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0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05)
―인간의 동화에 나오는 폭군 흉내를 내는 모양이군. 시녀, 아니 후궁이라도 불리는 이성(異性)을 잔뜩 거느린 채로 옥좌에 앉아서 세상을 깔본다는 폭군 말이야. 처음 듣냐?
‘어. 몬스터 범람에 정신줄 놔버리고 미친 왕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런 폭군이란 왕이야기는 들은 적 없어.’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하누크샤가 무슨 흉내를 내는 것인가, 투란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았다.
그냥 닫힌 문을 내리깔고 라미아 몇 마리로 칭칭 말아버린 다음에 그 위에 떡하니 눌러앉은 것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하누크샤에게 호응하듯이 변해버린 주변의 풍경…….
“이놈, 벽을 열고 라미아를 꺼낸 건가?”
천장과 맞닿아 있던 닫힌 문은 기둥 같던 상태에서 푹 내려앉아 네모난 상자 꼴이었고, 주변의 통로도 함께 주저앉으며 경사진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결국은 네모난 바위 상자 주변으로 라미아가 길고 굵은 몸을 둘러치며 방벽을 만든 셈이었고, 그 중심에 시커먼 원숭이 머리 모양을 한 갑주로 몸을 감싼 하누크샤가 히죽거리며 앉아 있는 것.
―라미아가 뭘 걸치고 있기도 하군.
문득 드라고니아가 짚었다.
투란도 뒤늦게 알아차렸다.
이 7층의 타우루스가 판금형 갑옷을 걸치고 나온 것처럼 라미아도 허리를 감는 그물 같은 장신구를 두르고 있었다. 잘 가렸다면 코르셋이라도 둘렀으려니 했겠지만,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그 아래로 늘어진 모양이라 왜 걸친 모양이었고 그물모양으로 구멍이 숭숭 뚫렸으니 방어용이란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나가락티도 몸에 끈 좀 둘렀잖아?’
허리에 걸린 환마상을 허리춤과 팔뚝 언저리에 돋아난 눈알로 살피면서 투란은 라미아의 장신구와 나가락티의 벌거벗은 듯했던 몸에 영문 모르게 감겨 있던 끈 쪼가리를 떠올렸다. 그냥 보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마법의 구성에서는 그저 마력의 순환경로를 하나 더 꾸며놨을 뿐이었다.
한데 몬스터인 라미아에게는 그런 마력의 흐름이 없다.
그렇다면 대체 저 장신구는 왜 걸쳐놨는가?
―옷차림새라고 보면 될 일이지. 그런데 지금 이러고 라미아 감상할 때가 아니잖아?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생각에 툭 끼어들며 핀잔하듯 말했다.
투란은 잠깐 멈췄던 걸음을 가만히 내디디며 대꾸한다.
‘감상이 아니라 관찰이지. 저기 라미아 전부 몸길이가 이십 미터는 돼 보이잖아. 그 정도면 웬만해서는 뱀의 왕족이라고. 저런 것들을 마음대로 다루고 있다면, 저것도 로드 오브 몬스터라 해야 하나?’
―환마가 몬스터를 지배하는 방식은 로드 오브 몬스터랑 달라. 그냥 강력한 마법일 뿐이야.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추정을 바로 부인했다.
투란에게는 꽤 한숨 나오는 말이었다.
‘마법으로 몬스터를 지배한다라…….’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저 로드 오브 몬스터의 능력이 마법과 완전히 다를 뿐.
키링, 스르릉.
투란이 내딛는 걸음에 맞추듯, 하누크샤가 두 손에 장대 같은 철봉을 꺼내 굴리고 있었다. 철봉 한쪽이 라미아의 몸을 스치면서 바닥을 긁고 구르는 소리는 꽤 부드러웠다. 라미아 몇 마리가 길게 몸을 스치는 소리를 내면서 하누크샤의 철봉이 움직일 자리를 만들 듯이 비켜섰다.
‘라미아 여섯……? 열둘은 나올 줄 알았는데.’
