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1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14)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생각을 멈추고 쉬듯, 멍하니 앉아 있던 투란은 갸웃했다.
멀리 보이는 황금의 벽, 아무리 다시 봐도 모서리를 들이민 거대한 뭔가의 한 귀퉁이 같다는 느낌이 자욱한 괴상한 것과 타우루스, 라미아를 구경꾼으로 둔 거대한 투기장…… 뭔가 어울릴 턱이 없는 것들이 난해(難解)하게 엮여 잔해(殘骸)를 이루고 있는 광경이었다.
이를 위층과 연관 지어 생각하려 하면 더 이상했다.
어째서 미궁의 깊고 깊은 곳이 이 모양이란 말인가?
도대체 이 미궁은 어떻게 이런 몰골로 꾸며졌는가?
새삼 갸웃거리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툴툴거린다.
―이렇게 꼬인 걸 보고 뭘 짐작하겠냐? 단지…… 암철의 미궁이 나중에 이 투기장 쪽을 덮어씌운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만…… 왜 그렇게 되었는가까지는 전혀 알 수가 없어!
“쳇.”
슬그머니 이것저것 캐물을까 했던 투란은 입가를 삐죽하면서 혀를 찼다.
드리고니아의 말 그대로, 투란 역시 미궁 입구에 남은 석상의 흔적을 근거로 비슷한 생각은 했다. 최소한 한두 번은 암철의 미궁 입구를 메듀시아가 들락였을 거라고, 그러니 그런 흔적이 남은 것 아니겠는가 하고.
하지만 그렇게 입구까지 들락이던 메듀시아가 어째서 깊고 깊은 곳에 갇힌 꼴이 되었는지, 그 주변은 왜 암철이 구성이 아닌 두꺼운 바위 벽이었는지…… 그러면서도 메듀시아가 머문 곳만큼은 암철인 까닭은 무엇인지…… 의문만 연이어 피어날 뿐이었고 어떤 답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투란은 시원하게 결단을 내렸다.
“몰라도 상관없겠지. 저게 진짜인가 가서 확인이나…….”
황금벽을 보고 중얼거림이 나올 때, 드라고니아가 빠르게 프로브를 움직였다.
투란이 가만히 그 결과를 기다리는데, 생각보다 드라고니아의 침묵이 조금 길어지는 듯했다. 그 사이에 프로브가 황금벽 주변을 휘저으며, 그 모서리부터 양쪽으로 높이 치솟아 천장을 으깬 광경과 바닥까지 마찬가지로 찢고 파고든 황금의 절벽을 고스란히 투란에게 드러내 보였다.
꿀꺽, 저절로 침이 삼켜지는 것을 느끼며 투란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거, 진짜 황금인 거지?’
프로브의 감각은 그렇다고 알려오고 있었다.
높이 수십 미터에 달하고, 폭 또한 수십 미터에 이른 채로 접힌 듯한 몰골의 황금벽…… 순도는 살짝 의심스럽지만 그 부피만큼은 이전 투란이 잔뜩 삼켰던 금광의 수준을 압도하는 듯했다. 그야말로 주머니에서 자잘하게 쏟아내는 금전이나 금화랑은 비교할 수가 없는 질량(質量)인 셈이었다.
‘도금(鍍金)이나 그냥 도색(塗色)한 거 아니지?’
그래도 한번 더, 투란은 진지하게 묻는 말을 꺼냈다.
―투란, 저거 아무래도 황금성(黃金城)의 잔해인 듯싶다.
드라고니아가 불쑥 꺼낸 말은 투란을 당황시켰다.
‘뭐?’
혹시 잘못 들었나 하며 한마디로 되묻는 채로 투란은 일단 일어섰다.
황금벽의 금빛이 왠지 좀 더 반짝거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투란이 천천히 걸어나가는 사이, 드라고니아는 쓴웃음을 머금은 말투로 이야기한다.
―미노스 왕성(王城), 마이두스가 다스리는 나라였다는 미노스의 수도 궁전. 저주받은 황금의 손길을 지녔다는 마디우스 왕, 옴파레온의 신화 속에 존재하는 그를 이 세상에 소환해냈을 때 함께 왔다는 전설적인 궁전이 저거라고. 저건 황금의 손길에 의해서 순금(純金)으로 변한…… 야!
