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1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06)
Chapter 162. 미궁 Ⅴ
‘요놈, 잡았다!’
―응? 어디? 어디 있어?
투란의 외침에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사방으로 뻗어나간 마그마의 물결 속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아지랑이 속에서 흩어진 시커먼 재가 곳곳에서 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로 인해 터져나오는 화염과 요동치는 마그마…… 눈과 귀로 사물을 식별하는 것이 어려울 뿐 아니라 냄새나 촉감 따위가 들이댈 구석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프로브를 제대로 구현해낼 수 없기도 했으니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열어놓은 채로 뒤죽박죽으로 엉긴 감각 정보를 몇 박자씩 늦게 받아들여 파악하는 중이었으니, 그냥 묻는 것이 빠르다 여기고 묻는 듯했다.
투란도 자신이 형성한 몬스터의 형상에 집중하는 중이었고, 이를 문장의 풍경 속에 꼭꼭 숨은 드라고니아에게 제대로 전하겠다는 의지는 미약한 채였으니 그냥 대답하는 쪽이 더 빠르다 여긴 듯했다.
‘저쪽!’
너무 간단했지만 그 대답과 함께 이어진 감각이 들이붓는 정보는 드라고니아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벽을 넘어 두어 칸의 빈방, 통로를 지난 곳…… 절대로 직접적으로 보거나 반응할 수 없는 구석에 하누크샤가 갑주를 걸친 몸을 숨기고 있다가 끓어오르며 밀어닥친 마그마의 물결과 검은 재의 폭주(暴注)에 휘말려 난동(亂動)을 부리는 중이었는데, 이는 몇 가닥의 시커먼 쇠몽둥이가 철판처럼 넓게, 굵직해진 채로 폭발의 화염과 용암의 격류를 물리치는 괴이한 광경이기도 했다.
―아직 못 잡았구만!
드라고니아는 하누크샤의 거칠고 사나운 움직임을 보며 투덜거렸다.
투란이 살짝 어이없이 대꾸한다.
‘잡아 가뒀잖아! 이제 때려눕힐 거라고!’
―환마상으로 되돌릴 수 있겠냐?
‘당연히!’
―그럼, 어서 해라. 아무래도 미궁에 심상찮은 짓을 할지도 모르니.
큰소리치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는 빠르게 재촉하고 있었다.
투란도 더 큰소리치며 대꾸하기보다는 하누크샤, 갑주를 걸친 본체 주변에서 요동치는 마그마 로드의 형상에 집중했다. 먼저 거대한 자신의 한 부분을 좀 더 세밀하게 나눴고, ‘천칭’의 마그마 로드가 지닌 정교(精巧)한 형상을 바탕으로 눈알을 잔뜩 띄우고 상황을 관찰하는 채로 하피의 형상 일부를 구성했다. 시커멓게 드러난 하피의 상반신은 곧바로 하누크샤를 노려봤고, 검은 깃털을 날렸다.
드라고니아가 공유된 감각을 통해 이를 지켜보니…….
마그마 로드의 결정질로 이뤄진 하피의 깃털은 하누크샤의 몸을 구성하는 마법의 핵, 그 흐름의 중요점 몇 곳에 꽂혔다. 폭발과 격류, 몽둥이의 격렬한 난동 속에 생겨난 틈새를 당연히 열린 길처럼 타고 들어간 광경이었다.
이는 하누크샤가 부리던 라미아, 그 지배의 마법구성을 관통할 때와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라면 라미아는 고르곤 아이로 먼저 멈춰놨고, 하누크샤는 관통된 다음에 멈췄다는 것뿐이었다.
캬아아!
분신이었던 하누크샤보다 더 격렬하고 사나운 외침이 터졌다.
그 음파가 다시 하누크샤의 마법 구성을 회복하려는 듯했지만, 그 외침이 터지는 순간에 다시 날아가 꽂힌 검은 깃털이 음파를 먹어치우며 하누크샤의 시도를 훼방 놓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 솟아난 검은 줄기, 마그마 로드의 형상과 땅문어의 촉수가 결합해서 ‘악마의 심장’ 보다 더 효율적이고 신속하며 역동적인 줄기가 하누크샤의 목, 손목, 말복을 휘감았다.
