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2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24)
―하! 걱정하는구만, 황금의 손길을 얻기 위해 팔뚝 잘라내서 포식할 궁리라도 하는 거 아닌가 하고 말이야. 그런 짓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 야, 안 통한다니?’
어느새 ‘지적인 투란’이란 마이두스 왕의 말에 발작할 듯했던 순간을 홀랑 잊어버린 것처럼 냉철하고 지적인 말투로 떠드는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저주받았다 하는 몬스터의 능력이라도 몬스터 로드라면 그 효과를 제약해서 쓸 수 있으니까, 은근히 황금의 손길도 그렇게 얻는 수가 없을까 하는 딴생각은 자연스럽게 치밀어 오르잖나.
한데 드라고니아는 몬스터 로드로서는 마이두스 왕의 손을 얻을 수 없다는 듯이 말하고 있다니…….
―저 손은 신의 저주, 아니 원래 축복으로 부여된 힘이 깃든 거라고. 신전의 봉인술로 몬스터 엠블럼을 억제하는 것처럼, 저 손에 담긴 힘이 문장을 억압하고 삼킬 수 없게 막는다는 말이야. 만물(萬物)을 황금으로 만드는 힘이면서, 신성(神聖)하다는 말이지. 널 떠보려고 하는 말이니까, 어설프게 어찌 해보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질 마라.
‘안 했거든? 쳇, 애초에 사람이잖아. 저 악마종처럼 될 리가 없다는 거 잘 알고 있다고.’
툴툴 대꾸하면서 투란은 아직 자신의 대답을 기다린다는 듯이 바라보는 마이두스 왕을 향해 입을 연다.
“사람이나……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야기할 줄 아는 몬스터는 삼키지 않습니다만?”
이 말에 마이두스 왕은 잠깐 물끄러미 투란을 바라봤다.
마치 조금 전에 삼킨 악마종은 뭐였냐고 따지듯, 혹은 걸리는 바가 없으면 냉큼 팔을 잘라 삼킬 생각은 아니었냐고 묻는 듯한 묘한 눈길이었다.
하지만 다시 말문을 연 마이두스 왕은 그런 눈빛과 상관없이 물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러면, 이제 나를…… 나에 대해서 어찌할 생각인가?”
“아무 생각 없는데요?”
투란의 대답은 빠르고 간결했다.
물론 그 짧고 쉬운 대답과 함께 투란의 눈길은 주변을 스윽 훑으며, 이 황금성에 관심 있다는 시늉도 하고 있었다. 악마종들과 싸운 것은 그 과정에서 방해가 되니 물리친 것뿐이란 듯!
한데 마이두스 왕 또한 그런 투란의 눈길을 따르듯 주변을 가만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보아온 것이 과연 자신이 아는 그대로인가 아닌가 확인이라도 하듯 둘러보던 마이두스 왕은 잠시 후에 다시 투란에게 묻는다.
“그러고 보니…… 황금의 소를 만나지 않았던가? 고르곤이라 하는 것을 말이야.”
투란에게 신의 공예품이라 설명했던 것을 되새기며 하는 말이었다.
투란으로서는 딱히 감출 일도 아니란 기분이라 그대로 대답한다.
“봤죠.”
자세한 이야기는 덧붙이지 않은 채로.
마이두스 왕은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모양이었다.
“싸웠는가? 고르곤을…… 파괴했나?”
어딘가 간절한 말투였다.
투란은 조금 주춤하다가 슬그머니 에두르는 대답을 떠올리고 입에 담았다.
“뭐, 다시 볼 수 없게 되기는 했죠. 어떻게 하다 보니까요. 어, 혹시 그거 임금님이 부리던……?”
“아니, 난 그런 괴물을 부리지 않아! 정말로 다시 볼 수 없게 된 건가? 이 황금성 안에서만이 아니고, 세상 어디에서도?”
“예, 뭐…… 그런 고르곤이 하나뿐이라면 다시 못 볼 거예요. 그건 확실해요.”
“하, 하, 하하핫. 하하하핫.”
갑자기 웃는 마이두스 왕이었다.
이 웃음에 투란은 얌전히 대답하다가 흠칫했다.
어째 기쁜 듯하면서도 반쯤 미쳐가는 듯한 낌새가 역력한 웃음이잖은가!
“저, 임금님?”
무슨 일이냐는 말을 더할 필요는 없었다.
마이두스 왕은 바로 투란을 바라봤고, 부둥켜안고 즐거워하고 싶다는 표정을 역력히 띤 채였다.
그 표정을 보는 순간에 투란은 슬그머니 한 걸음, 두 걸음 물러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 임금님이 잠깐 실수로 만지면 탐스러운 황금의 투란이 될 참이니까!
―묘한데? 좀 물어봐라, 내가 소리 내지 못하게 막았으면 이럴 때 얼른 묻기나 하라고!
드라고니아가 투덜거렸다.
그러려던 참이기에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는 살짝 으르렁거리는 생각을 전하면서 바로 입을 열어 마이두스 왕에게 묻는다.