투란이 달리기 시작했고, 드라고니아는 버럭 외침으로 말을 멈췄다.
‘아래쪽에 구멍이 있다잖아, 안으로 들어가는 구멍.’
프로브가 황금벽의 안팎을 탐색하며 보내온 결과로 얼버무리면서 투란은 백여 미터 저편을 향해, 황금벽을 향해 달려나갔다.
투기장의 원형 구역은 잘 다져진 흙이 바위처럼 튼튼하게 밟혔고, 천장의 무늬는 밝게 모든 곳을 비춰줘서 따로 시각을 강화할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가까워질수록 황금벽은 보다 뚜렷한 질감을 드러내며 안팎이 모두 순수한 금괴로 이뤄졌다는 것을 과시하듯이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얌마! 정신 차려! 도대체 왜……!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정신 상태를 느낀 듯, 황금은 일단 만져보고 맛보고 챙겨보겠다는 그 충동을 알아차린 듯이 짜증이 가득 담긴 외침을 터뜨렸다. 그래도 투란은 일단 모서리에 손이 닿을 자리까지 가서 섰고, 바닥을 향해 힘찬 발구름을 내지르고 있었다.
쿠웅.
무거운 울림이 황금벽 두 쪽을 타고 울려퍼지는 듯했고, 바닥은 한순간에 파이고 흩어지며 파묻혀 있던 모서리의 한 부분을 드러냈다. 움푹 파인 듯하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한 귀퉁이를 깎아낸 형태가 또렷하게 드러난 광경이었다.
황금벽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투란은 허리를 굽히고 살그머니 파여 나간 자리로 발을 디디면서 안쪽을 들여다봤고, 드라고니아는 더 뭐라 하는 대신에 그 통로의 안팎으로 프로브 몇 기를 움직이며 탐색을 서둘렀다.
잠시 후, 투란이 묻는다.
‘황금성이 왜 미궁에…… 꽂혀 있는 거야? 짐작 가는 거 있어?’
―없다.
단호한 대답이 지체 없이 드라고니아게서 튀어나왔다.
입술을 삐죽하고 투란은 다시 소리 없이 물으며 슬그머니 통로 안쪽으로, 황금으로 이뤄진 통로로 발을 디뎌갔다.
‘황금성 안에는 뭐가 있어? 신화에 뭐라고 해? 불려온 다음의 이야기는?’
―타우루스 오리지널, 황금성 안을 지키는 몬스터는 마이두스 왕의 비(妃)가 불륜으로 낳은 사생아가 지킨다고 했어.
‘그게 뭔 얘기야?’
투란은 발을 멈추고, 통로가 벽을 따라 좌우로 갈라지는 광경 속에서 천장, 벽, 바닥 할 것 없이 온통 황금인 것을 확인하는 채로 되물어야 했다.
―옴파레온의 신화에서 소머리와 인간의 몸을 한 괴물은 황금성의 비극 속에서 태어났다고 하지. 그래, 최초의 타우루스는 마이두스 왕의 부인이 짐승과 불륜을 저질렀고 신의 징벌을 받아 낳았다고 한단 말이야. 그래서 타우루스의 기원, 타우루스 오리지널은 미노스 왕궁의 깊은 곳에 감춰졌다고 하지. 마이두스 왕이 자신의 왕비가 저지른 수치를 사람들에게 숨기기 위해서 타우루스를 멀쩡한 왕자처럼 숨겨뒀다는 이야기도 있어. 어쨌든, 이 황금성은 저주받은 궁전이고 사람들이 두려워해서 발을 딛지 않는 곳이었으니 괴물을 숨기기에 적합했다는 말도 있어. 어쨌든 황금성 안은 미로로 이뤄져 있고, 그 안을 타우루스 오리지널…… 미노스 왕성의 타우루스라고 미노타우루스라고 불리기도 하는 몬스터가 헤맨다는 이야기지. 저주받은 왕성답게 불륜으로 인한 신벌로 탄생한 괴물이 산다는 거야.
‘저주는 뭐야?’
잘 알 수 없는 이야기에 갸웃하다가 투란이 불쑥 물었다.
