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1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07)
―프린스, 타루우스의 왕자(王子)인 모양인데?
드라고니아가 열심히 기억을 더듬다가 말했다.
투란은 그 사이에 왜 자신이 갑자기 두 마리 타우루스에게 끼어 처맞는 꼴이 되었는가를 파악했다. 아무래도 둘이 마주 보고 눈치 보는 틈새로 갑자기 자신이 뚝 떨궈져서 격돌이 시작된 모양!
‘썩을!’
―야, 내 말 듣는 거냐?
‘왕자님이라며! 근데 그게 뭐!’
부글거리는 기분을 그대로 담아 투란이 으르렁거렸다.
왕자든 공주든, 어쨌든 왕족에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
타우루스 왕족이라면 이미 봤다.
비록 저 녀석들보다 체격이 쪼그맣기는 했지만……?
‘어라?’
연잇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멈칫했고, 투란은 바로 물어야 했다.
‘왕자님이라서 크다고?’
―그래! 싸우는 두 놈 모두, 그냥 왕족의 계보에 든 정도가 아니라 왕좌를 노리는 중이고, 그럴 자격이 있다고 몸으로 증명하는 거라고!
약간 성난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몸을 일으키며, 처박혀 있던 벽의 잔해를 털어내면서 투란은 먼저 자신의 주변을 둘러봤다. 벽은 꽤 깊이 파여 있지만 엄청난 두께를 과시하듯, 무너지지도 않았고 뚫린 구멍의 낌새도 없었다. 마치 투란이 무슨 절벽에 처박혀 그 껍질만 살짝 파낸 상태로 보일 뿐이었다.
그 광경과 타우루스의 두 왕자님이 격투 중에 바닥을 밟아 부수고 도끼로 서로의 가죽을 찢고 날뛰는 모습이 겹쳐지니 보다 확실해졌다.
암철로 이뤄진 벽도, 바닥도 아닌 곳.
미궁의 새로운 층은 6층까지와는 꽤 다르다는 것.
‘어디 보자…….’
투란이 조금 더 멀리 보려 했지만, 역시 왕자님들의 싸움이 너무 요란한 탓에 눈길이 먼저 닿고 말았다.
꾸어엉! 콰득.
므흐엉! 우직.
괴성을 지르며 서로의 뿔을 타격해 뒤틀고 엇나간 도끼질 사이로 살짝 펼쳐진 손가락이 스치다 부러지기도 하는 혈투(血鬪)는 쉽게 끝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3미터의 근육질이 그 체격을 단숨에 쪼갤 듯한 도끼를 들고 싸우는 광경은 어쩐지 질리지 않고 구경할 수 있을 듯싶었다.
하지만 투란은 그 광경 속에서 두 마리 타우루스가 왕자님답게 제법 장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기에 심각해지고 있었다.
‘건틀릿이랑, 팔찌, 발찌에다가…… 팔뚝 감은 끈도 쇠로 된 거지?’
―코랑 뿔에 건 장식도 쇠다. 무장이라기에는 빈약해 보이지만, 전투에 활용될 신체 부위는 상당히 적절하게 보호하고 있어. 동작도 본능적이기는 하지만, 저 정도면 무투술의 높은 수준이라 볼 수밖에 없지.
드라고니아도 타우루스끼리 벌이는 격투가 힘자랑만 하는 몬스터 간의 대전(對戰)이 아니란 것을 짚고 있었다. 거기에 투란은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하나를 바로 추가해야 했다.
‘썰리고 찢긴 가죽이 아무는 거는 그렇다 치고, 왜 부러진 손가락이 힘 좀 줬다고 제자리 찾아가서 금방 멀쩡해지는데?’
건틀릿을 끼고 있는 놈은 손가락이 부러지지 않았지만 끼지 않은 놈은 스치는 와중에 새끼손가락 쪽이 뒤집히며 둘 정도 부러졌었다. 하지만 연잇는 도끼질과 함께 그 부러진 손에 힘줄이 좀 돋아나며 더 세게 도끼자루를 움켜쥐는가 싶더니 금방 뼈마디가 멀쩡해진 꼴이었다.
