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1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13)
킹 타우루스의 정수는 독특했다.
바위가 된 살갗을 뚫고 번져나간 몬스터 엠블럼의 마력은 도도하게 앉은 킹 타우루스의 석상을 샅샅이 훑어 뒤졌고, 그 속에 희미하게 깃든 몬스터 에센스를 포착해서 끌어모았다.
이를 삼킨 순간, 문장의 풍경 속에 드러난 몬스터의 형상은 투란이 예상하지 못한 기괴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장대한 라미아가 들락거리는, 괴상하고 큰 타우루스…… 킹 타우루스는 퀸 라미아와 융합한 채였다.
‘이건 꽤…… 이상하네?’
―저런 것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그 독특함에 투란이 갸웃했고, 드라고니아는 경계하는 듯했다.
킹 타우루스와 퀸 라미아, 위층에서 그 자리에 도전하는 프린스와 프린세스를 잔뜩 짓이기고 삼켜놓은 투란이었기에 왕과 여왕의 옥좌를 차지한 둘의 형상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 그 예상에는 둘이 하나로 뭉친, 완전히 융합한 새로운 형태의 몬스터일 수 있다는 점은 전혀 없었다. 아무리 몬스터에 대해 예단(豫斷)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라 해도, 동일한 품종이 이런 식으로 돌연변이를…… 따로 있어야 당연할 녀석들이 하나로 융합한 경우는 해괴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그 융합한 모습인 채로 메듀시아 앞으로 끌려 내려가 공손해진 것 또한 투란에게는 상상조차 못 한 일!
―미니언이란 부분은 여전한 모양이군.
드라고니아는 오랜 전설, 드라코눔의 기록을 되새긴 듯이 이리 중얼거렸다.
‘흐흠?’
투란은 그 말에 살짝 갸웃했다.
몬스터의 미니언, 몬스터 헌터들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에 따르면 몬스터가 이끄는 무리이고 부하였다. 로드 오브 몬스터의 경우라면 품종이나 숫자가 막대하니 딱히 뭐가 미니언이라고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지만, 다른 몬스터들의 경우에는 미니언의 종류가 한정되어 있는 경우가 평범했다. 고블린의 경우라면 같은 품종인 고블린을 휘하로 거느리는 것이 보통인 것처럼.
메듀시아가 타우루스나 라미아를 거느린 것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조금 독특한 경우였다. 하지만 그 휘하가 저리 융합한 것은 그보다 더 특이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타우루스의 왕과 라미아 여왕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대한 드라고니아조차도 저런 융합은 모르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의아해하는 사이, 투란은 문장의 풍경 속에서 메듀시아가 킹 타우루스와 그 몸을 들락거리는 퀸 라미아에게 조금 삐죽거리고 불퉁한 태도인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런 메듀시아의 머리 위로 스테노아가 한 손을 올리고 쓰다듬으니, 메듀시아는 살짝 고개를 돌리며 공손한 킹 타우루스와 퀸 라미아에게 더 관심이 없다는 듯한 시늉을 하고 있었다.
대신 스테노아가 둘을 보고 가만히 눈을 끔벅했다.
그 눈짓에 호응하듯, 킹 타우루스와 퀸 라미아가 뒤섞인 모습을 정돈하는 듯했고…….
‘아, 이건 또 뭐야…….’
투란은 허물어진 석상 무더기 위에 앉아 투기장을 둘러보면서 혀를 찼다.
깃들어 있던 정수가 사라지기가 무섭게 킹 타우루스의 석상, 퀸 라미아의 형체까지 내포된 석상은 돌 부스러기가 되어 주저앉았다. 그 순간에 한 손에 들려 있던 전설적이라는 도끼, 블랙리버는 기우뚱하면서 투란의 발치에 푹 꽂히기도 했다. 조금 기울어지는 각도가 달랐으면 그대로 자기 머리통이라도 찍을 듯한 위험한 자태를 뽐낸 도끼가 새까만 그림자처럼 너울거리는 꼴을 보며 투란은 목뒤를 쓰다듬었다.
―왜? 도끼가 마음에 들지 않아?
‘마법 도끼잖아. 제대로 쥐고 휘두르는 것도 신경 써야 할 텐데…….’
―블랙리버는 몬스터이든 몬스터 로드이든 상관없이 그 기능을 발휘할 거야.
‘어? 정말?’
―고블린이 만든 거니까. 인간의 마법과는…….
‘뭐? 누가 만들어? 진짜 고블린? 고블린이 마법 무구도 만들어?’
―고블린 중에서 완전하게 이성을 일깨운 특이종이 있다. 한두 마리가 아니고, 다름대로 무리까지 형성할 정도는 되지. 다만 그 무리가 아무리 커져도 수십에 불과한 탓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드러나기도 힘든 녀석들이다. 아무튼 그런 녀석들 중에서 위키드의 능력을 위치크라프트로 성장시킨 경우가 있어. 블랙리버는 그런 고블린이 만든 마도기(魔道器)야. 몬스터이면서 몬스터의 본능을 벗어난 그 특성 때문에 다른 종족의 마법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자적인 마도구를 완성한 셈이지. 아, 물론 투란 네가 작정하고 망가뜨리려 한다면 또 어찌 될지 모르겠다만.
