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1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10)
조금은 낯선 느낌이 투란의 가슴을 두드렸다.
이쪽에도 있고, 저쪽에도 있고…….
저쪽에 있는 자신이 이쪽에 있는 자신과 똑같아야 하고, 이쪽에 있는 자신 또한 저쪽과 다를 바 없어야 스테노아를 저편에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마음을 추스르며 벽 너머의 새로 키운 ‘몸’을 다듬는 동안 투란은 문득 하누크샤가 여럿인 채로 따로따로 잘도 움직였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이런 시도를 하다 보니 분신술이라 일컬어진 그 재주는 정말로 부럽잖은가!
환마가 아니라 몬스터였다면 바로 잡아 눌러놓고 삼킬 수 있었을 텐데…….
―투란, 집중해라.
드라고니아가 옆으로 새는 투란의 기분을 느낀 듯, 바로 잔소리했다.
아무래도 이렇게 벽 너머에 둘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조차 어지럽고 어렵다는 것을 안다는 듯, 드라고니아가 풍겨내는 기척은 아주 신중하게 투란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몸을 쓰게는 해주지 않으면서 이럴 때 정신적인 안정은 열심히 도우려는 태도였기에 투란은 쓴웃음을 지었지만,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에 정신을 집중하려 애썼다.
암철벽 바깥 통로에서는 ‘투란’이 ‘절규하는 마물’을 통해 자아낸 날카로운 거미줄로 타우루스 왕자와 라미아 공주의 무리를 절단(切斷), 살육(殺戮)하는 풍경이 피어나는 중이었는데, 이 풍경은 암철벽이 직접 맞닿지 않은 통로까지, 미궁 한 층을 다 채우겠다는 듯이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투란이 느끼는 이런저런 바를 완전히 배제한 채, ‘투란’은 귀찮은 일을 모조리 미리 치워버리겠다는 욕망에 충실한 듯했다.
타우루스와 라미아에게는 실로 두려워해야 할 악마가 등장한 셈이었다.
그리고 그런 풍경을 남겨둔 채, 투란은 암철벽 너머의 ‘몸’으로 ‘마음’을 옮기고 우뚝 섰다.
거품과 뱀의 덩어리가 꿈틀거리는 중심, 들어와 서고 보니 그 덩어리를 받쳐주는 원형의 받침이 거품에 물든 채로 보였고 사방 철벽과 천장에 희미한 홈으로 패여 그려진 무늬가 가득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밖에서 줄기만을 들이밀고 그 끝에 피어난 눈으로만 봤던 것과는 또 다른 요소가 암철벽 안쪽에 머물고 있는 셈이었다.
이에 대해 드라고니아가 바로 말한다.
―정보까지 걸러서 내보냈군! 젠장, 몬스터 로드의 힘조차도 억압하는 정보통제였어! 투란, 조심해라!
투란은 조용히 이 말을 되새겼고 납득했다.
몬스터 로드가 형성한 몬스터의 형상, 당연히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이 가득 채워진 채였다. ‘천칭’이 형성한 형상 또한 투란의 고유마력이 근간(根幹)이 되어 있는 터인데, 그럼에도 안에서 본 것을 밖으로 온전히 알지 못했다.
이 암철벽에 그려진 무늬, 이 안의 풍경 전체를 보호하는 강력한 마법은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에조차 간섭하며 전혀 거리낌 없이 그 역할을 해낸 것이다.
만약 여기 또 다른 어떤 마법이 숨겨져 있다면…….
‘저걸 억압하려 한 모양이네. 그것 말고는 없어.’
의심을 떨쳐내며 투란이 단언했다.
상황이 강요하는 복잡한 생각, 투란은 이를 떨쳐내며 자신이 ‘알아낸 것’을 바탕으로 단정 짓고 있었다.
하피 여왕이 지닌 로드 오브 몬스터의 능력, 아라크녹스 왕이 지닌 실타래를 읽어내는 능력, 마그마 로드가 드러내는 완고함과 강인함으로 이 상황을 판정하고 결정을 내린 셈이었다.