―자가치유 능력이야 타우루스 족장도 꽤 했잖아.
드라고니아가 뭘 새삼스레 놀라냐는 듯이 말했다.
투란은 목뒤를 긁적이면서, 벽에 부딪힌 몸의 곳곳에 남은 충격의 여파가 다 떨쳐나간 것을 확인하며 대꾸해야 했다.
‘느낌이지만, 타우루스 족장도 뼈마디는 일단 손으로 맞춰 놓고 잠깐 고정해놔야 할걸. 저건 그냥 싸우는 와중에 힘 좀 주고 바로 복구되는 거잖아. 내가 삼킨 왕족도 저 정도는 못 할 것 같다고, 느낌이…….’
카앙! 깡!
도끼와 건틀릿이, 건틀릿과 팔뚝의 쇠끈이 뒤엉키며 험한 소리를 냈다.
―음? 이제 슬슬 방어를 하는데?
드라고니아가 이제까지의 난폭하게 살을 주고 뼈를 끊어놓을 듯이 격렬했던 타우루스 왕자 둘의 싸움이 변한 것을 지적했다.
투란도 둘이 콧김과 콧물 사이로 피거품을 뿜어내며 입김을 허옇게 뿜어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딱히 추운 곳이 아니었음에도 흘러나오는 저 입김은 둘의 체온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과 동시에 체력의 소모가 어마어마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광경이었다. 저대로 전투를 이어간다면 누가 이기더라도 결국 함께 엎어질 수밖에 없는 듯한데, 둘이 의도적으로 승리 후의 탈진을 피하려는 듯이 보였다.
‘왜지?’
투란은 의혹을 느꼈다.
타우루스가 싸우는 적을 놓고 싸움 뒤의 상황을 고려한다니, 어딘가 그 성질머리랑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둘만 있는 게 아니었군.
드라고니아가 다른 방향에서 해답을 얻은 듯이 말했다.
투란도 금방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둘이 혈투를 벌이는 이곳, 천장에 뚫린 구멍처럼 양쪽이 휑하니 뚫린 통로를 지니고 있었다. 그 통로의 어둠 속에서 뭔가 움찔거리며 나타나 둘의 싸움을 구경하는 모습이 보였다.
투란은 자신이 처박힌 벽과 맞은편은 막혀 있는 것을 한번 더 확인했고, 좌우의 통로에 새로 나타난 타우루스 둘…… 통로마다 나타나 어둠 속에서 구경하는 꼴이 앞에 나서서 싸우는 둘이 지치면 나설 준비를 하는 것이 딱히 누구 편을 든다기보다는 지친 놈들 한꺼번에 정리하겠다는 낌새란 것을 느꼈다.
‘싸우다 지친 것들 둘 제거하고 또 남은 녀석 둘이 싸우는 건가?’
조금 어이없어하면서 투란이 상황을 예상해봤다.
드라고니아는 간단하게 이를 긍정했다.
―분명히 그럴 거다. 미궁왕의 옥좌는 하나뿐이고, 거기 참여한 왕자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계승자를 쳐죽이기만 하면 되니까. 그게 타우루스가 미궁에서 홀로 남아 왕이 되는 과정이라고 했어.
‘그런 얘기는…… 도감에 없었는데?’
―라비린스에 대한 부분은 드라코눔의 지식이야. 도감에서 일반적인 미궁이나 그 미궁을 지배하는 타우루스에 대해 조사했다면 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네가 본 거는 순전히 메듀시아의 미궁 정보뿐이었으니까. 5층 이하로는 아무 정보도 없었으니, 여기서 저런 왕자들의 계승 난투를 예상할 수도 없잖아.
‘일반적인 미궁이라.’
