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2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23)
폭염(爆焰)이 거인(巨人)처럼 치솟아 일렁거렸다.
불꽃이 형상을 갖춘 채로 두 악마종을 더욱 벽에 몰아붙이겠다는 듯이 찰랑거렸고, 그 모습은 저 너머로 내려앉은 마이두스 왕에게 거대한 성채처럼 느껴졌다. 분명히 황금성의 주인인 마이두스 왕, 자신에게 익숙한 알현실 안에 머물고 있는 몇 미터가 되지 못한 불덩이일 뿐인데!
화르륵, 쿠웅.
두 가닥 불길이 치솟다가 두 악마종을 향해 거대한 주먹이 되어 꽂혔다.
악마종 둘이 벽에 부딪히며 낸 굉음이 무겁고 둔하게 울려퍼졌다.
주먹이 된 불길은 악마종의 가슴팍에 열린 구멍, 소용돌이의 형상 속으로 거칠게 밀려 들어갔다. 두 악마종의 기괴한 몸이 붉게 물들었고 꿀렁거리는 체액이 불타오르듯이 달궈졌다.
콰아아!
불기둥으로 이뤄진 새로운 거구가 벽을 등진 채로 형성되었다.
두 악마종이 불길을 삼키고 몸집을 키우며 투란을 흉내 낸 듯했다.
폭염 속에서 투란은 눈을 깜박이며 어이없어했다.
‘와, 저거 진짜 정령이랑 친하잖아. 칼라고…… 녀석들이 착각하지 않을 수가 없네!’
―감탄할 때냐? 너의 파이어컨트롤을 찍어 누르고 있잖아. 어쩔 거야?
‘흐흥, 정령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정령 흉내라고. 친하기는 하지만…… 정령은 아닌 거지.’
입가에 묘한 웃음을 머금은 채, 투란은 꽂힌 채로 쏟아붓던 불길을 멈췄다.
하지만 이미 넉넉하게 불길을 삼켰다는 듯, 두 악마종은 쿵쾅거리는 걸음을 내디디며 동시에 투란을 향해 입을 여는 듯한 작은 구멍을 드러냈다. 그 구멍에서 쏟아져 나온 불줄기는 투란이 내지른 불길보다 압축되어 보다 선명한 황금색의 축을 지닌 채였다.
―야, 저건 플레임불의 파이어컨트롤로 어떻게 안 돼!
드라고니아가 경고한 순간에는 이미 두 악마종이 뿜어낸 불줄기가 투란에게 적중하고 있었다.
투란은 그 경고를 들으며 불로 이뤄진 거인의 입을 열었다.
“기쁘군. 이런 재주까지 있다니 말이야.”
황금축을 지닌 불줄기는 거인 형상의 불길을 짓이기고 으스러뜨리는 중이었다.
도무지 투란이 내뱉은 말에 담긴 오만함이 드러날 여지가 없는 광경.
하지만 그 광경을 보던 마이두스 왕은 납득한 모양이었다.
“디바우어…….”
신음하듯 나온 마이두스 왕의 한마디가 한창 불줄기를 뿜어내던 두 악마종에게 닿은 모양이었다. 불줄기를 뿜어내던 입, 그 곁으로 새로운 입 모양이 생기며 절박한 외침이 제각각 터지고 있었다.
“그럴 리가!”
“어떻게!”
그 사이에 불을 머금은 채로 내밀어진 투란의 두 손은 두 악마종이 뿜어내는 불줄기를 꿀꺽거리듯이 삼키는 중이었다. 어느 틈에 두 손은 두 악마종의 몸과 비슷한 형상을 이룬 채였고, 불을 머금은 체액이 꿈틀거리며 맺혀 있었다.
투명하면서도 돌과 나무가 뼈와 살을 대신해 채운 것처럼 변한 투란의 손이 쥐락펴락했고, 삼킨 불줄기가 손아귀 속에서 황금빛을 자아내며 뭉쳐갔다.