이 강한 의지를 받아들인 듯, 드라고니아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메듀시아를 억압하는 것이라면, 풀어야 메듀시아의 본래 모습과 맞닥뜨릴 수 있을 거야. 투란, 그건…….
대신 예상되는 위험에 주의를 주었다.
‘돌 되지 않게 조심해야지.’
투란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래.
‘자, 그럼 지켜보라고!’
담담하게 지켜보겠다는 드라고니아에게 한번 더 큰소리치듯 하며 투란은 스테노아의 눈을 떴다. 황금모피가 온몸을 휘감았고, 별빛 뿔이 살짝 끝을 드러내기도 했다. 도도하면서도 느린 황금모피의 생체파동이 스테노아의 눈빛을 번뜩이게 했다.
이에 뱀과 거품의 덩어리가 꿈틀거리며 바로 호응했다.
뭉친 거품이 구슬처럼 형태를 잡았고, 뱀의 꼬리가 휘감았다.
눈알과 눈구멍을 만든 듯한 기묘한 모양이었다.
그 모양이 갖는 의미를 증명하겠다는 듯, 구슬은 진짜 눈알처럼 데굴거렸다.
그런 것이 덩어리 곳곳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를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뱀의 형상이 꼬이고 뭉치며 덩어리 윗부분에 툭 불거진 형체를 만들어갔다. 곧이어 불거진 형체에서 두 개의 거품이 뭉친 몰골은 틀림없이 머리에 박힌 눈알처럼 보였다.
머리 모양과 눈알이 형성되자, 덩어리 다른 부분에서 눈알 모양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거품이 뭉친 눈알이 붉게 물들며 그 중심의 채도(彩度)가 변화하니, 그야말로 제대로 된 몬스터의 눈동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 눈동자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덩어리가 허물어지듯, 중심축만 남기로 줄줄 흘러내렸다. 뱀과 거품이 뒤섞인 무더기가 흘러내리면서 드러난 중심축은 여전히 뱀과 거품으로 이뤄진 채였지만, 명백하게 인형(人形)을 이루고 있었다.
그 인형의 머리는 덩어리의 불거졌던 부분이었고, 눈꺼풀 없이 드러난 듯한 붉은 눈동자는 이제 암철벽의 봉쇄를 넘어온 침입자를 겨냥하여 고정되고 있었다.
곧바로 붉은 광채가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위압적인 분위기를 드러냈지만, 거기에 마주하는 황금빛 눈동자 또한 전혀 물러섬 없이 똑바로 그 눈빛을 마주하고 있었다.
금방 뱀과 거품이 뒤엉킨 두 팔이 치켜 올려졌다.
시이이, 시하아아!
괴성이 흘렀다.
두 팔을 펼친 인형이 침입자, 투란을 향해 튕겨들었다.
그 두 눈동자 아래에서 새로운 구멍이 생겨났고, 하얀 광채가 구멍 깊숙한 곳에서부터 뿜어져 나와 투란을 덮어씌웠다.
그 순간 투란은 생각하지 않고 본능에 따라 대응했다.
단숨에 스테노아의 별빛뿔이 섬광의 궤적을 남기며 하얀 광채를 꿰뚫으며 뿜어져 나갔다. 인형이 광채를 뿜어내던 구멍이 단숨에 관통되었고, 눈알이 달린 머리 윗부분이 튀어올랐다. 인형의 목 아래는 그대로 허물어지는 채로 투란을 향해 밀려왔다. 그 사이에 별빛뿔은 거침없이 쑥쑥 뻗어나가 암철벽에 닿았는데,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그대로 관통해버렸다.
투란은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드라고니아도 금방 알아차렸다.
암철벽에 깃든 마법이 단숨에 별빛뿔을 휘감으며 그물처럼 휘감아오는 것!
무너진 거품과 뱀의 잔해, 위로 튀어오른, 토막 난 채로도 붉은 눈동자를 훤히 드러낸 머리통까지도 마법의 그물에 한꺼번에 휘말리고 있었다.