―여섯이라도 저 몰골이면 타우루스 열둘이랑 맞먹는 몸무게지.
‘몸무게가 지배하는 마법에 영향을 끼친다고?’
―몬스터는 그 몸의 질량에 따라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크게 향상되거나 줄어들지. 마법이 감당할 수 있는 질량의 범위가 지배하는 개체의 수에 영향을 끼칠 수가 있어.
‘헤에…….’
드라고니아의 말은 투란의 마음 한편을 긁었다.
로드 오브 몬스터, 하피 여왕에게는 그런 제한은 없었다.
꺄아, 꺄꺄!
텅, 데엥!
갑작스럽게 나타난 하얀 원숭이 여러 마리가 투란을 둘러싼 채로 쇠몽둥이를 내리찍고 있었다. 느닷없이 허공에서 툭 튀어나온 듯했고, 한번 내리찍고 멈추지 않은 채로 계속 쇠몽둥이를 휘둘러 투란을 패려 했다.
때문에 투란은 일단 천장으로 튀어오르며 피하는 채로 생각을 멈췄는데, 천장을 향해 라미아 여섯 마리가 거의 이십여 미터에 달하는 몸을 늘어뜨린 채로 돌격해오고 있었다. 하누크샤의 분신과 전혀 교차되지 않도록 벽을 딛고 짚으며 미끄러지는 라미아의 모습은 독특한 장관(壯觀)이라 할 만했다. 비록 그 입에서 나는 소리는 ‘널 단숨에 잡아먹겠다!’라는 강렬한 숨결을 거침없이 뿜어내고 있기는 했지만.
피핑, 피잉!
천장에 잠깐 발을 딛으며 거꾸로 앉은 자세가 된 투란의 어깨와 팔에서 깃털이 쏘아져 나갔다.
퍽, 퍼퍽.
하누크샤 분신 몇이 얇은 털가닥 하나만 남긴 채로 사라졌다.
깃털을 피한 나머지 하누크샤 분신이 쇠몽둥이로 천장을 겨냥하며 찔렀다.
투란은 냉큼 라미아의 반대방향으로 몸을 튕겼다.
까강!
몇 가닥 쇠몽둥이가 어느새 창날 없는 창대처럼 길어져 천장을 두드렸다.
라미아가 그 쇠몽둥이를 잡으며 투란을 향해 더욱 세차게 몸을 움직였다.
―저런 연계도 하는구만.
쏜살같이 몸을 천장으로 내던졌기에 일단 떨어져 내려야 했을 라미아가 쇠몽둥이를 이용해 천장에서 다시 한번 더 몸을 쏘아내는 중이었다. 하누크샤 분신들의 공격이 빗나가도 내지른 철봉은 얄팍한 기둥으로서 라미아를 위한 디딤돌이 되어 준 셈이었다.
‘그래, 좋은 연계지.’
투란은 피식 웃는 듯한 칭찬을 했다.
그 사이에 투란의 눈길은 여섯 마리 라미아를 모조리 훑었고, 어깨와 가슴 언저리가 시커먼 잉크빛으로 노골적으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치이익.
투란이 발을 땅에 딛고 미끄러지는 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라미아 여섯 마리가 상체를 들이밀며 허공에서 미끄러지듯 투란을 향해 돌진해왔다. 뱀의 하반신과 별개로 각각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이 따귀를 갈기려는 듯이 보였다. 그 자태가 꽤 우아하고 아름답기는 했지만 투란은 이 미궁에서 타우루스의 괴력에 맞서는 라미아의 손길을 이미 봤다.
‘자아, 멈춰라!’
자신을 향해 신호하듯, 투란이 소리 없이 외쳤다.
투란의 가슴이 몇 쌍의 눈을 떴다.
금빛이 일렁이는 고르곤 아이가 데굴거리면서 구슬처럼 투란의 가슴팍에 잔뜩 돋아난 듯했다.
그 순간, 여전히 허공에서 미끄러져 내리고는 있었지만 라미아 여섯 마리의 상체는 이미 굳어진 듯이 보였다.