투란은 뒷머리가 땅기는 느낌에 벅벅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메듀시아의 미궁은 분명히 수백 년간 다녀간 이들이 없는 곳이었고, 마지막 탐색도 5층에 겨우 발 디딘 정도로 끝났다고 했다. 6층 환마에 대한 정보 따위는 전혀 없는 채로 7층에 내려왔으니, 여기서 본 것이 이상하다고 할 처지도 아니기는 했다. 게다가 내려온 깊이를 생각하면, 7층이라기보다는 8층이라 하는 편이 더 맞을 듯한 곳이잖은가.
문득 투란은 낯을 구기며 갈라서는 타우루스 둘을 봤다.
둘은 뒤통수를 노리는 녀석들이 양쪽 통로에 선 채로 구경하는 꼴을 느끼고 싸움을 멈추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도 틈나면 한 대 쳐서 완전히 끝장낼 낌새가 역력하기는 했지만, 서로 틈을 주지 않고 슬슬 물러서며 통로가 없는 벽 쪽으로 갈라서는 꼴이었으니 나름대로 휴전하기로 공감한 모습이었다.
통로 안에 기다리던 녀석들은 좌우에서 억센 콧김을 푹푹 뿜어내는 듯하다가 어둠 속에서 기척을 지우며 물러서고 있었다. 왠지 상처 입은 녀석들이 달려들어 싸우자 하는 꼴은 보기 싫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렇게 통로가 열렸으니, 싸우던 놈들은 다시 싸우려나 하고 투란이 구경하는데 한 놈은 빈 통로로 조심스럽게 물러서고 한 놈은 슬슬 벽에 붙어서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
―음? 너, 얕보인 모양인데?
드라고니아가 투란을 향해 스윽 도끼를 치켜올리는 타우루스를 보고 말했다.
투란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3미터가 넘는 덩치가 굵은 팔뚝에 힘줄을 감고 도끼 드는 광경을 바라봤다.
뿔 아래의 핏발 선 눈동자는 살짝 눈알 위로 번지는 듯했지만 꽤 선명해서 몬스터라는 느낌이 부족했다. 콧김과 입김이 이 기묘한 풍경의 횃불 속에서 훤히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이거, 그냥 가는 길을 내가 막고 있으니까 비키란 것 같은데?’
투란은 묘한 느낌에 가만히 길을 터주듯이 벽에서 떨어져 천장의 구멍 아래로 움직여 봤다.
과연 쉬운 먹잇감으로 여기고 달려와 쳐든 도끼를 찍을까?
투란이 있던 벽에 기대며 적과 엇나간 길을 고른 타우루스는 얌전히 도끼를 내렸다. 여전히 투란을 바라보는 눈길에는 경계심이 담겨 있지만,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얕보는 낌새는 전혀 없었다.
―호오? 자기 도끼에 쳐맞고 벽에 박혔어도 훌훌 털고 일어났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아는 모양인데? 과연 왕자 정도 되면 지능이 있다고 여기는 편이 옳다더니, 맞는 말이었나 보네.
아까 한 말 따위는 싹 잊은 듯이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쓴웃음을 지고 투란은 가만히 이 자리에 마지막 남은 타우루스를 바라봤다.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타우루스의 모습에는 뭔가 묘한 자신감도 엿보였다.
상대를 얕보지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낮추지도 않겠다는 태도…….
‘말도 할 수 있는 거는 아니지?’
투란이 불쑥 떠오른 바를 묻자, 드라고니아가 바로 부정한다.
―미궁의 왕인 타우루스도 말은 못 한다. 하지만 지성을 갖춘 듯한 행동은 하지. 때문에 협상이 가능하냐 아니냐를 놓고 한때 많은 논쟁도 있었다만, 어떤 경우라도 자기 영토를 침범한 상대에게 폭력 이외의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의미 없는 논쟁으로 끝났지.
‘그렇다는 것은…….’
투란은 서서히 통로에 발을 디디면서, 아까 사라진 놈이 매복했는가를 살피면서도 자신을 바라보는 타우루스 왕자를 보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저게 지금 싸우다 지치고 상처 회복도 느리니까 일단 정체 모를 나는 피하는 수작을 하는 중이란 거지?’
―음, 그 말 그대로라고 해야겠군.