―투란, 이거 너까지……!
‘알아, 어림도 없어.’
드라고니아가 저 마법의 목적을 짐작하고 외칠 때, 투란은 차갑게 대꾸하며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고 있었다.
그 실체가 진짜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뱀과 거품, 이것에 대해 스테노아의 본능은 메듀시아라고 반응하는 듯했지만 동시에 뭔가 으깨고 꺼내고 싶어 하는 강렬한 충동도 함께 일으키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그 목적이 침입자와 메듀시아의 감금인 마법은 암철벽의 형태조차 우그러뜨리는 중이었고, 깃들어 있던 마법은 미궁의 마력을 모두 모아 압축해서 밀어붙이는 강대한 위력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저 붉은 눈동자는 스테노아의 눈, 황금모피가 일으키는 생체파동이 아니었다면 마주하고 있는 투란의 여러 눈동자를 기점으로 석화(石化)의 이적(異蹟)을 일으키고도 남았을 것 또한 분명했다.
그러므로 투란은 일단 스테노아의 형상을 중심으로 삼아야 했고, 그 집결되고 압축된 밀도(密度)로 인해 하피 여왕의 눈에조차 밝은 빛의 덩어리로 보이는 마력의 구성에 대항해야 했다.
금방 투란의 모습이 순수한 스테노아의 형상에 가깝게 재구성되어 갔다.
덥석, 먼저 투란은 치솟아 올라오며 자신을 휘감은 뱀과 거품의 덩어리를 움켜쥐고 황금모피의 파동을 불어넣었다. 순수하게 스테노아의 본능에 따른 바였다.
그 파동은 바로 떨어져 내리며 다시 거품과 뱀의 몸뚱이에 엉겨 붙으려는 눈동자 언저리까지 휘감으며 번졌고, 거품을 벗겨내고 뱀의 꿈틀거리는 몸뚱이가 끈처럼 꼬이며 뭉치게 하며 인형이 여성의 형체를 띠게 했다.
그리고 투란은 세상에서 가장 추악(醜惡)하다 싶은 얼굴을 봤다.
채도에 따라 그려진 구슬 위의 붉은 눈동자조차도 혼탁하고 뒤틀려 보이게 하는 최악의 흉측한 몰골…… 얼굴이라든가 머리 모양의 구조물이라고 하기조차 싫은 그런 형태였다.
그러나 투란은 그 괴악스러운 낯짝을 지닌 여성이 몸, 뱀이 꼬여 만들어진 몸뚱어리를 밀어내지 않고 오히려 꽉 움켜쥐고 두 팔로 휘감아 조였다. 덕분에 비명을 지르고 싶어지게 하는 추악한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지독한 숨결이 눈가에 닿을 지경으로 투란의 얼굴에 들러붙었는데…….
빠득, 쫘악!
으스스한 음향과 함께 일그러지고 뒤틀린 얼굴의 가죽이 찢겼다.
‘에?’
―허?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상상도 할 수 없는 흉측한 몰골이 가죽을 벗더니 정반대의 얼굴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제까지 맞닥뜨려온 라미아의 미모(美貌)가 평범한 것이었다라고 말하게 할 듯한 아름다운 얼굴, 조금 전까지와는 완전히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할 만한 낯짝이 붉은 눈동자와 새하얀 눈자위까지 갖춘 채로 툭 튀어나온 것이다.
후우, 흐흥, 흐흐흥.
투란은 자신의 입가에서 콧김과 함께 영문 모를 소리가 새는 것을 느꼈다.
―어, 뭔 감상이냐?
드라고니아도 적잖게 당황한 듯, 정말 진지하게 묻고 있었다!
‘스테노아야! 내가 아니고!’
투란으로서는 최대한 냉정하게 노력하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뭔가 지상최강(至上最强)이라 해야 할 듯한 얼굴, 거기 달린 입술 사이에서도 괴이한 소리가 나오고 있었는데…….
히이이— 샤아아— 히시시싯!