“임금님? 괜찮으세요?”
“하핫, 아? 괜찮네! 하하핫! 나는 괜찮아!”
“…….”
“정말 괜찮아!”
투란이 할 말을 잃은 듯 맹하니 바라보자 마이두스 왕은 아무 생각 없는 와중에도 뒤로 물러서면서 두 손을 저어 보이며 괜찮다 말하고 있었다.
투란에게는 그 모습이 꽤 위협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고!
마이두스 왕도 문득 자신이 너무 기뻐서 황금의 손길에 대해 잊은 채로 손짓발짓하는 것을 알아차린 듯, 알현실의 옥좌 앞을 채운 낮은 계단에 앉으며 웃음을 멈추기 위한 것처럼 숨을 골랐다.
가만히 거리를 두고 이를 지켜보던 투란은 마이두스 왕이 자신의 볼과 이마를 쓰다듬어 올리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자기 모습을 점검하는 광경을 보다가 퍼뜩 깨달을 수 있었다.
‘야, 저 임금님 능력…… 저주인가 뭔가가 자기 몸에는 통하지 않는 거야?’
―뭘 물어? 이미 통하지 않는 거 잘 보고 있으면서.
‘헐!’
―자신의 소중한 가족을 잃었을 때, 저 손으로 자신을 두들기고 문지르고 했었다는 말도 전설에 있었지.
덤덤한 척하면서도 드라고니아 역시 꽤 신기한 듯 말하고 있었다.
만물에 통하는 강력한 저주, 그냥 돌이 아니라 황금으로 변화시키는 탓에 간혹 축복이라 여겨지는 저 힘이 유일하게 통하지 않는 존재는 마이두스 왕.
그 힘을 지닌 본인뿐이었다.
얼핏 생각하면 자기 능력이 자기한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겠지만, 자기 손에 들린 도끼로 자기 몸을 찍으면 다치는 것이 보통이고 이는 마법이든 기괴한 능력이든 별 차이 없이 통용된다. 어떤 힘이든 그 힘을 발출하는 존재에게도 똑같이 통하는 것이 상식인 것.
때문에 메듀시아의 전설에서도 거울 방패를 이용해 메듀시아를 제압했다는 묘사가 있다지 않던가. 실제로야 자매끼리는 통하지 않는 능력이었다고는 해도…… 메듀시아는 거울을 잘 볼 듯하지만!
드라고니아아 연이어 전하는 생각에 잠깐 갸웃하던 투란이 마이두스 왕을 향해 목청을 가다듬고 묻는다.
“으흠! 저, 이제 어쩌실 건가요?”
마이두스 왕이 고개를 들어 눈을 깜박이며 투란을 바라봤다.
도무지 뭘 묻는가 의아해하는 그 모습이 왠지 이상해 보였지만, 투란은 묻는 말에 덧붙일 수밖에 없었다.
“그니까, 저는 나가는 길에…… 이 성의 조각을 조금…… 어, 어디 부숴서 떼가려는 거는 아니고요. 올라가다 보면 부서진 곳이 좀 있을 것 같으니까 그 조각이나 좀 주워보려고요. 아무튼 가던 길을 가려는데…….”
“원하는 만큼 아무 곳에서나 뜯어가도 괜찮네. 이 성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는 곳이니까. 내 일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말게나. 나는…… 그냥 남아서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해주게.”
마이두스 왕의 대답은 어딘가 차분했다.
투란은 그 침착함이 너무 지나치다고 느꼈다.
언젠가 본 듯한, 어딘가 불길한 느낌의 침착함.
‘설마…… 임금님, 자살이라도 하려는 건가?’
기억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어떤 헌터의 모습이 투란의 눈가를 찌푸리게 했다.
너무나 평온하게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면서 느긋해하던 몬스터 헌터…… 며칠 한가한 표정을 짓다가 불쑥 자살했던 그 괴상한 작자랑 마이두스 왕이 묘하게 겹쳐 보이고 있었다.
―음? 자살? 그럴 리가…… 그런 거 못 할걸?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투란에게는 어딘가 괴상한 말이었다.
‘못 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다 하는 것.
마이두스 왕에게 자살이 불가능하다?
―죽으려고 한두 번 해봤을 리가 없잖아. 이 성을 봐라. 성안의 모든 것이 황금이 된 까닭이 뭐겠어? 다 치웠다고 하지만 아직도 황금이 된 사람이 남아 있을지도 몰라. 아무튼 황금성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황금으로 지은 성의 주인이 아니라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이 간직된 성을 황금으로 바꿨다. 이 세상으로…… 원래 살던 세상에서 벗어나자마자 한 일도 여기서라면 신의 저주를 피해 자살할 수 있는가 실험한 것이란 얘기가 있어. 마이두스 왕은 자살 못 해.
드라고니아가 조금 더 자세히 말하고 있었다.
듣다 보니 투란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탐욕을 부추기는 능력이지만, 저 능력은 전혀 제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축복이 아닌 저주.
그런 저주를 품은 채로 겪은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면 그냥 죽으려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럼에도 살아 있다는 것은…….