드라고니아는 나름 간략하게, 그래도 자세하게 설명했다.
호기심이 동한 투란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만히 블랙리버의 자루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과연 이 도끼가 자신에게 쓸모가 있을까 없을까, 구체적으로 어떤 기능을 지닌 것인가를 상상하면서 한 짓이었다.
한데 이 장난 같은 짓이 바로 블랙리버의 반응을 끌어냈으니, 새까만 블랙리버가 투란의 발아래 드리워진 작은 그림자에 들러붙더니 그대로 스며들어 버린 것!
“어라?”
투란이 움찔하는 순간, 마음속에 이 이상한 현상에 미묘한 거부감이 생겨서 블랙리버를 얼른 빼놓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 그 순간에 그림자 안에서 다시 새까만 자루와 날의 윤곽만 지닌 도끼 블랙리버가 불쑥 튀어나왔다.
“어라?”
또다시 투란이 똑같은 소리를 뱉으며 블랙리버를 노려봤고, 이번에는 반쯤 의도적으로 한번 더 그림자로 들어가라고 생각했다.
스륵!
블랙리버는 바로 투란의 의지에 호응해서 그림자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오호?”
투란이 감탄하기가 무섭게 드라고니아가 탄식이라도 하듯 말한다.
―그림자 수납(收納)이다. 블랙리버가 주인에게 허락하는 권능이지.
‘음? 주인에게……?’
그 낱말에 섞인 미묘한 낌새에 투란이 바로 짚었다.
―실은…… 블랙리버는 저주받은 도끼로 유명했다.
‘야!’
저주라니, 바로 그 얘기부터 했어야 하잖은가!
―몬스터 로드에게는 의미 없는 거잖아? 아무튼, 희생자의 피를 마시고 그 생명력을 갈취하면서 검게 물들다가 저런 상태가 된 거야. 그 과정에서 블랙리버를 휘두르던 자가 누군가에게 죽으면, 블랙리버는 곧바로 주인을 바꾼다. 이전 주인을 죽인 자에게로 옮겨가는 거야. 블랙리버를 만들어낸 고블린은 비비나비에게 죽었고, 그 비비나비가 다음 주인이었다고 하더군. 그 뒤로도 계속 주인을 바꾸고 옮겨 다닌 끝에…… 행방불명이 되었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미궁 안으로 들어와 킹 타우루스에게 도전했던 누군가가 들고 있었다고 봐야 하겠지.
‘잠깐, 그게 대체 언제 적 이야기야?’
저주란 말에 입술을 삐죽이다가 이어진 이야기를 얌전히 듣던 투란이었지만, 가만히 듣다 보니 오래되어도 너무 오래된 것 같았다. 아무리 마법이 깃든 도끼라도 그 정도면 마력이 소모되고 마모되어 사라져야 할 듯했다.
―고르고니아 세 자매가 활동하던 시기니까, 흔한 말로 천 년 전?
‘그게 뭔…… 그림 투아란 얘기에라도 나오는 도끼란 말이야?’
―그 시절까지는 가지 않겠지만 거의 그 시절이라 여겨도 상관없는 때일 거야. 그러니까 투란, 블랙리버가 그 긴 세월 동안 녹슬지도 망가지지 않은 까닭을 생각해라. 이 저주받은 도끼는 먹잇감을 삼키고 새로운 주인을 섬기면서 악착같이 버텨온 거다. 고블린의 위치크라프트로 만들어져서, 그림자 속에 자신을 감추기도 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자아가 깃든 마물일 수도 있는 거야.
경고하는 듯한 말투였기에 투란이 갸웃하며 되묻는다.
‘버리라고?’
―조심해서 다루라고!
‘조심이고 뭐고…….’
투란은 블랙리버를 다시 그림자 안에서 꺼내며 자루를 잡아봤다.
멋대로 곁에 떨어졌다가 발끝으로 건드리자마자 냉큼 그림자 안으로 스며온 기괴한 마도구…… 마도기란 묘한 표현을 하는 것이 새삼 이상하게 여겨지는 마법의 도끼였다.
만든 자도, 만들어져 버텨왔다는 도구도 정상적으로 여겨지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
뭔가 이상한 일에 엮인 듯해서 투란이 한숨을 쉬려 하는데, 블랙리버를 잡은 손에 갑자기 힘이 들어갔다. 강철이라도 된 듯한 억센 힘이었고, 기묘한 파동이 저절로 손에서 시작되어 온몸으로 넘쳐흘렀다.
‘어? 킹……?’
타우루스의 왕이 등짝에 라미아의 꼬리를 붙인 채로 ‘천칭’ 안에서 그 정상을 올려다보는 자세로 투란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블랙리버를 어찌 다루는가, 타우루스의 왕으로서 지닌 자신의 특별한 능력…… 권능이라 해야 할 힘이 무엇인가를 투란은 직접 ‘겪는’ 기분이었다.
