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1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11)
Chapter 163. 미궁 Ⅵ
사각, 사각.
거미의 다리가 바쁘게 움직이며 마법을 걷어냈다.
밀도 높은 강렬한 마력의 구성은 왕과 여왕이 지닌 능력에 따라 엷은 막이 되어 신속하게 벗겨졌고, 왕의 그물에 뒤엉키고 ‘포식(飽食)’되었다. 여왕은 삼켜진 미궁의 마력을 산산이 흩어뜨리며 ‘섭취(攝取)’했다.
그 과정은 드라고니아를 섬뜩하게 만든 듯했지만, 투란은 메듀시아에 집중할 뿐이었다.
극한(極限)의 미모(美貌)와 초월적(超越的)인 추안(醜顔).
아름다운 얼굴을 단숨에 잊게 만드는 추악한 얼굴, 오직 보랏빛이 번뜩거리는 눈동자만이 두 얼굴의 공통점이었다. 어느 쪽 얼굴이든 그 눈동자의 힘은 마주 보는 이를 돌로 만들려 하는 중이고!
투란이 그 눈을 마주하는 사이에 덮쳐오는 마법은 완전히 해소(解消)되었고, 투란이 드러내는 형상은 스테노아의 모습으로 보다 가깝게 변화했다. 이에 따르듯 황금모피가 더욱 찬란하게 하늘거리는 채로 격한 파동을 일으켰다.
이 파동을 뒤집어쓴 듯, 메듀시아의 몸에서 거품이 점차 벗겨져 나갔고 순수한 뱀의 형체만이 꼬이고 뒤엉키며 인간 여성의 모습을 이뤄내며 허물을 벗어냈다. 벗겨진 허물이 흔들거리다 부서져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는 매끈하고 고운 살갗만이 남아 있는 듯했다. 하지만 이 살갗이 곧바로 부풀고 도드라지며 뱀의 형체를 다시 드러내고, 또다시 응축되고 엮이며 사람의 몸을 이뤘다가 허물을 벗어냈다.
뱀의 형체가 뒤엉긴 여성, 고운 살갗의 여성이 스테노아의 품 안에서 번갈아 드러나며 오락가락하는 광경이 이어졌다.
잠시 투란은 품고 있는 메듀시아의 변화를 보고 느끼다가 깨달았다.
‘고르고니아……!’
세 자매가 서로를 갈망하는 본능, 그 본능은 세 자매를 형성하는 기본적인 구성원리이고 어떤 이질적인 힘이 섞이는 것도 거부한다. 몬스터 로드에게 삼켜진 고르고니아, 스테노아가 아무리 본래의 형상을 그대로 복원한다 해도 여전히 몬스터 로드인 투란을 기반으로 한 존재가 돼버린 만큼 메듀시아와 완전히 호응할 수는 없다!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해도 존재하는 아주 미묘한 차이점, 메듀시아는 그걸 느끼고 있는 셈이었다.
몬스터 로드는 몬스터가 아닌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메듀시아는 간신히 찾은 스테노아에게 매달리면서도 석화의 눈빛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것이고, 두 가지 모습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못하고 있는 중!
그리고 서서히 메듀시아는 투란을 스테노아와 닮았지만 아닌 것으로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는 듯, 머리 부위에서 늘어진 뱀의 머리가 치켜 올라가며 독아(毒牙)를 드러낸 채로 사나운 숨을 토하는 광경이 거듭되고 있었다. 아직 물려 하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에 결단을 내리고 물겠다는 의지가 가득 드러난 채였다.
그래서 투란도 결단을 내렸다.
다시 거미의 다리가 넷가량 투란의 등에서 솟아났다.
그 끝자락에 한껏 실을 자아내는 돌기를 드러낸 채였다.
돌기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게 바로 실가닥을 자아내며 그물로 엮었다.
그물은 곧바로 사방의 암철벽을 덧씌웠고, 내부를 완전히 감싼 고치를 만들어냈다.
