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1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15)
―무슨 얘기냐니? 황금의 저주가 노출되지 않도록 막았을 거란 말이지.
‘그게 왜 노출이 돼? 마이더스 왕의 손길이라며? 그 왕은…… 어쨌든 인간인 거 아니었어? 인간이면서 천년을 넘게 버틸 수가 있는 거야? 황금의 저주인가 축복인가 하는 거에 늙어 죽지 않는 것까지 포함된 거라고?’
―글쎄? 그건 확실하지 않다만, 드라코눔의 기록에 따르면 황금성 안에서 마이두스 왕은 불사신(不死身)이나 다름없다는 부분이 있었다. 다른 세계로부터 불려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악마종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기도 하고 말이야. 그러니 저쪽에서 뭔 일이 일어나는가, 방심해서 넋 놓고 구경만 하는 일은 없도록 해라!
‘뭔 일인가 그냥 알려달라고!’
투덜거리면서도 투란은 프로브가 찾아낸 통로의 한편, 황금의 문을 향해 다가갔다. 벽도 문도 모두 황금이라서 얼핏 보면 그냥 벽에다가 문을 조각해 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나게 했다.
그 문 너머에서 은은히 울려오는 신음, 아까부터 이어지는 타우루스의 괴성인 것을 재차 확인하며 투란은 황금의 문을 조심스럽게 밀어봤다. 생긴 것과 달리 문은 아주 부드럽게 밀리며 틈을 드러냈고 그 너머의 풍경을 바로 보여줬다.
‘어, 그러니까…… 황금 소?’
꼬리를 찰랑거리고 엉덩이부터 보이는 것이 타우루스를 짓밟고 있었다.
그 등짝과 어깨 너머의 생김새는 타우루스와 매우 닮은 네발짐승…… 소였다.
평범한 소와는 완연히 다른…… 황금의 갑주를 걸친 듯한 형체를 갖춘 소였고 갑주 틈새로 기묘한 톱니바퀴가 얽혀 몸 안 깊이 스며들어 있는 듯했다.
‘야! 황금이 되고서도 움직이는 거였어? 그런 저주야?’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을 투란은 거침없이 드라고니아를 향해 질러냈다.
―아니, 그 저주랑 관계없어. 자세히 잘 봐라, 투란.
‘관계없어?’
투란은 황금 갑주를 입은 소를 찬찬히 다시 살폈다.
앞발로 타우루스를 밟아 눕히고, 뒷발로 그 허벅지와 배를 짓눌러 제압한 황금 갑주의 소, 갑주 틈새의 톱니는 그 움직임에 따라 쉴 새 없이 미묘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짐승이 움직이며 그 가죽 아래에서 근육이 움찔거리는 것과 비슷했다.
‘저건…… 하클의 장비랑 비슷해 보이네? 잠깐, 그러면 저 소가 그런 장비라고? 소처럼 생겨서 하클 영감이 만든 장비랑 비슷한 거? 그게 뭐야?’
매애앳!
짓밟힌 타우루스가 처량하고 절박한 울음소리를 흘렸다.
그 소리에 투란은 깔린 타우루스를 슬쩍 훑었고, 발가락이 완연히 사람 모양일 뿐 아니라 가슴과 배, 허벅지 언저리에도 소가죽의 낌새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건장한 사람의 몸에서 목 위만을 소로 바꿔놓은 듯한 모습…… 어딘가 미궁 안에서 만났던 타우루스 오리지널보다 더 인간에 가까운 몰골이었다.
―미노타우루스, 왕비의 패륜에 대한 징벌로서 태어난 존재. 다른 타우루스와 많이 다른 저 모습이 타우루스의 기원, 오리지널이라 불린다. 타우곤이나 다른 녀석들이랑은 완연히 다르지? 그래서 기원이고 뭐고 별 상관없는 혼종(混種)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기도 하지. 아무튼 중요한 거는 저게 아니고, 저 황금갑주를 두른 소처럼 생긴 녀석은 피와 살로 이뤄진 짐승이 아니야. 투란, 저게 바로 고르곤(Gorgon)이다.