하누크샤의 갑주가 튕기듯이 벗겨진 것은 이 순간이었다.
갑주는 원숭이 머리 형상을 구기면서 오그라드는가 싶더니, 결국 원숭이 머리 모양을 한 항아리가 되었다.
벌거벗은 하누크샤의 본체는 분신과 완전히 동일한 듯 보였지만, 그 마법 구성은 분신과 다르게 굵고 정밀하며 복잡했다. 그럼에도 저거노트나 나가락티, 가네시야와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저 마법 갑옷은 하누크샤의 일부가 아니었군.
드라고니아가 쓴웃음을 머금은 듯이 말했다.
‘그래, 쇠막대는 일부 맞아. 그러고 보니 라미아 사내놈의 칼도 환마의 일부였잖아? 왜 저 갑옷은 따로 만든 거지? 딱 봐도 저 못된 잔나비 녀석의 일부처럼 보이는데…….’
투란은 항아리가 된 갑옷을 하누크샤에게서 빼앗아 당기며 갸웃했다.
그 사이에 하누크샤는 격렬하게 반항하고 있었지만, 결국 오그라들면서 환마상이 되고 말았다.
펼쳐진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거둬들이면서, 투란은 암철의 벽과 통로가 마그마의 격류 속에서도 여전히 건재한 것에 쓴웃음을 지었다. 직접적으로 목표로 삼지는 않았다고 해도 녹아내릴 낌새도 보이지 않는다니, 대체 어떤 마법으로 이런 소재를 만들어냈는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맛이나 볼까?’
투란은 통로를 채우며 번진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거두는 와중에 살짝 호기심에 따라보기로 했다. 어차피 마지막 환마 하누크샤는 제압해서 별개의 갑옷과 함께 회수 중이고, 타우루스나 라미아는 물론 다른 몬스터 또한 없으니까. 암철의 맛을 살짝 본다 해서 문제 될 일은 없잖은가?
마그마 로드의 본능이 이런 투란의 옆으로 새는 생각에 바로 호응했고, 암철의 벽과 바닥을 할퀴었다. 마그마 로드가 단단한 것을 맛본다 함은, 일단 긁어 만든 부스럼을 마그마의 내부로 끌어들이며 보다 강력한 초열의 고온으로 융해시키는 과정에서 할짝거리듯이 더듬는 것이었다. 암철의 견고함이 대단하기는 했지만 마그마 로드의 시커먼 결정으로 이뤄진 손톱이 나노 영역에서 긁적거리니 금방 그 부스럼이 만들어졌다.
‘달고 쓰다?’
투란은 꽤 색다른 맛에 흠칫했다.
―왜?
드라고니아가 바로 투란의 반응을 눈치챈 듯 물었다.
‘어? 아니, 그냥…… 암철 맛 좀 봤는데…… 쓴 건지, 단 건지…… 아무튼 맛이 있는 것 같아서.’
―금덩이처럼 잔뜩 녹여 삼킬 정도의 맛은 아닌 거냐?
미묘하게 놀리는 듯이 묻는 드라고니아였다.
마그마 로드가 거칠게 바닥을 긁는 소리가 주변에서 울려퍼졌다.
‘막 삼키고 싶은 맛은 아닌데…… 달고, 쓰고, 달고 쓴 게…… 뭔가 계속 입에 물고 싶은 맛? 흐흠…… 희한한 맛이야.’
―결국 처먹는 거냐! 그만해! 마법이 깃든 미궁이잖아! 환마가 날뛰던 곳에서 그렇게 갈아먹으면 뭔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당장 지금 밟고 있는 문의 마법이 흔들거리기까지 하잖냐!
‘어? 아, 이 문의 마법은…… 환마상이랑 반응하고 있네?’
―뭐? 어라?