절대로 그 얼굴에서 나왔다고 인정하기 싫은 느낌이 한가득 물려 있었다.
먹이를 노리는 뱀이 주변을 위협하는 듯한 분위기가 가득한 소리였으니까!
그리고 투란은이 이에 뭔가 반응하기 전에 스테노아의 본능이 움직였고, 휘감아 오는 마법의 압박이 강렬해졌다.
‘젠장, 생각 나중에 하자고!’
자신을 향해 되뇌면서 투란은 아라크녹스 왕과 하피 여왕의 형상을 목뒤와 등을 통해 뿜어냈다. 황금모피가 치렁거리며 늘어진 틈새로, 뒤통수에 쓴 가면이 등짝으로 이어지는 듯한 괴상한 모습이 이뤄졌다.
갑작스럽게 라미아를 능가하는 미모를 본 탓에 마법에 대한 대응은 상당히 늦어진 셈이었다. 그러나 마법의 한곳을 별빛뿔이 거침없이 들쑤시는 중이었고, 휘젓고도 있기는 했다. 아름다운 얼굴 옆으로 쭉 뻗어나간 별빛뿔이 통통 튀듯 움직이며 여성 형태의 어깨와 머리를 뛰어넘으며 이모저모 살피는 머리의 움직임에 따라 저지른 짓이었다. 냉정하게 따지면 순전히 얼마나 예쁜가를 보느라고 이리저리 눈길을 돌려보는 사이에 뻗어나간 별빛뿔이 멋대로 저지른 짓이었다.
시이잇, 캬아하핫!
하지만 별빛 뿔에 어깨와 머리를 골고루 두들겨 맞은 듯한 아름다운 얼굴에서 또다시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괴성이 터졌다.
이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동시에 붉은 눈동자에서 짙은 보랏빛이 터져나왔기 때문이었다.
그 보랏빛 광채에 닿는 순간, 스테노아의 두 눈에서 섬뜩할 정도의 금빛 광채라 반응하며 뿜어져 나왔다. 황금모피가 그 광채를 받아들이듯이 바로 짙은 금색의 휘광(輝光)을 머금었고, 몸의 안팎을 아우르는 금색 채광(彩光)이 장막처럼 펼쳐졌다.
우드득, 우득!
와드득, 콰드득!
뱀이 뭉치고 꼬인 몸뚱어리가 으스러지는 음향을 뿜어냈다.
거품과 뱀의 껍질이 벗겨져 나가며 분명한 인간 여성의 형체가 또렷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그 형체의 머리카락, 무릎 아래는 여전히 뱀이 꼬이고 뭉친 형상이었다.
압축된 마력으로 구성된 마법이 곧바로 찰랑이는 뱀으로 이뤄진 형상을 억누르고 짓이길 듯이 덮으려 했다. 거기에 바로 반응하듯 투란의 허리춤에서 스윽 거미의 다리가 길게 두 가닥, 좌우로 뻗어 나갔다.
마법의 구성은 거미의 다리 끝에 닿자마자 실타래가 흐트러지듯이 마력을 흘려내기 시작했다. 부르르 여성의 형체가 떨었고, 아름다운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다시 주름과 뒤틀림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투란은 다시 최악으로 돌아가는 그 얼굴을 보다가 퍼뜩 깨달았다.
‘메듀시아, 두 얼굴이었어?’
―뭐?
드라고니아는 너무 낯선 이야기에 당황한 듯했다.
꽉, 조금 더 깊이 추악한 얼굴과 뱀이 뒤엉킨 몸을 끌어당겨 품으며…… 그 보랏빛을 머금은 붉은 눈동자를 이글거리는 황금광채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마주하면서 투란은 외치듯이, 하지만 소리 없이 대답한다.
‘예쁜 얼굴과 흉한 얼굴! 둘 다 메듀시아야! 둘 다 본래 얼굴이라고! 뱀 뭉치이면서 여자 몸이기도 하고! 메듀시아는 이게 전부 본래 생김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