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2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25)
‘설마 옛날에도 투란이란 이름이 엄청 많았……겠지? 임금님, 그림 투아란보다 나중에 이 세상에 왔냐?’
슬그머니 먼저 드라고니아에게 묻는 투란이었다.
―그림 투아란보다 나중일걸?
갸웃하는 시늉을 하는 말투로 대답하는 드라고니아였다.
투란은 일단 담담하게 마이두스 왕을 향해 대답을 하기로 했다.
“에, 흔한 이름이에요. 아마 들어본 적 있을걸요. 에, 그러니까…….”
마이두스 왕은 멈칫하고 주춤거리며 늘어지는 말에 눈을 살짝 가늘게 하며, 대답을 듣기 전에 말한다.
“투란? 아니면 카엘?”
“……투란이요.”
거의 포기했다는 기분으로 투란이 웅얼거리듯이 대답했다.
그런 투란을 보며 마이두스 왕이 빙그레 웃었다.
“여전히 세상에서 제일 흔한 이름인가?”
“뭐, 그렇죠.”
한숨처럼 투란이 대답하다가 갸웃했다.
도대체 세상에서 제일 흔한 이름은 언제부터 투란이고, 카엘이 되었던가?
이 임금님, 까마득한 고대에 와서 살았다는 임금님조차도 그리 알고 있다니…….
세월을 초월한 듯한 기묘한 상식에 투란이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마이두스 왕이 살짝 위로라도 하려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드래곤로드가 재림(再臨)하지 않는 한, 진룡(眞龍)의 저주(詛呪)가 존속(存續)할 테니…….”
“예? 잠깐만요, 그게 무슨……?”
투란이 놀라서 되물으려 할 때, 드라고니아가 바로 혀를 차는 말투로 속삭인다.
―뭘 물으려 해? 그건 고대의 역사잖아. 너, 그 정도 교양도 없었던 거냐! 이계에서 불려온 임금님조차 아는 걸 몰라?
‘야, 드래곤로드 그림 투아란 이야기 마지막에 나오는 거 나도 알아! 진룡의 저주니 뭐니 하는 거, 하지만 거기 뭔 재림이 어쩌구 하는 말은 없었다고!’
―응? 재림에 대해서…… 아, 그건 상위 마법사 정도는 되어야 은밀하게 배우던 거였나?
‘너, 진짜!’
후욱,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면서 투란은 어리둥절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마이두스 왕에게 묻는다.
“재림이라니, 그 얘기는 처음 듣거든요? 진룡의 저주가 세상에 내려졌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나요? 내가 어릴 때 줄곧 들은 그림 투아란 이야기는 항상 거기서 끝났는데…….”
“흠? 흐흠……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군. 그 부분은 좀 오싹하기는 하지.”
마이두스 왕은 문득 알았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하나 투란에게는 전혀 모를 이야기!
“오싹? 왜요? 뭐라는데요?”
곧바로 눈을 반짝이면서 호기심 가득하게 되묻는 투란이었다.
마이두스 왕은 그런 투란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아마 너무 어린아이에게 들려주기에는 무서운 이야기라 이야기꾼이 생략했겠지. 하지만…… 이제는 어리지 않잖은가? 누구에게라도 들을 수 있을 거야, 나 같은 자에게 듣는 것보다는…… 나 역시도 이 세상에 와서 들은 이야기니, 이 세상에 대해 좀 더 잘 아는 이에게 듣는 게 좋겠지. 그보다…… 내겐 자네가 더 흥미롭고 재미있어 보여. 대체 어쩌다 여길 지나가게 되었는가부터 궁금하다네. 내가 저 끈적한 체액투성이의 악마종과 겨루기 직전의 상황은…… 내게는 겨우 한두 시간도 흐르지 않은 듯하네만, 그때 상황을 바탕으로 추측한다면 나의 성, 황금성은 지저(地底)에 꽂혀 있을 거라 생각하네만, 어떤가?”
“어, 맞아요. 여긴…… 꽤 깊은 땅속이죠.”
벅벅, 뒷머리를 긁으면서 투란이 대답했다.