투란과 메듀시아, 흩어진 거품과 살점 한 조각조차도 고치 밖으로 벗어나지 못한 상태가 이뤄졌다.
뒤이어 고치를 이루는 실가닥 사이로 핏빛이 흘렀고, 굵게 맺히게 시작했다.
서걱, 촤악!
메듀시아가 토막 나며 갈라졌다.
맺힌 핏빛이 별빛뿔을 타고, 고치를 이루는 실을 타고 메듀시아와 얽힌 순간, 당연히 토막 난 조각이었다는 듯이 동강 나며 끊어지고 있었다. 뱀의 형체가, 여인(女人)의 형체가 갈라지면서도 투란의 품 안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황금모피의 파동이 핏빛을 흔들어 물결을 만들었고, 물결이 새로운 그물과 장벽이 되어 메듀시아를 감금한 때문이었다.
그 조각의 한편은 추악하지만, 한편은 아름다운 탓에 원래 하나였다는 분위기보다는 완연히 다른 두 가지를 토막 내서 한곳에 몰아넣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기괴한 분위기가 가득한 형체 사이로 투명한 광채가 느릿하게 번져 갔고, 부서지며 흩어졌다.
메듀시아가 질량(質量)을 잃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 광경 속에서도 보랏빛으로 번뜩이는 눈동자는 아무런 손상도 없다는 듯, 미간이 갈라지고 머리가 잘려나가는 상황 속에서도 똑바로 스테노아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 때문인가, 으스러져 사라져가는 메듀시아의 모습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번뜩인 것은 보랏빛이 맺힌 붉은 눈알뿐이었다.
그러나 그 눈알 또한 마지막까지 버티기만 했을 뿐, 번져오는 핏빛에 물들며 본래와는 다른 색채의 붉은 눈알이 되고 보랏빛을 잃으며 으스러졌다.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이를 지켜보던 투란은 메듀시아의 눈동자가 사라졌을 때, ‘천칭’의 풍경을 살펴봤다.
* * *
가장 먼저 투란에게 들려온 소리는 드라고니아의 투덜거림이었다.
“굳이 거미 왕의 능력을 거기까지 끌어낼 필요가 있었나?”
투란으로서는 갸웃하며 되물을 일이었다.
“뭐? 왜? 깔끔하게 가둬놓고 해치웠잖아? 미궁에 걸린 마법도 메듀시아 피 한 방울 새나가지 않게 한 모양이었잖아? 뭔지 모르지만 그 이유까지 다 만족시킨 거 아닌가?”
“허? 거기까지 생각을 했다고 정말로?”
드라고니아는 어이없어하면서도 투란의 생각이 그럴듯하다는 듯, 그러면서도 살짝 의심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은 그런 드라고니아의 말에 관심을 두지 않고 ‘천칭’ 깊이, 빠르게 보이드의 껍질을 두른 채로 가라앉으며 고르고니아의 또 다른 정수를 향해 다가가는 메듀시아의 상태를 살폈다.
정수로 이뤄진 메듀시아는 거침없이 스테노아에게 다가갔고, 하나로 뭉치려는 것처럼 붙었다. 하지만 둘의 정수는 하나가 되지 않았다. 대신 둘의 형상이 아주 또렷하게 투란의 마음에 스며왔다.
오랫동안 구부정하고 엉거주춤하니 만사가 귀찮다고 게으름 피우는 듯했던 스테노아가 조금 허리를 펴고 당당한 자세가 되어 있었다. 메듀시아는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흘러내리다가 뭉치며 뱀의 몸통, 머리를 이룬 채로 허리 아래로 꾸물거리는 모양을 만들며 붉은 눈알에 보랏빛 눈동자를 머금은 채로 미모를 드러냈다.
둘은 서로 기대는 듯한 자세로 나란히 섰고…… 스테노아가 평소 돌던 모습 그대로, 가만히 걷기 시작했다. ‘천칭’을 둘러싼 고리, 스테노아가 꾸며놓은 길 위로 메듀시아가 뱀의 치마를 드리운 채로 합류한 듯한 풍경이 꾸며진 셈이었다.
