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1)
Chapter 17. 왕자(王者)의 지혜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했다.
키린은 그 생각과 함께 두서없이 이야기하는 투란과 포효하듯이 자신의 내면에서 바락바락 떠들어 대는 ‘드라코눔의 아칸’에게 동시에 귀를 기울였다. 뭔가 복잡하고 어디가 앞이고 뒤인가 구분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알뜰하게 정리되는 부분은 있었다.
‘그러니까 그 웨어울프랑 그랑츄 패거리가 싸우는 꼴을 보고 졸졸 따라가서 얻었다……고.’
이것이 투란이 하는 이야기의 요점이었다.
‘근데 그게 그냥 그랑츄가 아니고 엘리트 랭크로 꼽히는 놈들인 데다가 맞서 싸운 웨어울프는 종이 아예 다르다는 울프 그림 로드, 그림 울프라는 녀석……이었고.’
이것은 ‘아칸’이 버럭대는 이유였다.
—그림 울프? 아니지! 그건 웨어울프의 변종 정도로 봐도 되겠지만, 울프 그림 로드는 그보다 더…….
‘드라코눔의 아칸’은 키린의 생각까지도 걸고넘어졌다. 아무래도 이 사태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질타하는 낌새도 섞여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아닌 사람이었다면, 바로 손짓 발짓을 동원해 욕을 날리면서 성질을 잔뜩 부릴 듯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때문에 키린은 두 귀로 듣고 마음 한구석에 차곡차곡 쌓으며 생각할 수 있었고, 생각해야 했다.
이 깊은 곳, 춤추는 산맥의 깊숙한 곳에 들어오는 그랑츄는 ‘엘리트’라는 덧붙이는 말이 필요한 험악한 놈일 수밖에 없었다. 왕국의 경계선에 나타나는, 흔히 말하는 춤추는 산맥의 그랑츄들 중에서도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로 꼽히는 놈들이 여기서는 단체로 몰려다니면서 뭉쳐 지낸다.
‘엘리트 그랑츄면 무리가 말을 듣지 않으면 그냥 다 처죽이고 혼자서 다니기도 하는 놈들인데, 그런 놈의 머리통을 찢어 뜯는다? 과연 그림 울프 정도로도 안 되겠네.’
투란이 그림 울프가 뭔지, 울프 그림 로드가 그와는 또 어떻게 다른지 하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아예 웨어울프랑 구분도 못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키린은 구분할 수 있었다.
웨어울프. 인간과 늑대의 양쪽에 동시에 속하면서 양쪽의 성질을 모두 갖춘, 그 때문에 자신에 대한 혼란에 빠져 달빛의 마력에 휘둘리는 애매한 존재!
그림 울프는 그 혼란을 고정시켜,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채로 두 발로 걷는 사람의 몸에다가 늑대의 외모를 덧씌운 괴물이었다. 웨어울프가 타락을 거듭해서 도달하는 최후의 모습이라 할 수도 있었고, 거기에 도달해가는 과정에서 완전히 몬스터가 돼 버린 웨어울프가 몬스터 헌터나 몬스터 로드의 사냥감이었다.
그리고 울프 그림 로드는 그림 울프와 같은 타락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신화 속의 마물, 수신의 그림자에서 나왔다는 울프 그림 로드가 그 형상을 세상에 드리웠기 때문에 웨어울프가 그쪽으로 기울어지는 형상이 되기도 한다 했다.
‘진짜로 있을 줄은 몰랐는데.’
‘드라코눔의 아칸’은 당연히 있는 줄 아는 모양이지만, 키린은 대마도사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겨우 이름만 아는 처지였다.
그림 울프의 경우는 직접 맞서 본 적이 있었다.
‘얼마나 센 거지?’
그림 울프만 해도 웨어울프의 팩 로드,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를 갈기갈기 찢을 정도는 되었다. 그것도 무리를 다 처죽인 다음에.
‘얼마나 세길래 엘리트 그랑츄의 엘더가 나설 정도였을까?’
키린은 투란이 하는 이야기 속의 큰 그랑츄, 3미터는 되었을 거라고 과장되게 말하는 녀석에 대해 추측해 봤다. 달빛을 불타오르는 듯한 형상과 마력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엘리트 그랑츄의 엘더와 함께 뒈질 정도라니.
—그보다 더 강해! 애초에, 그랑츄는 그 괴물 늑대를 잡을 수가 없다고! 여차하면 도망갈 테니까! 그러니까 엘리트 그랑츄 녀석들이 패를 지어 쫓은 거다. 혼자서는 그림 로드의 속도를 잡을 수 없으니까. 엘리트 랭크의 그랑츄답게 나름대로 상황을 파악하고 생각해서 행동한 거야.
키린은 강하게 외치는 내면의 소리에 한숨을 쉬면서 가볍게 한 손을 들어 올렸다. 한창 호수 너머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때를 이야기하던 투란이 말을 멈췄다. 이제부터가 제대로 된 이야기인데 왜 멈추게 하냐는 듯, 아리송한 표정이 투란의 얼굴에 떠오르고 있었다.
