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2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19)
문장 속에서 미노타우루스는 고르곤 아이를 이식한 녀석과 역시 거리를 둔 채로 독자적으로 형상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이전의 오리지널과 마찬가지로, 뭔가 독특한 자신만의 특질을 지녔다는 것처럼. 아무래도 직접 그 형상을 몸으로 체험해봐야 하나하나 뭐가 다른가를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역시 자연스럽게 멀어지면서 하나로 융합하지 않네. 이쯤 되면 타우루스 오리지널이란 이름이 이상하잖아. 얘네, 한 마리 한 마리 몽땅 다른 품종인 건가?’
투란의 말에 드라고니아도 공감했다.
―그렇군. 황금성의 타우루스가 독특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면 미노스 왕성, 이 황금성만의 특이성이 영향을 끼친 품종이라고 봐야겠지. 아, 어쩌면 그것 때문에 미노타우루스라고 하는 이명(異名)이 붙은 거려나?
‘음, 흐흠…… 털가죽이 좀 모자라도 생김새는 확실히 타우루스니까, 기원이니 뭐니 하니까 일단 오리지널이라 했지만 역시 다른 놈이랑 너무 다르니까 아예 여기 특산품이라고 한 거다?’
투란은 어디 어디의 방패라든가, 어디 어디의 검이라든가 하는 경우를 떠올리면서 되뇌었다. 이 또한 드라고니아에게 바로 공감을 얻어냈다.
―그래.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는…… 미노스 왕국의 영향력이 닿는 곳에서만 태어나는 특이한 타우루스, 그렇다면 미노타우루스라고 부를 만하지. 하지만 타우루스에 대해 선행지식이 없는 경우라면 대체 뭐가 다르냐고 할 테니까. 오리지널이란 아무래도 옴파레온 신화에 근거를 둔 말 같고.
잠시 듣던 투란은 황금 고치 안을 손바닥으로 문질러보다가 혀를 찼다.
“칫.”
―왜?
드라고니아가 프로브로 살피면서 어리둥절한 듯이 물었다.
손으로 걸쭉한 보호액을 움켜쥐어 올리면서, 그 냄새와 색을 얼굴 가까이 대고 바라보면서 투란이 소리 없이 답한다.
‘마력을 기반으로 삼은 부동액(不凍液)을 응용한 거야. 보관액이기는 한데, 목적이 타우루스를 감금하는 것뿐이야. 여기 갇혀서 꿈쩍도 못 한 채로 버틴 거는 순전히 타우루스의 능력이었던 거지. 미노타우루스라는 거, 생각보다 좀 묘한 구석이 많은가 봐. 이런 부동액이라면 피가 방출되면서 바싹 마른 몰골로 죽기 직전인 상태가 되었다가 풀려나면 바로 죽어야 정상이거든.’
―죽어야? 하, 그런데 그저 보관…… 감금만 되어 있다가 풀려난 꼴이라고?
‘어. 황금성의 특이성이 뭔지 모르겠지만…… 이 황금 고치는 딱히 미노타우루스에게 호의적인 건 아니란 말이지. 더 올라가 봐야겠어. 이런 고치는 주변에 좀 더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위쪽 밀실이 마력을 흘려낸다고 했지?’
―그래, 이 마력을 잔뜩 휘감고 닫힌 채로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고 있지. 황금 고치는 깨지고 나면 축적된 마력을 잃는 모양이다만…….
까득, 까득.
투란은 황금 고치의 파편을 쥐고 손아귀에서 주물러 마찰시키며 위를 올려다봤다. 어딘가 불길하고 음험해 보이는 마력이 아까보다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천장을 뚫고 올라가면 바로 그 근원이 나올 것처럼.
‘단숨에 관통해버릴까?’
―권하고 싶지 않군. 공고(鞏固)하게 엮인 마법이니까. 단순히 마력을 흘려내는 게 아니니까. 한 층 한 층 돌파하면서 상황을 보는 편이 좋아. 아무래도 저 마법은 유동성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황금성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탓에 소소하고 작은 움직임까지 모조리 간섭하지는 못하는 상태로 보이니 말이다.