‘에? 뭐? 고르……?’
문 틈새에 눈을 들이밀듯이 뺨을 붙이면서 투란이 드라고니아의 말에 황당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그 황당함을 더 길게 늘이고 말로 바꿔서 묻기 전에 눈앞에 파고드는 괴이(怪異)가 투란의 관심을 앗아가고 있었다.
고르곤, 드라고니아가 그렇게 말한 톱니의 근육과 내장을 지닌 황금의 소는 타우루스 오리지널을 향해 치익거리는 숨결과 함께 뿔을 들이밀고 있었는데, 그 뿔이 더듬이나 촉수처럼 휘어지며 느릿느릿하게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타우루스 오리지널, 투란이 삼킨 녀석과 다르게 왠지 다 자라지 못한 티가 팍팍 흘러나오는 몬스터는 그 꾸물거리는 뿔을 쥐고 밀어내려 바둥거리는 셈이었다. 조금 작은 체구였어도 역시 타우루스인 탓인가 황금갑주의 소, 고르곤도 머리를 비틀고 더 세차게 네 발로 짓밟으면서 힘을 겨루는 중이었던 듯한데…… 그 결과가 지금 드러나고 있었다.
음매애애애애!
고르곤의 황금빛 뿔이 타우루스 오리지널의 눈가를 긁적거렸다.
작은 체격이 아직 어린 증거란 듯, 타우루스 오리지널의 뿔도 여물지 못한 채였는데 그 뿔이 돋아난 이마 아래에서 눈알이 튀어나왔다. 뿔 끝에 걸려 파헤쳐진 듯, 반쯤 구겨진 눈알이었다.
치익, 푸시잇.
괴상한 숨결과 함께 고르곤이 더 거칠게 머리를 흔들었고, 타우루스 오리지널은 남은 한쪽 눈알을 지켜보겠다는 듯이 그쪽으로 밀고 들어오는 뿔 하나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하지만 다른 쪽 눈알을 파냈던 고르곤의 뿔이 다시 더듬이처럼, 촉수처럼 휘어지며 그대로 남은 눈알 하나를 파내고 말았다.
타우루스 오리지널의 입가에서 고통이 담긴 괴성이 일어났다.
투란은 뭔가 배 속에서 섬뜩함을 느끼고 움찔하는데, 드라고니아가 말한다.
―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이런 걸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뭐? 대체 무슨……? 헐?’
투란은 틈새로 더 자세히 보려 하면서도 프로브가 전해오는 감각을 받아들였고, 드라고니아가 말하는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고르곤, 기묘하게 휘며 움직여 타우루스 오리지널의 눈알을 파냈던 뿔 사이로 묘한 무늬가 이마와 콧등까지 덮고 있는데 마치 커다란 눈동자를 그린 듯했다. 그 눈동자 무늬의 끝자락, 눈꼬리를 따라 진짜 고르곤의 눈알이 박혀 있는 모양이었다. 한데 그 황금빛 눈알을 향해 고르곤의 뿔이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조 금 전에 타우루스 오리지널의 눈알을 파낸 것처럼 뿔은 고르곤의 눈알을 파냈고, 그대로 덜어내며 슬그머니 뿔 끝으로 감는 듯하더니 바로 타우루스 오리지널의 눈구멍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고통으로 버둥거리면서도 고르곤의 발에 밟혀 움직이지 못하던 타우루스 오리지널은 새로운 비명을 질렀지만, 고르곤의 황금 눈알 둘은 거침없이 비어 있는 그 눈구멍으로 파고들 뿐이었다.
그리고 조금 무겁게 고르곤이 머리를 망치처럼 흔들어 타우루스 오리지널의 이마를 찍었다.
까득!