투란은 그 여섯 마리를 향해 가볍게 여섯 번 손짓해서 깃털을 날렸고, 깃털은 거침없이 봉긋한 가슴 사이에 꽂혀들었다.
이 짧은 사이에 라미아 여섯의 틈새로 하누크샤의 분신들이 짧은 쇠몽둥이를 든 채로 튀어나와 투란에게 덤벼들었다. 뱀의 길고 굵은 하반신에 가려진 채로 다가오다가 라미아의 몸짓이 이상해지니 가차 없이 튀어나온 모습이었다.
하지만 하누크샤의 분신 여럿, 정확하게 세어 다섯인 분신은 그대로 라미아 여섯이 내미는 여섯 쌍의 손길에 팔다리, 뒤통수, 등짝과 가슴팍을 제각각 붙들리며 멈춰야 했다. 뒤이어 투란이 쏘아낸 깃털이 그대로 하누크샤의 분신을 모조리 관통했다.
워어어! 그워억!
저편에서 느긋하게 앉아 있던 하누크샤, 갑옷을 입은 본체가 격노한 듯한 괴성을 터뜨렸다.
라미아 여섯이 바로 그 몸을 돌리며, 하누크샤를 향해 사나운 숨결을 토해냈다. 마치 아까 그 주변을 맴돌며 시녀처럼 굴던 것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투란의 앞을 막는 방벽이 되었다는 듯이 구는 분위기였다.
―음, 마법의 속박을 압도하는 건가. 역시 로드 오브 몬스터……려나.
드라고니아가 씁쓸한 듯이 중얼거렸다.
고르곤 아이에 의해 잠깐 그 동작을 멈춰놓고, 투란은 하피 여왕의 눈길로 라미아 여섯을 동시에 통찰(通察)했다. 연이어 라미아를 휘감은 마력의 흐름을 차단하며, 그 목과 몸통 곳곳에 왕의 거미줄을 감아 고르곤 아이의 효과조차 단숨에 무효화시켰을 때는 제압(制壓)과 지배(支配)가 끝나 있었다.
그 효과는 하누크샤가 인지(認知)할 틈을 주지 않았고, 때문에 분신들이 튀어나올 때에 무방비하게 라미아에게 뒤통수 잡히는 꼴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라미아 여섯은 자신들을 거두고 다스리던 환마를 향해 거침없이 이빨을 드러내는 것!
거기에 대해 환마 하누크샤는 꽤 분통이 터진 듯, 늘어뜨렸던 철봉을 머리 위로 들고 돌리고 있었다. 거칠고 사납게, 붕붕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철봉과 팔이 잔상을 남기고 환영처럼 몇 가닥 더 생겨나는 것처럼 보였다. 우악스럽게 흔들던 머리까지 서넛은 된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에 투란은 라미아의 등을 밟고 올라서며 여섯 마리를 동시에 하누크샤를 향해 전진시키며 통로를 가득 메우게 했다. 그야말로 벽이 몰려가듯이 하누크샤를 향해 전진하는 모습이었다.
순간 하누크샤의 팔과 머리, 철봉이 우뚝 멈췄는데…… 머리는 셋이요, 팔은 여섯이고 철봉은 손마다 하나씩 들려 있었다.
―저건 또 뭐냐?
투란보다 먼저 드라고니아가 황당하다는 듯한 감상을 토해냈다.
‘속임수?’
―아니거든? 저거 몽땅 진짜 팔이고 머리라고! 대체 뭔 재주냐고, 저건!
‘들은 적 없구나?’
―그래, 못 들었어! 저놈을 이렇게 성질나게 할 정도로 몰아붙인 적이 없어서 그럴까? 대부분 저놈 상대한 쪽에서 울화를 터뜨리고 분해하니까.
‘어, 그래?’
라미아는 투란을 등에 태운 채로 하누크샤의 변모(變貌)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 나아갔다. 곁에서 다른 라미아 역시 나란히 하며 하누크샤가 팔이 아무리 늘어나고 머리가 많아져도 이쪽이 더 많다는 것을 과시하듯 움직였다.