이를 보며 두 악마종이 더욱 성난 듯, 한편으로는 실성한 듯이 외친다.
“어째서!”
“저항하란 말이다!”
이 소리에 투란이 피식 웃었다.
드라고니아는 씁쓸한 듯 투란의 뇌리에 되뇐다.
―역시 몬스터 로드를 디바우어라 부르는 시대에도 알려져 있었구만. 삼킨 것의 자아(自我)가 몬스터 로드를 혼란스럽게 하고 망가뜨리는 거…….
‘그래, 그런데 정작 자기네 특성은 몰랐나 본데?’
―몰랐을 리가 없지. 단지 너처럼 자신들의 특성을 이용해서 육체에 담긴 자아를 배제하고 오직 육체적 특질만을 삼켜 이용할 수 있다는 것까지 짐작하지는 못한 것뿐일걸. 솔직히 나도 이런 짓이 될 줄은 짐작도 못 했다고. 하마터면 마력으로 끼어들 뻔했어, 그러니 미리 말 좀 하라고, 미리!
투덜거리는 드라고니아는 아직도 투란이 악마종 미노타우루스를 삼킬 때의 놀람이 가시지 않았다는 듯이 을러대고 있었다.
콰아, 으드득.
손아귀에서 새로운 황금의 불꽃을 피워 올리며 투란이 다시 두 주먹을 두 악마종을 향해 내질렀다.
쿵, 쿠웅.
둔탁한 울림이 거칠게 퍼져나갔다.
두 악마종과 투란이 뒤엉켜 붙었다.
체액이 부풀며 거품과 소용돌이를 일으켰고, 그 속에서 돌과 나무, 불꽃이 뒤섞인 채로 흘러넘쳤다.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뒤섞임은 결국 커다란 포말(泡沫)처럼 부풀어 올랐고, 투란과 두 악마종은 그 한 덩어리 포막 속에 갇힌 꼴이 되었다. 하지만 포말의 혼탁함은 너무 짙어서 더 이상 누가 악마종이고 누가 악마종을 삼키는 몬스터 로드인가 분별할 수가 없어 보였다.
그 광경을 향해 마이두스 왕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황금 옷과 신발이 황금의 바닥에 느릿하니 끌리며 마찰음을 울렸고, 그에 겹쳐지듯이 마이두스 왕의 목소리가 울린다.
“뭐라 할 수 없는 상태로 보이는군. 내가 거기 닿기 전에 끝내줄 수는 없으려나? 혹시나 디바우어, 아니 몬스터 로드라고 하는 편이 더 익숙하겠지? 그래, 몬스터 로드인 그대가 패배할 경우를 생각할 수밖에 없네, 나로서는 말이야. 그러니…… 이기고 있다면 서둘러 주게나. 내 손이 닿기 전에 끝을 내고 자네 모습을 보여줘.”
처벅, 칭. 처벅. 칭.
느릿한 걸음걸이 사이로 조금 날이 선 듯한 황금과 황금의 충돌음이 나직하게 섞인 채로 울렸다.
마이두스 왕은 가능한 한 느리게 걷는 시늉을 하고 있었지만 두 손을 가만히 앞으로 내민 채였고 뒤엉긴 채로 커다란 포말을 이룬 투란과 악마종의 곁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황금의 손길이 지닌 능력을 아는 이라면 당연히 위협적으로 느낄 태도였고, 마이두스 왕 스스로도 이를 잘 알고 이용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기묘하고 흉험하면서도 비싼 위협이 잘 전해지고 통한 듯, 포말이 수축(收縮)하며 뭉클뭉클 형상을 이뤄내기 시작했다. 그 형상 주변으로 투명한 티끌이 흩날렸고, 형상은 점차 또렷하게 투란의 모습…… 미노타우루스의 우람한 체격에 어딘가 색다르지만 분명히 소의 뿔인 것을 머리에 달고 있는 형체를 갖췄다.
그리고 또렷하게 울려나온 말…….
“거참, 임금님 무섭잖아요. 조금 느긋하게 하고 싶었는데…….”
