고 아무 때나 뻗어낼 모습을 하고 주먹 불끈 쥔 채로 달려들고 있었다.
투란은 칼날을 자연스럽게 한 걸음 옆으로 디뎌 피했고, 가네시야의 주먹질은…… 노려봤다.
뿌읏! 미끄덩.
가네시야는 갑작스럽게 앞으로 내밀던 다리를 접었고 허공에서 헛발질한 꼴이 되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오호?’
딱히 의도를 품고 한 짓은 아니었다.
그저 하피 여왕, 로드 오브 몬스터의 본능에 따라서 가네시야를 방해하자는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그 순간에 어떤 ‘힘’이 발휘되어 가네시야의 마법구성에 간섭하며 헛디딘 꼴을 유도한 것이다.
투란은 빠르게 이 과정을 되새겼고, 문득 알아차렸다.
환마를 구성하는 마법은 환마가 움직이면 함께 마력을 유동(流動)하며 호응하고 있었다. 환마의 몸은 마법을 기반으로 삼아 피와 살, 뼈를 갖췄지만 여전히 마력이 그 근본적인 활동력인 것이다. 거기에 하피 여왕이 살짝 간섭하니, 그 몸이 바로 반응해서 저런 결과를 낳았다.
하누크샤가 본격적으로 저거노트의 환마상을 끌어내기 위해 하던 짓만이 마법적인 것이 아니라 환마의 모든 움직임, 움직이지 않을 때의 몸조차도 마력과 밀접하게 연계된 채라는 것.
만약 저 마력의 흐름, 마법의 구성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만 있다면…….
‘무리잖아. 저렇게 뒤엉킨 실타래가 괄괄 흐르는…… 실타래?’
살짝 포기하려던 투란은 갸웃했다.
본능적으로 가네시야의 동작에 개입했다.
그렇게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또 있잖은가.
아무리 복잡하게 엮인 실꾸러미라 해도 단숨에 풀어내고, 가지런히 정리해서 바라볼 수 있는 본능.
투란의 볼이 검고 튼튼한 가죽빛을 드러냈다.
광대뼈의 자리가 뻥 뚫리면서 눈구멍이 훤히 뚫린 사자의 눈가를 형성했다.
시커먼 사자의 머리가 기묘하게 절단된 채로 투란의 얼굴을 가로지르는 가면, 조각난 가면처럼 덧씌워지는 광경이었다. 그 비어 있는 눈구멍에서 살랑이는 실가닥이 가득 맴돌았고, 검게 물든 눈가의 중심에서 하얗게 반들거리며 뭉쳐진 별빛의 눈동자를 지닌 눈알과 호응하며 환마를 ‘관찰’했다.
아라크녹스 왕과 로드 오브 몬스터, 아르고누스의 형상이 뒤엉긴 채로 발휘되는 본능을 통해 투란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을 깨달았다.
그것은…….
시이앗!
나가락티는 뱀의 하반신을 이용해 바닥과 벽을 타고 여섯 자루의 칼날을 휘두르며 투란을 내리 덮치려 했다.
그 순간에 엎어져서 뒤뚱거리던 가네시야의 코끝이 쭉 뻗어 나가락티를 겨냥했다.
질풍이 된 콧바람이 나가락티에 닿았고, 폭풍이 되어 퉁겨버렸다.
허공에 꼬리를 길게 휘청이면서 나가락티는 벽과 천장에 부딪히며 저쪽 멀리 날려가 나뒹굴어야 했다.
그로 인해 찰진 소리와 거친 충돌음이 이어졌지만, 투란은 가네시야와 저거노트에게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먼저 가네시야를 향해 팔뚝의 깃털 하나를 쏘아 손등을 뚫어 마비시켜놓고, 저거노트에게 눈길을 집중했다.
하누크샤가 했던 짓을 되새기니, 금방 관련된 부분이 투란의 마음에 느껴졌다.
마력이 구성은 마구 뒤엉킨 실타래가 끊임없이 흘러다니는 듯했지만 아라크녹스 왕의 본능은 따지지도 않고 바로 그 흐름이 어떤 결과를 낳고 자극에 대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가를 ‘알았다’.
‘그러니까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면…….’
애초에 환마상에서 구현되어 나온 마법 구성이 느릿하게 시작해서, 점차 빠르게 되감겼다.
저거노트의 몸이 푹푹 꺼지면서 오그라들었다.