‘야, 하지만 지금 저 표정은 죽을 수 있다는 것 같은데?’
투란은 아무리 다시 훑어봐도 마이두스 왕에게서 자살했던 그 헌터의 분위기가 자꾸 겹쳐지고 짙어지는 것을 확인하며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게?
드라고니아도 퍼뜩 알아차린 듯이 갸웃했다.
때문에 투란은 여전히 즐거워하는 듯한 좋은 표정인,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누르느라 킬킬거리는 괴상한 웃음을 흘리는 마이두스 왕에게 조심스럽게 물어야 했다.
“저기…… 혹시…… 죽을 작정이세요?”
조금 뜻밖이란 표정을 떠올리면서 마이두스 왕이 투란을 바라봤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가 궁금해한다기보다는 어떻게 알았는지 의아해한다는 쪽에 더 가까운 표정, 투란은 확신하고 다시 물었다.
“예전에 할 일 다 했다면서 며칠 못 가 죽어버린 아저씨를 본 적이 있어서요. 지금 임금님, 그 아저씨랑 너무 비슷해서…….”
“그런가. 그렇기도 하겠군. 이런 손을 지녔다고 해도, 한 나라의 왕이라 해도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인간…… 다른 세상에서 왔다 한들 결국은 인간이니 엿보일 수밖에 없겠군. 아, 맞아. 나는 죽을 거네. 음? 아, 자살까지 할 생각은 아니야.”
말하다가 투란의 얼굴이 미묘하게 찌푸려지는 것을 본 마이두스 왕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 손짓에 투란은 조금 더 뒤로 물러서야 했고, 이를 본 마이두스 왕의 말이 이어진다.
“죽을 때가 되었을 뿐이야. 이 성에서 신의 공예품이 사라진다면, 나는 이 황금성과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다네. 그게…… 내게 이 축복과 함께 내려진 신탁(神託)이지. 하지만 고르곤은 내 성의 괴물을 변형시키면서 강력한 경비병으로 바꿨고, 그런 고르곤을 감히 격퇴하겠다 나서는 용사는 없었지. 아무리 많은 황금을 준다 해도 고르곤과 미노스의 소괴물을 상대하지는 않겠다고 말이야. 신들의 저주를 받는다 두려워했으려나? 그래서 나는 신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세상에 닿고 싶었어. 누군가 이 성의 황금을 탐내서 쳐들어오고, 고르곤을 깨뜨리고 미노타우루스라는…… 내 나라의 이름을 더럽히는 괴물까지 모조리 격살하는 영웅을 원했으니까. 다른 세상이라면 그런 영웅을, 용사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소망했던 거야. 한데 놀랍게도 정말 다른 세상에서 나를 부르더군. 응하지 않을 까닭이 없었지.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 왔어. 내 성과 고르곤이 한꺼번에 딸려온 것은 정말 황당했지만…… 이 세상에서는 죽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어. 그러니 안타까워하지 말게. 아, 혹시 내 손이 탐나는가? 그건 좋은 생각이 아냐. 이 손은…… 여전히 신들의 영향을 받는 탓에 디바우어, 몬스터 로드 역시 삼키지 못한다네. 잘라서 내다 버리려 해도 안 되는 거라 여태 달고 있는 것뿐이야. 하하핫, 바보 같지? 이런 걸 소망하다니…… 응? 아, 원래 신들에게 소원을 빌어 얻은 손이거든. 하하핫. 스스로 저주를 청한 셈이지. 내 어리석음을 벌하려고 이런 손을 갖게 한 신들은…… 이 세상에도 몇 곳 섬기는 신전이 있을 거야. 나와 함께 이 세상에 건너온 이들이 세우는 걸 봤지. 여전히 남아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 그러니까 자네는 내 걱정할 필요 없다네.”
오래 참아온 듯, 왕의 이야기는 두서없이 흘러나왔다.
투란은 뭐라 할 말이 없어서 그냥 듣기만 했다.
도무지 무슨 사연인가 알 수 없었고, 그저 메듀시아가 돌의 저주를 내리는 것처럼 황금의 저주를 내리는 탓에 마이두스 왕이 꽤 처절한 꼴을 겪었다고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짐작으로 인해 더욱 뭐라 할 말이 없었지만, 그래도 투란은 생각을 쥐어짜 내서 묻는 말을 하나 꺼내봤다.
“그러면, 여기 혼자 있을 건가요? 먹을 것도 없는데 말이죠. 아, 그리고 황금 고치도 아직 여럿 남아 있는 것 같던데…… 그 안에 미노타우루스도 있고 말이에요. 어쩌면…… 저 악마종 녀석들도 따로 더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혼자 있을 건가요?”
마이두스 왕이 낑낑거리며 소리를 쥐어짜 내는 듯한 투란을 보고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다가 불쑥 묻는다.
“그런데…… 자네 이름은 뭔가? 어찌 되었든 날 구해준 은인인데…… 이름조차 묻지 않았다니, 정말 실례했어. 자네 이름은……?”
살짝 투란의 표정이 색다르게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