‘그런 거라면…… 착실히 뚫어주지.’
큼직하게 사람이 드나들 구멍을 뚫어도 소소하고 작은 움직임이라는 말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괜히 마법에 들이박다가 괴상한 꼴을 겪는 것보다는 훨씬 낫잖은가. 게다가 딱히 어렵지도 않고!
결정한 투란이 다시 주먹을 움켜쥐었고, 주먹은 쥐고 있던 황금 고치 조각을 그대로 삼키면서 부풀어 올랐다. 천장을 향해 투란의 팔이 치켜올려지니, 주먹은 맹수처럼 격돌하며 천장을 우걱 물어뜯듯이 삼켰다.
투란은 가볍게 뛰어올랐고, 몇 미터 구멍 너머의 위층으로 올라섰다.
‘고치가 없네?’
위층은 아래층과 다른 분위기였다.
황금 고치도 없었고, 그저 텅 빈 막힌 방이었다.
문도 없는 것을 보며 투란은 의아함을 느꼈다.
도대체 이런 공간이 왜 왕성 안에 있는가?
―뭐가 있다가 치워진 걸로 보이는군.
‘어? 뭐가 있었어?’
―바닥의 흔적을 봐라, 황금이 된 채지만 또렷하게 긁히고 끌린 흔적이잖아.
‘그러네?’
투란은 황금이 내는 광채로 훤한 방을 다시 한번 둘러봤다.
분명히 곳곳에 눌린 자국, 끌린 자국 따위가 있었다.
뭔가 가구 같은 것이 오랫동안 놓여 있다가 치워졌고, 그다음에 빈방은 흔적을 간직한 채로 황금으로 변해버린 듯했다.
다만 문의 흔적이 사방 어디에도 없었다.
사방으로 치워진 흔적은 있는데.
‘여길 어떻게 들락거렸지?’
―황금이 되고 나서 밀폐된 건지도 모르지. 그 전에 작동하던 것이 황금이 된 탓에 작동하지 않게 되고 말이야.
‘에이, 몰라. 아무튼 여긴 별거 없는 거지?’
―없다, 있어도 알 수가 없을 뿐인지도 모르겠다만.
알 수 없으니 그냥 몰라라 하고 넘기자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쓴웃음을 짓고 두 손을 위로 올렸다. 한 손은 가만히 얼굴 앞을 가리듯이 손바닥을 편 채로, 한 손은 천장을 겨냥하는 주먹을 쥐며 투란은 숨을 골랐다.
‘이다음이지?’
―거의 이다음일 거다.
마력의 원천, 황금성에 퍼져나가는 수상한 마법의 근원이 바로 위층일 가능성이 컸다. 거기서 뭐가 튀어나올지는 예상할 수도 없고.
투란은 정신을 집중하며 다시 천장에 부푼 주먹을 박고 먹어 치웠다.
이변(異變)은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왔다.
“엥?”
―헐?
투란이 놀란 소리를 내며 드라고니아의 놀란 한마디를 들을 때, 천장의 움푹 파이고 뚫린 구멍을 괄괄 쏟아지는 액체가 막더니 바로 황금으로 돌변하고 있었다. 마치 저 위층에 액체가 가득 차 있다가 뚫린 순간에 쏟아져 내린 듯한데, 그러자마자 황금으로 변해 뚫린 구멍을 막은 것이다.
우드득, 우걱.
쥐어 뜯어낸 천장의 황금덩어리를 그대로 손아귀에서 녹여 삼키며 투란은 한 걸음 물러서며 구멍을 막은 황금을 노려봤다.
―마이두스 왕의 손길이다.
드라고니아는 저 물질의 변화, 그저 꿀렁거리며 쏟아진 액체가 순금이 되어 천장을 막은 상황을 보며 단정 지었다.
투란은 혹시나 해서, 자신이 못 본 것을 드라고니아가 봤는가 해서 묻는데…….
‘살아 있는 건가, 아니면 손만 남아서 저 모양인 건가?’
―전혀 짐작도 못 하겠다만.