그 속에서 허연 티끌처럼 툭툭 튀어나오는 나노미터의 군단은 금방 왕에게 호응했고, 더 빠르게 저거노트를 정리하고 환마상으로 되감게 힘을 보탰다.
뎅그랑, 사아악.
저거노트의 환마상이 쇳소리를 내기가 무섭게 투란의 발치로 미끄러져 왔다. 바닥의 허연 티끌이 옮겨오며 바로 실려 온 것이다.
투란의 기괴한 얼굴이 가네시야를 향했다.
막 손등에 꽂힌 깃털을 다른 손을 힘겹게 움직여 뽑아내려던 가네시야가 몸을 부르르 떨며 코를 축 늘어뜨린 채로 투란을 바라봤다. 마치 ‘난 좀 봐주면 안 돼?’라고 코끼리의 눈망울이 글썽거리는 듯했다.
투란은 깃털 서넛을 가네시야의 코와 팔다리에 골고루 꽂아주고, 노려봤다.
가네시야의 마법구성은 저거노트와 여러모로 달랐지만, 그 형체의 바탕과 환마상의 연계부분은 동일한 형식이었다.
어렵지 않게 가네시야도 환마상으로 되감겨서 응축되었다.
흩어진 실타래를 깔끔하게 정리한 느낌에 조금 으쓱하면서 투란은 기분 좋게 나가락티를 바라보는데…… 수십 자루의 칼이 날아들고 있었다.
‘아, 저 못생긴 놈이!’
천천히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투란은 두 팔을 내밀고 부르르 떨었다.
깃털이 쏘아지며 허공에서 바쁘게 흔들거렸고, 상하좌우로 번개처럼 휘날렸다.
날아든 수십 자루, 예리하게 세보면 서른여섯 자루인 칼이 깃털이 맴도는 영역에 꽂힌 것처럼 허공에 멈췄다.
그 광경 너머로 나가락티가 돌격해왔다.
여섯 가닥의 팔이 허공에 멈춰버린 칼자루를 후려치고 움켜쥘 때마다 칼이 사라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늘고 얇은 그물에 걸린 것이 순식간에 증발하듯 지워진 것이다.
그 광경 속에서 투란은 나가락티가 칼을 회수했고 다시 등 뒤, 척추의 언저리에서 발출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납과 관련된 마법이 나가락티의 몸을 구성하는 마법과 연계된 것…… 칼 한 자루를 잃어버릴 때마다 나가락티 또한 손상되는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거의 팔십? 그 정도는 아닌가?’
나가락티가 동시에 만들어낼 수 있는 칼의 수를 세다가 투란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것을 다 모은다 해도 나가락티는 여전히 멀쩡하기만 할 뿐이었다.
날려 보낸 칼날은 암철벽을 들락일 수는 있어도 투란이 치는 그물은 넘어설 수 없었다. 나가락티 또한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투란이 놔줄 마음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지금 보이는 나가락티의 태도는 절망에 찬 몸부림일까?
여섯 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고 뱀의 하반신은 쉴 새 없이 나선을 그리며 자신을 노려보는 꼴이 뭔가 마지막 한 방을 노리는 듯하니 투란은 반쯤 기대하고 반쯤 경계하며 지켜봤다.
나가락티의 한 방은 꽤 단순하고 명확했다.
꼬리 휘두르기, 인간의 상반신을 저쪽으로 내던지며 맴돌아 감아놨던 뱀의 하반신을 휘둘러 치는 것이었으니까.
다만 그 꼬리 끝에 걸린 암철의 벽, 바닥이 움푹 파이며 으스러지는 광경이 장관이었을 뿐이다.
―야, 피해야지!
뒤늦게 미궁과 환마의 황홀한 마법에서 벗어난 듯, 드라고니아가 외쳤다.
사자의 턱을 떨구고 입을 열면서, 그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투란은 소리 없는 말로 대꾸하며 움직였다.
‘하피는 뱀을 간식으로 참 좋아해.’
앞으로 치켜올린 투란의 왼발이 새의 발톱을 뿜어내며 하피의 다리 형상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살갗은 시커먼 먹빛 속에서 붉은 줄기를 도드라지게 하는 마그마 로드의 결정으로 뒤덮인 채였다. 발목 또한 카프리곤과 드라고가 섞인 검은 비늘과 털의 무늬를 머금은 채였고, 전체적으로 부푼 다리의 근육은 누가 뭐라 해도 하피의 것이 아니었다.
그 복합된 형상의 다리가 버텨주는 발톱이 거침없이 나가락티의 꼬리를 움켜잡으며 멈추게 했다.