황금의 광휘가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성, 투란이 세 악마종을 처리했음에도 여전히 기묘한 마력이 맴돌며 그 빛을 흘려내는 황금성의 풍광(風光) 속에서 그 주인인 마이두스 왕이 웃으며 하는 말은 투란에게 조금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조금 전까지 악마랑 툭탁거렸고 괴물소랑 다퉜는데 느닷없이 아주 한가한 여관 주점의 한 귀퉁이에서 먹을 것, 마실 것 없이 마주 앉아 대화하는 이 분위기…… 어쩐지 살짝 민망하기도 한 투란이었다.
마이두스 왕은 투란이 느끼는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듯, 담담하게 말을 잇는다.
“황금성은 고르곤의 미궁을 향해 가던 중이었지. 그곳에서 할 일이 있었거든. 아, 고르곤의 미궁이라니 낯선가? 고르곤 세 자매가 거처하는 곳이네만……?”
“에, 그게 그러니까…… 고르고니아 세 자매 중의 하나, 메듀시아가…… 메듀시아만 머무는 미궁이 되었거든요. 뭔 일이 있었나는 잘 모르겠고요.”
투란은 어느 부분을 이야기하고 어느 부분을 덮을까를 궁리하면서 일단 에둘러 대답하고 있었다. 마이두스 왕은 이런 투란의 태도를 상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말을 잇는다.
“고르고니아라…… 그게 고르곤 일족이란 뜻이야. 이 세상에서는 조금 색다르게 전해진 신화 속의 전설이 된 듯하지만, 원래 고르곤을 키우던 세 자매이고 전혀 다른 모습의 셋만이 하나의 일족이기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 딱히 틀린 것도 아니군. 아무튼 고르곤은 세 자매가 거느린 호위이면서도 가축 삼아 키우는 괴물 소이지. 아, 내 나라의 이름을 얻은 미노타우루스랑은 완전히 다른 괴물이야. 그저 소의 형태를 지녔다는 것이 유일한 공통점이지. 그나마도 전혀 다르게 그 형태를 드러내지만…… 얘기가 자꾸 옆으로 새는군. 아무튼 하던 말을 하자면…… 내 성에 떠돌던 고르곤, 신의 공예품이 돼버린 그 괴물 역시 원래는 세 자매가 키우던 고르곤이었어. 나랑은 만날 일도 없고, 내 나라에 들어올 일도 없는 괴물이었지. 하지만 누군가의 수작으로 나 홀로 머무는 성안에 그 녀석이 들어왔다네. 내 성의 괴물, 미노타우루스를 농락하고 나를 그 뿔로 들이박기도 했지. 그리고 몸이 뿔에 꿰인 채로 덜렁거리던 내 손에 닿아 황금상이 돼버렸어.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나는 살아남았고, 황금상의 고르곤은 신들의 장난으로 계속해서 움직이도록 조작되었다네. 여전히 미노타우루스를 농락하는 채로, 내 성을 떠돌며 침입자를 막아내는 임무를 함께 부여받고 말이야. 그러다가 나와 함께 황금성이 이 세계에 떨어지면서 휩쓸려 온 거지. 음, 웬만해서는 부서질 리도 없지만 부서지고 손실되어도 황금을 먹어치우며 회복한다네. 게다가 마키나의 특성을 부여해서 조작된 탓에 다시 내 손에 닿아도 멈추질 않기까지 했지. 이미 황금이고 그 황금이 움직이는 거라서 그렇다더군.”
―미노스의 임금님이 수다쟁이였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드라고니아가 슬그머니 중얼거렸다.
투란은 어디 앉아서 천천히 들어야 하나 생각하며 바닥을 슬쩍 훑어보는 중이었다.
뭔가 말을 못 해서, 이야기를 못 해서 무척이나 심심했었다는 듯한 마이두스 왕의 낌새는 잠자코 앉아 들어라 하는 듯한 묘한 압박처럼 느껴지니까. 저리 길게 이야기하는 것이 벌써 두어 번째, 투란으로서는 오인(誤認)하고 있지 않다는 확신까지 할 수 있었다. 드라고니아도 마찬가지로 느끼는 듯했으니!
한데 혼잣말처럼 길게 떠들던 마이두스 왕은 이런 투란의 기분을 안다는 듯, 바로 투란을 끼워 넣겠다는 듯한 말로 이야기를 잇고 있었다.