뿔과 뿔이 부딪치며 엇갈리는 소리를 냈고, 타우루스 오리지널은 축 늘어진 채로 더 이상 바둥거리거나 꿈쩍하지 않았다. 숨은 여전히 쉬고 있었으니, 그대로 기절해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고 나서야 고르곤은 슬그머니 밟고 있던 그 몸에서 비켜났고, 슬쩍 엉덩이를 돌리는가 싶더니 곧장 타우루스 오리지널을 뒷발질로 저 멀리 차버렸다!
‘헥?’
퍽 소리와 함께 타우루스가 날려가는 풍경을 보다가 투란은 흠칫했다.
고르곤과 타우루스 오리지널이 한참 아옹다옹하는 듯했던 문 너머는 커다란 사각의 광장처럼 보였고 그 중심에는 돌로 된 알이 놓여 있었다. 그 알의 주변은 황금의 나무, 풀, 샘 따위가 정성을 다해 만들어진 조각상처럼 가득했다. 때문에 돌로 된 알이 묘한 위화감을 뿜어내는 듯한 풍경이었는데, 황금갑주를 걸친 소의 형체인 고르곤이 그 풍경을 등지고 또각또각 투란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저놈, 나 여기 있는 거 아는 거지?’
―눈알은 없다만…… 아는 것 같다. 아무래도 조금 전에 저 괴상한…… 시술(施術)에 집중하느라 모르는 척한 모양인데?
‘대체 고르곤은 어떤 몬스터인 거지?’
푹 꺼진 눈구멍 속을 황금의 액체로 다시 채워 찰랑거리게 하는 꼴을 보면서 투란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조금 전에 본 광경은 무엇인가?
자기 눈알을 파내서 왜 타우루스 오리지널에게 처박아놓는가?
그러고 저리 걷어찼으니 뼈마디 몇 곳은 부러뜨려놓은 듯했고, 어쩌면 머리뼈도 금이 간 채일지 모른다!
―고르곤은…… 여러 타입이 있다만, 일단 이 황금성의 경우에는 보다시피 기계괴수의 형태다.
‘뭐? 왜 여러 타입인데!’
느닷없이 무슨 이야기냐고 투란이 으르렁거렸지만, 드라고니아는 다가오는 고르곤을 관찰하며 보다 침착하게 이야기할 뿐이었다.
―소환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변수가 개입하고, 소환자의 의지에 따라 다양한 타입으로 이 세계에 구현되는 괴수. 그렇게 들었다. 아무튼 저건 하클 영감이 만들어 준 유틸리티 도구처럼 내부가 톱니와 태엽으로 이뤄진 거라고 알면 돼! 다만…… 조금 전의 눈알 시술은 나도 들은 적 없지. 하지만 투란, 저 빼낸 눈알 빠진 자리가 다시 채워지면서 복구되는 꼴을 봐라. 눈알도 곧 재생성될 거야. 그리고 아까 타우루스 오리지널은 고르곤 아이를 이식한 채로 회복된다고 한다면, 네가 위층에서 만난 놈이 어떻게 된 경우인가를 짐작할 수가 있지.
‘내가 얻은 고르곤 아이가, 저놈이 이식한 탓에 타우루스 눈구멍에 박혀 있었던 거다?’
투란은 여전히 살짝 열린 틈새로 고르곤을 바라보며 되묻고 있었다.
어딘가 낯설고, 이상한 느낌이 그런 투란의 가슴을 훑고 있었다.
마치 아르고누스가 품어버린 고르곤 아이가 그 근원인 고르곤에게 감응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고르곤 또한 투란에게서 무엇인가를 느낀 듯, 변화했다.
치익, 키리릭!
뒷다리로 우뚝 서는 사이에 고르곤의 앞다리는 무릎부터 뒤집어졌고 발굽이 허벅지로 들어가고, 허벅지에서 튀어나온 손이 꼼지락거리며 이제는 앞다리 대신에 팔이 달렸다고 자랑하듯 드러났다.
쿵, 쿵.
고르곤은 이제 타우루스의 형태가 되어 두 발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 에, 음?”
투란은 문틈 너머로 말이 되지 않는 소리를 불어넣고 말았다.
