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2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22)
더욱 두껍고 더욱 우람한 근육!
같은 미노타우루스의 모습이지만 악마종이 품은 것보다 더 커다란 체격이었고, 더 우람한 근육이 온몸에서 꿈틀거렸다. 거기에 더욱 웅장하고 두텁게 돋아난 뿔은 박치기를 통해 악마종 미노타우루스보다 더 튼튼하고 듬직하다는 것을 과시했다.
“음므어, 음므흐으…….”
더불어 새나오는 악마종 미노타우루스의 신음, 금이 간 뿔과 움푹 파여 핏방울이 뭉클거리며 새는 이마빡, 몽둥이를 쥔 손과 주먹 쥔 손이 늘어지는 모습은 조금 전의 박치기 충격이 완벽하게 온몸을 제압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살갗에 살짝 닿았던 불길, 서리는 톱날처럼 투란을 갈아버리겠다는 듯이 휘감겨 맴돌았다.
사각, 키이이익.
살점이 저며지다가 뭔가 거친 것에 닿아 마찰하는 음향이 울렸다.
우드득, 와드득.
악마종 미노타우루스의 팔뚝과 몸이 짓눌리며 으스러지는 소리도 울렸다.
늘어진 팔, 그 어깨 위에는 투란의 우악스러운 두 손이 얹혀 있었고 주저앉히듯이 내리누르는 중이었다. 충격을 받은 채로 그 손길에 저항하려던 악마종 미노타우루스는 목뼈와 등뼈가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결국 주저앉고 마는 듯했다.
풀썩.
키이익, 화르륵!
서리가 얹힌 톱날, 불길이 맴도는 거친 톱니가 다시 한번 투란의 몸을 휘감아 맴돌았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거친 살갗이 불끈불끈한 힘줄을 돋아내며 불길과 서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이 밀어낼 뿐이었다.
―이런 사기를 치다니…….
드라고니아가 투덜거렸다.
‘뭐가 사기야, 능력이잖아!’
투란은 발끈해서 대꾸하면서도 저편의 두 악마종이 드라고니아와 다르게 당황한 것을 확인했다.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내막을 알아챈 것과 달리 두 악마종은 자신들이 사용한 불길, 서리가 왜 통하지 않는가 이해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겉으로 보면 똑같은 미노타우루스의 살갗, 그러나 나노미터 단위의 미세한 영역에서는 아라크레온의 거미줄이 잔뜩 그물을 쳐놓아 웬만한 갑옷보다 더 튼튼하고 질긴 상태였고 그물을 따라 세밀하게 번져 있는 마그마로드의 시커먼 결정은 불의 뜨거움을 삼키고 서리의 차가움을 없애버리는 중이었으니까.
때문에 투란은 두 악마종이 사물을 관찰하는 감각이 나노미터 단위에는 이르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런 체액을 지니고도 둔감하다는 말 그대로네.’
―뭐라는 거냐? 나도 좀 알자!
칼라고…… 악마종의 지식을 나눠 받지 못한 드라고니아가 다시 투덜거렸다.
‘나중에! 일단은…….’
또다시 슬쩍 넘기며 투란은 악마종 미노타우루스의 허벅지를 짓밟았다.
날카롭게, 드라고의 발톱이 돋은 발이 가차 없이 살을 찢고 뼈에 닿을 정도로 파고들었다. 그 발톱 끝에는 시커먼 잉크가 맺혀 있었고, 바로 번져나갔다.
므흐아앙!
악마종 미노타우루스가 괴성을 질렀다.
순간, 저편의 두 악마종이 바닥을 적시는 체액을 모조리 휘말아 당기며 물러섰다.
그야말로 투란에게서, 비명을 지르는 동족에게서 도망치는 모습이었다.
악마종 미노타우루스가 저주하듯이 외친다.
“어, 어째서! 네 놈…… 디바우어잖아! 어떻게…… 어떻게 그 모습으로 포식을…… 므흐아아!”
―어? 야, 너 지금……!
드라고니아도 화들짝 놀라 뭐라 하려 했다.
쩌억.
악마종 미노타우루스의 금이 간 뿔이 그대로 갈라지며 쪼개져 내렸다.
투명하게 변해 사라지는 뿔의 형체는 악마종과 융합돼버린 미노타우루스가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여실히 드러내는 듯했다. 더불어 바닥에 끈적하니 눌어붙듯이 흐르던 체액, 미노타우루스를 감싸고 갑옷처럼 보이던 체액이 모두 굳어지고 갈라졌다. 투명한 먼지처럼 가벼운 진동에도 미묘하게 흩날리는 그 잔해를 보다가 투란은 알 수 있었다.
‘아, 저놈들이 흘린 거랑 닿았으면 전부 한 번에 삼킬 수 있었구나!’
디바우어, 포식자의 포식이 시작되는 것을 알고 악마종 미노타우루스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에 두 악마종이 바로 물러선 까닭이었다. 포식당하는 동족 곁에서 어찌 해보려다가 체액이 이어져 함께 잡아먹힌 경우가 있었던 듯…….