나온 이야기 속에서 분명했던 부분은 타우루스 오리지널에게 또 다른 이름이 있다는 것과 이 황금의 성안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뿐이었고 정작 이 성이 왜 저주받은 곳인가 하는 대목은 없었으니까.
―황금의 손길, 마이두스 왕이 두 손에 지닌 저주야.
‘그니까 그게 뭔 저주인데?’
발끝으로 바닥을 살짝 두드리면서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를 가늠해보며 투란이 저주의 내용에 대해 재촉했다.
―손에 닿는 것을 황금으로 바꾸는 것.
왠지 짤막하게 전하려 애쓴 듯한 대답이었다.
투란은 발을 멈추고 잠깐 낯을 구긴 채로 생각을 해야 했고, 다시 물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 궁전, 황금성도 원래는 그냥 성이었는데 왕의 손길이 닿아서 황금으로 변한 거라고? 바위나 쇠를 대신해서 황금으로 바뀌었으니까 저주란 거야?’
―이 성안이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했으니까 저주란 거야. 성벽이나 기둥만이 아니라, 키우던 가축과 일하던 사람, 신하, 병사, 쌓아둔 식량과 술…… 마이두스 왕의 손은 뭐가 닿든 간에 상관하지 않고 모조리 황금으로 바꾼다. 그래, 메듀시아의 눈길은 오직 살아 있는 것만, 살아있지 않은 것은 제외하고 돌을 만들지만 마이두스 왕의 손은 그게 원래 돌이었다 해도 상관없이 황금으로 바꾼다. 보석조차도 황금으로 바꿔 버린다는 이야기지.
‘왕이 몬스터였냐?’
겨우 드라고니아가 무슨 말을 하는가 깨달은 투란은 멀리 이어진 통로가 훤히 밝다는 것을 느끼면서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며 물었다.
메듀시아보다 더 강력한 능력, 왠지 훨씬 비싸다는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능력을 지닌 왕이라니…… 사람이고 짐승이고를 떠나 돌이고 쇠고 가리지 않는다는 시점에서 굉장히 위험한 몬스터라는 분위기가 솔솔 풍겨나오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마이두스 왕은…… 신화에 따르면 가난한 미노스 왕국의 왕이었고 현명하며 자애로웠다. 마이두스는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가 조금 더 부유했다면 더 많은 나라 사람이 행복했을 거라고 믿고 노력했지, 그 정성은 옴파레온의 신들조차 감동시킬 정도였고…… 그래서 신들로부터 선물을 받았는데, 그게 황금의 손길이었다는 거야.
‘저주를 선물했다고? 뭔 신들이…….’
―끝까지 좀 들어! 옴파레온의 신들은 저울질을 굉장히 좋아한다. 아무리 호의로 내준 선물이라도 받는 자가 그에 걸맞지 않은 자라면, 신들을 속이고 선물을 갈취하려는 의도를 품은 자라면 기꺼이 벌을 내리는 그런 존재야. 그래, 애초에 걸맞지 않은 자라면 선물을 안 주면 그만이지! 하지만 자격이 충분하다고 해도 다시 한번 증명하라는 의도로 신들의 선물은 저주가 될 가능성을 항상 품고 전해진다, 그게 바로 옴파레온의 신들이 하는 짓이야. 아무튼 마이두스는 미노스 왕국을 위해 그 선물을 받아들였다. 지혜로운 만큼 축복이 되고, 어리석은 만큼 저주가 된다는 기묘한 신탁과 함께 말이야. 그 신탁을 받고 선물을 받기 위해 마이두스 왕이 잠시 옴파레온의 신전에 가 있는 사이에 왕비는 짐승, 힘센 황소와 불륜을 저질렀다고 하지. 신들은 남편이 신전에 온 사이에 그런 짓을 했기에 왕비에게 벌을 내렸고 이뤄질 리가 없는 수태(受胎)를 이뤄지게 해서 타우루스를 낳게 했다고도 해. 야, 따지지 마! 옴파레온의 신화는 온통 그 모양이니까! 앞뒤 이상하고 신들이 무슨 동네 깡패라든가 철없는 장난꾸러기 같은 이야기로 가득한 신화야, 원래 그래! 어쨌든…… 간단히 결과부터 말하자면 마이두스 왕은 미노스 왕국을 온통 황금으로 가득 채웠다. 나라의 모든 사람을, 모든 가축과 짐승을, 나무와 돌을 모조리 황금으로 바꾼 거지. 그래서 황금성은 저주받은 성이 되었고, 미노스는 저주받은 나라가 돼버렸어. 그 상태로 절망과 고통만을 품은 왕이 옥좌에 머물러 비탄의 눈물을 흘릴 때, 그 순간을 향해 소환이 행해졌다고 하더군. 황금성째로, 마이두스 왕을 이 세상으로 불러들였다는 거야. 그게 지금 여기 있는 황금성의 기원이야.