드라고니아 역시 잠시 할 말을 잃었다는 듯, 그래도 뭔가 말하고 싶은데 할 말이 없다는 듯한 낌새를 투란에게 전해왔다.
치칙, 키이잉!
숨결을 토해내려 목젖이라도 울리려는 묘한 움직임과 함께 고르곤의 머리가 앞으로 기울어졌다.
아무런 조짐도 없이 토해져 나온 불길은 단숨에 투란이 선 문을 밀어붙였고, 투란은 그 거센 압력에 뒤로 튕겨 나가야 했다.
쿵.
황금벽에 등짝을 부딪히며 투란은 통로를 채우겠다는 듯이 밀려와 넘실거리는 불길을 다시 보는 채로 버럭 외치고 말았다.
“야, 이 썩을! 니가 무슨 드래곤이냐! 뭔 드래곤 브레쓰냐고! 소대가리가 왜 불을 뿜어!”
―왜? 플레임불도 만나 삼켰는데 뭐가 어떻다고?
슬쩍 투란의 외침에 얹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이었다.
‘얌마!’
투란은 이글거리며 살살 달아오르는 황금의 벽, 바닥, 천장을 확인하면서 앞으로 사납게 걸어 나갔다. 사뿐히 날려가 충돌했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그대로 등뼈가 으스러질 정도의 충격을 받았지만 투란에게서는 그런 부상의 징후는 전혀 없었다. 그저 소처럼 생긴 몬스터 주제에 무슨 불을 뿜느냐고 화를 내는 듯한 태도와 표정만 또렷할 뿐이었다.
그 와중에 드라고니아가 방금 한 말과 완연히 다른 말을 더하니…….
―한데 어떻게 고르곤이, 기계괴수인 녀석이 불을 뿜는 걸까?
‘야, 난 고르곤이 저리 생겨 처먹었다는 얘기도 못 들어봤다고!’
투란은 어깨를 털고, 몸에 들러붙은 불길을 마그마 로드의 결정을 살갗에 덮어 삼키는 채로 나아가면서 투덜거렸다.
키잉, 키이잉.
묘한 마찰음을 몸 안쪽에서 울려내는 고르곤, 이제는 황금갑주의 타우루스처럼 보이는 녀석이 우득거리는 소리를 손마디에서 울려내며 당당하게 투란을 향해 다가왔다.
그 찰랑이던 눈구멍에는 이제 황금구슬이 박혀 있었다.
아직 눈동자가 선명하지 않은 꼴로 봐서는 고르곤의 눈은 덜 회복된 듯했다.
―고르곤 아이로 고르곤 상대는 좀 아니라고 본다만…….
투란에게 핀잔을 주듯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안 해!’
투란도 잠깐 떠올렸던 생각을 치워버리듯이 대꾸했다.
그 이유는 분명하고도 간단했다.
고르곤 아이는 어둠을 치워버리는 듯한 시야를 갖게 해주지만, 그 힘은 짐승의 몸 안에 작용하여 신경을 억누르는 성질이었다. 한데 저리 톱니가 굴러가고 태엽이 징징거리며 거칠게 울어대는 몸 안에 피와 살은 전혀 없었고, 건드릴 신경이라 할 것은 느껴지지를 않았다.
도대체 저런 몸에서 어떻게 고르곤 아이가 박혀 있는지, 저런 기계 속에서 나온 눈알은 또 어찌 타우루스의 눈구멍에 박혀 그 힘을 발휘하는지…… 투란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따질 일도 아니었다.
투란에게 지금 중요한 일은…….
키잉, 까드득!
콰앙!
날려오는 황금빛 가득한 주먹질에 맞서서 발길질을 날리고, 고르곤의 몸통을 저편으로 굴러가게 하는 것!
이것이 투란이 할 일이었고, 한 일이었다.
하지만 고르곤은 그렇게 뱃가죽의 황금갑이 찌그러지게 한 거센 발길질이라 해도 한 번에 무력화되어 쓰러져주지는 않았다.
키잉, 키이익!
게다가 일어서는 사이에 그 찌그러진 부분도 원상복구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