“자네가 어떻게 처리한 것인가는 잘 모르겠네만, 고르곤은 미노타우루스를 괴롭히고 미노타우루스는 날 괴롭히도록 되어 있었지. 음? 아, 미노타우루스가 날 붙잡고 패거나 하는 일은 없어. 날 만지면 황금이 되니까. 다만…… 녀석을 보는 것이 내게는 고통일 뿐이지. 뭐, 안 좋은 추억을 자꾸 되새기게 해주는 거야. 아무튼 고르곤에 의해 변조(變造)된 미노타우루스는 내게서 조금 그 고통을 덜어주는 몰골이 되어 이 성의 주변을 맴돌게 되더군. 신들이 대체 무슨 장난을 쳐놓은 것인지, 아니면 나를 가엽게 여겨 최소한의 방비를 갖춰주려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누군가 고르곤을, 황금의 고르곤을 제압하지 않으면 그 순환은 끊어지지 않지. 그리고 그 순환이 끊어지면…… 마침내 안식의 기회가 내게 찾아온다네. 맞아, 이 또한 신탁이었지. 황금성에서 고르곤의 자취가 사라질 때, 황금의 저주를 받은 마키나 고르곤이 황금성을 떠나는 일이 생기면…… 저 옥좌가 나를 재워주고, 이 성은 나의 묘비이며 무덤이 되어 준다고 했어.”
“자취가 사라진다는 말은?”
투란이 주춤하며 물었다.
고르곤, 황금톱니와 황금껍질로 움직이며 미노타우루스에게 눈알 박아넣던 황금 고르곤은 투란이 삼켰다. 이를 이리저리 돌려 말하면, 마이두스 왕의 이야기와 섞어 생각하면 투란이 황금성을 떠나면 무슨 일이 생긴다는 말이 아닌가?
몬스터 로드인 투란을 통해 황금 고르곤의 능력이 남아 있는 동안에는 마이두스 왕이 받았다는 신탁은 이뤄지지 않지만, 떠나면 이뤄져서 무슨 일이 생긴다는 것이라 여겨지는 이야기잖은가.
―죽을 수 있다는 말 같은데?
드라고니아가 짧게 줄여보자는 듯이 추측을 말했다.
마이두스 왕이 천천히 계단에서 일어나 옥좌로 옮겨가 앉으며 투란에게 답한다.
“자네가 이 황금성을 떠난다는 의미가 되겠지. 디바우어로서, 신의 공예품까지 삼킬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이곳에 도착한 이래로 천 년 이상이 흘렀다는 뜻이고. 음? 아, 나는 카엘…… 아마 자네들에게는 대마도사 카엘이라 알려진 이와도 교류가 조금 있었네. 그가 그러더군, 원래 내가 있던 세상 올림피카…… 이쪽에서 옴파레온이라 부르는 그 세계의 신성한 힘이 아무래 대단해도 단절된 세상에서 섭리에서 벗어난 이단으로 기우는 데는 천 년 정도 걸린다고, 그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신의 공예품이라 할지라도 몬스터 로드, 그 문장의 먹이가 될 수 있다고 말이야.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도 천 년쯤 지나면 포식당하는 처지가 될 수 있냐고 물었었는데…… 내 경우에는 안 된다더군. 내 자신이 신탁을 받고 신의 권능을 증명하는 탓에 뭔 사제 비슷한 꼴이라, 세월이 흘러봐야 내 안에 간직된 신들에 대한 믿음…… 증오와 고통을 내게 잔뜩 담아준 신들이지만, 그 존재에 대해 절대적인 확신을 품고 있기에 신앙을 품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이야. 웃기지? 딱히 숭배하며 모시지 않더라도 더할 나위 없이 그 신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존재가 되어서 신성한 권능이 사라지지 않는다니…… 하하핫, 하지만 신의 공예품은 그런 의지가 없어서 능력은 남으나 신성함은 없어진다나 뭐라나…… 푸후훗.”
웃고 있지만 웃는 것 같지 않았다.
투란에게는 마이두스 왕의 웃는 얼굴이 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웃음이 어느 틈엔가 정말 웃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듯했다.
투란을 향해, 마침내 옥좌에 잔뜩 기대고 앉아 왕으로서의 자태를 갖춘 모습으로 마이두스 왕이 웃음을 이어 흘리며 말할 때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듯이 보였다.