우득, 우득.
뼈가 한번 더 뭉개지는 소리가 나며 악마종이 융합한 미노타우루스는 투명한 재가 되어 사라졌다. 더불어 악마종의 체액, 그 잔해 또한 함께 티끌처럼 휘날리며 지워지고 있었다.
투란은 몸 주변을 맴돌던 불길, 서리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면서 잠시 문장의 풍경을 음미했다. 과연 이 악마종과 미노타우루스는 어떤 형상으로 풍경 속에 그 자태를 드러낼 것인가?
‘어라?’
―엥?
예상 밖의 형태에 투란과 드라고니아가 흠칫할 때, 두 악마종이 사나운 괴성을 토해냈다.
“디바우어!”
“사라져라!”
불타는 바위, 서리로 이뤄진 칼날이 우람한 미노타우루스의 형상을 기반으로 삼은 투란에게 덮쳐들었다.
“어?”
―아, 저 녀석들부터 해결해라.
눈가를 덮쳐오는 불타는 바위, 목을 조이고 감아오는 서릿발인지 칼날사슬인지 모를 가혹한 힘을 한가한 눈길로 마주 보며 투란이 잠깐 한눈팔던 자신을 되돌렸고, 드라고니아도 그런 투란에게 동조하던 자신을 반성하듯 말했다.
파앗.
섬광이 투란의 주변을 휘감아 새하얗게 물들였다.
두 악마종이 체액을 부들거리며 더욱 뒤로 물러섰다.
때문에 넓은 알현실의 벽에 두 악마종이 몰려 들러붙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에 불길과 서리가 사라졌고, 투란의 주변은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누군가 바로 이 자리에 막 들어서서 본다면, 투란과 두 악마종이 거리를 둔 채 서로 대치하는 중이라고 착각할 지경이었다.
이 광경을 향해 유일한 목격자인 마이두스 왕이 한탄하듯 말한다.
“디바우어라더니…… 알던 모습이 전혀 아니군. 정말 세월이 엄청나게 흘렀나 보군. 허헛.”
투란은 그 소리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두 악마종을 향해 느릿하니 싸움을 마무리 짓겠다고 투란이 걸음을 딛는데…….
―저리 착각하게 둘 거냐? 너 같은 녀석이 또 있을 리가 없잖아. 얼른 저 착각을 멈추게 해!
드라고니아가 뭔 장난기가 돌았는가 꽥꽥거리듯이 떠들고 있었다.
이에 투란이 뭐라 하기 전, 악마종 하나가 버럭 외치며 마이두스 왕의 말을 부정하고 있었다.
“아냐! 네놈, 역시 칼라고였어! 디바우어의 마법은…… 놈들의 각인은 제아무리 대단하게 발전해도 결코 다른 마법과 병용(倂用)할 수는 없는 것! 디바우어에게 정령의 광기를 정화할 힘이 있을지언정, 정령을 귀속시켜 발생한 현상을 중화(中和)시킬 수도 없다! 디바우어인 척하지만 네 놈은 역시 빌어먹을 변태 칼라고야! 우릴 속이고 우릴 나포(拿捕)하기 위해 온 모양인데, 그렇게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다! 이번에야말로 우리 동포의 복수를 하겠다, 각오해라! 칼라고오오!”
투란은 살짝 입술을 벙긋했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주먹을 들어 올리고 흔들며 걸음을 내디뎌 갈 뿐이었다. 뭔 착각을 하든 말든, 일단 저 악마종 둘은 그대로 놔둘 수가 없으니까.
두 악마종 또한 더 떠들 말이 없다는 듯, 꿀렁거리는 체액을 뒤틀어 농도를 높이고 집결하며 새로운 뭔가를 준비했다.
‘볼까 말까?’
문득 ‘뒤팡드로품클라트’라는 악마종이 얼마나 특이했는가, 그에 대해 꽤 많은 기록을 남긴 칼라고…… 그 악마종이 궁금해했던 것을 떠올리며 투란의 발걸음이 잠깐 멈칫했다.
거의 괴멸(壞滅)당할 지경에 이르면 정말 상상도 못 할 짓을 하고는 했기에 칼라고드라니샥은 저들이 악마종이란 것을 모를 때에 자주 건드려서 관찰하고는 했었다. 악마종이란 것을 안 다음에는 서로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많이 돌봐주는 척했지만…….
―보긴 뭘 봐! 이 황금성을 통째로 날려 보낼 것 같잖아! 까불지 말고 얼른 처리…… 어?
“임금님?”
훌쩍 곁을 스쳐가는 마이두스 왕의 모습에 투란이 옆으로 재빠르게 두어 걸음 물러섰다. 마이두스 왕은 투란을 노린 것은 아니었지만, 비록 그 두 손을 가슴에 포개고 있기는 했지만 실수로라도 스쳐서 탐스러운 황금상이 될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회피한 셈이었다.
‘아, 임금님 너무 느려!’
―꽤 열심히 뛰고 있다만.