하누크샤가 분신을 만들지 않고 홀로 있으니, 어찌 보더라도 투란과 라미아들이 압도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이런 불리함을 깨뜨리겠다는 듯, 하누크샤가 돌발적으로 입을 열었고…… 입고 있던 검은 머리 모양의 갑주도 함께 입을 열었다.
갑옷의 입에서 불기둥이 뿜어져 나왔다.
마력이 요동쳤고 미궁의 벽이 뜨겁게 호응하며, 순식간에 초열(焦熱) 지역을 만들어냈다.
―허, 머리통이랑 팔은 속임수였냐!
드라고니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외쳤다.
뭔가 많아진 팔과 머리로 철봉을 휘두르며 어이없는 무투술이라도 보일 줄 알았는데, 정작 저지른 짓은 마력의 흐름에 개입해서 바위라도 녹일 듯한 불길로 쓸어내는 것이었다.
암철의 미궁은 그런 뜨거운 불길 따위는 재롱이란 듯이 그저 불꽃의 색채에 벌겋게 물들기만 했으나, 라미아는 순식간에 껍질이 홀랑 증발하며 뼈와 살을 드러냈다가 그마저도 지워지듯 녹아 사라지는 중이었다.
‘이 썩을 잔나비가 잔재주를!’
투란은 라미아의 뒤통수를 향해 검은 줄기를 뿜어냈고, 자신이 몸도 시커멓게 물들이면서 뛰어나갔다. 라미아의 목 줄기를 검은 줄기가 휘감으며 고치를 몽땅 삼켰고,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기반으로 타우루스의 몸을 꾸민 투란은 하누크샤를 향해 박치기를 하겠다는 듯이 돌격했다.
터엉!
검은 뿔과 쇠몽둥이가 부딪혔다.
텅, 터텅, 땡! 때댕, 뎅그랑!
연이은 쇠몽둥이 몇 가닥이 시커먼 타우루스를 두들기다가 튕겨져 나갔다.
통로의 뜨거운 열기가 한순간에 시커먼 타우루스를 향해 몰려들었고, 그 몸에 돋아난 채 불끈거리는 붉은 줄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므어어엇! 그워억!
타우루스와 하누크샤가 동시에 괴성을 질렀다.
빠악!
타우루스의 주먹이 하누크샤의 하얀 머리통을 두들겼다.
덥석, 뽀드득.
하누크샤의 갑옷이 큰 입을 열고 시커먼 타우루스를 통째로 물었다.
제대로 씹으려 한 모양인데, 입술과 이빨이 미끄러지는 소리만 울렸다.
“이놈이 진짜!”
격한 외침과 함께, 시커먼 타우루스가 확대되면서 냉큼 하누크샤의 등짝을 우악스럽게 잡았고…… 단숨에 천장에 머리가 닿는 거대한 몸집이 된 타우루스의 가슴에서 소머리가 굵직하게 튀어나오며 하누크샤를 덥석 물었다.
―야, 이게 무슨!
드라고니아가 환마를 상대로 투란이 성질내는 광경에 기겁한 듯 뭐라 하려 했다.
이렇게 짓뭉개서 소용이 없으니까 여태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홀랑 잊은 듯, 투란은 웅장하고 거대하게 하누크샤를 으적으적 씹으려 하고 있었다. 하누크샤가 하려던 짓을 고스란히 되돌려 주듯이!
퍼엉!
투란이 몸통에서 불쑥 만든 소머리 입안에서 하누크샤가 터졌다.
격렬한 파괴력이 얼얼하게 투란의 몸을 울렸지만, 정작 하누크샤의 잔해는 털 한 가닥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분신폭발이냐! 대체 언제 본체가 빠져나간 거야?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으면서도 감탄한 듯이 외쳤다.
투란은 으르렁거리며 한쪽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마그마가 시뻘겋게 뿜어져 나갔고, 미궁의 통로를 휘저었다.
펑펑거리는 소리가 통로 이곳저곳에서 연이어 터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