툴툴대는 투란의 표정을 보며 마이두스 왕이 걸음을 멈췄다.
투란은 찬찬히 자신을 훑어보는 눈길에 다시 입을 열어 굵은 목에서 흘러나오는 굵직한 목소리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요? 이 모습이 그렇게 이상해 보여요? 어, 이거 몬스터의 힘을 써야 할 때 어쩔 수가 없는 건데, 이런 거 본 적 없으세요? 그니까, 딱히 이거랑 똑같은 모습은 아니더라도 말이죠. 어떤 몬스터의 정수를 삼켰냐에 따라 모습이 완전히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괜찮은가?”
“에?”
불쑥 묻는 안부의 말에 투란은 멈칫하다가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마이두스 왕이 갑자기 무슨 걱정을 하는 것인가?
―야, 악마종 삼키고 멀쩡하냐고 확인하는 거잖아.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삼켰으니까, 무슨 삼중인격이라도 나오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는 것 같은데?
‘헐? 어, 진짜 그런가?’
드라고니아의 지적에 투란은 ‘설마?’ 하다가 마이두스 왕의 진지한 눈길에 움찔하며 다시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별일 없는데요? 왜 그러시는데요?”
마이두스 왕은 가만히 투란을 바라보는 채로, 마치 정말로 삼중인격의 흔적이라도 찾는 듯한 눈빛을 띤 채로 차분하게 말한다.
“가끔…… 악마종을 삼킨 디바우어, 몬스터 로드가 자기가 악마의 일족이라도 된 것처럼 날뛰는 꼴을 봐서 말이네. 한참 날뛰다가 지치면 그제야 겨우 난동을 멈추고는 하는데, 악마종의 힘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자신이 누군가 몹시 혼란스러워하더군. 여럿을 한꺼번에 포식할 경우에는 그야말로 자신이 누구냐고 자신에게 되물으면서 아무것도 못 하기도 하고 말이야. 자네는…… 괜찮아 보이는군.”
지난날을 더듬어 말하다가 마이두스 왕은 투란이 눈을 깜박거리면서 방긋거리려고 입꼬리를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안심했다는 듯이 말을 맺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기가 누군가 홀랑 까먹고 헷갈려하는 놈이 지을 표정은 아니라고 인정하는 듯.
그래도 어떻게 이리 멀쩡한가 살짝 의심하는 눈길까지 거두지는 않는 마이두스 왕이었다.
때문에 투란은 몇 마디 설명을, 자기 보호를 위한 변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른 누군가라면 몰라도 마이두스 왕이 ‘아무래도 너 위험해!’라고 판단을 내리고 손을 쓴다면, 투란은 누군가 보면 탐낼 황금상이 되어 이 황금성의 알현실을 장식하는 황금상이 될 수가 있으니까!
“보통은 그렇게 될 거예요. 그래서 요새는 뭐라 알아듣게 떠들고 다니는 몬스터는 몬스터 로드가 삼키지 않아요. 그런 몬스터 정수는 삼키는 거 아니라고 다들 알고 있는 셈이죠. 하지만 이 악마종은…… 아, 아까 이 녀석들이 말한 칼라고드라니샥이 이 녀석들에 대해 갖고 있는 정보를 제가 좀 알거든요. 얘네는 몸이랑 정신이 완전히 따로 놀아요. 음, 그러니까…… 정확하게 하자면 자아의 근간(根幹)을 기억(記憶)에 두는데, 그 기억은 포말형태로 몸 밖에 보관하는, 정말 특이한 종족이거든요. 기억이 없는 몸은 적층(積層)구조로 형성된 채로 서서히 자아를 획득하는데, 그게 결국은 포말…… 거품 형태로 성장해서 기억을 갖춘 다음에야 자아가 생기는 거래요. 그러니까, 이 녀석들 몸에서 거품을 쥐어짜 낸 다음에 남은 것은 거의 마수나 다름없고, 자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몸뿐이라는 거죠. 덕분에 얘네, 뒤팡드로품클라트라는 일족이 이계에서 소환된 뭔가가 정령이랑 결합해서 그냥 정령이 되었거니 하고 잘못 아는 경우도 많았데요. 아마 그 시절에도 몬스터 로드, 디바우어에게 잡혀 삼켜졌어도 거품이 쫙쫙 빠진 채라면 별일 없었을 거예요. 물론 기억이 없으니까 그 능력은 바닥부터 다시 몸으로 확인해야 했겠지만…….”
