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2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17)
키이익, 키익.
화아악.
멈춰진 톱니를 억지로 돌리려는 듯한 소리가 고르곤의 몸에서 울려퍼졌고 그 열린 입으로부터는 불길이 분수처럼 터져나왔다. 하지만 고르곤은 결국 들어 올려진 채로 발끝이 바닥에 닿지 못한 몰골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후…… 고르곤의 몸이 한 조각 남김없이 투명해지며 으스러져 갔다.
바람을 탄 티끌처럼, 작은 회오리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스러졌다.
검은 장막이 움츠러들었고, 그 중심에 우두커니 허공을 품은 듯이 팔을 모으고 있는 투란을 향해 몰려들었다. 시커멓게 펼쳐져 있던 풍경이 압축되며 순식간에 투란의 살갗과 닿으며 사라져 갔다.
황금의 바닥이 움푹 파인 흔적이 넓게 남겨졌고, 그 흔적 위에 있었던 풀, 나무, 장식 따위는 남김없이 사라졌다.
―먹어 치웠냐?
불쑥 묻는 드라고니아였다.
‘응? 뭘?’
―고르곤이 뚫고 나가지 못하게, 바닥을 마그마 로드로 채우면서 황금을 먹어 치웠냐고. 몬스터만 삼키지 않고 황금성의 밑창도 긁어 먹였냐고 묻는 거다!
‘어, 뭐…… 너무 특이한 녀석이었으니까. 너무 얇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서서히 몬스터의 형상을 해체하며 투란은 혀를 날름하는 채로 대답했다.
어이없다는 듯, 포기했다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물음이 슬쩍 이어진다.
―그래서 맛있었냐?
‘응? 맛?’
―역병의 수해 앞에서 먹어 치웠던 순금처럼 맛있었냐고.
‘아, 그 맛…… 에, 그거 좀 애매하네. 뭐랄까, 흙 묻은 밀포처럼 꺼끌꺼끌한 맛이었다고 해야 하나? 분명히 금은 금인데…… 양념이 좀 잘못되고 요리를 잘못한 맛? 그런 맛이었는데…… 그건 왜?’
고개를 돌리고 팔다리를 펼치면서 투란은 몸 상태를 점검했다.
그럭저럭 몬스터의 형상은 모두 회수되었고, 해체되었다.
―그 섞인 맛을…… 아직 안전하지 않은데 뭘 그러고 있어?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려다가 드라고니아가 멈칫하며 물었다.
지금 투란은 그저 싸우기 위해 형성했던 몬스터의 형상을 해체한 정도가 아니라, 사람의 기준을 세운답시고 ‘악마의 심장’까지 해체했던 그때처럼 순수한 인간의 몸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어? 아, 잠깐…… 확인할 것이 있어서.’
―확인?
‘보호 마법이랑 정령수의 가호까지 제대로 걸어놨으니까, 여기 다른 것도 없고…… 괜찮아.’
―아니, 다른 것이야 없기는 하다만…… 너 설마 황금 한복판이니까 괜찮아하는 그런 거냐? 황금 덩어리가 불 뿜고 주먹질한 것이 뭔 열흘 전이라도 돼?
드라고니아가 프로브로 점검한 주변 상황에 대해서 말하다가 조금 울컥한 듯이 으르렁거렸다.
투란은 피식 웃기만 하고 그대로 정신을 집중했다.
다른 곳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천칭’의 풍경 속으로.
이를 느낀 드라고니아가 바로 침묵했다.
그렇게 관심을 기울인 ‘천칭’의 정상에서는…….
* * *
꾸물꾸물.
황금이 액화된 듯한 거품, 속이 꽉 채워진 거품이 불룩거렸다.
겉과 속이 온통 녹아 흐르고 출렁대는 황금이 투명한 껍질에 휘감긴 채로 뚜렷한 형상을 만들지 못하고 꿀렁대는 중이었다.
“흐흥, 역시 이 모양이었네.”
투란의 중얼거림이 풍경을 울렸다.
드라고니아의 말도 풍경을 울리는 소리가 되어 투란에게 전해온다.
“뭐가 어떻다는 거야? 몬스터의 정수가, 그 고르곤의 정수가 어디 잘못된 거냐?”
꿀렁대는 황금빛 거품이 빙빙 돌았다.
구석구석 살펴보는 듯한 광경이었고, 투란의 대답이 은은하면서도 선명하게 문장의 풍경을 울리며 흘러나온다.
“개미, 아니 전갈이었나? 그거랑 비슷한 느낌이었어. 나노미터의 전갈 대신에 물방울이…… 황금이 녹은 물방울이 그런 짓을 한다고나 할까? 꽤 이상했거든. 분명히 금 조각이든가 톱니든가, 아니면 나선못이든가…… 감은 쇠 모양이라든가 그런 형태가 분명했는데 막상 삼킬 때는 하나하나가 전부 따로 놀다가 하나로 뭉쳐가는…… 그런 느낌이었거든. 그리고 삼키는 동안에 뭔가 적셔온다고 해야 하나? 그런 식으로 몸을 쭈뼛거리게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삼켰지만 몸에 뭐가 묻어서 언짢다고 해야 하나? 음, 암튼 대강 그런 거…….”