전혀 단서가 없다고 고백하는 대답만 나왔다.
위층에 마이두스 왕의 힘, 그 저주인가 축복인가가 고스란히 발휘되는 상황이라면 이대로 올라가는 것은 이모저모로 위험하기만 했다. 하지만 동시에 투란은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위층 상태가 어떻게 된 거야? 온통 저 액체로 꽉 차 있는 건가? 그러면 안이 황금으로 다 굳어져야 하는 거 아냐? 아니면 통에 담가놨다가 쏟아붓고 황금으로 만들어? 그런 거면 통까지 굳어져서 아예 쏟아낼 수 없는 거 아냐? 대체…….’
―투란, 저 위층이 저 액체로 꽉 차 있는 상태에서 네가 구멍을 냈고 그래서 쏟아진 거 맞아. 큰 통에 담긴 걸 붓고 황금으로 바꾼 거 아니야. 조금 전에 프로브가 검측한 바로는…… 위층에 두 가지 마력이 겨루고 있다. 하나는 황금으로 변화시키는 마력, 하나는 거기에 저항해서 저 액체를 액체인 상태로 유지시키는 마력.
‘……라는 거는 마이두스 왕과 뭔가가 서로 겨루고 있다는 얘기잖아?’
―그렇게 되는 거지.
투란은 잠시 낯을 구기고 천장을 노려보다가 문득 떠오른 바를 묻는다.
‘액체, 그거 부동액이랑 비슷했지?’
―좀 더 부드럽게 흐르기는 했다만, 프로브 검측으로는 비슷한 물질이었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아.
드라고니아가 황금 고치의 부동액과 짧은 순간에 액체의 구성에 대해 파악한 바를 바로 비교하면서 대답했다.
투란은 살짝 눈매를 좁히다가 시원하게 툴툴거리는 말을 내뱉는다.
“거참,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몇 백 년인지도 모를 정도로 그러고 있는 일이라면…… 대충 그만둘 때도 된 거지. 본의는 아니더라도 그만두게 해줘야겠네.”
―어쩌려고? 구멍을 뚫어도…… 투란?
의아해하던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몸에서 흘러나가며 사방 벽에 둘러붙는 시커먼 잉크를 보며 흠칫했다. 잉크는 모서리를 채색하듯 채웠고, 덕분에 방 안은 황금의 육면체를 이루고 모서리가 검은 줄로 된 것처럼 보였다.
조금 한쪽으로 길쭉한 방의 형태를 가늠하며 투란은 뚫고 올라온 구멍에서 멀어지며 한쪽 벽으로 바싹 붙었다. 그리고 숨을 고르다가 불쑥 묻는다.
‘황금이 또 황금이 되지는 않는 거지?’
―뭐? 그건…… 거의 그렇다고 들은 것 같은데?
투란의 발아래에서 잉크가 불룩불룩하며 바닥을 긁어모았다.
슬그머니 치솟는 황금의 막이 투란의 앞을, 머리 위를 가렸다.
찰랑이는 황금의 막은 언제라도 흐를 듯했고 투란을 휘감을 듯했다.
―괜찮은 생각이네, 확실히…….
이미 황금으로 변한 것이라면 아무리 마이두스 왕의 저주받은 힘이라도 어찌하질 못한다, 때문에 마이두스 왕은 자신과 친한 이들이 황금으로 변하는 참상 후에 그 황금상을 끌어안고 울었다고 하지 않던가. 황금의 장막을 움직여 방패로 삼는다면, 직접 그 위험한 저주에 닿지 않는다면 마이두스 왕은 그저 평범할 뿐이라 했다.
투란은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한 손을 꽉 쥐었고, 손에서부터 흘러나가는 힘의 파동이 방의 모서리에 닿았다. 모서리는 곧바로 주변의 황금을 찢어발겼고, 천장은 그대로 금이 가며 미끄러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올려다보면서 투란이 조금 더 한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니, 천장으로 검은 선이 낙서처럼 번졌다. 곧 검은 선 주변의 황금이 일그러졌고, 찢어졌다. 천장은 더 빠르게 미끄러지며 붕괴했고, 액체와 황금이 뒤엉키고 변화하며 밀실을 채우며 쏟아져 내렸다.