그 표정과 묘하게 ‘아칸’의 씩씩거리는 말투가 겹쳐지는 듯한 느낌에 키린이 쓴웃음을 흘리면서 묻는 말을 꺼낸다.
“투란, 듣다 보니까 궁금한데…… 거기까지 쫓아갔다고 했잖아?”
“어? 예. 쫓아갔으니까 봤죠.”
투란이 갸웃하면서 대답했다.
키린은 잠시 한쪽으로 흘려듣던 투란의 이야기를 더듬고 짚는다.
“처음 그 늑대…… 웨어울프를 발견한 곳부터 이야기하고 있었지?”
“예. 그랑츄 셋이랑 싸우는 것부터 봤으니까요.”
투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관심의 중심이 되는 웨어울프, 그 녀석을 처음 봤을 때를 떠올리면서 저절로 그때의 놀라움을 다시 느끼는 모습이었다. 키린은 그 순수함을 느끼면서 분명하게 물었다.
“어떻게 쫓아간 거야?”
“예?”
투란이 갸웃했다.
키린은 조금 더 덧붙여 묻는다.
“방금 이야기했잖아, 세 마리를 물리치고 늑대라 나무 위를 휙휙 날아서 갔다고, 그 뒤를 쫓아 호숫가에 도착했다고.”
“……예.”
투란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조금 움찔한 낌새를 보였다.
키린에게 빼놓은 대목을 분명하게 기억해 낸 모습이었다.
키린이 이를 보며 싱긋 웃었다.
투란은 웨어울프, 처음 발견한 그 녀석의 엄청난 모습에 집중해서 이야기하느라 녀석이 그랑츄와의 싸움을 압도적으로 이끈 것만 말했고, 정작 녀석이 입었을 상처는 빼먹었다. 그다음에는 도저히 상처 입은 것을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움직인 녀석에 대해 말하고 뒤따라가서 본 광경에 몰입하느라, 이야기를 건너뛰었다.
정말 기억나는 대로 두서없이 신나게 떠들다 보니, 투란의 이야기에는 이렇게 빠진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키린은 그 까닭을 알고 있었다.
‘하긴 샤오 마을에서 화술과 토론의 교양에 대한 학습을 했을 리가 없지.’
멀리 찾을 것 없이, 키린 자신도 투란과 닮은꼴이었으니 알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 거의 10년간 어린 시절을 보냈던 벤담 마을, 투란에게는 뭔가 엄청난 곳인 것처럼 소문이 흘러간 모양이지만 키린이 자란 그곳은 분명히 투란이 자란 샤오 마을과 닮은꼴이었다.
마을에 들락대는 부류는 몬스터 헌터가 아니면 몬스터 로드 혹은 멀리서 온 도망자, 자기 삶에 대해 제대로 밝히기가 무서운 이들 등등이었다. 마을 안에는 그런 사람들이 오락가락하고 마을 밖에는 몬스터가 아니면 마수가 오락가락하는 곳.
뭔가 가르치고 배운다면 숫자랑 관련이 있는, 돈 세는 거랑 관계있는 것에 한정되기 마련인 곳에서 화술이니 토론이니 하는 것을 배웠을 리가 없다. 굳이 샤오 마을이나 벤담 마을 사람이 아니라도, 귀족이 아닌 계층에서는 돈 들여 배울 리가 없는 것이기도 했다.
뭐가 지적당해서 빼먹은 부분을 알게 되면, 지금처럼 버벅거리며 당황하는 모습도 보이는 것, 키린은 투란에게서 확실하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었다.
“어…… 그러니까요, 그게…… 실은 팔 하나가 잘렸거든요. 그랑츄가 물어뜯어서 잘랐는데, 그걸 제가…… 음, 주워 가지고…… 에, 헤, 헤헷.”
시체 줍기에 대한 무안함을 드러내면서 투란은 키린을 향해 웃어 보였다.
키린도 마주 웃으면서 말한다.
“아하, 그 팔을 얻은 거구나!”
“예…… 그 팔로 나무를 타면서 쫓을 수 있었어요.”
“흐흠, 그래서 팔을 얻은 다음에 바로 쫓아간 거야?”
“예? 아니, 그건 아니고…….”
“아니야? 나무를 타고 쫓아갔다며?”
“아니, 그게 몇 밤 뒤였거든요. 갑자기 그 늑대가 막 짖어 대는데…… 달빛이 훤해서 그랬는지 쫓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꼭 날 부르는 것 같기도 했고…….”
투란은 갸웃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일부러 그 팔 하나 끊어진 늑대를 쫓을 생각은 없었던 것이 기억났다. 어쩌다 보니 녀석의 포효에 응답해서 끌려갔던 것, 돌이켜 보니 무지하게 바보 같고 위험한 짓이 아닌가!
돌연 식은땀이 송골송골 이마에 맺혔고, 퀭하니 눈가가 꺼지는 듯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 그게 굉장히…… 아주 많이, 되게 위험한 짓이겠죠?”
“용케 살아남았다. 보통 안 가잖아, 몬스터끼리 싸우는 곳에는.”