드라고니아도 인정했다.
투란은 피식 웃었다.
“멋대로 패고 사과도 없이 그냥 가려는 놈을 내가 봐줄 필요가 있나?”
일부러 소리 내서 한 말이었다.
3미터가 넘는 곳에 자리한 타우루스의 귀가 쫑긋했다.
갑자기 투란이 낸 소리가 무슨 의미인가 눈알을 굴리며 검토하는 듯하더니, 바로 타우루스의 입가에서 빠득거리며 이를 가는 소리와 함께 억세게 그르렁거림이 토해져 나왔다. 도끼자루를 쥔 손에 다시 힘줄이 돋는 채로 슬슬 통로로 빠르게 발 딛는 꼴을 보니 투란에게 덤비지 말라 위협하는 채로 갈 길 가려는 태도였다.
딱히 싸울 기분은 아니지만 덤비면 싸워주겠다는 모습, 투란은 이에 제대로 응해주기로 했다.
“일단 너도 한 대 맞아봐.”
우득, 콰드드득!
투란의 주먹이 부풀면서 돌이 뒤틀어지는 소리를 냈다.
동시에 투란의 발이 바닥을 박찼고, 통로의 어둠에 완전히 몸을 담그려는 녀석을 향해 도약했다.
―야, 그건 때리는 게 아니라…….
투란의 손모양에 드라고니아가 뭐라 하려 했다.
통로의 크기에 맞춰 커진 시커먼 결정질의 손아귀는 타우루스 왕자를 그냥 움켜쥘 정도였으니까.
므흐헝!
콰득, 우득.
괴성과 함께 타우루스가 도끼를 내리찍었고, 결정질의 손아귀 틈새에 도끼가 끼면서 타우루스의 몸뚱이가 움켜쥐어졌다. 뼈마디 으스러지는 소리는 그다음에 맑고 선명하게 울렸다.
―움켜잡으려는 거잖아.
드라고니아가 떨떠름하게 하던 말을 맺었다.
‘고이고이 잡았잖아.’
거대한 손을 빼며, 바닥을 질질 끄는 팔뚝을 더 세게 당기면서 투란은 히죽 웃었다. 3미터의 체격이라도 단숨에 움켜잡는 마그마 로드의 손아귀는 몸부림치려는 타우루스 왕자를 좀 더 조이고 있었다.
격렬한 노여움이 담긴 타우루스의 괴성, 비명처럼도 들리는 울부짖음이 일렁이는 횃불의 그림자처럼 퍼져나갔다.
투란은 양쪽 통로를 마그마 로드의 형상으로 빚은 장막으로 막았다.
타우루스의 울부짖음은 이제 사방이 밀폐된 공간 안에서만 퍼졌다.
문득 천장을 올려다본 투란이었지만 그 구멍은 막지 않았다.
어차피 닫힌 곳이고, 타우루스 왕자님이 비명을 지른다고 환마 녀석들이 문 열고 내려올 리도 없어 보이니까.
투란은 타우루스의 몸을 살폈고, 이 녀석이 손가락이 부러졌던 녀석이란 점에 흡족한 웃음을 머금었다.
“난 너처럼 부러져도 금방 아무는 녀석이 좋아.”
타우루스가 송아지 같은 눈망울을 끔벅거렸지만 말귀를 알아듣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저 아까도 뭐라 소리 내더니 이런 짓을 한 투란이 이제 또 무슨 짓을 하려는가 하고 궁금해하는 듯한 모습이기는 했다.
투란은 거침없이 타우루스의 목을 거대한 엄지로 눌러 부러뜨렸다.
꽥하는 소리도 없이 우득거리며 목뼈가 부러지고 뒤로 젖혀져 등짝에 붙은 꼴이었지만, 타우루스의 콧김과 입김은 멈춰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중이었다.
―목뼈가 부러져도 안 죽네?
드라고니아가 감탄했다.
‘역시…… 족장이나 그냥 왕족과는 다르네.’
투란은 알고자 한 바를 확인한 것에 만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