느슨하게 흐르며 균형을 이루던 두 가지 마력이 뒤틀리면서 투란은 액체 속에 담긴 여럿을 바로 감지할 수가 있었다. 드라고니아 또한 곧바로 프로브를 통해 이를 간파한 듯, 투란의 시야에 표시하며 외친다.
―저게 황금변성을 일으키는 마력, 다른 것들은…… 악마종이다!
암전(暗轉)과 명전(明轉)이 이어졌다.
사방의 황금이 광채를 잃었다가 되찾았다가 하는 현상은 쏟아져 내린 풍경을 더욱 현란하게 했고, 그냥 보면서 파악하기 난해하게 꾸몄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그런 풍경을 단호하게 정리했고, 투란의 시야에 선명하게 상황을 보여줬다.
덕분에 투란은 유효한 시각을 정리하고 사용하는 대신, 이 상황을 먼저 둘러보며 생각할 수 있었다.
‘마이두스 왕…….’
펄럭이는 망토와 비슷하지만, 한쪽 어깨만을 감싼 묘한 차림새인 채로 피로한 얼굴에 뒤엉킨 수염이 까칠하고 짧게 돋은 얼굴이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몸에 걸친 것은 모조리 황금빛이 반짝거리는 것이 황금으로 실을 만들고 옷을 만들었나 싶을 지경이었다. 다른 보석 따위는 없이, 순수하게 황금만을 걸친 채로 앉은 자세에서 그대로 무너져 내리는 풍경의 한 부분을 장식한 마이두스 왕은 황금팔찌를 걸친 한 손은 바닥을 짚고, 한 손은 앞으로 내밀며 허공을…… 이 경우에는 액체의 한 자락을 움켜쥐고 붙든 듯한 모습이었다.
‘악마종!’
투란은 그 붙들린 액체의 한 자락이 ‘살아 있고’ 거기서부터 뻗어나와 다른 한쪽에서 뭉쳐 몸을 이루는 것을 봤다. 몸의 한 부분은 액체로, 몸의 다른 부분은…… 피와 살이라고 해야 할지, 돌과 나무라고 해야 할지 애매한 모습으로 뭉친 형체를 지닌 악마종이었다. 그런 악마종이 하나도 아니고 셋이 있었고, 서로를 향해 손인지 가지인지 모를 줄기를 뻗어내며 어깨동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어깨동무의 간격이 꽤 멀어서 그냥 밧줄로 서로를 이어놓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모습이었다.
―그냥 부동액이 아니라, 저놈들 체액이었잖아!
드라고니아가 황당하다는 듯이 외쳤다.
그 말을 듣고 악마종 셋을 바라보던 투란은 문득 깨달았다.
‘완성된 몸이 아니야. 미노타우루스를 자신들의 몸으로 삼을 생각이었어. 이 녀석들…… 불안정해!’
―뭐? 불안정하다니?
‘황금으로 변하지 않은 것도 저 불안정한 상태 때문이야. 어, 뭐라고 했더라…… 물질의 불안정성은 악마종이 다른 세계에서 온 탓에 생기는 특성인데, 이걸 안정화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세계와 어긋나서 몸이 붕괴한다? 그런 이야기였어. 하지만 그 불안정함 때문에 마법이라든가 여러 가지 요술과 엮이면서도 그 효과를 피할 수도 있다고 말이야.’
―아, 그렇다면…….
드라고니아도 좀 더 살펴보고 계측하는 채로 납득한 모양이었다.
마이두스 왕을 자신들의 불안정한 체액으로 감쌌지만, 그 체액이 흘러나가 안정성을 찾게 되면 황금으로 변하는 상황. 불안정한 체액으로 마이두스 왕의 힘을 막기는 했지만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채로 붙잡힌 듯한 악마종, 그 체액에 감금된 채로 놓치지 않으려는 마이두스 왕이 대결…….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이러고 있었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