쩌어엉!
암철벽까지 진동하는 격렬한 반향(反響)이 울려퍼졌다.
끼익.
투란이 딛고 선 발이 바닥과 살짝 마찰하는 듯한 음향을 낮게 흘렸다.
꽈득.
커다란 뱀의 꼬리를 잡은 발가락이 우람한 발톱에 힘을 넣는 듯했고, 뱀의 꼬리가 바닥에 놓이며 짓밟혔다. 간신히 꼬리 끝을 잡은 듯했지만 꼬리 전체가, 뱀의 하반신이 그대로 축 늘어지면서 나가락티가 움직이는 여섯 팔을 허우적거렸다. 그 동작은 칼을 뽑아 던지려는 것이었으나, 나가락티는 한 자루의 칼도 손에 쥘 수가 없었다.
투란의 눈길이 선뜻하게 나가락티를 노려봤고…….
뎅그랑, 스으윽.
가네시야와 나가락티의 환마상이 미끄러져 투란의 발끝에 닿았다.
―별짓을 다 하는군…….
질렸다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이 투란에게 묻게 했다.
‘뭐 건진 거 없어? 아직 하나 더 남았다고.’
―열심히 외워만 뒀다. 보기만 해도 배움이 넘쳐나는 마법 구성이었으니까. 내 수준으로는 뭘 건드려볼 엄두가 나질 않으니…….
맥빠진 듯한 말이었지만 투란은 피식 웃는 채로 되물을 수 있었다.
‘아직은 말이지?’
―그래, 아직은.
은은한 자부심이 담긴 대답은 바로 돌아왔다.
드라코눔의 아칸은 투란이 기대한 대로 엄청난 것을 봤다고 ‘우악! 평생 넘을 수 없어요!’라고 감탄하는 척하며 포기하는 성격이 아니니까.
투란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목을 펴는 시늉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하누크샤의 분신이 저편에서 꺄꺄거리는 꼴이 보였다.
하지만 쫓아가 때려잡거나 할 생각은 투란에게 전혀 없었다.
저 분신이 하는 짓, 그 목적은 분신이 서 있는 자리만으로도 느껴지니까.
투란이 성큼성큼 걸으니, 드라고니아가 묻는다.
―어디로?
‘쟤가 인도하잖아.’
―하누크샤는 속임수에 능하다. 이대로 가면 함정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무리지, 그건.’
―암철로 이뤄진 미궁이라도 녀석에게는 속임수가 넘쳐나.
‘알아. 하지만 어떤 속임수라도 저 분신처럼 보이겠지.’
―그런가…….
투란이 고개를 내민 하누크샤의 분신, 그 가늘게 부푼 마법 구성이 어찌 보이는가를 짚으니 드라고니아도 납득했다.
온통 암철로 된 미궁 안에서 땅을 파거나 뭔가 숨겨서 설치하는 것은 애초에 환마이든 몬스터이든 불가능, 미궁의 넘쳐나는 마력을 활용해서 덫을 준비한다 하더라도 지금 투란의 감각에는 그 구성이 통째로 보이는 상태였다.
굳이 피해갈 필요가 없었고, 그럴 까닭이 없었다.
그야말로 눈에 걸리면 바로 지금 옆구리에 걸린 채로 대롱거리는 저거노트, 나가락티, 가네시야처럼 환마상으로 되감아 버릴 수 있으니!
그래서 위풍당당하게 투란이 하누크샤의 자취, 분신이 일부러 빼꼼 보여주는 길을 따라 나아가니…….
쉬이앗, 쉬이이.
사악, 사라락.
뱀의 몸뚱이가 뒤엉켜 있고, 아름다운 여인이 여럿이 그 몸뚱이 틈새에서 시커멓고 거대한 원숭이 머리통을 둘러싼 채로 살랑살랑 춤을 추는 듯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잠깐 투란은 어째서 하얀 원숭이였던 하누크샤가 대가리만 싹둑 잘려 놓인 시커먼 원숭이 몰골인가 했는데, 그 검은 머리통에서 하얀 털이 가득한 팔다리랑 머리가 볼록볼록 튀어나오고 있었다.
―안면 형태의 갑옷? 희한한데?
드라고니아가 상황을 파악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은 상황을 알 수가 없어서 되뇔 수밖에 없었다.
“라미아는 왜 저러고 있는데?”
여러 마리 라미아의 모습은 이야기 속에서 듣던 무슨 시녀 같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