‘왜? 왜 부른 거야?’
―왜는, 황금 보면 눈 돌아가는 너랑 똑같은 이유지.
‘에? 황금이 탐나서 저주받은 손을 지닌 왕을 불렀다고?’
―그래, 저주받은 궁전을, 한 나라의 왕성을 통째로 소환했지.
‘그림 투아란 이야기에는 안 나오는 거지?’
문득 갸웃하면서 투란이 물었다.
이 황금성 또한 ‘천 년 전에는’ 하는 옛날이야기로 시작되는 전설의 소재인 듯했으니까. 하지만 그림 투아란의 이야기에는 황금으로 된 성 따위는 없는 듯했으니까. 여러 음유시인이 제멋대로 다른 이야기를 해대고는 했지만, 누구도 이런 성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니까.
―악마와의 전쟁에는 몇 번 나올 거다. 황금, 금을 매개 삼는 대규모 마법을 자주 펼쳐야 했던 시절에 그 금을 충당하려고 저지른 소환이라 했으니까. 아, 그 전쟁 이야기는 거의 못 들었다고 했지? 으흠…… 어쨌든 마이두스 왕이 황금을 보급하면 그걸로 악마종과의 전쟁을 했다는 그런 얘기야. 아마 고르고니아 세 자매의 소환도 그 비슷한 시기일 거야. 옴파레온 신화 속에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불러냈던 시절이라고 하니까.
벅벅, 왠지 뒷머리가 뻐근한 기분에 투란은 긁적였고 한쪽 벽을 따라 기척을 감춘 채로 걷기 시작했다.
그쪽에서는 음매에엣거리는 긴 괴성이 희미하게 울려오는 중이었다.
마치 뭔가에 사로잡힌 듯한 소의 절규 같은…… 황금성에 대한 이야기가 대강이라도 맞다면 타우루스 오리지널, 미노타우루스라 일컬어지기도 한다는 녀석이 저기서 뭔 짓을 저지르는 중일 터였다.
그 소리를 쫓아 나아가면서 투란이 이야기를 정리하듯 묻는다.
‘그러면…… 우리가 내려온 미궁 몇 층인가에 황금성과 맞닿아 뚫린 곳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지? 4층이었나? 아니, 더 위? 그 언저리에서 타우루스 오리지널을 만났으니까 그쯤에 말이야.’
―아마 그럴 가능성이 크겠지. 그리고…… 어쩌면 암철의 미궁은 황금성이 여기 내리꽂힌 것을 감추기 위해서 덮어놓은 뚜껑일 수도 있어.
‘어? 뚜껑?’
―미노스 왕성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왕도의 궁전 한 채일 뿐이야. 성벽과 그 안쪽의 모든 것을 담아뒀다 해도 좌우로 백여 미터를 넘기지 않을 테고, 상하로 따져도 백 미터는 결코 넘지 않는 크기였을걸. 그 정도 크기의 황금성을 지하로 쑤셔 넣으면서 감춘 거라면, 만약을 대비해서 메듀시아까지 대기시켜둔 거라면 이 상황이 어느 정도 납득이 가지. 누군가 황금성을 파내고 마이두스 왕의 저주를 재현해내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다는 거니까.
‘이럴 때 편리한 것은 대마도사님이겠군?’
―그건…… 그렇지.
메에에엣!
‘아, 잠깐! 저주를 재현한다는 건 또 뭔 얘기야?’
저편의 괴성에 발을 멈춘 채로 투란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