그 풍경에 이끌린 듯, 투란이 삼켰던 타우루스와 라미아의 정수가 모여들었다.
마치 고르고니아의 정원(庭園)에 함께하겠다는 듯했는데, 타우곤과 타우루스 오리지널은 빠진 채였다.
“뭐야? 왜 이래?”
투란은 여전히 처음 자리에서 버티는 타우곤과 타우루스 오리지널의 정수, 그 형상을 보며 갸웃했다. 드라고니아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이 상황에 대해 알겠다는 듯이 말한다.
“기원이 달라. 똑같은 소와 인간의 형태가 섞인 몬스터로 취급되지만…… 이 녀석들, 서로 다른 신화에 기원을 두고 있어. 아마 고르고니아 주변으로 모인 녀석들은 메듀시아의 피를 통해 라미아와 함께 불린 경우일 거다. 하지만 타우곤이나 오리지널은 다른 신화에서 전혀 다른 원인으로 생겨난 거라…….”
“타우곤은 그렇다 치고, 타우루스 오리지널인가 하는 저거는 같은 미궁 안에 있었잖아? 그런데 왜?”
갸웃할 수밖에 없는 투란이었다.
발가락 모양이야 조금 다르다고 하지만, 타우루스 오리지널은 메듀시아가 머무는 미궁 안에서 함께 머물며 침입자를 막아서고 있었다. 한데 밖에 있던 타우루스 족장조차도 내려간 마당에 뿌리가 다르다며 버티는가?
‘천칭’의 먼 구석에서 별빛무리가 일렁이는 채로 드라고니아의 대답이 나온다.
“글쎄, 다른 이유는 없어 보인다만…… 족장이야 미궁에서 빠져나가 지상에서 따로 번식한 녀석들인 경우이니까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되고 말이야.”
“흐흠…….”
투란은 한번 더 갸웃하면서도 메듀시아의 모습을 살폈다.
끊임없이 오락가락하던 모습은 깔끔하게 사라졌고 이제는 완벽한 미모만을 자랑하며 스테노아에게 찰싹 붙은 채였다. 은근히 스테노아에게 기대는 듯한 자세였고, 무릎 아래로 꼬불거리며 흘러 내려간 뱀의 형상은 무리 지은 채로 스테노아가 닦아놓은 길을 가득 채운 듯했지만…….
그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서 투란은 자신이 짐작했던 대로 메듀시아가 삼켜지기 전에 보였던 적대감, 기묘한 거부가 순전히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을 머금은 탓인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면 유렐리아 역시 얼렁뚱땅 자매의 모습으로 다가서는 것은 안 된다는 이야기인가? 으, 엄청 귀찮겠구만. 아, 어디 있나 잘 모르니 다행이려나?’
묵묵히 투란이 기척 없는 한숨을 쉬려 할 때, 돌연 쏘아져 오는 눈길이 있었다.
고르고니아의 두 자매, 스테노아와 메듀시아가 동시에 ‘천칭’의 위쪽을 노려보면서 투란에게 호소하는 듯했다.
마지막 자매, 유렐리아까지 찾아달라는 듯!
‘그니까, 어디 있나 모른다고!’
투란은 대강 어느 산맥에서 허우적댄다는 막연한 이야기만으로는 찾을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둘이 어울린 탓인가, 그럼에도 한번 그 산맥으로 찾아가 달라는 미묘한 압박, 감성적인 호소가 보다 짙게 투란의 마음에 스며오고 있었다.
“시간 나면!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엄격하게 말한 다음, 투란은 풍경 밖의 변화로 마음을 돌렸다.
* * *
암철벽에 휑하니 뚫린 구멍이 또렷하게 보였다.
처음 별빛뿔이 거침없이 뻗어나가 덩어리였던 메듀시아를 관통하며 마법을 자극했을 때, 그저 닿기만 한 줄 알았는데 그냥 뚫어버린 모양이었다.