“아, 내가 미쳐 웃는 게 아니라네. 그냥…… 자네가 몹시 흥미롭거든. 내게 안식의 기회를 주기도 했고. 나와 싸우던 녀석들이 동료를 삼킨 자네를 보며 부추기던 모습도 재미있었거든. 보통 녀석들이 그러면 꽤 헷갈려하던데 말이야.”
어색한 웃음이 투란의 입가에 어설프게 떠올랐다.
드라고니아도 이번에는 마이두스 왕에게 동감한다는 듯이 툴툴거렸다.
―제대로 잘 봤네, 녀석들이 너한테 거품 몰아넣으면서 어떻게든 삼켜진 동족의 자아를 일깨우려 했으니…… 그나저나 이 임금님, 꽤 통찰력이 좋은걸? 그런 상황을 잘도 간파하고 있었잖아? 이런 사람이 대체 어쩌다가 저런 저주를…….
투란은 가벼운 헛기침과 함께 옥좌에 앉은 왕에게 묻는다.
“어, 그러면…… 이만 가던 길 가봐야 하는 건가요? 그래야 임금님이…… 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건가요?”
“그래, 말하자면 그렇지. 아, 이 성에 남겨진 악마종의 고치는 걱정할 것 없네. 체액이 남았다 해도 황금으로 둘러싸인 다음에는 누가 깨우지 않으면 전혀 문제가 없더군. 아마 황금 고치인 그대로 나와 함께…… 쉬게 될 거야. 깨어나는 일 없이 말이네.”
“에, 뭐…….”
투란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남겨진 체액이 그 포말을 얻고 악마종 뒤팡드로품클라트 일족으로 깨어나는 일은 없을 터였다. 그 녀석들이 빼돌리려고 한 기억, 그 자아를 일깨울 수 있는 포말은 이미 싸우는 와중에 가볍게, 아주 간단하게 ‘악마의 심장’을 이용해서 움켜잡고 삼켜놨다. 칼라고드라니샥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이를 칼라고드라니샥의 유물을 이용하고 남겨진 지식을 바탕으로 정제하면 포말에 담긴 기억은 모조리 빼낼 수 있었다. 뒤팡드로품클라트 일족의 자아를 깨우지 않고도,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를 얻을 수 있는 셈이었다.
딱히 중요하고 대단한 것은 없겠지만, 어쨌든 뒤탈 없이 정리한 것.
마이두스 왕의 손은 손대기 너무 겁나는 상황이니 투란으로서도 이쯤에서 슬그머니 발 빼고 도망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도 했다.
―좋아 죽는 황금을 무한 생성할 수 있는 기회 아니었냐? 의외로 얌전히 물러날 궁리부터 하네?
‘얌마, 좋아만 하면 됐지 뭘 죽을 각오까지 해! 게다가 죽는 것도 그냥 죽는 게 아니잖아! 황금을 탐내다 황금이 된 얼간이라니…… 싫어!’
후욱, 숨을 고르면서 깊이 들이쉰 다음 투란이 옥좌에서 더욱 편안한 표정을 짓는 마이두스 왕에게 묻는다.
“어, 근데…… 혹시 땅에 박힌 이 성에서 가장 높은 곳이 어딘가요? 아무래도 그리고 나가야 할 듯한데…….”
“저쪽 문으로 나가서 보이는 계단이 성의 정상까지 이어지네.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로 말이야. 땅속에 박혔다니, 그냥 흙으로 채워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가겠나?‘
“네…… 그래야겠죠.”
“고마웠네, 잘 가게나.”
어느새 차분한 미소를 띠는 마이두스 왕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투란은 조용히 알현실을 나섰다.
그리고 황금의 저주를 지닌 왕은 옥좌에 머리를 기대며 허공을 향해 속삭인다.
“카엘, 이계에서 흘러온 대마도사여…… 그대는 아직도 찾아 헤매고 있으신가? 드래곤로드의 재림을 아직 만나지 못했는가? 그 결말을 보고 싶지만…… 나는 이 안식의 기회를 놓칠 수 없네. 부디 자네 또한 원하는 바를 이루기를 빌겠네. 고마웠네, 잘 있게나.”
곧 옥좌에서 시작된 금빛 바람이 알현실을 중심으로 황금성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화시키겠다는 듯…….