키린이 빙글거리는 웃음으로 투란의 물음에 답해 줬다.
투란이 억지로 웃으려다가 실패한 표정으로 웅얼거린다.
“그, 그렇죠, 역시…….”
소리가 잦아들고 한숨이 푹푹 새 나오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죽여, 이 새끼 죽여! 처먹을 것이 없어도 처먹으면 안 될 놈을 처먹다니!
키린은 격앙되고 화난 ‘드라코눔의 아칸’의 외침을 무시하고, 차분하게 투란의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 주면서 말한다.
“살았으니까, 괜찮아. 다음에 또 하면 안 될 짓인 거는 느끼고 있지?”
“예…… 능력도 안 되는 녀석이 아무 데나 들이대면 안 되는 거니까요.”
투란은 꽤나 의기소침한 소리로 대답하고 있었다.
몬스터 헌터든 몬스터 로드든 혹은 마수를 사냥하는 자라 할지라도 가장 먼저 듣는 말이었다.
아는 것이 없든 능력이 모자란다면 괜한 호기심으로 킁킁거리면서 몬스터나 마수 근처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것, 애송이와 애송이 껍질을 벗은 자를 구분하는 경계선이라고도 하는 일이었다.
지난 일을 되새기면서 투란이 느끼고 생각하는 바는 자신이 그런 애송이 짓거리를 겁 없이 저질렀다는 것.
“흐음,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키린이 불쑥 꺼낸 소리가 투란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갑자기 뭐가 아니란 것일까?
너무 분명한 바보짓을 해서 반성하는데, 반성이 모자란다는 소리일까?
“능력이 없지 않다고, 투란.”
“예, 능력이 없…… 어? 제가 능력이 있다고요?”
중얼대며 따라 말하다가 투란은 문득 알아차리고 물어야 했다.
키린은 지금 투란이 바보짓을 했을지는 몰라도 능력이 없는 경우는 아니라 하는 것인가?
싱긋, 웃음과 함께 키린이 투란의 물음에 명랑하고 쾌활한 소리로 답한다.
“투란, 너는 여기보다 더 깊은 저 안쪽, 산맥의 가장 깊은 곳에서 몬스터를 삼킨 몬스터 로드라고. 그런데 능력이 없다? 그럴 리는 없지! 여기보다 더 깊은 저 안에서 몬스터를 삼켰다는 것은…….”
눈을 깜박이면서 집중하는 투란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말을 하면서 키린은 몸에서 선명하고 강인한 힘, 몬스터의 힘과 능력이 아닌 오로지 순수한 자신만의 존재감을 가득 담고 있는 힘, 키린의 생명력을 엿보게 해 주는 듯한 금색과 적색, 그 사이사이로 푸른 광택을 뿜어내는 듯한 은색의 선이 오가는 듯한 모습까지 보여 주었다.
“……이런 것을 할 수 있다는 뜻이거든.”
키린의 말이 맺어지면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힘은 어느새 주변에 뿌려진 성스러운 불꽃마저 밀어내고 있었다. 마치 오롯하고 순수한, 몬스터의 능력조차 그 영역 안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 고집스러움이 느껴지는 힘이었다.
투란은 이게 대체 뭔가 하고 눈을 껌벅거리다가 기억해 냈다.
오러 마크를 몸에 새겼다고 으랏차차 자랑하던 몬스터 헌터, 그가 보여 준 오러의 힘과 아주 닮은 것!
“오러?”
저절로 투란의 입에서 한마디가 나왔다.
그리고 투란은 자신의 가슴에서 고요하고 잔잔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몬스터 엠블럼…… 키린에게도 있어! 알겠어, 정말 몬스터 로드야! 괴물 왕자님! 성스러운 불꽃으로 드라고니아를 격분시켰다는 키린!’
무엇이 어찌 된 것인지 투란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키린에게도 몬스터 엠블럼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키린의 문장이 저 힘을 자연스럽게 휘감고 있다는 것도!
곧 투란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져 나온다.
“정말 오러예요? 이게…….”
“맞아, 오러야. 왜 그래, 이 정도는 할 줄 알 텐데?”
키린은 투란을 똑바로 보면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물론 투란은 화들짝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거센 반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 몬스터 로드잖아요! 근데 뭔 오러를……!”
말을 하다가 투란은 퍼뜩 기억해 냈다.
자신도 ‘오러’라고 부르는 괴상한 힘을 다룰 줄 알잖는가!
달리 뭐라 할 줄 몰라서 되는대로 붙여 놨던 명칭, 가장 닮은 종류의 힘을 기억 속에서 더듬어 내서 그렇게 생각하기는 했다.
그게 진짜 오러라고?
투란으로서는 그야말로 애매하고 아리송할 뿐이었다.
키린이 투란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투란, 저 안에서 몬스터를 삼키려면 오러로 자신을 보호할 줄 알아야 하잖아. 숨도 못쉬는 곳이잖아, 저 안은…….”
“아, 어! 앗!”
투란은 키린의 말을 한마디씩 따르듯이 괴상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