그 구멍으로 시커먼 잉크가 줄줄 흘러들어오며 바깥과 단절된 탓에 따로 놀던 ‘투란’의 인도를 받아 갈라졌던 자신의 일부가 돌아와 합류하는 것을 느끼며 투란은 살짝 당황했다.
아래에 메듀시아의 뱀과 거품이 들락이던 구멍이 막힌 다음에 밖에 분리된 ‘투란’은 사납게 암철벽을 녹이고 있었던 듯했는데, 새로 구멍이 나자 바로 밀고 들어와 근원으로 돌아오는 상황이었다.
‘역시…… 그 잔나비의 분신술처럼은 안 되네.’
근원이 되는 자신의 자리를 정하고, 그 외의 분리된 형상에 독립성을 부여한다 해도 역시 몬스터 엠블럼의 근본에서 벗어난 탓에 결국은 되돌아와야 했다. 미리 지정된 시간이 없으니 더욱 급하게!
한 몸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따로 생각을 하는 것은 되지만, 이렇게 분리되어 따로 움직이며 판단하는 것은 아직 어렵다…… 하지만 투란은 언젠가 되지 않으려나 하는 막연한 희망을 품으며 변화하는 암철벽을 바라봤다.
‘저건 왜 저런다냐?’
무사히 뚫린 구멍에서 돌아와 회수되는 자신이 파편, 그 상황이 정돈되는 것을 느끼자마자 투란에게 새로 다가온 의혹은 뒤틀리며 꼬이는 암철벽이었다. 마치 거대한 나선의 압력에 이끌리듯, 네모난 상자 안에서 상자가 통째로 뒤틀리며 돌돌 말리는 것을 보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뚫어놓은 구멍도 서서히 막혀 갔고, 바닥은 꼬이며 아래로 미끄러지라 강요하는 경사를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투란, 아래층으로 가는 길 같다만?
불쑥 드라고니아가 하는 말이었다.
‘에? 뭐? 어디가? 이 미끄러뜨리려는 비비 꼬인 바닥이?’
어이없어서 투란은 되물어야 했다.
이미 드라고니아는 뒤틀림 속에 아래를 향해 나선으로 열린 통로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이게 뭔 수작인가 잔뜩 의심만 피어오르는 탓이었다.
―어차피 미끄러지고, 짓눌려서 저리 빠질 수밖에 없어 보이는데? 말하자면 8층이 열릴 조건이 여기서 메듀시아를 처리하는 것이라 여겨지는군.
‘팔층……?’
깊이로 보자면 거의 11층, 혹은 12나 13층은 될 듯한 곳이 메듀시아의 방 아래로 길을 감추고 있었다?
투란에게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더 내려가야 할 까닭이 애매하기도 했다.
이 미궁을 찾아온 목적은 이미 달성했잖은가!
이런 투란의 미묘한 거부감을 드라고니아가 한마디 덧붙여서 바로 치워버렸다.
―나가는 길이 아닌가 싶군. 들어온 길로 도로 나가지 않아도 되게 말이야.
투란은 냉큼 뒤틀린 경사에 발을 딛고 미끄러지면서 되묻고 있었다.
‘정말로 밖으로 나가는 길이야? 밖으로 통하는 뭔가가 있는 거지?’
드라고니아가 이미 움직여놓고 나중에 묻는 꼴에 혀를 차면서도 착실하게 대답한다.
―이 아래가 미궁의 밖은 아니지만, 미궁과 다른 분위기라는 점은 확실하다. 거의 입구와 비슷한 분위기야. 미궁이 다른 뭔가에 걸쳐 있다고 여기면 될 거다.
촤아아악!
거칠게 발바닥을 달구는 마찰을 느끼면서 투란은 빙빙 돌아 내려가는 나선의 경사를 따라 내려갔다.
그렇게 경사의 끝에 도달해서…….
―투기장? 경기장?
어이없어하는 드라고니아의 속삭임처럼 거대한 원형 투기장의 잔해를 볼 수 있었다.
‘이게 뭐지?’
투란에게는 너무 낯선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