“놀랍군.”
마이두스 왕이 감탄했다.
이야기하던 투란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설마 이런 악마종 일족이 있을 줄은…….”
“아니, 자네가 놀라워.”
마이두스 왕이 더 이어지려는 투란의 말을 뚝 자르며 하는 소리였다.
“네?”
“나는 자네 같은 부류, 몬스터 로드라는 이들은 모두 본능적으로, 생각보다는 몸을 먼저 움직이며 앞으로 뛰쳐나가는 성격이라고 생각했거든. 자네 이전에 내가 본 이들은 거의 모두 그랬다네. 한데 자네는 매우 지적이로군. 냉정한 지성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능력을 사용하니…….”
―으아아아! 뭐라는 거야, 임금님! 아냐, 아니라고! 얘는 그런 애가 아냐! 아, 소리 내서, 소리 내서 알려줘야 해! 이 임금님이 대체 지금 이 녀석한테 무슨 착각을……!
‘시꺼! 닥쳐!’
나긋한 마이두스 왕의 말에 드라고니아가 못 참겠다는 듯이 발작하는 외침을 터뜨렸고, 투란은 뇌리를 징징 울리는 그 외침에 으르렁거렸다. 그 사이에 마이두스 왕은 몇 마디 더 투란을 칭찬하고서 말을 맺고 있었다.
“요즘의 몬스터 로드는 다들 자네 같은가? 본능보다 먼저 냉정하게 생각하는 쪽인가? 자제하지 못하고 난동 부리거나 하는 일은 없는가?”
투란은 일단 드라고니아의 외침에서 정신을 보호하는 채로 손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아예 손을 몸 뒤로 빼는 듯한 자세로 묻는 마이두스 왕을 바라봤다.
칭찬 끝에 무엇을 묻는가, 그 표정 깊이 숨겨진 의도가 바로 투란에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이두스 왕은 키린보다 더 오랜 옛날에 이 세상에 불려와 살던 이란 것을 투란은 깨달았다.
“요즘에는 몬스터 로드가 미쳐 날뛰는 일이 드물어요. 어, 한 오십 년 전인가? 숲의 사제라든가 투신의 신전에서 얻는 부적으로 몬스터 엠블럼을 억제하는, 광란에 빠져서 폭동을 일으키는 일을 막는 비전이 공개가 되었거든요. 그러니까……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우당탕거리며 날뛰는 경우는 드물어졌죠. 하지만 원래 성질이 더럽고 성급한 경우라면…… 그래도 몬스터 형상을 드러내고 날뛰기까지는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죠.”
“그래? 대단하군…… 심연(深淵)의 힘을 끌어내는 몬스터의 문장을 억제하다니……. 정말 세월이 많이 흐른 모양이군. 그런 일까지 가능해지다니.”
진심으로 놀라는 듯한 마이두스 왕을 보며 투란은 갸웃했고, 드라고니아는 혀를 차며 툴툴거리고 있었다.
―이런…… 또 착각을 하는군. 현재 남겨진 몬스터 로드의 문장은 황금성이 부유하던 옛날이랑 많이 다른데…….
‘뭐? 야, 그게 뭔 소리야?’
―나중에.
살짝 얄미운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말을 끊었다.
투란은 더 따져 묻지 못했다.
마이두스 왕이 진지하게 말을 이어 묻는 탓이었다.
“이제 어찌할 셈인가? 나에 대해서…… 어찌하겠나?”
“예?”
투란에게는 굉장히 뜬금없는 물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