투란이 갸웃하며 하는 말에 잔소리하던 드라고니아도 멈칫했다.
벽을 핥고 바닥을 핡는 와중에 하누크샤의 환마상이 도달한 다음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투란이 허리에 두른, 마그마 로드의 형상이었지만 여전히 사람의 기본형태를 유지한 허리에 두른 환마상 넷이 미묘하게 미궁의 문…… 6층에서 7층으로 통하는 유일한 문과 호응하며 마력의 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치 환마상인 채로 넷이 모여야 반응하게 되어 있었다는 듯했고, 투란은 문 주변을 돌며 살피다가 볼 수 있었다. 네모난 돌기둥 같은 문의 한쪽 면, 문짝이라 여길 만한 곳의 네 귀퉁이에 마력의 구멍처럼 빈자리…….
‘이거, 꽂으라는 것 같지?’
마력의 흐름을 볼 수 없으면 보이지도 않을 모양이었지만, 보게 된다면 금방 알 수밖에 없었다. 환마상의 형태대로 문의 네 귀퉁이가 마력이 빈자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마력의 흐름을 보지 못한다면 그저 단단한 석문의 매끈한 모양만 보일 뿐이었다.
―설마 환마를 제압해서 환마상으로 되돌려 꽂아야 다음 층으로 가는 길이 열리게 해놨다고? 대체 무슨 생각이지? 환마를 제압한다 해도 환마상을 얻지 못한다면…… 때려잡으면 저절로 환마상이 되는 것도 아니었잖아? 대체 왜…….
드라고니아는 의혹에 사로잡혀서 중얼거렸다.
투란은 그 이야기를 마음 한편으로 밀어버리고, 마그마 로드를 비롯한 여러 몬스터의 형상을 사람의 몸에 압축시키면서 환마상을 하나씩 네 귀퉁이에 맞게 밀어넣었다. 단단한 석벽이 허공처럼 환마상을 삼키는 광경이 사람의 눈에 훤히 보였고, 마력의 흐름을 읽는 하피 여왕의 눈은 환마상이 채운 자리부터 마력의 흐름이 변화하며 문을 여는 과정을 지켜봤다.
―야, 메듀시아가 나오면…….
‘대비하고 있잖아.’
의혹에 빠져 있던 드라고니아가 문의 변화에 움찔하며 말할 때, 투란은 이마와 어깨 언저리에 실로 봉합된 듯한 눈꺼풀을 만든 채로 황금모피의 형상을 머리와 어깨에 두르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열린 문에서는 메듀시아가 나오지 않았다.
네모난 작은 방이 텅 빈 채로, 바닥이 없는 채로 문 안에서 덩그러니 그 실체를 드러냈을 뿐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뛰어내리란 뜻이지. 당장 보이는 것만 해도 대강 이십여 미터는 더 내려갈 듯 보이는 구멍이다만?
‘바닥은 아예 안 보이고 말이야.’
―어쩔 거냐?
‘이제 와서 어쩌긴!’
한숨을 쉬는 시늉을 하며 소리 없이 대답하면서도 투란은 문의 네 귀퉁이를 둘러봤다. 아무래도 투란이 이 안으로 뛰어들고 나면 환마 넷은 다시 멀쩡하게 튀어나오며 문을 닫아걸 듯한 분위기가 넘실거렸다.
드라고니아가 말하는 것처럼 투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까 말까를 선택할 수 있었다.
스테노아가 메듀시아를 잊을 수만 있다면…….
고르고니아 세 자매의 기괴한 본능은 그럴 수 없다고 바로 투란의 마음속 깊숙이 파고드는 울음을 터뜨려서 대꾸하고 있었다.
투란도 애초에 환마랑 놀다 가려고 온 것이 아니었으니, 선택은 한 가지뿐이었다.
‘몸으로 때워봐야지.’
껑충, 바닥이 없는 좁은 방으로 투란은 과감한 척 뛰어들었다.
추락하는 동안에 투란의 한 손은 벽에 대어졌고, 그대로 벽을 긁었다.