투란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리는 사이, 황금 거품이 단단해졌고 무늬를 띠면서 꿀렁거림을 꿈틀거림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 꿈틀거림 속에서 뿔이 돋아났고, 네발짐승의 형상이 갖춰져 갔다.
잠깐 사이에 고르곤이 타우루스의 형태로 변하기 전의 소의 형태로 꼬리를 흔들대는 모습을 드러냈다.
“아, 이놈 꼬리 있었어!”
문득 되새긴 듯, 투란이 외쳤다.
끌어안고 있는 동안에도 고르곤에게서 어딘가 타우루스와 이질적인 부분이 있다고 느꼈는데, 이제 보니 꼬리가 그대로 엉덩이에 붙어 있었던 것.
드라고니아가 한숨소리를 섞어 말한다.
“그게 뭔 상관이야? 그보다 이제 어쩌려는 거냐?”
“응? 뭘 어째?”
투란이 고르곤의 형체를 확인하고 그 기묘한 구조를 파악하며 들여다보는 채로 되물었다.
별빛무리가 찰랑거리며 드라고니아가 힘준 듯한 외침을 터뜨린다.
“황금성이 미궁에 처박혀 있더라도, 여긴 미궁이 아닌 황금성이라고! 게다가 멀쩡한 황금성도 아니고 지금 이모저모로 괴상한 상태란 말이다! 아까 고르곤 아이 박고 날려진 타우루스 오리지널은 너랑 고르곤이 싸우는 사이에 계단 밟고 위로 도망쳤어! 즉, 이 황금성의 위층에 뭐가 있고 어떤 상황인가 단정 지을 수가 없다고! 당장 프로브를 돌려보려 해도 황금 안쪽에 네가 말한 뭐 묻은 맛 같은 마력이 깃들어서 탐색이 온전하지가 않아! 그러니까 이제 어쩔 거냔 말이다!”
“여기도 탐색이 힘들다고?”
길게 이어진 외침 속에서 투란은 딱 한 가지만 짚었다.
지친 듯한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대답한다.
“암철 미궁만큼 험악하지는 않다만, 층마다 격차가 꽤 난다. 이 위는…… 가보면 알겠지만 어디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어디는 완전히 막혀서 얼씬할 수도 없고 그래. 올라갈 거냐?”
“미궁으로 돌아나가는 길은 막힌 거나 마찬가지잖아. 뚫고 나가기도 좀 그렇고……. 이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땅 파고 나가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가는 길에 황금도 좀 캐가고…….”
투란의 말에 별빛무리가 살짝 흔들리며 드라고니아가 한숨과 짜증을 낸다는 듯한 분위기를 전해왔다.
투란은 키득거리는 웃음과 함께 고르곤의 미간, 눈알과 뿔의 한복판에 번져 있는 무늬를 향해 크리스탈 애쉬를 흘려넣었다. 고르곤이 네 발을 움찔거리며 머리를 흔들었지만 크리스탈 애쉬는 고르곤의 눈동자 무늬를 덧씌웠고, 고스란히 본(本)을 떠냈다.
“그건 왜?”
드라고니아가 물을 때, 투란은 가만히 크리스탈 애쉬가 뜬 눈동자 탁본(拓本)을 아르고누스가 꾸미고 있는 수정성채 안으로 흘려넣었다. 황금 무늬가 살짝 옮겨진 듯이 일렁이던 탁본이 자취를 감추고 나서야 투란은 고르곤을 정상에서 살짝 아래로 내려보내며 풍경 속에서 마음을 거뒀다.
* * *
―뭘 한 거냐?
드라고니아는 다시 물으며 대답을 재촉했다.
‘음, 본능에 따른 셈이랄까?’
몸을 다시 추스르며 투란이 대답했다.
우득, 드득.
‘악마의 심장’이 다시 투란의 몸 안을 누비고 번져나갔다.
투란은 상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르곤을 삼킬 때 느꼈던 기분, 어딘가 언잖은 잔재가 남아 얼룩진 듯한 느낌이 깨끗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흡사 몬스터의 형상에 고르곤이 뭔가 수작을 부려놨었지만 한 번에 깨끗하게 털어낸 듯한 기분이었다.
―무슨 본능?
드라고니아의 물음이 살짝 집요했다.
‘어? 아르고누스 본능. 눈알을 파내고 박아넣고 다시 눈알을 만드는 꼴을 봤잖아. 보는 동안에 그게 어떻게 되었나 느끼다 보니 그 눈동자 무늬가 원인인가 싶더라고. 아르고누스에게 넘기면 뭐…… 눈알을 만들든가 뭔 일인가 알아내든가 싶었지. 아직 한참 궁리하는 중이니까 결과는…… 나중에 나오면 말해줄까?’
―그래, 잊지 말고! 그런데 이제는 몸이 괜찮다고 느껴지나? 고르곤이 남긴 잔재 같다던 느낌이 없어졌어?