두 악마종이 변화를 일으키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마이두스 왕의 달음박질은 그저 건강한 보통 사람의 뜀박질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투란이 그 황금의 손길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과 달리 두 악마종은 체액만 두른 채로 마이두스 왕의 접근을 무시하는 중이었다.
만약 두 악마종이 커다란 알처럼 뭉쳐서 그 중심에 움푹 파여 들어가는 구멍처럼 소용돌이를 만든 것에서 불길이나 서리가 터져나온다면 마이두스 왕이 무사할 리가 없는 듯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뜨거운 불길이나 혹독한 서리의 흔적은 터져나오지 않았다.
대신 투란이 두 악마종의 불길과 서리를 한차례 지울 때 이용했던 섬광, 투란의 경우에는 정령수의 힘을 섞은 마력의 정화술(淨化術)의 결과였던 광채와 닮았지만 파괴적인 힘이 맥동하는 싯누런 빛이 뭉쳐들고 있었다.
이는 투란은 물론 드라고니아도 어리둥절하게 했다.
―뭘 믿고 달리는 거지?
‘저런 빛줄기도 황금이 되나?’
―될 리가 있냐!
‘그럼…… 죽으려고?’
퍼뜩 떠오른 생각은 바로 투란을 움직이게 했다.
냅다 윌 라이트에 집중했고 끌어모은 마력을 그대로 휘둘러 마이두스 왕의 뒷덜미를 움켜잡은 다음, 뒤로 당겨 공중으로 훨훨 날려 보낸 다음에 투란이 날아드는 싯누런 빛의 궤도 앞으로 뛰어든 것은 아주 잠깐 사이였다.
휘이이잉.
거센 바람이라도 된 것처럼 몰아닥치는 싯누런 빛가닥은 소리조차 바람과 비슷하게 울려냈다.
―이런, 빛이 아니라 미세 분진(粉塵)이었잖아.
드라고니아가 뒤늦게 싯누런 빛의 정체를 파악하고 말했다.
투란은 살짝 당황했다.
‘분진? 그러면…….’
―황금가루가 되었겠지. 마이두스 왕, 알고 뛴 거였다. 괜히 훼방 놨네.
‘젠장!’
저 멀리 너울거리며 떨어지는 마이두스 왕을 다시 마력으로 부추겨서 살포시 내려앉도록 조절하며 투란은 덮쳐오는 악마종의 미세분진, 누런 먼지를 뒤집어써야 했다.
그래도 나름 자신 있게, 배짱을 부리며!
‘우엑?’
단숨에 찾아온 후회에 투란이 기함하는 소리를 내려 했지만, 입술과 함께 목젖과 숨통이 바로 조여들고 굳어진 탓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 지역에는 온통 돌 만들고 황금 만들고 마비시키는 놈만 가득한 거냐?
드라고니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두 악마종이 제각각 품고 뿜어낸 싯누런 빛은 미세한 분진상태였고, 그 티끌이 닿자마자 투란은 온몸에 스며오는 기분 나쁜 느낌과 함께 몸이 정지(停止)되는 것을 알아야 했다.
피와 살, 미묘한 근육의 떨림 따위도 허용하지 않는 정지 상태에 빠져드는 것은 흡사 돌이 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런 와중에 투란은 생각해야 했다.
‘이걸 왜 빛으로만 여겼지?’
투란만이 아니라 드라고니아조차도 이 싯누런 빛가닥이 분진상(粉塵狀)인 것을 몰랐다. 지금 쉴 새 없이 기동 중인 프로브도, 투란이 강화한 감각으로도 파악하지 못한 탓에 그냥 빛가닥이면 적당한 마력을 이용한 바람의 굴절로 걷어낼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싯누런 빛은 실제로는 분진인 상태였고, 옅은 바람결 따위는 모조리 뒤엎으며 투란을 덮쳤다.
어디서 잘못되었기에 이러한 혼란이 생긴 것인가?
―잘못 파악한 것이 아니야. 저 광채가 악마종의 체액 속에서 벗어난 다음에 분진이 생겨난 거다. 빛가닥으로 분진을 형성하고 그대로 밀어붙이면서 번져 나오는 거야.
드라고니아가 투란보다 먼저 상황을 파악한 듯 말했다.
투란은 다시 악마종 둘의 몸 중심에서 타오르는 듯한 싯누런 빛과 뻗어나온 싯누런 분진, 두 가지 상태를 살펴보고 확인했다.
‘하아, 쉽게 하려고 해도 꼭 하나씩 걸리는구만.’
나오지 않는 한숨을 쉬면서 투란은 굳어버린 몸에 변화를 일으켰다.
살갗 속의 미세한 영역 안에서 독자적으로 형성된 미세한 마그마로드의 결정이 분해되었고, 검은 재가 나노미터의 영역 안에서 방황하며 그 본성을 드러냈다.
화르륵, 투란의 몸이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콰아앙, 콰앙!
굳어진 채로 투란의 몸뚱이 곳곳에서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투란을 사로잡았다 여긴 두 악마종이 기대고 있던 벽에서 슬그머니 떨어지려다가 다시 납작 들러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