키이익거리는 음향이 귀를 찌르는 와중에 십여 미터를 내려왔고, 위편에서 열렸던 문이 다시 봉쇄되며 어둠이 짙어졌다.
‘아, 또 캄캄해지는 건가!’
잠깐 잊고 있었던 미궁의 특성을 떠올리며 투란은 한숨을 쉬고 싶었다.
―아니, 아래에는 빛이 있는 것 같다만?
‘뭐?’
갑작스러운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시커먼 구멍은 한참 더 아래로 이어진 듯했지만, 그 시커먼 중심에 희미하게 너울거리는 불빛의 흔적이 보이고 있었다.
―33미터…… 이 수직 통로의 길이는 그 정도야. 위층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이고, 재질도 달라지는 것 같은데? 벽 맛은 어떠냐?
‘암철인데?’
하나씩 짚어가는 드라고니아의 물음에 투란은 반문하듯 대답했다.
손끝에 긁히고 갈리면서 은근히 삼켜지는 벽의 부스럼 맛은 여전히 암철이었으니가, 위층과 다르다는 말에는 아직 동의할 수가 없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층간은 확실히 수십 미터의 암철로 막아놓았다는 말이군. 저 바닥, 암철이 아니야. 이 속도로 디디면 부서질 수도 있어 보인다. 저 아래 바닥이 두껍지 않다면 한층 더 뚫고 내려갈 수도 있어.
‘헐?’
투란은 벽을 조금 더 단단히 움켜쥐듯 손가락에 힘을 주며 속도를 늦춰야 했다.
키익거리는 소리가 조금 잦아드는 사이에 구멍 통로의 밑바닥은 고작 몇 미터가 남겨졌고, 추락하는 속도는 꽤 늦춰졌다.
그래도 투란은 구멍에서 조금 빠른 느낌으로 뚝 떨궈졌기에 나름대로 무릎을 굽히며 다리에 전해올 충격에 대비했다.
므으헝! 므흥!
한 놈은 콧김을 짙게 섞은 괴성을 토해냈다.
크헝, 크으응!
한 놈은 목젖이 보일 정도로 입을 여는 괴성을 뿜어냈다.
콰앙, 퍼억!
어쨌든 두 마리는 자신들의 틈새에 끼어든 시커먼 투란을 아랑곳하지 않고 격돌했고, 둘이 휘둘러대는 독특한 병기는 투란을 후려쳐서 저편으로 날려 보냈다.
퍼석.
날려가 부딪힌 벽이 푹 꺼지면서 바위벽 으스러지는 소리가 뭔가 투란에게 섬세하고 분명하게 들려줬다.
‘이 썩을 것들이!’
―크다, 투란!
투란이 격렬하게 성질내려 할 때, 드라고니아는 놀란 듯이 외쳤다.
살짝 의아해하면서도 투란은 내던 성질을 마저 내기 위해 자신을 후려쳐서 날려 보낸 두 마리의 타우루스를 향해 눈길을 돌렸고…….
“크…… 네?”
드라고니아가 한 말을 되새기듯 나직하게 중얼거려야 했다.
투란을 아랑곳 않고 싸우는 두 마리 타우루스, 둘 다 신장(身長)이 3미터를 초과(超過)하고 있었으니!
이제껏 투란이 보고 삼키고 겪어온 타우루스는 물론, 도감에서 미리 확인해둔 타우루스의 종합적인 정보까지 되새겨도 체격이 3미터가 넘는…… 뿔을 제외하고 3미터를 훌쩍 넘긴 거대한 놈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었다.
단지 키만 크고 홀쭉하지 않았으니, 저 정도면 체격만으로는 무쇠뿔 오우거랑 눈높이를 마주하거나 아예 내리깔고 볼 수 있잖을까 싶었다. 게다가 근육이라든가 체형을 논하려 한다면, 무쇠뿔 오우거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균형 잡혀 있는 전사(戰士)의 모습이라 할 지경!
투란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