‘응, 없어졌어. 역시 다른 몬스터에게 뭔가 수작 부리는 그런 능력이었나 싶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고르곤이 되어 보면 따로 느껴지는 게 있든가 없든가 하겠지. 아, 그건 그렇고…… 아까 도망친 타우루스가 어디로 갔다고?’
―저쪽으로…… 쫓으려고?
방향을 투란의 시야에 표시해 알려주다가 드라고니아가 어리둥절한 듯이 물었다.
투란은 히죽 웃으며 표시된 계단을 향해 걸어나갔다.
‘싱싱한 고르곤 아이가 어떤 건가, 궁금하잖아.’
―쓸모없는 호기심 같다만…….
드라고니아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그 사이에 투란은 이 정원에서 유일하게 황금이 아닌 돌, 거대한 알의 형체를 스쳐 지나갔다. 바위알이라 칭할 만한 형체는 도도하게 황금 속의 돌멩이인 채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살짝 긴장했던 투란이 너무 담백한 바위알에 한번 더 갸웃했지만…… 바위알은 그저 돌이란 듯이 그 자리에 박혀 있을 뿐이었다.
‘그냥 돌이려나? 왜 저것만 저럴까?’
계단을 밟으면서도 투란은 갸웃했다.
―글쎄…… 분명히 마력을 차단하는 어떤 조치를 담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만…… 너랑 고르곤이 벌인 소란 속에서도 꿈쩍하지 않았으니 알 수가 없군.
‘아무 일 없으면 좋은 거지, 뭐…… 자, 그래서 어디로?’
벽에 붙은 계단에 올라서니 문이 열려 있었다.
문 너머로는 좌우로 열린 통로가 벽을 따라 쭉 뻗은 채였다.
생긴 모양으로 봐서는 이 통로가 벽을 따라 내부를 휘감고 있는 듯했다.
―핏자국 보이잖아. 눈알이 파헤쳐진 자리에서 피를 흘리는 중이었다고. 여기 지나는 동안에는 아물지 못한 모양이네.
‘흐흠…… 빠른 회복능력은 없는 건가?’
투란은 몇 방울의 핏자국을 따라 직각으로 굽은 곳까지 걸었다.
굽은 통로 앞은 또 다른 문이 막고 있었다.
살짝 어긋난 채로 느릿느릿 까닥거리는 꼴이 누가 세차게 문을 밀어젖히고 지나간 다음에 저절로 닫히고 있는 중으로 보였다.
투란이 그 문을 밀다가 갸웃하면서 주변을 다시 훑어봤다.
‘핏자국이 없네?’
―기대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회복능력이…… 아닌가?
대답하던 드라고니아가 돌연 말을 바꾸듯이 멈칫했다.
투란이 밀어 반쯤 연 문 너머의 풍경이 보인 탓이었다.
폭이 3, 4미터인 통로 저편…… 대강 이십여 미터는 될 듯한 자리에서 타우루스 오리지널이 엎어진 채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분명히 이쪽으로 온 녀석일 텐데, 그 모습이 아까와 달랐다.
‘털가죽?’
―머리와 등 언저리로만 털가죽이었어. 지금은…… 온몸이 털가죽으로 덮이고 있군. 아직 변형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만…… 아, 끝났네.
타우루스 오리지널, 황금성의 주인인 마이두스가 다스리던 나라의 왕성에서 태어났고 갇혔기에 미노타우루스라 불린다는 녀석이 꿈틀거리며 두 팔로 바닥을 짚고 일어서고 있었다.
아까와 다르게, 보다 더 투란이 겪은 타우루스와 비슷하게 가슴과 팔뚝, 다리의 모든 곳이 털가죽으로 덮인 모습이었다. 그 눈꼬리에 핏방울이 살짝 맺힌 듯한데, 황금의 눈알이 데굴거리고 두어 번 구르며 눈꺼풀이 깜박이니 금방 사라졌다.
투란은 그 변모(變貌)의 결과를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고르곤 아이, 그게 저거 외모까지 갈아치우는 거였네?’
―그렇군…… 인간 왕비의 몸에서 태어났기에 소머리를 지녔고 건장한 체격을 지녔다 해도 목 아래는 인간의 형체를 고스란히 간직한 놈이었는데…… 네 말 그대로 고르곤 아이의 영향으로 저리된 걸로만 보여.
‘고르곤은…… 황금성에서 그런 역할을 맡은 건가? 타우루스를 찾아서 눈알 박아주는 그런 역할을 누가 시켰을까?’
―신화대로라면, 이건 모두 옴파레온의 신들이 장난친 결과겠지.
‘장난꾸러기 신이냐?’
―투란, 옴파레온의 신화 속에서 신들은 줄곧 장난삼아 온갖 패륜과 패악을 저지른다. 인간을 그릇된 길로 유혹해놓고 왜 유혹에 빠졌느냐면서 벌을 내리지.
‘뭐? 야, 그게 무슨…….’
―아, 저놈 달려오네?
쿵, 쿵, 쿵…….
왠지 체격도 더 커진 듯이 보이는 타우루스 오리지널, 고르곤 아이를 이식받은 미노타우루스가 투란을 향해 질주해오고 있었다.
소에게 없는 송곳니를 드러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