아예 낯선 힘은 아니었다.
타우곤이 사용했던 강체파동을 훨씬 더 세련되고 강력하게 다듬은 형태였으니까.
동시에 투란은 왜 블랙리버가 대뜸 자신의 그림자에 스며왔는가를 알 수 있었다.
킹 타우루스가 부른 것이다.
‘이놈 보게?’
지금 그 곁에는 다소곳하니, 나란히 선 듯한 퀸 라미아의 형상이 드러나고 있는 중이었다. 꼬리 끝자락을 킹 타우루스의 등짝에 꽂아넣은 채로 퀸 라미아는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듯한 자세로 긴 뱀의 몸을 휘말고, 머리는 킹 타우루스에게 기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뭘 허락해준 거냐?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물었다.
몬스터의 정수가 문장의 풍경 속에서 너무 당당하고 도도하게 저리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몬스터 로드가 허용했기 때문이니까.
‘어? 아니, 내가 아니고…… 하, 하하…… 메듀시아가 눈감아주고 스테노아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한 모양인데?’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다가 투란은 허탈한 웃음과 함께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고르고니아의 두 자매는 분명히 킹 타우루스와 퀸 라미아를 억제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둘이 미묘하게 그어놓은 경계 안에서는 융합한 타우루스와 라미아가 뭘 하든 상관없다는 태도였고, 킹 타우루스는 그 허락 안에서 새롭게 투란을 섬기는 방식을 안다는 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그 능력을 전하는 셈이었다.
실로 분명하게 자아를 갖춘 듯하면서도 이를 모조리 본능으로 집결시켜 ‘이야기’한 셈이니, 투란에게는 이전에 미처 겪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흠, 어쨌든 말썽은 피우지 않겠군.
드라고니아가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해버렸다.
투란도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짚는 그 말을 인정했다.
킹 타우루스가 퀸 라미아와 융합한 채로 딱히 보이드의 억압에 굴복하는 낌새가 없어서 거슬리던 느낌이 조금 있었다. 하지만 스테노아에게, 메듀시아에게 묘하게 충실한 자세로 투란을 섬기겠다는 듯하니, 광란의 요소는 없는 셈이었다.
그래도 투란은 자신이 삼킨 몬스터가 너무 평범하지 않다는 부분에서 좋아라 해야 할지 한숨을 쉬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애매한 기분이 조금 답답했다.
‘차라리 하누크샤를 삼켰다면 좋아라 했을 텐데…….’
문득 환마 하누크샤가 생각나서, 그 괴상했던 분신술을 다시 떠올리며 탐내는 채로 투란이 혀를 찼다.
‘안 될 것도 없잖아?’
돌연 튀어나온 ‘사념(思念)’이 투란을 움찔하게 했다.
어디서 나왔는가는 따질 필요가 없었다.
‘악마의 심장’ 속에서 생성된 자신, ‘투란’이었으니까.
‘분신술?’
확인하듯, 자신에게 되묻듯이 투란이 짚었다.
그 순간 투란은 수많은 ‘투란’이 일제히 떠드는 것을 느꼈다.
‘분신술, 떨어져 나간 채로 미리 정한 명령을 수행하는 것은 이미 가능하지.’
‘원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미리 정하지 않은 것까지 해낼 수 있는 능력…….’
‘다중사고(多重思考)를 응용할 수 있어.’
‘작은 파편만 남아도 완전히 회복할 수도 있지.’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
‘갈라져 있다가 다시 합칠 경우의 위험성은 미리 고려해야지.’
‘분신을 통해 만약을 대비할 수도 있어.’
‘분신이 본체가 될 수 있어.’
‘하지만 몬스터 엠블럼은 유니크하지.’
‘투란은 유니크한 존재야.’
‘그래, 우리는 유니크한 존재로부터의 파생된 사고(思考) 기능.’
‘어떤 경우라도 투란은 오직 하나!’
잔뜩 튀어나오는 다양한 생각, 그 과정과 결론은 순전히 투란 자신의 것이었지만 투란으로서는 굉장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건 그야말로 맨 처음 ‘악마의 심장’ 속에 숨어 있던 자신을 깨닫는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 투란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릴 수 있었다.
“나, 분신술 되나 본데?”
―뭐? 갑자기 무슨…… 윽, 이건 뭐냐! 왜 느닷없이…….
어리둥절하던 드라고니아가 쏟아져 밀려든 수많은 ‘투란’의 사념에 당황했다.
그 낌새에 투란이 피식 웃으면서 저편의 황금벽을 바라보며 한번 더 중얼거린다.
“잔나비 환마처럼 하려면 연습하고 규칙도 정해놔야 할 것 같지만 말이야. 그런데, 저거 진짜 황금일까?”
크기로 봐서는 황금색으로 칠만 해놓은 것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투란은 왠지 저 황금벽의 덩어리가 진짜일 수 있다는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